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배계급 노동자민중의 예술에 대하여

비록 투박하지만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민중창작'이 있다. 민중창작에는 민중의 삶과 투쟁 속에서 형성된 꿈과 희망, 비판의식과 건강한 생명력이 담겨있다. 이것이 피지배계급의 예술이다.

사회의 생산력이 증가함에 따라 전체 성원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즉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발생하였고, 잉여생산물을 차지한 계급이 지배계급으로 되어 예술 또한 지배했다.

계급사회 속에서 지배계급의 사상을 담은 예술이 예술의 역사를 주도해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만이 예술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면서 예술도 여러 계급들을 반영한 여러 예술들로 분화되었다. 계급사회에는 두 개의 예술, 즉 지배계급의 예술과 피지배계급의 예술이 반드시 존재한다.

지배계급의 예술에도 두 가지의 경향이 나타난다. 자신들이 누리는 엘리트, 고급예술과 다수 대중이 누리는 '대중예술'이다. 고급예술은 대중이라면 배우기도 어렵고, 향유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당연히 대중은 이 고급예술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대중예술은 지배계급이 다수의 대중에게 예술이란 이름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으로 대중을 타락시키는 첨병의 역할을 한다. 이 대중예술은 통속적인 사랑이나 섹스, 스포츠, 가족, 부의 축적, 명예, 성공 등에 사고를 묶어 둠으로써 대중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중예술 속에 지배계급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대중이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지배계급이 주입한 사상을 따라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예를 들면, 자신이 노동자인데도 자본가의 삶을 끊임없이 지향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비록 투박하지만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민중창작'이 있다. 민중창작에는 민중의 삶과 투쟁 속에서 형성된 꿈과 희망, 비판의식과 건강한 생명력이 담겨있다. 이것이 피지배계급의 예술이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궁중무용이나 아악, 시조 등은 지배계급의 예술이 속한다. 그 내용은 모두 왕에 대한 충성으로서 봉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용비어천가의 경우 이씨 왕조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기까지 했다. 즉,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이성계의 6대 조상까지를 목조, 환조, 도조 등으로 둔갑시켜 놓았다. 이것은 충효라는 봉건지배계급의 사상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탈춤, 풍물, 민요 등은 피지배계급의 예술에 속한다. 탈춤에는 지배계급인 양반계급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과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다. 민요는 생산을 담당하는 민중의 생활을 진솔하게 담고 있으며, 그 가락은 노동의 리듬을 살린 것이다. 풍물은 생산공동체의 행사에 사용되었으며, 외세와 봉건적 착취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난 동학군의 군악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피지배계급의 민중창작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체로 노동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는 민주성과 휴머니즘의 경향을 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80년대의 걸개그림과 판화, 풍물과 춤이, 그리고 투쟁하는 곳이라면 항상 있는 철의 노동자, 파업가, 앞으로, 동지가 등의 노동자노래가, 또한 90년대 들어서 일기 시작한 인터넷 선전과 시각 디자인적 흐름으로 비디오영상과 사진 등이 노동자의 투쟁을 형상화해내고 투쟁을 알려내는 선전선동을 담당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자 문학모임, 노동자 풍물패, 율동패, 그림패, 노래패 등등에서 노동자 자신이 직접 창작한다. 또한 전문 문화단체들이 노동자 문예를 통해 노동자의 사상과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노동자 투쟁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담당하도록 고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예술이란 무엇일까?
노동자가 그리고, 썼다고, 부른다고 다 노동자 예술인가?
노동자예술은 먼저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담아내는 것이다. 누가 했든, 작품에 노동자의 사상과 감정을 올바로 담아낼 때 노동자예술인 것이다.

