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날 준비

[철군투쟁 단식일지 20, 21, 22] 8월 28~30일

마지막 출국이 있던 날 - 서울 (28일)

서울까지 가는 게 무리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올라가기로 했다. 더 일찍 나섰어야 하는데 꼭 마쳐주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열 한 시나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바라님과 바하님이 함께 올라갔다. 서울까지는 쉼 없이 쌩쌩 달려야 다섯 시간. 넉넉히 쉬면서 가면 그보다 한 두 시간은 더 걸리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일을 하겠다고 뒷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죽변을 지나고 부구를 지나 원덕, 삼척을 지나는 길. 멀미가 심하게 왔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대로 혼이 나는 것 같았다. 스무 날이 넘게 아무 것도 먹지를 않고 있으니 속이 온전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겠지. 컴퓨터를 덮고 옆으로 엎드리듯 쓰러져 뱃속이 편안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도 모른 사이 잠이 들었다.

여주를 지날 때가 네 시 반쯤 되었나? 동서울 톨게이트를 나갈 때는 다섯 시 이십 분쯤 되었다. 종묘 집회에 가 있는 바끼통 회원이 전화로 일러주길 집회가 썰렁하단다. 학생들이 좀 있고, 기껏해야 300명 정도 된다 한다. 300명이라고? 이 나라에서 침략군대를 내 보내는데 그것을 막겠다 하는, 규탄하는 자리에 고작 300명이라고?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 상황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몰랐다. 한 차에 탄 바라님, 바하님께 300명 정도밖에 없대요, 하고 말을 전하는데 그게 마치 내 잘못이기라도 한 양 내가 부끄러웠다.

정말 의지가 있기는 있었을까? 며칠 전부터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자이툰 본진 파병 규탄대회' 공지. 국민행동에 가입해 있는 단체만 351개라고 들었다. 최소한 단체마다 한 사람씩만 나왔다 해도 삼 백 명은 쉽게 넘는다. 기껏해야 300명 정도 되었다니,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는 내가 무언가에 홀려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행동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 내 놓는 어떤 성명서나 혹은 인터뷰, 무대 위에서 하는 발언 들에서는 총력을 다해 싸울 거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며칠 전 국민행동에서 파병철회 운동에 대한 마무리 평가회를 가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 내용을 떠나서라도 아니, 아직 본대가 떠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평가회를 하는지 기가 찰 뿐이었다. 현 시기까지 한국 파병반대 운동을 대표한다는 국민행동이 과연 파병을 막겠다는 필사의 의지라는 게 있기는 있었을까? 그 평가회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하다 보니 한 기사에는 박석운 집행위원장이 "파병을 기정 사실로 인정한 채 항의 수준의 운동을 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시민들의 마음, 대중들의 분노는 파병을 기필코 막겠다는 거였다. 예의상, 도덕상, 또는 자기 만족으로 파병반대를 외친 것이 아니었다. 벌써 단식일수가 40일 가까이 되어가는 김재복 수사님이 어디에선가 한 인터뷰의 제목이 떠오른다.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순수한 마음으로 파병반대 운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종로까지 가는 데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종묘 집회부터 광화문까지 행진은 모두 끝난 상태였다. 기껏 일곱 시간 가까이 달려 올라온 우리 세 사람도, 집회에 참석하고 있던 바끼통 사람들도 모두 힘이 빠져 보였다. 종로의 그 많은 사람들, 그 자리에서 어느 한 구역에 있는 사람만 해도 금세 삼백 명은 될 텐데, 삼백 명이라니. 이 나라가 남의 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짓밟는 일에 우리 군대를 보내는 날인데 고작 삼백 명이라니.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8월 3일 자이툰 선발대 출병 뒤로 파병철회에 대한 어떠한 흐름도 없었다. 그랬으니 떡 하니 8월 28일 본대 파병 규탄을 하자고 하니 그게 잘 될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파병기간 연장동의안이 있는 11월에 온힘을 다해 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아내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미루자고, 지금은 다른 일에 집중하고 그 때를 기다리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하지 않으면 11월에 제대로 된 싸움이란 없다. 흐름을 만들어가지 않는 채, 그 힘을 쌓아가지 않으면 또다시 성명서만 요란하면서, 실제 싸움은 흐지부지되는 그런 꼴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확인하지 않았는가? 8월 3일 선발대 출병 뒤로 실제 싸움으로는 다 손을 놓다 시피 했으니 오늘 한 나라의 살인 부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도 최소한의 싸움조차 되지 못하지 않았나? 나중에 힘 모아 싸우면 된다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건 솔직히 국민행동 지도부가 몰라서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진정 필사의, 결사의 의지가 있는가?

