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의 사람이야기](3) - 주목, 전국농민문학의 밤

30일 마포에서 2004 전국 농민문학의 밤 만남의 자리 가져
농민과 문학 예술인들의 작은 연대 실현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오랜만에 친구가 다녀갔습니다. 같은 서울에 산다고 해도 하는 일들이 바빠 쉬이 만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늦은 나이에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친구라 보고 싶은 마음을 서로 시험 뒤로 미루고 지내온 날들이었습니다. 친구가 다섯 살 난 아이와 함께 왔습니다. 그동안 못 만났던 후배도 한 명 불렀습니다. 음식을 맛나게 하는 재주도 없고, 눈 여겨 보아둔 것도 없는 나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누군가 좋은 식당에서 내게 사준 맛난 음식보다 집에서 차려준 밥상이 늘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기억이 내내 따뜻했나 봅니다. 나도 친구에게 김 오르는 밥과 찌개 한 그릇 앞에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두부를 넣은 청국장과 신김치를 넣은 김치부침개 그밖에 한두 가지 반찬 더 얹어놓은 낡은 상 앞에서 우리는 '와와' 했습니다. 좀 질게 지어진 밥을 한 그릇 씩 떠놓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먹은 이 밥은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이들이 허리 꺾고 흘린 땀과 맘고생이 담겼을 겁니다. 땅과 하늘, 바람과 비, 햇빛과 달빛도 그 안에 담겨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름 알지 못하는 벌레들의 소리와 그 무엇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잴 수 없는 시간들이 쌀 한 톨 한 톨에 촘촘히 박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만 원짜리 몇 장을 주고 그 쌀을 샀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만 원 몇 장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농민들은 이런 쌀 농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하도 복잡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는 못하지만 간단히 말해서 다른 나라의 쌀을 수입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발맞춰서 정부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생명 농업을 마구 포기하고 있습니다.

몇 년 되었을 겁니다.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서울로 모여 투쟁한 일이요.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는 말도 있지요. 7월 23일 무더운 여름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든 농민들이 행진을 하는데 늙으신 분들이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게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흙을 밟는 대신 아스팔트를 밟아야 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의 삶이 농사를 짓는 이들의 삶과 분명 이어져 있을 텐데 아스팔트를 걷는 그이들의 고통을, 밭과 논을 갈아엎으면서 자신의 가슴도 마저 갈아엎어야 했을 고통을 우리는 함께 느끼지 못한 건 아닌지 더 늦지 않게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농민들과 만나려는 사람들

시인, 소설가, 르포작가, 화가, 배우, 만화가, 사진가, 무용가, 영상운동가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너무 깊어 땅으로 파고들 듯한 한숨이 있는 자리,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흘러 스며드는 자리, 쓰러지면서도 싸우는 자리, 누군가 다 죽여 사라졌을 것 같지만 여전히 생명이 움트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 문학, 예술을 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뭇가지들이 나뭇잎을 다 떨궈내고 빈 몸으로 처연히,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간결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겨울에 문학과 예술을 움켜쥔 이들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 곁으로 갑니다.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창작 농활과 2004년 전국농민문학의 밤'이 바로 그 현장입니다. 강원 화천, 경남 김해, 경북 영천, 전남 화순 네 지역에서 그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5박 6일의 일정입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민족문학작가회의, 삶이 보이는 창, 민주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50여 명의 문학 예술인들이 참여합니다.

30일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창작농활과 2004 전국농민문학의 밤 만남의 자리

지난 11월 30일 오후 5시에 마포에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 강당에서는 '2004년 전국농민문학의 밤 만남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려가기 전 사전 모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네 개 지역의 농민회 분들도 올라왔고, 멀리 사는 문학 예술인들도 시간에 맞춰 올라왔습니다.