이런 노동자의식이 반영된 최초의 노동자예술은 1844년 경 독일의 '슐레지엔 직조공의 노래'다. 슐레지엔 직조공이 만들어 부르던 노래로 자본가계급과는 화해할 수 없다는 계급적 자각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이 당시의 유럽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과 동맹하여 봉건 귀족계급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자본가들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깃발 아래 노동자들과 동맹하여 봉건귀족을 타도하였다. 유럽에서 새로운 세상을 연 프랑스혁명 역시 노동자계급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새 세상 즉,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에게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주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자본가계급이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힘에 놀라 봉건귀족과 손을 잡고 노동자계급을 타도해버리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비로소 자본가계급과 화해할 수 없는 하나의 계급임을 깨달았고, 1844년에 최초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슐레지엔 직조공의 봉기였고, 이때 부르던 투쟁가가 '슐레지엔 직조공의 노래'였다. 프랑스와 영국과는 달리 독일 노동자들의 봉기는 뚜렷한 계급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슐레지엔의 직조공

침침한 눈에는 눈물이 말랐다.
그들은 베틀에 앉아서 이를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첫 번째 저주는 하느님에게
추운 겨울에도 굶주리며 그에게 기도하였건만
우리의 바램과 기다림은 헛되었다.
그는 우리를 원숭이처럼 놀리고, 조롱하고, 바보로 만들었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두 번째 저주는 국왕에게, 부자들을 위한 국왕에게
우리의 비참한 삶을 본체도 않고
우리를 협박하여 마지막 한푼까지 앗아가고
우리를 개처럼 쏴 죽이게 한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세 번째 저주는 잘못된 조국에게
이 나라에는 오욕과 수치만이 판을 치고
꽃이란 꽃은 피기도 전에 꺾이며
모든 것이 썩어 문드러져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복은 나는 듯이 움직이고 베틀은 삐걱거리며
우리는 밤낮으로 베를 짠다.
썩어빠진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우리는 그 속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우리는 철커덕거리며 베를 짠다.

독일에는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많이 있었다. 하이네, 프라일리히 그라트, 헤어베크, 게오르그 베어트 등 노동자계급 시인이 있었고, 칼 휘프너, 프리드리히 렛싱 등 위대한 노동자계급의 화가가 있었다. 노동자예술은 노동자의식이 최초로 발생한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지로 전파되었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1871년, 낡은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세계 최초의 노동자 정권인 '파리꼬뮨'을 수립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외국군대까지 동원한 자본가들에 의해 붕괴됐고, 결국 수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혹하게 학살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비록 이 투쟁은 패배했지만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력을 건설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문제에 관해 커다란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 투쟁 속에서 프랑스의 노동자예술이 꽃을 피웠다. 그 유명한 '인터내셜가'가 이때 탄생했다. 이 노래는 파리꼬뮨의 전사였던 으젠느 뽀띠에가 노랫말을, 삐에르 드제떼가 곡을 붙인 것으로 130여 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각국어로 번역되어 전세계의 노동자들이 부르고 있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국제연대와 노동자의 궁극적인 해방을 상징하는 노래로 널리 불리고 있다.

인터내셜가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승리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프랑스에는 도미에, 아라공, 꾸르베 등의 예술가가 있었으며 노동자투쟁의 영향을 받은 예술운동은 앙리 바르뷔스, 로맹 롤랑, 레제, 피카소 등의 유명한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림1]꾸르베, 석공, 1849

그러나 이 당시의 노동자예술은 형식에서 예술적으로 미숙하고, 사상적으로도 모호했다. 혁명적 노동자 예술이 탄생하는 데는, 즉 노동자계급의 과학적인 세계관이 예술 속에 보다 뚜렷이 반영되고 노동자예술이 예술적으로 성숙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여타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예술이 고유한 예술적 방법을 체득한 것은 유럽 노동운동의 새로운 중심지로 러시아가 떠오를 때였다. 그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러시아의 평범한 한 여인이 노동자인 아들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노동계급 전체의 어머니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적들'이라는 희곡작품과 함께 '당파적 현실주의'라는 노동자예술 창작방법이 구현된 모범이 되었다. 고리끼에 이르러 노동자 예술은 자기 고유의 높은 미적 특질을 갖는 예술적 창작체계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림2] 레핀, (자신의 희곡 '태양의 아들'을 읽고 있는 막심고리끼), 1905

이후 노동자예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과거의 혁명적 노동자예술 보다 그 이념적, 예술적 특징이 뚜렷한 형태로 발전한다. 대표적인 러시아 문학가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오스트로프스키, '괴멸'의 파제예프, '시멘트'의 그라드코프, '고요한 돈강'의 숄로호프 등이 있다. 화가로는 레핀, 쿠스토디예프, 블라디미르 세로프, 그리고 음악가에는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이 있다.


