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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방울덩굴

들꽃 이야기 (23)


몇 해 전, 귀농을 한 이가 사는 집엘 갔다가 그 집 마루에 걸린 이상하게 생긴 열매를 보았다. 꼭 낙하산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처럼 생긴 모양이 어떤 식물의 열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잎이 진 초겨울 집 가까운 둘레 여기저기엔 그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려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해가 더 지난 뒤에야 그 열매가 쥐방울덩굴 열매라는 걸 알았다.

시골에서도 그 열매를 알고 있는 이를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 풀일랑은 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기는 농약 치고 제초제 치고 때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게 농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씨로 삼을 종자까지 다 팔아 넘기고 유전자 조작된 씨를 뿌리게 되었다. 그 유전자 조작된 감자고 옥수수는 이미 감자도 옥수수도 아니다. 엄연히 저작권 등록된 살충제이다. 살충제를 재배하는 게 오늘의 농사다.
그래도 요즘은 '웰빙' 바람을 타고 유기농 상품이 인기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믿을 수 없는 게 많다. 자칫하면 농사꾼들을 고급 사기꾼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사회가 바뀌지 않고 삶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단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웰빙'과 그것에 편승해서 비싸게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유기농은 역시 대안이 아니다.

유기농을 하시는 어느 농사꾼 얘기에 가슴 아프다.
"산업화 자체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생활 방식과 비민주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존재가 아니냐는 거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노동 운동의 한계라는 것은 엄연한 것이 아닙니까?"<녹색평론 2004년 9-10월호>

쌀 개방을 눈앞에 두고 반세계화 투쟁을 함께 해야 할 노동자에 대해서 이렇게 황당하게 생각한다면 노동자 농민의 올바른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산밭 언저리나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해진 들녘 어디쯤에선 이름처럼 재미있게 생긴 쥐방울덩굴 열매가 늦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텐데, 이젠 농사꾼이라는 이조차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쥐방울덩굴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들에겐 쥐방울덩굴은 한없이 소중한 것이다. 꼬리명주나비, 사향제비나비 따위는 쥐방울덩굴을 먹고 자란다. 그들에겐 이게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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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쥐방울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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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성호

    노힘 기관지에서 실수한 것이 여기서도 그대로 왔네요.
    180도 회전시켜 주세요

  • 허성호

    노힘 기관지에서 실수한 것이 여기서도 그대로 왔네요.
    180도 회전시켜 주세요

  • 미디어참세상

    그림이 뒤집어 진 거였군요.
    왜 집이 거꾸로 서있나 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미디어참세상

    그림이 뒤집어 진 거였군요.
    왜 집이 거꾸로 서있나 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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