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나무처럼, 우산을 들고 간절하게...파병철회!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1)-2004.08.09

동화작가 박기범씨의 단식일지를 연재합니다.
울진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화작가 박기범씨가 그곳에서 진행중인 10만 릴레이 단식에 참가하며 단식일지를 미디어 참세상에 보내 왔습니다. 박기범 씨는 11일로 단식 사흘째입니다.

간절함

오늘 군청 앞 단식자 일인 농성을 하러 나온 분은 한영선 선생님이다. 어제 농성 물품을 내 차에 실어두었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갑자기 해 놓아야 할 일들이 생겨 10분 정도 늦었다. 부랴부랴 그것들을 싣고 군청 앞 버스 정거장으로 갔고, 한영선 선생님은 책방에 맡겨두고 있던 종이학 피켓과 모금함을 들고 따라 오셨다. 물품이라 해야 피켓과 우산, 자리, 모금함 이게 다이다. 7월 한 달 피켓 시위를 이어 할 때에는 그나마 날마다 나와서 함께 나오는 자발적 도우미들이 많았고, 만들어 놓은 피켓들도 모두 내 놓아, 무언가 북적북적한 느낌이 컸다. 거기에 전단지를 돌리고, 서명을 받고, 카세트로 평화 노래도 틀어 놓고. 아니, 지금 단식자 한 사람이 우산을 들고 하는 일인 농성이 초라해 보여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아까 느낌. 그렇게 피켓 넉 장에 우산과 자리, 모금함을 내려놓고 난 뒤 한영선 선생님께 잠깐만 계시라고 했다. 지회(전교조) 사무실에 얼른 가서 책상 하나하고 피켓들을 가지고 나올 테니까 그러면 그 때 시작하시라고 말이다.

“선생님 잠깐 계세요, 금방 가지고 나올게요.”
“아니요, 그냥 하지요.”
“에이. 그래도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 그렇게 하시기 좀 그렇잖아요.”
“괜찮아요.”

나는 더 급한 마음에 지부 사무실로 달려가 책상과 피켓 더미를 서둘러 가져왔다. 한영선 선생님은 벌써 <파병철회해주세요>라고 종이를 잘라 붙인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한참만에 올 버스가 아직 안 왔는지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전단을 건네러 다가서는 이도 없고, 서명 운동을 부탁하는 말소리도 없는지라 사람들의 눈길은 선생님이 들고 선 우산이나 몸에 두른 피켓으로 그다지 모아지지 않았다. 그럴 거라 생각했기에 그래서 더 선생님께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한 거였다. 사람들이 많은 속에서 그렇게 홀로 서 있기가 무안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 부끄러운 마음, 멋쩍은 것 같은 기분, 요샛말로 하면 뻘쭘하다고 하는…… 그런 것들에 더 힘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로 해서 끝내 느껴질 외로움.

물론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건 안다.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떳떳한 일을 하는 건데, 그리고 마땅한 일을 하는 건데 무안할 건 무어고, 낯이 붉어질 건 또 무어겠나. 하지만 그래도 남 앞에서, 더구나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생각처럼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지 않나. 남 앞에, 특정하지 않은 많은 이들의 눈길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홀로 서 있다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영선 선생님이 무척 수줍음이 많은 분이라 생각했다. 아니, 함께 밥을 먹는 자리나 시위를 마치고 정리하면서 둘러앉는 자리에서 보면 정말 수줍음이 많으신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내기 보다 들어주기를 앞서 하시고, 주장하기보다 배려하는 것이 더 몸에 밴 그런 분이라 느꼈다. 그리고 일곱살 난 재현이와 함께 있을 때 보면 재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여린 분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니 여러 사람들 앞에 피켓을 들고 나가 서 있는 일 같은 거라면 더욱 힘들어하실 거라 생각한 거였다.

못난 생각을 한 건 그저 나였다. 선생님은 파병철회 글자를 오려붙인 우산을 들고 한 그루 나무처럼 서 계셨다. 매달아 놓은 그 글자 조각들이 꽃처럼 보이기도 했고, 주렁주렁 열린 열매 같기도 했다. 아마 나 같았으면 미적미적 일부러 굼뜨게 행동을 하면서 미뤘을지 모른다. 누구, 함께 시위에 나올 사람이 한 사람 더 곁에 올 때까지 괜히 기다렸는지 모른다. 뭔가 내 편, 내가 기댈 사람이 하나라도 있게 될 때까지 말이다. 헐레벌떡 책상과 피켓 더미를 가지고 오는 길에 한 그루 나무처럼 우산을 들고 선 한영선 선생님의 모습이 점점 가까이 보였다. 부끄럽고, 고맙고,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산 말고 아예 천막도 치고, 농성장을 좀 더 갖추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까페에 있었다. 거기에 한영선 선생님은 그냥 우산으로 하자고, 우산이 더 간절해 보인다고 답글을 다셨다. 그래, 그 우산을 보고 나 같은 이는 잠깐이나마 초라해 보인다는 느낌을 가진 거였고, 선생님은 그걸 간절함으로 보신 거다. 절실함, 간절함 아마 그것이 선생님을 그 사람 많던 자리에 초라함이 아닌 간절함으로 나무처럼, 꽃처럼 그렇게 서 있을 수 있게 한 힘일 것이다.

함께

나도 선생님 뒤로 가 조용히 파병반대 피켓을 들고 섰다. 그렇게 조금 있으려니 책방 쪽에서 행곡에서 농사를 짓는 박영숙 선생님과 겨레가 왔고, 나까지 해서 우리 셋도 피켓을 들고 한영선 선생님 곁에 가서 나란히 섰다. 조금 있으니 산이가 왔다. 우리는 다섯이 되었다. 겨레가 자꾸만 돌아다녀서 이가 빠진 다섯이었지만 말이다.



컴퓨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이것저것을 더 하고 오느라 집에 오니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생수를 여섯 통이나 샀다. 물을 한꺼번에 그리 많이 산 건 처음이다. 게다가 집에서는 그냥 수돗물을 받아먹고 사니 생수 살 일이 없다. 그래도 물이라도 잘 먹어야겠다 싶어서 사 들고 들어왔는데, 냉장고에 채워둔 물을 보니 그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아마 천석꾼 만석꾼이 쌀광만 들여다보아도 배가 부르다 하는 게 이런 기분인가 보다.

깜비가 밥을 달라고 쫄랑거리며 쫓아다닌다. 빈 밥그릇에 코를 들이댔다 떼면서 어서 밥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그래 나 굶는다고 너까지 굶겨야 되겠니? 미안해, 얼른 줄게. 어제까지 먹던 밥을 버릴 수가 없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그게 얼어서 잘 풀어지지 않는다. 언 밥을 물에 녹이고, 전에 손님들이 와서 먹다 남은 고기 반찬을 다시 익혀 개밥을 비볐다. 개밥, 하~ 이것도 참 고소해 보인다. 이 놈의 배가 방정맞게도 꼬륵거린다.

반드시 파병철회!
어서 빨리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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