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테러방지법 제정할 거면 국보법 폐지 왜 하나

테러방지법 운운, 지배세력의 저급하고 분열된 자의식의 재생산

알 카에다가 한국을 공격 대상에 넣겠다고 말하자, '테러' 대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일제히 쏟아지고 있다.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에서 관련 상임위의 입체적 협력을 통해 정부의 대 테러대책을 집중 추궁하고 철저한 대책을 세우라고 소속 의원들에게 지침을 내렸다.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도 알 카에다의 위협을 들어 테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안영근 의원은 "자이툰 파병은 테러 위협을 감수한다는 전제 속에서 한 것인데, 테러단체 말에 따라 그렇게 위축된다면 왜 파병했는가"라는 원색적인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역시 4일 열린 국감에서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정부는 이미 이슬람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 단속에 나섰고, 경찰의 장갑차를 공항과 주요 외교시설에 배치하고, 심지어는 군의 대테러 특수부대까지 동원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수언론도 테러방지법 제정과 이를 기초로 한 테러대책위원회와 테러대응센터를 신설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띠우고 있다. 테러대응센터는 20여 개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테러 대응 업무를 조정해주는 컨트롤 타워로, 유관부처에서 파견되는 공무원들과 대테러 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며 대응 시나리오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물론 테러방지법안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이다.

국가정보원이 입법 예고한 테러방지법안은 작년 11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작년 말 사회인권단체의 반발 등으로 지금까지 의결이 미루어졌는데, 6월 김선일 씨 죽음을 전후한 시기 잠깐 고개를 내밀었다가, 자이툰 부대 파병 이후 이라크 저항세력의 대응이 확산되고, 알 카에다의 선동이 이어지자 지베세력들은 이참에 꼭 법 제정을 해야 한다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태동 당시 이미 제2의 국가보안법으로 진단받은 바 있다.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라는 불특정한 대상을 '테러' 대상으로 놓음으로써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마치 국가보안법이 옷만 갈아입고 나타난 듯하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당론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고 있어 그 진의가 실로 의심스럽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의 대립이 얼마나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이후 대책으로 '형법개정' 또는 '보완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본질에 있어 차이가 없다. 형법개정은 국보법에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북을 '내란목적단체'로 규정하는 등 국가보안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며, 보완입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파괴활동금지법'은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두고 있고,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와 금품수수 등의 내용도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테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등 '테러방지법'을 끌어내기까지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린우리당에 맡겨두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국보법 페지 -> 형법 개정 또는 보완입법 -> 파괴활동금지법 -> 테러방지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나리오를 볼 때, 지금처럼 페지되는 국가보안법은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개악된 집시법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형편이다.

이럴 경우, 국가보안법 폐지는 과거 국가보안법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상처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 국가보안법이 주는 상처와 똑같은, 오히려 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닌게 아니라 현실에서는 인권유린과 민중의 삶에 대한 위협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국제 테러조직과 연계해 테러활동을 지원할 우려가 있다며 국내 '불법체류자'(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6만7000여 명에 달하는 이슬람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잠재적인 위험 요소라며, 워낙에 단속과 추방을 벌이던 차에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수면 아래 있던 테러방지법 제정을 추진함으로써 공권력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경찰과 군대를 움직여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가상의 대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지배세력은 이미 파병이라는 국제적인 범죄를 저지른 바 있다. 따라서 저항세력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 인식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잘못 끼운 단추를 풀고 다시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비책, 대응책으로 내 놓는 것이 테러 세력 척결, 테러방지법 제정 등과 같은 공권력 강화 거론인데, 지배세력 스스로도 이것이 대비책이 될 것이라 믿지는 않을 것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정치적으로 무능한, 지배세력의 저급하고 분열된 자의식이 재생산되는 것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은 조건없이 철폐되어야 하고,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는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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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 테러방지법 , 눈 감고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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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