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초국적자본에 놀아나는 한국 경제

성장인가, 개혁인가 - 경제위기에 대한 순진한 착각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5일 담화에서 한국 경제 상황 진단과 관련, "여러 어려움이 중첩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는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주 월요일인 10일, 주가 800선이 무너지고 경제위기론이 다시 등장하자 이를 의식해서 붙인 코멘트로 보인다. 그러나 담화 이틀째인 어제, 주가는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종합주가지수 936으로 가장 높았던 4월 23일 이래, 거래 15일만에 207포인트가 떨어졌다. 증권거래소는 시가 총액 약 90조원에 달하는 액수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주가가 큰 낙폭을 기록하자 자본은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돌입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유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중국의 긴축정책 등을 3대 악재로 꼽으며 이러저러한 경제 살리기 방안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주가 폭락은 아시아의 전반적인 현상'이고, '경제위기론은 개혁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식의 생각은 무사안일한 것이라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알고 있다.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상시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없다는 사실을. 특소세 인하, 예산조기 집행, 서비스 산업 세제지원, 신용불량자 대책, 일자리 나누기 등 단기적 경기부양책들을 발표해왔지만 돌파구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이런 부양책은 결과적으로 재정적자를 포함한 부작용만 초래할 뿐 경제위기 극복 처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2년 사이 40만명 가량 감소한 개인투자자들을 다시 증시로 끌어들이자는 방안을 거론해보지만 실효성이 없고, 부동자금을 생산부문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형편이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를 늘려 주가 등락을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핏 호소력있어 보이지만, 기관투자 역시 수익을 쫓는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만큼, 초국적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투기적 시장 논리를 방어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경제위기인가 아닌가? 답은 간단하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상시적인 경제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위기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위기가 어떻게 증폭되는가, 어떻게 촉발되는가의 문제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상장 주식 시가 총액의 42%를 움켜쥔 외국인들이 매도로 돌아선다? 어찌 되겠는가. 한국 시장은 바로 중심을 잃고 만다. 은행업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지분율은 40%에 달한다. 금융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출입 무역의존도를 갖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신흥 시장에 투자하던 자본을 즉각 거둬들이게 되고, 한국처럼 초국적자본의 장악력이 큰 나라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어있다. 무역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긴축정책을 펴거나, 고유가처럼 국제정세가 조금만 변동해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데 '성장인가-개혁인가' 논란이라니. 허망하고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어떤 대안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성장 논리나 개혁 논리는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며, 진실은 두 논리 모두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본의 논리라는 점이다. 물론 이 논란은 한편으로는 자본과 자본간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무현정권의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는 초국적자본의 집요한 요구와 맞물려있다. 이에 대해 재벌은 '역차별 규제로 외국자본의 폐해를 더욱 부채질한다'고 반응해왔으며, 순자산의 25%를 넘는 계열사 출자를 금하는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막고, 재벌 소유 금융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재벌의 금융지배 차단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와 재계가 논란을 벌여온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재벌금융사 의결권 축소 문제도 이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러나 대세는 어느 한편의 흐름으로 정리되고 있다. 한국 경제위기 문제는 한국 시장을 장악한 초국적자본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초국적자본 운동은 노무현정권의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경제가 위기인가 아닌가, 극복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순진한 바램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는 상시적인 위기의 긴 수렁에 빠져 있으며, 지금 성장 논리나 개혁 논리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보다 명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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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