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철군투쟁 단식일지 18, 19] 2004년 8월 26일, 27일

전범 민중재판운동

인권단체 모임에서 '전범 민중재판'을 위한 간담회가 있다는 얘기를 얼마 전 들었는데 그게 어제 있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곳에서 하는 거면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게 오늘 인권하루소식을 보니 어제 있은 간담회를 요약해 소개해주고 있다. 이 민중전범 재판 운동은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나라밖에서는 벨기에와 영국, 일본, 독일에서 벌써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엊그제 본 신문에는 미국에서도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부시에 대한 시민법정을 열 것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 나라의 민중재판은 미국의 점령 뿐 아니라 한국의 파병이 전쟁범죄라는 것을 뚜렷이 밝혀 내고, 그것을 통해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해 마땅히 다루어야 함에도 입을 다물기만 하는 국제기구들을 압박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지금도 엄연히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지만 이 엄청난 범죄 앞에서 어떤 구실도 하려들지 않는다. 헌법을 어긴 대통령, 국제법을 어긴 나라의 책임자들을 그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이들을 심판해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는 당연히 우리 민중에게 있다.

참고로 유엔에서 오랫동안 일한 인권변호사 디아즈 씨는 지난 7월 말 한국에서 한 강연에서“한국군 이라크파병이 국제형사재판에 제소될 만한 사안”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한국군 정부나 한국군 파병을 옹호하는 이들은 '비전투병', '평화재건부대'라는 말로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려 하겠지만“전시에 적군을 어떤 식으로든 도와준 (음식을 준다든지) 민간인은 점령군과 똑같이 전범으로 취급당했다”며 한국군의 파병이 전쟁범죄 행위라는 것을 못박아 말했다.

한국군 파병이 이라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군을 위해서라는 것은 지금 누구에게 물어봐도 뻔한 사실이다. 김선일 씨의 죽음, 이라크 저항 세력의 끈질기고 완강한 저항, 갈수록 불안한 현지의 상황 들 속에서 지금은 파병을 주장하는 측에서조차 '이라크를 위해'라는 거짓말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남아 있는 핑계거리라고는 '한미동맹', '국제사회의 약속', '국익'이라는 옹색하기 짝이 없는 이유들뿐이다. 그렇다면 정권은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고, 전쟁범죄국가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고, 그렇기에 자신은 전범자들과 공범자라고 말이다.


지난 6-7월 우리는 촛불만 들어서는 파병을 멈추게, 되돌리게 할 수도, 이 막가파 식 정권과 싸울 수도 없다는 교훈을 똑똑히 배웠다. 이 정권이 국민 앞에서 되어 먹지 못한 태도는 지난 군사 정권에 버금간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으며 절규해도 대통령이라는 자는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논평이나 할뿐이며, 이 나라의 정책 때문에 무고한 시민이 참수 위기에 처해도 나 몰라라 파병강행 고집을 발표할 뿐이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순 날 가까이 청와대 대문 앞에서 곡기를 끊고 앉은 사람이 있어도 날마다 그 문을 드나드는 대통령을 비롯해 이 나라의 운영자라는 사람들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80년 광주에 버금갈 정도로 부안을 초토화시켰고, 농민이 배에 칼을 그어 목숨을 내 놓아도 자유무역조약에 우리 농촌을 팔아먹었다.

적어도 촛불이 힘을 가질 수 있으려면 수천, 수만의 그 불빛에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상대 앞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촛불들 앞에서 자신들이 모습, 자신들이 한 일과 하려고 하는 일을 진정으로 되돌아볼만한 성찰의 자세가 된 이들 앞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잇달아 죽어나가도 오히려 더욱 뻔뻔스러운 태도만 일관하는 저들 앞에서 더 이상 우리의 무기는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얌전히 들고만 있는 촛불일 수만은 없다.