수사님, 힘내세요! - 청와대 앞 (29일)

오후 한 시. 경복궁 4번 나들문. 어제까지 못마친 원고도 있었고, 어머니 댁에 들러보기도 해야겠기에 나는 어젯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을 새다시피 해서 겨우 원고를 마쳐 놓고 경복궁 역으로 나갔다. 어제 올라온 셋 말고 오늘 아침 버스를 타고 울진 모임 사람들이 셋 더 올라왔다. 거기에 바끼통 모임 사람들까지 하니 여남은 명이 되었다. 청와대 앞 무궁화 동산으로 가는 길. 여기에서는 평생 언제 또 받아볼까 싶은 호위를 받는다. 지하철역부터 청와대 들머리까지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리 일행에 대한 정보를 알려 놓는 통에 알아서 인사를 건네고 길 안내를 해주는 것이다.

또다시 불심검문에 가방 수색까지 하려 하기에 지난 번 기억도 있고 해서 지난번처럼 바보같이 굴지 않으려 했다. 공권력이라는 것, 그것으로만 그 사회가 얼마나 좋은 사회인가를 가늠한다면 그 공권력이 얼마나 개인들에게 편안하고 친숙한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대부분 사회의 공권력은 불편하고 낯설다. 나쁜 사회의 공권력은 불편할 뿐 아니라 무섭고 겁이 난다. 나를 지켜주는 구실보다 나를 감시, 통제, 억압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공권력은 과연 어느 쪽인가?

수사님을 뵈러 농성장에 들어가니 수사님은 보이지 않고 수염 할아버지 문정현 신부님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반가워서 신부님께 인사를 하려 하니 신부님이 목소리를 아주 조그맣게 낮추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지금 막 수사님이 잠들었으니 깨지 않게 조용히 하라는 당부다. 그래서 우리도 조용조용 소리를 낮추며 신부님께 인사를 나누었다. 곁에는 평화바람의 오두희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신부님도, 오두희 선생님도 모두 반갑다. 두 분 모두 집회에서나 또는 책에서 익히 아는 분들이었지만 지난겨울 소망나무 단식을 할 때 유랑극단과 함께 일부러 찾아와 주었던 분들이다.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이 수사님이 잠에서 깨었다. 얼굴이 아주 핼쑥해졌다. 이 날로 36일, 지난 번 뵈었을 때만 해도 아직 힘이 많아 보였는데 이 날 뵈니 한눈에도 기운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수사님 장난기야 달아나지 않았지만 전보다 무표정일 때가 많다.

지율 스님이 떠난 뒤로 경찰 쪽에서 자꾸만 농성장을 거두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공유지를 사적으로 점거하는 건 불법이라는 둥 온갖 법률을 들이대면서 농성장을 거두라고, 아니면 다른 자리로 옮기라고. 법을 근거로 들이대다니? 우습지도 않다. 법에 따라 농성장을 옮겨야 한다면 그거야 무어 어려울까? 법이라는 것이 누구나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정부부터 법을 지켜라. 이 정부가 어기고 있는 법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부터 어겼다. 사람을 죽이러 침략전쟁에 군대를 보냈다. 법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 제발! 있는 법이라도 지키면 좋겠다. 법 좀 지켜라!