너무 길었나 봅니다. 그 날 만남의 자리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시작이 길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

그날 모임에서는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이중기 영천농민회 시인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농에서 제작한 쌀개방에 관한 교육영상물을 보았고,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그이들이 보고 듣고 겪은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만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입으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검게 타들어 간 얼굴빛에서 나오는 이야기, 굵게 마디진 손가락에서 나오는 이야기, 몸으로 겪고 다시 몸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30여 년 농민운동을 해 온 문경식 전농 의장은 제 10기 전농 의장을 맡아 서울에 온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일 년 내내 싸우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투쟁에 각계 각층의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해 움직인 날들이었겠지요. 따져보면 달마다 주마다 하루마다 일정표가 빽빽하게 차 있을 것입니다. 전국 곳곳의 농민들도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서울에 올라와야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고요. 7월에는 제주도서부터 시작한 행진도 있었지요. 농민들이 서울에 올라와 외치는 소리를, 절규를 국민들은 들었을까요, 그리고 깊이 생각했을까요. 아니 나는 '생명농업'이라는 그 말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80년대에는 농민을 소재로 한 시와 글들이 많았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희망을 잃지 않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그런 글을 볼 수 없었다. 문학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농활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때는 맞지 않다. 여름철에 땀 흘리며 일하면서 해야 하는데 이야기만 듣고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내가 '이거 막걸리 농활이구만' 했다. 하지만 올해 이 일을 바탕으로 해서 내년에는 모내기하고 추수할 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땅에 농업이 사라지기 직전인데 우리 농업을 지켜내는 데 문학 예술인들이 한 축을 감당해주길 바란다."


땀 흘리며 일할 봄도, 여름도, 가을도 다 지났지만 다시 내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어 시작을 늦출 수 없어서,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도 시작할 수 없어 문학 예술인들은 지금 가려고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문경식 의장의 말대로 문학 예술인들이 작은 '바탕'을 일구어내야겠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인 김형수 시인은 문학이 민중에게서 이탈해 있는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농민들이 쌀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듯이 문학도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 창작농활을 통해서 문학이 민중에게서 이탈해 있는 상황을 바꾸어내길 바란다. 사회적 고통과 함께 하고 고통이 키워낸 문학예술이 나와야 한다. 창작농활은 농민들의 아픔을 느끼고 삶을 배우러 가는 것이다."

문학 예술인들의 눈과 귀가 예민하게 열려야 하겠습니다. 짧은 기간 한번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일궈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무엇을 쓴다거나 무엇을 한다거나보다는 느끼고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영천농민회에서 온 이중기 시인이 이야기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한 이중기 시인은 이곳으로 오는 길이 오랜만이라고 하더군요. 삶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인으로 머물게만 하지 못하고, 농사짓는 일에만 몰두하게도 하지 못합니다.

영천농민회 이중기 시인
"나는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만 짓고 있다. 이 골목에 오랜만이다. 농사짓다 보니까 시 쓰는 것도 잊고 있다. 농사짓는 것보다 투쟁하러 나가는 일이 더 많다. 지금 농업, 농촌, 농민은 벼랑 끝에 서 있다. 그야말로 말기암 환자다. 단 하나 희망은 쌀개방을 막는 것이다. 막아낼 수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 이 나라 정부는 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농업을 살려낼 수 없다. 국민들 관심만 있으면 우리 나라 농업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작가가 이 바람을 일으켜 달라. 내가 쓰는 시는 격문밖에 안 된다. 나는 농사지으면서 열심히 격문을 쓰겠다."

『식민지 농민』(1992년), 『숨어서 피는 꽃』(1995년)에 이어 세 번째로 낸 시집 『밥상 위의 안부』(2001년)를 책꽂이에서 찾아 다시 들춰보니 '복숭아 농사만 짓고 있다'는 시인의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더군요. 결코 편하게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중기 시인을 비롯해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를 찾아 읽는 것도 작은 연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달려온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한 이야기도 그 안에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게 많았습니다.