정권에 대해 뚜렷이 전선을 긋자는 것은 결코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주장이 아니다. 민중에 대해 먼저 적대를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이 정권이다. 먼저 전선을 그은 것은 우리가 아닌 저들이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들과 전선을 긋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대로 앉아 죽어 가야할 뿐이기 때문이다. 더는 촛불 읍소가 아니라 민중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 심판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전범으로 세우는 '민중재판운동'이 간담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민중재판'을 가운데 두고 풀뿌리 민중이 참여하는 반전평화운동의 흐름을 드넓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지금처럼 파병철회 운동이 전반적으로 멈칫하고 있는 시기에 민중재판운동이라는 철군 싸움의 한 축을 새로이 열어가고 있는 여러 인권단체들에 감사와 지지를 보낸다.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평화


영국에 머물던 시아파 지도자 알 시스타니가 돌아와 협상에 나서면서 임시정부측과 메흐디 민병대 사이의 평화안이 마련되었다. 다행? 다행인가? 그래, 한쪽은 결사항전에 한쪽은 초토화 작전으로 부딪힌다면 지금보다 엄청난 피를 흘리고야 말았을 것이다. 게다가 사흘 뒤가 바로 메흐디 민병대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이맘 알리 사원의 그 '이맘 알리'의 추모일이기까지 하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갔을 수도 있다.

발표된 평화안 다섯 가지를 살펴보면 하나, 나자프와 쿠프, 무기 금지 도시 선언. 둘, 나자프에서의 모든 외국군 철수 및 무장단체의 무장해제. 셋, 이라크 경찰이 나자프 치안 담당. 넷, 이라크 임시정부, 교전에 의해 피해 입은 시민에 보상. 다섯, 1월 총선 준비를 위한 인구조사 실시 들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해 보도된 자료를 보면서 이게 무슨 평화안인가 싶었다. 언제라도 깨뜨려질 수 있는 살얼음 같은 평화,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약속. 애초 이라크 전쟁 자체가 국제법에 반한 것이고, 점령 또한 불법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평화안이라도 따내기 위해서 그 동안 나자프와 쿠프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나? 날마다 전폭기가 하늘 위에서 캐논포를 퍼부었고, 탱크가 들어가 대포를 쏘아댔다. 이십 여일 동안 최소 오백 명 가까운 이들이 총에 맞아, 박격포에 맞아, 105미리 대전차포에 맞아, AC-130 전폭기의 캐논포에 맞아 죽었다. 나자프에서는 집 대문 바깥이 바로 전선이라 했다. 이맘 알리의 사원으로 통하는 길가 건물마다에는 어김없이 저격수들이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꼼짝할 수도 없는 상황, 꼼짝이라도 하면 당장 점령군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치명적이지 않은 부상을 입더라도 병원으로 옮길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피가 흘리는 부상을 입으면 그건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지는 오래, 공격을 받은 사람은 피를 터뜨리며 죽어갔고, 아직 살아남은 이들은 피를 말리며 공포와 싸워야 하는 거였다. 그 숨막히는 시간, 단 한 시간도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을 죽음과 죽음 사이의 그 시간을 스무 날이나 넘게 넘겼으니 선택의 폭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나자프와 쿠프 두 도시에서만이라도 모든 외국군이 나간다는 약속으로 최소한의 숨통은 틀 수 있었을 거다.

이 불안한 평화안을 합의하는 오늘 하루만 나자프와 쿠프에서 아흔 다섯이 죽었다. 나자프 55명 사망에 376명 부상, 쿠프 40명 사망. 사람들이 모여선 사원 둘레에 박격포를 쏘아 그 자리에서 스물 일곱이 죽었다. 행진하는 사람들에게마저 총을 쏘아 열 여덟이 죽고 백 명이 넘게 부상을 당했다. 불안한, 너무나도 불안한 그 평화안이라는 것은 '평화안'에 합의하는 그 순간까지도 살을 터뜨리고 피를 솟구치게 했다.