[그림3] 쿠스토디예프, 볼셰비키, 1920

독일에서는 '억척어멈', '사천의 선인', '서푼짜리 오페라'로 극작가 겸 시인으로 잘 알려진 브레히트를 들 수 있다. 관객이 극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 개념을 거부하고, 관객이 전개되는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소격 효과'라는 것을 도입하여 해피엔딩의 안도감을 맛보려는 관객에게 연극 속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 준다. 연극의 비판적, 교육적 효과를 최고로 높이기 위한 브레히트의 이 기법은 당시 루카치라는 미학자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관한 논쟁까지 낳았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시각으로 수많은 시를 썼다. '노동자의 힘'은 봉기가 불일치로 실패하는 순간에조차도 노동자의 위대한 힘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포착한 것으로, 참담한 패배 속에서도 투쟁의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노동자의 힘- 브레히트

어느 날 날짜를 잡아 노동자들은
스페인 전역에서 공장에 나가지 않았다. 철도차량은
차갑게 식어 선로 위에 줄지어 서 있고 불이 꺼진
집들과 가로등이 연이어지고 전화는
한 덩어리 쓸모 없는 쇠붙이일 뿐이었다. 이제 사기꾼 장사치들도
경찰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대중은 서로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3일 동안
강력한 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활용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정지하고
자기들의 힘을 과시했던 것이다 비옥한 농지는
금새 자갈투성이의 쓸모 없는 흙덩이로 변하고
가공되지 않은 양털과 갱도를 나오지 못한 석탄은
아무도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 경찰의 구두마저
찢겨 있었지만 그에 대체할 것이 없었다.
그 후
불일치가 봉기를 좌절케 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파업을 종식시키려는 두목들의 지령은
며칠 동안 대중의 밑바닥까지 닿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관차는 증기를 뿜어내지 않고
우체국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그때조차도
과시되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위대한 힘이.

그리고 볼프, 베혀, 안나 제거스 등의 문학가가 있었다.
이외에도 네루다, 안데르센 네회, 히크메트, 프치크 등 많은 나라의 작가들이 활동하였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미술, 영화, 사진 등 모든 장르에서 일어났다.

1905년 러시아 민중봉기의 도화선이 된 포템킨함의 수병반란사건을 그린 영화 '전함 포템킨'은 세계영화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몽따쥬'라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한 에이젠슈타인 감독은 1917년 러시아혁명을 다룬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통해 영화를 기록용 도구에서 예술로 확립시킨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의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는 '폭동', '직조공들의 행진', '직조공의 봉기', '농민전쟁' 연작, '러시아를 구하라', '전쟁은 이제 그만!' 등의 노동자 민중의 삶에 착목한 작품을 제작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수를 표현하였다.


[그림4] 케테콜비츠, 직조공들의 행진, 1897

그 밖에도 연극에서 메이어홀드, 스타니슬라프스키, 비슈네프스키, 사진에는 존 허트필드의 포토몽따쥬가 유명하다. 조각에는 이반 사드르, 베라 무히나 등등 수많은 작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작기법으로 작품을 선 보였다.