울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그대로 광목에 입혀 만든 걸개, 수사님 힘내세요.
오늘 아침 버스로 올라온 울진 분들은 수사님께 드리는 선물이 제법 많았다. 먼저 지난 번 만들었던 광목 걸개. 아이들이 하나 하나 그린 그림 위에 광목으로 덮어 다림질을 해서 빛깔이 묻어나게 하여 만든 걸개다. 농성장 앞에서 크게 펼치니 지난 번 방에서 잠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멋졌다. 수사님도, 그 곁에 있던 신부님을 비롯한 다른 손님들도 모두 좋아했다. 수사님이 계신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일 만한 나무 사이에 걸어 놓았다. 그 밖에도 아이들이 그린 그림 엽서를 이은 길다란 띠가 선물로 있고, 수사님께 보내는 편지가 한 묶음이나 된다. 오늘 아침 올라온 분들은 모두 학교 교사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 수업을 하면서 수사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햇살 님네는 마침 어제 토요일이 네 시간 모두 클럽활동을 하는 시간이라 아이들과 같이 종이학 글자판을 하나 더 만들어 오셨다. '철군'. 광목 걸개에 엽서 띠, 편지 뭉치, 종이학 글자판 이것들이 수사님께 큰 기운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 거다. 거기에는 그걸 만든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담겼을 테니 말이다. 아, 하나 빠뜨릴 뻔했다. 행곡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군청 앞 시위를 함께 하는 박영숙 님이 함께 올라오지는 못하지만 수사님께 전한다면서 집에서 한 효소를 보냈다. 촌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지만 어느 자리에서 몸바쳐서 운동하는 사람들만큼이나 평화를 바라는 절실함은 간절하고 깊다.

수사님 몸이 많이 안 좋긴 안 좋은가? 지압을 조금 공부한 일이 있는 사과꽃이 수사님 몸의 혈 자리를 눌렀다. (원래 그런 건 누가 아플 때마다 수사님이 해주곤 하던 건데.) 한참 아픈 걸 참으면서 하고 나더니 한결 몸이 좋다 한다. 수사님 힘내요, 기운내요!

길을 떠나자

가을로 드는 오후 햇살이 참 좋았다. 굶는 일로가 아니라 여유로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서 소풍이라도 나온 길이었다면 참말 그지없이 좋을 것 같은 날씨였다. 수사님 곁에 앉아, 신부님과 오두희 선생님 마주 앉아, 울진 식구, 바끼통 식구들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한 이야기. 수사님은 길을 떠나자, 그게 단식 순례든 단식 투어든 지역 곳곳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자는 말을 했다. 나보다야 수사님의 단식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걸 잠시 뒤로 한 채 말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청와대 앞의 농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상징이 되기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사그라들고 있는 파병철회, 철군 운동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이다. 수사님의 말씀은 지역 곳곳에 그 불씨가 있는 곳이면 찾아가 힘을 불어넣기도 하고, 거꾸로 힘을 받기도 하면서 철군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준비하자는 뜻일 거다. 거기에 하나 더, 얼마 전부터 준비하고 있는 <전범 민중재판 운동>을 그 순례의 걸음에서 하나 둘 알려 나가는 일을 함께 한다면 9월 중순이 지나 한참 벌여가게 될 '민중재판 기소인단 모집'을 중심으로 한 민중재판 운동으로 자연스레 그 흐름을 이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더해졌다. 이 이야기는 <전범 민중재판 운동> 간담회에 참가하고 온 오두희 선생님이 낸 생각이었는데 나 또한 민중재판 운동에 주목하고 있던 터이기도 했고, 그 생각에 쉽게 동의했다. 이야기는 빠르게 이어졌다. 기본은 김재복 수사님과 내가 하는 <단식평화순례>가 되는 것으로 하면서 그 순례를 '평화바람'이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 순례의 길에 민중재판 운동의 활동가가 함께 다니며 거리 캠페인이건 지역 간담회건 그 자리에서 민중재판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함께 하는 모양이 되는 거였다. 물론 걱정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단식이 40일이 되어가고, 20일을 넘긴 사람들이 그 먼길을 어떻게 다니겠냐는 거였다. 수사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전에도 밝힌 것처럼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다른 일, 철군과 관계없는 일에 체력을 소모하고 다닌다면 그건 걱정일지 모르나 철군 운동을 하는 곳, 싸움을 하는 곳에서 몸 생각을 해서 힘을 아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이 단식이 몸 관리 잘 해서 더 오랜 날 버티려는 게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수사님도 그런 생각에 먼저 '평화순례'라는 걸 제안하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한 달을 농성장에 있다가 쓰러지느니, 보름을 다니다 쓰러지더라도 더 적극으로 다니며 싸움을 하겠다는 뜻으로 말이다.