출병 이틀 전


그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땅으로 우리 군대가 내일 모레면 다시 대규모로 떠난다. 이 엄청난 일을 앞두고서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도무지 아무런 말이 없다. 정부의 보도자제 요청, 며칠 전 MBC의 노조는 지난 선발대 파병 때 보도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 잘못했다며 자기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본대의 파병을 앞두고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어떤 방송이나 종이신문, 인터넷 신문조차도 파병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아니, 언론 뿐 아니라 의회 안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파병재검토에 서명을 한 의원 가운데에서도 누구 하나 나와서 이것에 대해 입장을 보이는 이가 없다. 이웃 나라로 천명이 넘는 살인부대를 떠나보내는 일인데도 이게 그리 간단한 일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어 그런 걸까? 당최 이래도 되는 걸까? 뉴스나 신문은 온통 올림픽이 아니면 기껏 논란으로 나누고 있는 문제가 친일 청산을 하네 마네, 어디까지 하네 하는 것이다. 물론 중요하다, 민중을 팔아먹은 이들과 그 행적을 제대로 정리하고 심판하는 일, 그것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누가 누구를 청산하고,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인가? 일본의 식민지 아래에서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군대에 지원하라고', '조선의 앞날을 위해 영광스럽게 참전하라고' 부추긴 자들, 그러한 자들을 심판할 자격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없다. 과거의 언제를 물을 것 없이 지금 당장 침략군대를 그 땅에 보낸 이들이 누구인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토록 반대를 했지만 나 또한 침략군대를 보낸 사람 중의 하나다. 의회에 있는 사람들, 정부청사,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야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이들은 마치 친일파가 우리 할아버지들을 전쟁터로 내몬 것처럼 지금 우리 군인들을 이라크 땅 침략전쟁터로 내몬 장본인이 아닌가? 자신들이 똑같은 짓을 해 놓고도 육십 년 전 전쟁터로 나가라고 부추긴 이들을 단죄하고 심판을 하겠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과거 청산 중요하다, 허나 과거 청산이건 역사 바로 세우기건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지금을 바로 살고, 미래의 거울을 삼기 위해서가 아닌가? 지금 이 시간 침략전쟁에 파병을 강행하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육십 년 전 친일파들을 심판하고 평가한단 말인가? 현재를 반성하게 하지 않는 과거 청산이란 말짱 헛것이다. 친일의 과거를 청산하려거든 먼저 침략전쟁에 대한 파병부터 하루 빨리 되돌려야 한다.

그러니 정부 여당과 한나라당이 친일 과거 청산을 두고 실랑이를 하는 걸 보면 얼마나 우스운가? 두 집단 모두 파병을 주장한 이들이 다. 내가 볼 때에는 과거 청산보다 더 먼저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그 두 집단의 청산이다. 그네들이 서로 짝짜꿍되어 저지르고 있는 짓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속 죽이는……. 너무나도 조용하다. 과연 이 나라가 이틀 뒤면 전쟁터로 군대를 보내는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어지럽다. 무섭다.


군청 앞, 그리고 바다


쓰고 있던 글을 정리하느라 정신을 놓고 있어 저녁 농성 시간에 늦었다. 전교조 지회 사무실에 나와 컴퓨터를 쓰고 있었는데 햇살 님이 가쁘게 숨을 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안도의 숨 같은 걸 내쉬시며 활짝 웃으신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와 봤잖아요."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질 않으니 어떻게 잘못되기라도 했나 싶어 걱정이었나 보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따로 전화가 있지도 않으니 약속한 시간에 늦거나 하는 일은 최대한 조심해야지.

군청 앞에 나가니 일다 님, 도토리 님, 햇살 님 세 분이 있었다. 오늘따라 날마다 나오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게시판에는 하루 단식을 신청하기도 했는데 평소에도 늘 나오던 아이들이 안 보이니 농성장이 더 허전했다. 아무래도 어제 회의를 마치고 난 뒤로 사람들이 조금씩 기운을 잃은 듯 했다. 아니, 나도 위축된 마음이 많았다. 회의를 마치고 종례, 아주 밥 먹는 식당으로 가서 얘기를 하는 게 낫겠다 하여 밥집에 들어가 밥을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해도 다들 힘이 없다. 서로 눈치를 보는 것도 같고 작은 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일에 치일 수는 있어도 사람에 치여서는 안 된다. 일에 치이는 거야 쉬면 회복할 수 있지만 사람에 치이면 그 상처는 오래 남는다. 무엇이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걸까?

군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지 두 달, 그 시간 동안 나는 파병철회만 생각하면 되었고, 철군으로 싸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파병'과 싸우는 동시에 '나'와 싸울 일이 더해졌다. 그건 더 어려운 싸움. 파병과 전쟁과 싸우는 일에는 그저 몸을 던지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깜냥만큼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와 싸우는 일은 늘 어렵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늘 헛짚기가 일쑤고, 안다 해도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가져오기는 참 어렵다.

함께 앉은 분들 저녁을 다 드는 때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로 우리 힘내요, 기운 내요 하고 말을 하면서도 얼굴은 여전히 기운이 빠진 얼굴들이다. 나 또한 언 마음이 되어 밥집을 나서는데 햇살 님이 바다 보러 가자 하신다. 바다요? 네, 우리 바다 보러 안 갈래요? 처음에는 그냥 안 간다고 했다가 가겠다고 했다. 울진읍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 망양정이 있는 바닷가로 나갔다. 컴컴한 밤, 밤바다. 해수욕 철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가득하더니 이제는 다 빠져나가고 없다.

