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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뱅이

들꽃이야기(16)

담 너머로 뜰보리수나무 꽃이 소리 없이 폈다가 간 밤 내린 봄비에 젖어 골목길로 꽃잎을 소복하게 떨구었다. 골목길 여기저기 뽀리뱅이가 한창 꽃 피고 있다. 뽀리뱅이는 보리뱅이라고도 불리는데 보리뱅이가 뽀리뱅이로 바뀐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보리수나무나 뽀리뱅이 이름에는 모두 '보리'가 들어가는 셈이 된다. 아마도 두 가지 다 꽃 피는 시기가 보리 농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요즘 다시 보리밥이 건강식으로, 별미로 인기를 얻어서 보리 심는 데가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보리가 주식이었던 예전과는 비길 수 없다. 3, 4월은 모든 식량이 동나서 보리 수확을 애타게 기다리는 보리 수확 시기였다. 산과 들로 다니며 나무 껍질을 벗기고 나물을 뜯어 연명할 때 뽀리뱅이는 나물 바구니에 담기던 풀이었다. 보리 수확이 시작되어 보릿고개가 끝이 나고 나물 뜯기가 멈출 때쯤 뽀리뱅이는 기다렸다는 듯 길게 꽃대를 내고 다투어 노란 꽃을 피워 냈다. 그러나 삶이 바뀌고, 먹을 게 바뀌면서 뽀리뱅이도 잊혀졌다.

뽀리뱅이는 두해살이풀이다. 이미 지난 해 가을 싹 트고 잎을 내어 방석 식물로 겨울을 난 것이다. 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자라는 모습이 불상을 얹어 놓은 연화대를 닮았다고 일본에서는 '부처자리'라고도 불린단다. 뽀리뱅이는 밭이나 들보다는 길가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도시의 콘크리트길에서도 무성하게 자라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뽀리뱅이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다. 보리밥이 별미로 다시 인기를 얻는 것처럼 뽀리뱅이도 다른 눈으로 보면 보리밥처럼 친근한 풀로 다가올 것이다.

산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고 골목마다 수수꽃다리 꽃향기가 진동을 하는 때 뽀리뱅이는 남이야 알아주던 말던 소박한 꽃을 부지런히 피워내고 있다. 총선이 끝나고 후유증이 크다. 어떤 곳은 잔치판이 질펀하게 벌어졌고 또 다른 곳은 사뭇 초상집 분위기다. 현란한 쇼에 취해 한껏 들떠 있는 이때 뽀리뱅이는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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