길 떠날 준비

그 이야기는 사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수사님과 오두희 선생님, 그리고 나 그렇게 셋이 이야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사실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회의였다. 하지만 단위마다 논의 절차를 갖추고, 정식 제안을 하고, 다시 단위 대표가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을 하기에는 일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들이었다. 우선 수사님의 단식이 36일을 넘고 있으니, 그 하루는 평소의 일주일이나 한 달에 견주게 되는 시간일 것이다. 만약에 순례를 한다고 하면 어서 계획을 세워서 바로 시작해야지 그나마 쓰러지기 전에 몇 지역이라도 더 다닐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상황인 거였다. 게다가 이 순례를 통해 하반기 전범 민중재판 운동 쪽으로 힘을 싣게 하고 흐름을 일으키려면 순례 자체가 9월 초중순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 또한 있었다. 그래서 우선 그렇게 셋이 함께 뜻을 모았다. 수사님 생각은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당장 준비한 것, 갖춘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야기한 것이 수사님은 일단 8월말까지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다가 9월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순례를 시작하는 것 정도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이틀 평화바람의 평가회가 있으니 거기에 함께 하다가 첫 순례지를 울진으로 하고, 평화바람과 함께 모두 울진으로 내려오는 것. 그래서 울진을 시작으로 하는 순례에 나도 함께 합류해서 다른 고장을 돌며 순례 길에 나서는 것으로 말이다. 그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저녁에 민중재판 운동을 제안하신 평화인권연대의 손상렬 선생님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다시금 공유했다. 아직 민중재판 준비 팀 쪽에서도, 평화바람에서도 팀 내 논의가 있은 건 아니지만 다들 가능할 거라고, 쉽게 동의할 내용일 거라고 바라보았다. 울진 모임 또한 안에서 먼저 논의를 한 게 아니긴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계획에 대해 더 좋은 마음으로 동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분단의 향기>>

오후 햇살이 저물 무렵 수사님과 인사를 나눴다. 못다한 이야기는 계속 더 연락을 하면서 맞추어 보기로 약속했다. 솔직히 말해 요사이 얼마 동안 기운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수사님을 뵙고 나니 힘이 아주 많이 났다. 지난 번 지율 스님과 수사님 같이 계실 때 다녀가고도 엄청 힘을 얻어서 돌아갔는데 이 날도 그랬다. 수사님 모습을 뵙고, 수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어서도 그렇고, 그 자리에서 낸 앞으로 계획을 생각해도 그랬다. 그저 굶고만 있는 건 차라리 더 힘들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굶고만 있는 건 정말 힘들다. 물론 단식을 시작한 뒤로 정신 없을 새로 바쁘게, 오히려 전보다 더 잠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지내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하는 일을 계획하니 몸도 그걸 알아차리고 힘이 나는가 보았다. 힘이 났다. 그건 아마 나 뿐 아니라 울진에서 함께 올라온 분들, 바끼통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되었다. 수사님의 단식은 의미 없이 굶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고, 사람들에게 되돌아보게 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에서 나와 인사동으로 갔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전 <<분단의 향기>>. 노순택 선생님이라면 이름도 아주 많이 들어보았고, 사진도 많이 보았다. 얼마 전에 saba가 모임 까페에 다시 '코메리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플래쉬를 올려놓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분이 인사동에서 사진전을 연다고 했고, 그 얘기를 전해준 오두희 선생님이 직접 그 분께 전화를 걸어 바꾸어 주었다. 작가가 직접 설명해 주는 걸 들으면 더 좋다면서 우리 모임 사람들이 갈 테니 안내를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무슨 전시회 같은 데에 들어가면 자세를 어떻게 하고 봐야 하나 더 걱정일 정도로 그런 쪽에는 촌놈인데, 작가가 직접 설명을 해주면서 안내를 해준다고 하니, 그것도 좋은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이름난 분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렇게 한다고 하니 괜히 긴장이 되기도 했다. 인사동 빵집 건너편 3층, 김영섭사진화랑 유진홀. 작가는 생각보다 아주 젊은 분이었다. 나는 그 분 이름이나 사진이 널리 알려진 걸로 생각해 나이가 아주 지긋한 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사진 하나 하나를 두고 그 사진을 찍던 때 이야기, 그리고 사진에서 하고싶은 말, 사진에서 눈여겨보면 좋을 것, 작가가 두고 있는 초점 들을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사진 하나하나마다 정말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떤 대조와 댓구, 아이러니와 낯설음이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으면서 그것이 들려주는 슬픔, 아픔, 참혹함, 참혹하다 못해 허탈한 웃음까지.