먼바다에 오징어배가 떠있는 게 보인다. 여름이 끝나 가는 이 무렵부터가 오징어를 잡는 철이라고 한다. 그걸 보더니 햇살 님이 초임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때는 자취하는 총각 남자 선생님들이 아침에 들어오는 배에서 오징어를 한 상자씩 사다가 학교 옥상에 내다 널었다고, 아니면 자취하는 방에다 내다 널고. 그러다가 비가 오면 다들 오징어 걷으러 옥상으로 올라가고, 아니면 쉬는 시간에 자취하는 집으로 달려가고 그랬다고. 그렇게 말린 오징어를 말려서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치 '농번기'와 같은 '어번기'라는 게 있어서 오징어를 한참 잡는 철에는 학교를 쉬고 집에 오징어 말리는 걸 도와주라고 하기도 했다. 와아아,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우리 하는 일이 쉬운 일 물론 아니지만 서로서로 쉽게, 가볍게 했으면 좋겠다. 바다 앞에 서면 복잡하고, 답답하고, 풀리지 못한 채 얹힌 것 같은 것들이 모두 시원해지는 것 같아 좋다. 바다 앞에서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지던 것들도 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바다의 이상한 힘이다. 바다 보러 나갔다오기를 참 잘했다. (2004년 8월 26일)


미안하다, 얘들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에 앉았다. 십 년 가까이 올빼미 생활을 해 온 버릇이 있는데도 단식을 하면서는 아침에 눈이 가볍게 떠진다. 물론 그런 만큼 밤에는 일찍 눈이 감긴다. 아니, 분명히 체력이 떨어져서 피곤함이 일찍 밀려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을 쓰거나 하는 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한두 시간 이상으로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가장 맑은 기운일 때 컴퓨터에 앉았다. 이 단식을 하면서 평소보다 무리할 정도로 글을 쓰는 약속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못한다 하고 달아나기부터 했을 청탁 글 같은 것도 모두 응했고, 어떤 것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글 약속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이야기해야하겠다는 절박함 같은 것, 나 나름대로는 안간힘을 쓴다고 생각하며 하는 것이다. 게다가 날마다 밀리지 않고 일지를 쓰겠다 하고 있으니 그게 모두 하루하루가 갈수록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평소처럼 원고가 밀리면 날을 새면서라도 몰아치기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거라는 건 생각지 못했던 거다.

여하튼, 오늘 아침 쓴 글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이 전쟁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글 앞에서 내가 먼저 흥분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정말 아침에 맑은 기운을 모아 쓸 수 있어서 그랬는지 편안하게 쓴다고 썼다. 다 쓰고 나니 약속한 원고량의 두 배 가까이나 되어서 잘라내고 잘라 내고, 고치고 다듬고 해서 마지막 저장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읽어보니 편안하게 쓴다고 썼지만 나는 또다시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 죄 없는 아이들마저도 침략국가의 어린 백성이 되게끔 만든 건 다 우리 못난 어른들인 걸. 아, 다시 읽어보고 나니까 나는 어른들 앞에서 해야 할 이야기들을 고작 말투만 바꾸어 아이들에게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신문사로 글을 보내기 전에 글 끄트머리에 석 줄을 더 붙였다. "아무런 잘못 없는 어린 동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니 이 또한 마음이 아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슬픈 마음에 이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얘들아."
△전쟁이 막 터질 무렵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온 아이들의 사진. 이라크 동무들을 위해 인간방패가 되어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이라크에 있는 너희들과 한 마음이라며 자기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한국의 아이들이 보내준 이 사진들은 모두 이라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실에 붙여 놓았다.


자동차에 얽힌 이야기 둘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한 아버지 이야기. 그 아들은 이라크 전에서 죽어 그 소식을 알리러 해병대원들이 집으로 찾아오자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프로판 가스를 들고 나와 자동차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그 안에 붓고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자동차는 불길 속에서 폭발했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아버지는 중태에 빠졌다. 그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머니가 ABC 방송과 인터뷰한 것에 따르면 아들의 죽음이 당국의 잘못된 이라크 전쟁에 있다며 당장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야 만 군인의 아버지는 정말 신음을 내지르듯 전사통보를 하러 달려온 자동차에 불을 질렀을 것이다.