윤금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우리들은 작가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만난다는 게 설레고 기다려진다.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농민들이 문학 문화예술의 소재에서 많이 멀어진 것 같다. 우리가 전환기를 살지 않나 싶은데 격정적인 예술은 이런 시기에 살아나지 않을까. 농민의 삶이 작가들과 만나서 여러분의 감성으로 태어나면 좋겠다. 함께 삶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소통하지 않는 관계,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지역 농민회와 문학 예술인들은 그 막히고 끊어진 것들을 뚫고 이어서 농민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작은 계기들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쌀은 주권이다

전농에서 만든 교육영상물 '쌀은 주권이다'를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이곳에 다 쓰기는 그렇고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이 이런 영상물을 한번쯤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상물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것, 다시 찾아 읽어보고 생각해봐야지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일년 전 멕시코 칸쿤에서 WTO 5차 각료회담을 무산시켰던 이경해 열사가 외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정문에서 이경해 열사가 한달 간 단식농성을 벌이며 WTO에 전달한 서한에 적힌 글귀입니다.

"누구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인가? 너희들 자신인가? 이제 허구적 논리와 외교적 수사로 가득찬 WTO협상은 그만 하라. WTO가 농업을 죽인다. 농업을 WTO에서 제외시켜라."

"나는 지금, 인류가 극소수 강대국과 그 대리인인 세계무역기구(WTO)와 이를 돕는 국제기금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로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인류적이고 농민 말살적인,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세계화의 위험에 빠져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즉시 이를 중단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허구적인 신자유주의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농업을 말살시킬 것이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비만에 걸릴 만큼 먹을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8억의 인구가 굶주린다고 합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 한 번 이경해 열사가 남긴 말들을 되새겨 보아야겠습니다. 영상 마지막 자막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더군요.

"우리에게 부족한 건 힘이 아니라 용기이다. 세상의 질서는 사람들이 세우고 바꾸는 것이다."

40대 농사꾼의 삶

주제 강연 시간에 앞으로 나온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자신이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를 얘기했습니다. 전남 곡성에서 16년째 농사를 짓는다는데 사는 곳에서 가장 짧은 농사 경력이라고 합니다.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내가 가장 나이 어린 막내농사꾼인데 농사를 처음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막내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농사지으러 왔던 일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다 가고 없다. 농촌인구가 고령화되었다. 젊은 층은 다 떠나가 버렸다. 10년 전엔 내 또래가 있었는데 3, 40대가 되어가면서 떠나가더라. 농가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데 70% 정도가 60대 이상이다. 일년이면 30대 인구는 15% 줄고, 60대 이상 인구는 4, 5%씩 증가한다. 그야말로 80대 농사꾼이 경운기를 몰 상황이다. 우리 옆에 면이 전에는 4, 5천 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1500명으로 줄었다. 출생신고가 없는 지 3년째이다."

3, 40대 농민들이 살던 터전을 버리고, 하던 일을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아이들 교육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노력한 만큼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지요.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젊은 농민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겠지요. 누구든 처음엔 희망을 갖고 시작했을 텐데 그 희망은 좀처럼 자라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의 농업정책 아래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농대 졸업하고 농업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바로 농사지었다. 농촌후계자가 되면서 자금 받아서 정부의 꼬드김에 하우스 농사를 지었다. 하우스 농사짓기 시작하면서 품이 많이 드는 고추, 깨 농사를 포기했다. 쌀농사와 하우스를 했는데 지금은 하우스만 한다. 한 작목만 짓게 되면 나머지는 외부에서 사다 먹게 된다. 넓게 보면 나라 전체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단작화 되면 돈이 되는 농사를 쫓게 된다. 안 해 본 게 없다. 다품목으로 여러 개 짓던 걸 돈이 되는 걸로 집중하게 되는데 수많은 농민이 이렇게 하다보니 과잉생산, 가격폭락, 이농이라는 문제가 계속 생겨난다. 도시에서는 1997년, 1998년에 IMF를 겪었다면 농촌은 2000년, 2001년에 IMF를 겪었는데, 농가부채가 한 바퀴 돌았다는 말, 두 바퀴 돌았다는 말이 있다. 한 바퀴는 1억을 뜻한다. 3, 40대는 보통 한 바퀴 반 돈다."