[그림5] 스테파노바, 메이어홀드의 연극 (타렐킨의 죽음)의 무대장치

이러한 전문창작인의 예술운동과 함께 노동자들 스스로 예술의 창작과 연주에 참여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1920-30년대 러시아 노동자출신 작가집단이 존재하였고, 독일의 40만 노동자가 참여한 노동자합창단 운동이 있었다. 일본의 몇 십만이 참여한 문학운동이 있었으며, 중국의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노신이 주도한 목판화운동을 비롯한 대중문예운동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가 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자본가들이 공공연하게 정치적 반동으로 되돌아선다. 독일의 나찌즘, 일본의 천황독재, 이탈리아의 뭇솔리니 독재 등 파시즘에 의해 특히, 독일의 나찌즘에 의해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들이 목숨을 잃었고, 예술가들은 극심한 탄압 속에서 나찌 예술을 강요받았다. 나찌에 동조하는 예술이 아닌 것은 모조리 '퇴폐예술'로 간주되어 노동자예술은 거의 전멸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예술은 진보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반파시즘 예술전선을 결성하고, 파시즘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여 싸울 것을 선전한다.

비밀의 행진- 아이슬러

노동자여, 농민이여 무기를 들라,
무기를 들라, 그 손에
파시스트 강도놈을 물리치고,
그대의 가슴에 불을 붙여라
비참한 생각일랑 접어두고
노동자의 붉은 깃발을 치켜들어라
그러면 낡은 사회의 눈물로부터
노동해방의 세계공화국이 솟아오리라

허트필드는 '수퍼맨 히틀러: 금돈 먹고 쇳소리내다'란 포스터에서 나찌즘의 본질이 독점자본주의 임을 폭로한다. 노동자예술은 반파시즘 전선 투쟁 이후 아프리카, 유럽,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확산된다. 멕시코에서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운동이 있었다.


[그림6]허트필드, 수퍼맨 히틀러: 금돈 먹고 쇳소리내다, 1932

한편, 소련에서 스탈린주의 지배체제가 안착화되면서 예술이 그 지배체제를 미화하는 도구로 전락해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대중의 계급의식이 형성되면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반영한 목적의식적인 노동자예술이 확립된다. 투쟁하는 곳이라면, 투쟁가가 울려퍼지고, 풍물과 집체극이 노동자의 의식을 고양시켰고, 거리거리에 벽화가 그려졌고, 크고 작은 걸개그림들이 속속 제작되어 투쟁하는 곳 그 어디라도 노동자예술은 빛나고 있었다. 노동자 백무산, 박노해 시인이, 최병수 미술운동가가 배출되었고, 오윤, 이철수, 김봉준, 김정헌, 강요배 등의 전문미술인이, 정태춘과 박은옥 등 전문가수들이 결합하였다. 노동자 창작활동이 활발하였고, 대학생 문예운동 등 문화예술운동이 독자적인 한 부문운동으로서 자리잡아 노래를 찾는 사람들, 꽃다지, 노래마을 등 다양한 노래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민예총 산하 민미협, 민음협, 노문연 등을 통한 활발한 노동자 예술운동이 있었다.


[그림7]최병수, 노동해방도, 1989, 걸개그림, 21m × 17m

전투조-노동자대중의 3단 구성으로 이 땅의 민중, 노동자들의 힘과 패기, 그들의 단결력을 표현한 대형 그림. 89년 5월 1일 노동자대회(연세대)에 걸린 이후 노동자 집회 및 노조 결성식, 노조 진군식 등에 자주 사용된 상징적 그림이다.


[그림8] 민중창작, 만원버스, 1985

이렇듯 예술의 역사 속에서 노동자예술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학이론 체계를 수립하게 되고, 노동자예술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우리가 움켜쥐어야 할 예술적 창작방법으로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예술은 나란히 발전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활발히 꽃피웠던 노동자예술이 90년대 초 동구권의 몰락으로 노동운동이 침체되면서, 노동자 예술운동은 거의 무기력한 모습을 거듭하고 있다. 철저한 계급의식으로 무장되지 않은 부위들이 허물어지면서 노동자예술운동 또한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예술영역이 발생하면서 현 시기 노동운동과 밀접히 결합된 비디오 영상매체 운동과 사진 등의 운동 등이 발전했고, 춤의 대중적 보급과 함께 율동패들이 발전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본가들의 예술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감정과 꿈과 희망을 형상화시키고, 나아가 노동해방을 위해 복무하는 독자적인 예술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림9] 김봉준, 끝내는 한길에 하나가 되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