군인이 죽은 곳은 지난 3주 동안 엄청난 학살과 저항이 있던 나자프였다. (평화안을 체결한 나자프는 오늘 하루 평화로웠을까?) 나자프에서 죽은 미군 병사의 아버지가 충격을 받은 것만큼 나자프에 사는 이라크인들은 그 똑같은 무게와 깊이로 오백 명 넘는 이들의 식구가 그렇게 괴로워했을 거다. 이 전쟁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를 미치게 하고 있다. 끝내 모두를 망치고, 죽이고 말 것이다.

동화는 오늘 보내준 일지에서 뉴스에는 나오지도 않을 만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군의 탱크가 이동을 할 때 그 탱크의 앞뒤를 험비 차량이 엄호를 하면서 움직이는데 그 속도는 무척 느리다. 탱크의 속도에 맞추어야 할 테니 10킬로도 되지 못한다. 그런데 도로 어디에서건 미군 탱크가 이동하고 있으면 누구도 그 옆을 추월할 수 없고, 10킬로 아래의 속도로 그 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동차라도 그 옆을 추월하려 하면 바로 험비 차량에 타고 있는 군인이 총구를 겨누며 위협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 미군의 탱크 뒤를 따르게 된 자동차였는데, 이라크의 많은 자동차들이 아주 낡은 중고이듯이, 하필이면 그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고장나 있어서 탱크와 험비 차량을 보고도 속력을 줄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일부러 탱크를 살짝 빗겨 받으면서 벽에 부딪혀 멈추어 섰는데, 미군의 험비 차량은 바로 기관총을 쏘아댔다는 것이다. 물론 차에 탄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사람 목숨이 사람 목숨이 아니다. 죽는 자들도 사람답지 못하게 죽고 있고, 살아있는 자 또한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엉망진창이다. 모두들 악마가 되었다가 벌레가 되었다가 다시 괴물이 되곤 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점령군도, 이라크인들도 모두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나? 내일이면 떠날 자이툰 부대의 병사들 또한 곧 악마와 벌레, 괴물이 되어갈 텐데…….


새로운 시작


군청 앞 농성장.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파병철회 우산을 들고 앉아 있는데 우산 바깥에서 누가 툭툭 쳤다. 우산 끝을 살짝 들어 올려다보니 상열이다. 울진중학교 3학년 이상열. 상열이는 군청 앞 시위에 나오는 동기가 좋아하는 여학생 때문이다. 아주 내 놓고 말을 하기 때문에 상열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군청 앞 사람들은 다 안다. 처음에는 '얘는 부끄럽지도 않나?' 하고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조금 지나 보니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다. "선생님, 그만 하세요. 나는 이틀 단식하고 죽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래요. 네?" 상열이가 단식 릴레이에 참여한 것도 좋아하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아이가 단식 릴레이에 이틀을 신청했더니 상열이도 바로 신청해서 같은 날 함께 굶었다. 녀석이 써 놓은 단식일지를 보아도 무척 귀엽다. 배가 고프지만 그 아이를 생각해서 참았다, 그 아이는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는 얘기들이었다. 그렇게 겉으로는 생각 없이 까불기만 하는 것 같은 아이가 곁에 와서는 너무나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단식 그만 하세요. 정 더 하려면 깔끔하게 내일까지 딱 이십 일만 채우고 그만해요, 에? 그러고 나서 같이 맛있는 거 먹어요." 키는 훌쩍 크지만 아직도 앳된 태를 벗지 못한 녀석이 오늘은 얼마나 달라 보였는지 모른다.

회의에서 나눈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간단한 것부터 먼저 이야기를 했는데 가장 먼저 나눈 이야기는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였다. 내일 자이툰 부대 파병에 대한 규탄 집회에도 다들 함께 하면야 좋겠지만 토요일 오전 일을 마치고 퇴근 후에 출발해서는 집회 참석하기가 참 어렵다. 가 보아야 집회 끝자락에나 가게 되거나 아니면 다 끝이 난 뒤에 가게 되기 쉽다. 해서 이런 저런 사정까지 더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부분 일요일 아침 일찍 올라갔다 그 날 내려오는 쪽이 낫겠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김재복 수사님 지지방문을 하러 가자는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함께 가시는 것 같았다. 햇살 님은 그걸 위해서 내일 토요일 네 시간을 이어서 하는 클럽 활동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종이학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라 했고, 일다 님과 도토리 님도 반 아이들과 같이 엽서 띠 같은 것을 만들어서 가져가겠다고 하니 아, 수사님 좋아할 얼굴이 벌써 떠오르네. 하여튼 대부분 일요일에 올라가기로 얘기를 한 속에서 나는 직장 시간에 매이지 않으니 토요일에 일찍 올라가 파병 규탄 집회에도 가 보겠다고 했다. 단식이 이십 일 째가 되는데 차를 타고 먼길 가는 것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런 싸움까지 피하면서 몸 보전을 하려면 단식을 할 까닭이 없지를 않나? 싸움이 아닌 다른 일에서야 몸의 기운을 좀 더 아끼고 보전해야겠지만 싸움 앞에서까지 몸을 사리는 건 무언가 거꾸로인 것 같다. 토요일 오전에 가겠다 했더니 그래도 길게 단식한 사람이 혼자 가게 하는 건 아니라면서 바라 님이 함께 가겠다고 했다. 요즘 따로 하는 일이 바쁜 데다가 아이들까지 챙겨야 해서 쉬운 걸음이 아닌 줄 알기에 그 마음이 더욱 고마웠다.

