[노동자의얼굴]15세에 죽어간 노동자 문송면

문송면군의 죽음으로부터 14년. 지금도 죽음의 행렬은 끝날 줄 모른다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마석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88 서울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무더운 여름날, '수은중독 15살 공원 숨져'라는 짤막한 신문기사가 짧은 그의 생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뿐이다. 소년이 지금 살아있으면 30살 건장한 청년 노동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딘가 아플지도 모르겠다. 수은중독으로 지금까지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겠고, 프레스가 그의 손가락을 짤뚝짤둑 잘라 먹었을 수도 있겠다. 그도 아니면 근골격계 질환으로 허리가 아프다며 밤새 찜질을 하며 끙끙 앓을 수도 있겠다. 다치고, 아프고, 죽기도 하는 것이 바꿀 수 없는 노동자의 삶이라면 말이다.

묘비명·2

[잠이 안 와요. 머리가 아파요. 밥을 먹기 싫어요. 온몸이 아파요.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불면 두통 식욕감퇴 전신통증 전신장애 고혈압 가려움증 헛소리, 아아- 병으로만 어른의 삶을 살다가 그는 갔다. 문송면, 만15세. 발바닥이 가려워 마구 긁어 댄 손톱독 피멍이 발등을 전기고문처럼 새카맣게 태웠건만 끝내 돈, 돈! 외치며 그는 죽었다. 수은중독, 그가 만든 온도계는 여느 신혼 가정의 갓난애 겨드랑 속에서 분내랑 향수내랑 맡고 있겠건만 이 세상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려고 그가, 당당한 노동자가 온도계를 만들던 공장은 수은이 밑바닥에 질척한 증기로 깔린 채 환풍 시설조차 없는 인간 도살장이었고, 노동은 하루 열 여섯 시간의 생지옥이었고, 삶은 짜고 쓴 썩은 무말랭이 보리밥 한끼의 아비규환이었다…. 만 15세, 1973년 충남 서산군 양산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6남매 중 넷째로 출생하여 중학교를 마치고 자력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 서울의 온도계 공장 협성계기에 취직하고 두 달만인 1988년 7월2일, 수은과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했다….]

"무서운 서울 떠나 농사지으며 엄마랑 살자"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친구들처럼 나도 공부하고 싶다.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뼈빠지게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 자식공부 못 시키는 우리 부모맘이 오죽할까! 서울에는 고등학교 공부시켜주는 공장이 있다던데…."(故 문송면군의 일기)

그러나 문송면군은 불과 두 달만에 만신창이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치료비마련을 위해 소를 팔고 빚을 냈다. 하지만 치료비 80만원이 없어 전신발작을 일으키던 송면이를 퇴원시키기도 했다. 형은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아버지는 정신적 쇼크로 끝내 '정신이상'이라는 또 하나의 환자가 되어 몸져누웠다. 막막해진 가족들의 산재요양 신청에 회사측은 '평생 먹고살 돈을 뜯어내려고 의사와 짜고 하는 수작'이라며, 온갖 협박과 회유로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 노동부도 회사측을 두둔하다 직업병 '수은중독'이 여론화되자 3차례 반려하면서 70여 일을 끌다가 산재요양 승인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죽음이 임박해오던 시각 고통에 떨던 문송면군은 형에게 말했다. "살고싶어. 병 다 나으면… 무서운 서울 떠나… 농사지으며 엄마랑 살자"고 했고, 그의 희망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1988년 7월2일 문송면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주검이 안치된 여의도성모병원 영안실. "가난이 웬수다. 네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을…." 비보를 듣고 새벽을 가르며 충남 서산에서 달려온 촌부가 오열하며 몸부림쳤다. "누구 내 아들 좀 살려줄 수 없소!" 그러나 소년의 아버지도 아들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다음해 숨을 거두었다. "우리 송면이 학교가야지…"라는 말만 되뇌인 채.

'또 산재사망사고 발생!' '작업장 추락사' '40대 가장 과로사로 숨져'

김성애 오범근 문송면 조정식 최완용 강민호 김봉환 강희수 고정자 김주리 김태홍 이남규 이종옥 송구호 임판수 이정랑 정인석 최수룡 김위돌 김영식 이충근 이용진 김문호 박거창 정기주 원태문 최임주 최조호 문범석 김병엽 박태용 고영경 정우석 이만철 김정룡 천종환 고성민 김진용 김영표 오영철 정종렬 최영복 허상범 김윤태 임계상 김광웅 김길현 송옥자 이상언 오진영 김상민 김주옥 육례화 정읍성 정동철 하종대 김광석 백만중 정충민 구기일 이상관 유상선 위성태 이향배…

문송면군의 죽음으로부터 14년. 지금도 죽음의 행렬은 끝날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IMF 구조조정 이후로 산재사고와 사망은 더 늘어나고 있다. 작년 한해만 노동현장에서 2800여명이 죽어갔고, 8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들었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10명의 노동자들이 죽고 있으며, 250여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병들고 있다. 노동자들의 얼굴에 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덮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죽음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