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왜 경영참가인가?" 하는 제목의, 한 경제학 교수의 칼럼이 실려 있는데,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최근 근로자의 경영참가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상생의 경제체제 구축이라는 미사여구부터 '빨갱이'적 사고의 발로라는 적나라한 분노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를 둘러싼 감정의 스펙트럼 역시 다양하다. 때로는 근로자의 경영참가를 주장하기만 하면 마치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얼치기의 주장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매도는 경제학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러한 글의 도입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이른바 '근로자의 경영참가'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필시 {한겨레}스러운 '진보성'에도 어울리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칼럼을 읽다 보면, 그에게는 좀 안된 얘기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경제학을 제대로 배웠는지" 여부를 운운하기 전에 평범한 상식인으로서도 '얼치기'임에 틀림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경영참가인가?"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흔히 20세기가 규율과 성실을 강조했던 제조업의 시대였던 반면, 21세기는 창의력과 지적 모험심이 중요한 신산업의 시대라고 한다. 또 이미 기업들은 단순 반복 작업은 점차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업 내의 근로자들이 담당하는 작업은 점점 '아무것도 모르는 머슴'의 일에서 벗어나 '기업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영참가를 부정하고 고정급을 주어서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 생산이 이루어질 것인가?"
'창의력'이니, '지적 모험심'이니, '기업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 등등의 역겨운 상투어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할 여유가 없다. 위 인용문에서 말하는, "왜 경영참가인가?"의 핵심 논거와 주장은 사실상, "이미 기업들은 단순 반복 작업은 점차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며, 그러니 '경영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묻고 싶다. 이른바 '아웃소싱'을 받는 당사자는 그러면 '기업'이 아니란 말인가?
'아웃소싱'이라는 상투어에 정신을 빼앗긴 필자가 위 인용문에서 무언 중에, 그러나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대답은 "그렇다!"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내가 서슴지 않고 그를 "경제학자 이전에 평범한 상식인으로서도 '얼치기'임에 틀림없다"고 규정하는 소이이다.
"왜 경영참가인가?"를 주장하는 그의, 그리고 그러한 그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싣고 있는 {한겨레}의 '진보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표현으로 말하게 하면,
"상식적으로 풀어 말하자면 억지로 일을 시키기 어려운 경우에는 (경영참가를 통해서: 인용자) 자발적으로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영참가'를 주장하는 자들의 본심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분명, "근로자 경영참가를 주장하기만 하면 마치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얼치기의 주장으로 매도되기도 한다"고 한탄하며 "그러나 이러한 매도는 경제학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고 단언할 자격이 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사명은 다름 아니라 요설과 궤변으로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