'한 바퀴'라는 말에 참석한 사람 중간 중간에서 헛헛 웃음이 나옵니다. 그 말을 알아듣는 지역 농민회 분들이셨죠. 농가부채 규모가 갈수록 커져간다고 합니다. 2002년에 농가부채로 4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야반도주는 흔한 일이고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낙농인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다가 빚을 20억 졌다. 그 사람이 야반도주하자 연쇄로 다섯 농가가 무너졌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면 하나가 휩쓸리게 된다. 이제는 누구한테 보증 서 달라고도 못한다. 농민이라면 남의 연대 보증 빚을 천만 원 이상 갚아준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빚이 늘어나는 구조 속에서 우리 나라 농민들은 살아갑니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면 어김없이 망하는 지름길을 가게 되고 맙니다.

"애들이 지금 초등학교 3, 4학년인데 학원에 한번도 안 보냈다. 저희들도 보내달라고 안 하는데 좀 더 커서 보내달라고 하면 고민이 될 텐데, 그 고민을 이기면 여기에 남고 못 이기면 뜨게 되는 것이다."

아이 울음소리도 우렁차게 들리고, 출생신고 하러 가는 발걸음도 늘고, 마을 빈터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고…… 너무 큰 꿈일까요?

"농사를 지으면서 나름대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들이 언론에 조명되는 것은 그만큼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의 무한한 잠재력 하나만으로도 투자가 되어야 한다. 농민이 이농을 해서 도시로 가게 되어 농촌이 파괴되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든다. 농민이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 때 우리 사회가 균형 발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웅두 전농 정책위원장은 끝으로 문학 예술인들의 역할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농촌에서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농업의 소중함을 느끼는데 서울 와서 보니 '사다 먹으면 되지, 그렇게 어려운 농사를 지어서 뭐하냐'라는 궤변을 늘어놓더라. 국민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쌀개방 반대 서명을 받을 때도 보면 60, 70대 분들은 서명을 해 주는데 50대 이하로는 잘 안 해준다. 그런 과정에서 문학인, 언론인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싶다. 도시 사람들에게 투박한 목소리로 얘기하면 안 먹힌다.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떤 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학 예술인들이 찾아왔다. 농촌의 모습을 잘 그려내면 내년의 모습은 또 다르지 않겠는가. 획기적인 계기를 만드는 데에 문학예술인들의 힘이 필요하다."

잊을 수 없는 깊은 한숨

'2004년 전국농민문학의 밤 만남의 자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지역별로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잊지 않으려고 쪽지에 적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한 가지만 꺼내볼게요. 다른 나라에서 가업을 잇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단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우리 나라에서는 농사짓는 부모가 자녀에게 대를 물려 농사짓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 식당을 하는 부모는 그걸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든 다른 일을 하게 하려고 애쓰지요.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갔을 때 부모님은 한동안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전남 화순 농민회 회원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몇 달 전 라디오 방송에서 지역 농민회 분과 전화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자 말을 못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한숨이었습니다.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한숨이었습니다. 백 마디 말이, 천 마디 말이 모두 그 한숨 속에 담겨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그 안에 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나한텐 그 한숨의 기억이 오래갈 것 같습니다. 그 한숨을 공감하는 일에서부터 시작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의 취지글에서 한 부분 옮겨왔습니다.

"생산가치가 떨어지는 인간들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되어도 좋다는 이 냉정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윤리에 맞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회적 연대감의 회복이 밥 먹여 주냐는 이 쓸쓸한 패배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겠습니다.
이런 저런 마음으로 21세기 인터넷 시대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구닥다리 같은 일 하나를 벌렸습니다. 이름하여 창작농활입니다. 전국농민문학의 밤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들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려면 농부의 손이 수백 번은 닿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땅을 느끼고, 그간 그 땅을 일궈 우리들의 먹이를 마련해 온 농민들의 삶을 되새겨주고, 어루만져주고, 그들의 어려운 민족농업 사수 싸움에 따뜻한 말 한 마디, 글 한 자락 보태주는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4 전국농민문학의 밤 추진위원회 단장 송경동 '환상의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인간이 되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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