돌아오는 길

경부 고속도로에서 영동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깜빡 잊는 바람에 길을 돌아야 했다. 대전을 지나 황간까지 내려와 상주를 지나 영덕으로 해서 거꾸로 올라가는 길. 인사동에서 나온 게 저녁 일곱 시쯤 되었는데 울진에 도착하니 새벽 세 시. 정말 멀 길, 긴 시간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차안에서 당장 9월 4일부터 울진에서 첫 순례를 할 텐데 그것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급하기는 정말 급하다. 최소한 일정을 준비하고, 고장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따위만 해도 아주 여유가 없다. 포스터니 현수막, 초대장, 전단지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을 해 봐도, 유랑극단과 함께 하는 공연이나 민중재판 간담회를 생각해 봐도 바로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스터나 현수막, 초대장 같은 걸 준비한다 해도 당장 아무 것도, 공식 이름이나 일정 같은 것도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그걸 울진 모임에서 우리끼리 정할 수도 없는 노릇, 이야기를 하려면 수사님과 평화바람 분들과 민중재판 쪽 분들까지 모두 함께 의논을 해야 할 텐데 한 번 만날 수도 없으니 정말 바삐 연락하고, 바쁘게 준비하지 않으면 어려운 노릇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졸다가, 창 밖으로 보이는 산새와 달무리를 보며 감탄하다가, 상주 포도밭을 지날 때 포도 내음에 취하다가 다들 지쳐 새벽에 울진에 도착했다.

<<철군과 종식을 위한 단식평화순례>> - 울진 (30일)

<<평화순례>>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민중재판>>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제 겨우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다들 낯선 이름, 낯선 개념들이다. 울진에서 첫 순례를 준비하는 데에도, 그리고 단식평화순례를 제대로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려면 우선 그 두 가지 내용에 대해 사람들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했다. <<민중재판>>에 관련해서는 어제 손상렬 선생님이 적어준 임시 소통 게시판(peacenet.jinbo.net)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 보니 참고할 자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전범 민중재판 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은 제안서와 그것에 관련한 물음과 답, 참고할만한 다른 사례 들.

그 다음 <<평화순례>>에 대해서는 따로 어떤 것도 정리된 계획이나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그저 그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사람들이 합의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를 솔직하게 써서 알리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야말로, 지금 겨우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은 이 순례단 일을 하는 데에서 명확하게 일을 맡아서 하는 단위라는 게 없다는 점이다. 선전과 홍보에 대한 일이며 지역 순례를 조직하는 일이며, 일정이나 진행을 담당하는 일 같은 것을 누가 맡아 할 것인가 하는 짜임이 아직 없다. 이 '단식순례'라는 것도 정식 이름을 무어라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걸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누구와 의논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조차 아직 뚜렷하지 못한 상태다.