두 번째 나눈 이야기는 군청 앞 집회 모습에 대한 거였다. 평화모임에는 교사의 수가 많은 편인데 개학을 하게 되면서 날마다 군청 앞 시위를 하는 것이 더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들 느꼈다. 그래서 긴 이야기 끝에 낸 결론은 지금처럼 날마다 다 모여 시위를 하는 게 아니라 다들 함께 모여 시위하는 것은 토요일마다 하는 것으로 하고, 평일에는 모임 일꾼 가운데에서 하루 한 사람씩 맡아서 단식자와 함께 시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직장 생활에 다른 모임 활동까지 있으면서 날마다 나와야 했던 분들에게는 한결 가벼워진 약속이 되는 거였다. 이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박영숙 님이 장날 장터 선전전 이야기를 하면서 시위의 시간과 형태 또한 더욱 융퉁성을 두고 때에 맞추어 다양하게 해 가기로 했다. 이를 테면 장이 서는 날에는 군청 앞 정거장에 붙박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피켓과 유인물을 들고 시장으로 찾아가 장을 보러 온 분들께 선전전을 하자는 것이다. 장날이라는 말, 장터라는 말 왠지 그 말만으로도 흥이 났다.

그 다음 하나 더 나눈 이야기는 울진 지역 뿐 아니라 바깥으로 선전을 하는 것에 대한 전략. 우선 크게는 세 가지 정도를 꼽았다. 하나는 제도 언론에 꾸준히 보도자료를 써서 알리는 것, 또 하나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홍보, 그 다음은 모임 일꾼들이 직접 글을 써서 낼 수 있을 만한 지면에 글을 내는 것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것에 익숙치 않은 이들로서는 셋 모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쉬울 법한 두 번째 것-인터넷 게시물 퍼나르기-이지만 우리 모임 분들은 문명과는 멀기 때문에 그것도 많은 분들이 어렵게 여겼다. 하지만 못하면 못하는 대로 마음을 가볍게 가지고 하면 그것들이 꼭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무릇 모든 표현이 그렇듯이 절실함이 있으면 그 절실함만으로도 갖는 힘이 있다. 우리가 홍보하고 선전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알리고 싶어서, 그 절실한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보도자료를 쓰는 것도 무슨 틀이나 형식을 갖추느라 애쓸 것 없이 기자들에게 우리의 절실한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면 그걸로 되는 것이고, 어떤 지면이든 글을 써서 보내는 거라면 그 또한 저마다의 간절한 마음을 담기만 하면 되는 걸 거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모든 일이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되어 짐이 될 테고, 어떻게 보면 그것들 모두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 되어 하면 할수록 뿌듯할 수 있다. 부담을 빼고 가볍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잘 귀를 기울이면서 하면 '해야 해서 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회의는 세 가지 모두 좋고 가벼운 마음으로 잘 마쳤다. 더불어 잠깐이나마 위축되고, 눈치보게 되고, 무겁던 마음도 함께 가실 수 있게 되었다.

울진평화모임의 활동 모습이 맨 처음 릴레이 피켓 시위에서 그 다음 군민 단식 릴레이로 한 차례 바뀌어 왔다면, 이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군민 단식 릴레이라는 내용은 2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하지만 그 시위의 모습으로 보면 아주 새로운 시작이다. 평일 당번이 되는 사람에 따라 낮 시간에 시위를 하기도 할거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선전전도 하게 된다. 내일과 모레 서울에 다녀오면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음도 새롭다. 회의를 마치고 다들 힘을 내게 된 것 같아서 무엇보다 그게 가장 기쁘다. 힘냅시다, 힘내서 파병철회, 철군합니다! (200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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