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5년만의 화려한 나들이, 민주노총이 가는 길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노무현정권의 발걸음이 가볍다. 재벌에게도, 노동자에게도 눈치보지 않고 손을 내밀고 어깨를 끌어당긴다. 자리를 만들었다. "대화와 상생의 협력 노사관계 구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 얼마나 기다리고 숙원했던 자리던가. 집권한 이래 화물노동자, 철도노동자, 교육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할 것 없이 죄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더니, 도심 한 가운데를 마비시키며 열사의 한을 풀자고 소리 높이더니, 그 완강하게 저항하던 민주노총이 이게 웬일인가, 그저 손을 내미니 그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닌가.

5년만의 나들이, 투쟁의 과거를 접고 협상과 실리의 미래를 택한 민주노총 지도부. 민주노총의 외출은 얼마나 더 화려해질 것인가. '노사정지도자회의'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이름에서부터 대화와 타협과 협상과 화해의 뉘앙스가 한껏 풍긴다. 노무현정권이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열어놓은 한시적 기구이지만, 노사정위원회 개편을 준비하고, 노사관계법 선진화 방안과 일정을 논의하는 '최고지도자'들의 기구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는 실로 막대하다. 민주노총위원장, 한국노총위원장, 경영자총협회장, 상공회의소회장, 노동부장관, 청와대사회정책수석 등 여섯 명으로 구성된 이 기구에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필요하면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예의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해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며 저항하는 노동자를 원망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 자리에 앉고 보니 감회가 새록새록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무된 듯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책도 아니고 친노동자 정책도 아니다"고 하였다. 앞으로 중립적 자세를 지켜가겠다고 하였고, 노사 균등과 상생을 위해 일관성 있는 자세를 갖겠다고 호언하였다.

이것은 진실인가? 오늘날 불안정과 빈곤의 심화, 초국적자본 운동의 보장과 노동유연화 공세, 조악한 비정규직 대책과 최저임금제, 그리고 실업 증가와 실효성 없는 일자리 만들기 정책 따위의 배경은 모두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의 권리가 약화된다고 하고, 성장인가 개혁인가 논란 속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중단하지 않으며, 경제위기가 구조적이고 상시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면 그 책임을 몽땅 전가하는 고약한 버릇에, 극심한 내수 부진과 투자 위축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가 활로를 찾으려면 노사관계가 안정돼야 한다는 고장난 레코드 소리를 반복하고, 궁극적으로 초국적자본에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준비중인 WEF동아시아경제정상회의……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문제들을 두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우겨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억지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단 말인가.

노동부장관은 "노동계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과 취약 근로계층을 배려하는 열린 노동운동을 지향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고, 대한상의회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인상 자제와 양보가 필요하다"며 훈수를 거드는데, 여기에 민주노총위원장이 "경제 활성화와 사회 양극화 개선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노사정 대화 및 합의 노력에 동의하고 적극 참여하겠다."고 일갈하니 일찍이 민주노조운동에 있어 이토록 조화로운 장면을 연출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

이제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공동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 최저임금 제도개선, 손배·가압류 제한 등 법안들을 6월 안에 다루고, 사회공공성 강화 등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의 요구를 묶어 법안으로 제출할 것이다. 또 6월 중 노동부 등 관련부처와 정책협의를 추진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수호위원장 회동도 추진할 것이다.

노동자 자신을 빈곤으로, 절망으로, 죽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주동자들과 대화와 합의 노력에 동의하고 적극 참여하겠다는 시나리오다. 민주노총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명백히 현장 기반은 약화되고, 노동유연화에 따른 억압과 고통은 더해져 실마리가 안 풀리는데, 오늘 민주노총이 가는 이 길, 이 화려한 발걸음은 정확히 어떤 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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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