울진은 그 첫 순례지이기도 하고, 날짜가 앞으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준비하는 분들이 마음 걱정이 더 많아 보였다. 그래서 일단 평화바람 쪽 분들과 통화를 해 보면서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가닥을 잡았다. 울진에서 어제 내려오며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평화바람이 일 년 가까이 유랑생활을 해왔으니 지역에 가면 어떠어떠한 것을 어떤 일정으로 할 것인지 그런 쪽에 대한 노하우랄까, 감이 있을 테니 평화바람이 가진 일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서 울진평화모임의 구실은 그것을 잘 할 수 있게끔 알리고, 뒷받침하는 일을 잘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평화바람 쪽에 일정에 대해 대강 물으니 오히려 평화바람 분들은 그 고장 사정에 맞게 일정을 마련하면 그 일정에 맞추어서 평화바람이 움직이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평화바람과 함께 하는 공연을 통한 캠페인 말고, 민중재판 관련해서는 무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도 걱정이었다. 함께 내려올 민중재판 쪽 분이 어떤 구상, 계획으로 오시는지 아직 서로 확인한 게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감담회나 공청회 비슷한 것을 하려면 일정 중에 어느 시간을 잡아서 장소와 시간 따위를 미리 홍보해야 할 테고, 만일 그게 아니라 거리 캠페인 정도를 생각하는 거라면 그건 따로 장소, 시간을 빼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울진에서는 현수막부터 포스터, 초대장 따위 선전물에 최소 일정 정도는 넣어서 만들어야 할 텐데 아직 확정된 게 없으니 마음으로만 걱정이 가득이었다.

첫 순례지, 울진 준비

저녁, 군청 앞 농성을 마치고난 뒤 바하님이 하는 피아노 학원에 모여 회의를 나눴다. 우선 내가 찾아본 자료들이나 이야기를 나누어 듣게 된 상황에 대해 한 번 더 말씀을 드렸다. 그 가운데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는 수사님이 청와대 농성 접는 것을 9월 1일이 아니라 3일에 하는 것으로 하겠다는 거다. 어차피 4일부터 첫 순례라면 3일까지 농성장에 있다가 3일 11시 쯤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울진으로 내려오시겠다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모임 내에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은 우리 생각에는 수사님과 평화바람을 비롯한 단식 순례단이 울진에서 이틀을 머문다 생각했는데, 그거야 예를 들어 한 말이었고 더 긴 일정이어도 좋다는 거였다. 또 하나 울진 모임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한 거라면 평화바람이 오면 공연은 어느 날 저녁 한 차례 정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하는 것이 좋다, 꼭 저녁이 아니라 밝은 때에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여튼 처음 말을 풀기가 어려웠던 건 '평화바람'의 활동이나 공연 모습에 대해서 그 감이 멀어서, 또는 '간담회'니 '공청회'니 하는 말 앞에서 뭔가 격식을 갖추는 부담스러운 자리 정도를 떠올려 부담을 느껴서 그렇다 했다. 평화바람은 그냥 장날에 시끌벅적하게 와서 구경꾼들을 끌고, 아이들 손님을 끌고 하는 '약장수' 정도 모습으로, '간담회'라는 건 그저 먼 곳에 온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자리'정도로 고쳐 생각하자 하니 이야기가 훨씬 쉬워졌다. 실제로도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고 말이다.

술술 이야기는 풀려 우선 기본으로 이틀 일정에 대한 가안을 잡아 보았다. 울진읍과 죽변 파출소 앞, 부구 터미널 앞에서 평화바람의 공연과 함께 선전전을 하자는 것, 그리고 우리 모임에는 전교조 교사들이 많은데 하루 한 시간 정도씩 수사님을 모시고 초대 강사 식으로 아이들하고 만나는 자리를 준비해 보자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군민들이 많이 모이는 성당의 신부님께 말씀드려서 성당에서 김재복 수사님과 문정현 신부님들을 모시고 평화 강연을 듣는 걸 준비해 보자고도 했다. 아이들 수업에 수사님을 모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면 우선 울진중학교, 부구중학교 정도가 가능해 보이지만 다른 선생님들께 더 연락해서 신청을 받자고도 했다. 그래서 혹시 울진에서 한 시간 쯤 내려가 나오는 후포에 있는 학교에서도 그런 시간이 마련된다면 월요일 하루를 더 울진에서 머물면서 후포 학생들과 수사님이 만나는 시간을 갖게 마련한 뒤, 후포에서 평화바람과 함께 공연, 선전전을 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밖에도 원자력발전소 노조 쪽하고도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원자력 발전소 사택 아파트는 울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고 할만한 곳인데, 그 사택 안에서 평화바람의 공연을 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정도의 일정이 이틀 사흘보다 더 길어질 것 같으면 나흘 째 되는 날은 장이 서는 날이니 아주 장날 선전전까지 함께 하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강행군을 하게 될 순례단인데 하루 반나절 정도는 울진에 유명한 덕구온천이나 바닷가에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일정도 준비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정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울진에서도 나름껏 준비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울진에 있는 풍물패, 그리고 울진평화모임 사람들이 준비하는 노래, 페이스 페인팅, 아이들과 함께 그리는 걸개 그림, 그림책 슬라이드……. 숙소에 순례단 식사 마련 당번까지 다 정하고 보니 이제 남은 건 정한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일은 모여 민중재판 운동에 대한 글을 가지고 우리 일하는 사람끼리라도 간단하게 강독을 하면서 의의를 공유해 보자 했고, 다 모여서 손으로 포스터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일이 뭔가 되는 것 같고 힘이 났다. 이야기가 풀리면, 힘이 난다!

군청 앞의 농성장 두 풍경

언젠가부터 군청 앞에는 마이크를 단 자동차가 붙박고 있었다. 그 자동차는 오전부터 오후, 저녁까지 울진 읍내를 돌아다니며 떠들다가는 다시 군청 앞에 서서 떠들었고, 이따금씩 읍내를 다니며 선전을 했다. 다름 아닌 울진 핵폐기장 유치 찬성 쪽 사람들. 우리가 두 달 넘게 서 있어온 버스 정거장 옆에도 큼직한 글씨의 현수막을 두 장이나 내걸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울진발전을 방해하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던가! 그이들이 지금 주장하는 것은 어서 군수가 결정을 내려 주민투표를 하자는 거였다. 주민투표를 하면 유치 찬성 쪽으로 기울 거라는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걸까? 다행히도 군수는 지금까지 유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것이 개인의 소신이든 주민들의 눈치 때문에 그런 것이든 어찌했건 다행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군청 주차장 마당에 농성 천막까지 쳤다. 그 천막 안으로 덩치 큰아저씨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자리는 지난 해 겨울 울진반핵연대 모임에서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했던 자리라고도 했고, 우리가 단식 농성장을 칠까 말까 고민하면서 후보로 꼽았던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날마다 하듯이 초등학교 교실 책상 하나와 피켓 더미, 그리고 돗자리와 파병철회 우산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빵집에 전기를 빌려 끌어와서 카셋트를 틀었다. 나는 그냥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는데 지금 군청 마당에 천막 농성장에서는 아저씨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고 한다. 참 낯선 농성이다. 여러 모로 우리의 농성과 그곳 농성이 견주어 진다. 우리는 우산 하나를 천막 삼아 단식 농성 중인데, 그 쪽 돈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은 비까번쩍한 천막을 치고 그 안에 모여 고기를 굽고 있다. 우리는 카세트를 들고 나가 노래를 트는데, 그곳 사람들은 커다란 방송차를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댄다. 왠지 농성장을 영 엉뚱한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그 농성이야 있는 사람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부리는 횡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이들 기세도 만만치 않아서 핵폐기장 문제도 정말 걱정이다. 그이들은 자기 배를 더 불리게 하기 위해서 근사한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농성을 한다. 그 곁에는 그저 굶으며 우산 하나를 들고 길가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이툰 선발대가 떠나던 8월 3일부터 29일째 이어지고 있는 군청 앞 군민 단식 릴레이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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