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박영자의 북쪽 이야기](1) - 진보진영은 왜 ‘북한’을 알아야 하는가?

20세기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승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아직도 20세기 ‘역사와 공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이념과 현실 간 갈등’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놓여있으며, 더욱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며 ‘정치적 민주주의의 추진과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폭력이 공존하는 불협화음’이 진보진영의 진로를 고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진영을 혼란스럽게 하는 노무현 정권의 불협화음에 근저에는 경제문제로 외현화된 20세기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 중요하게는 북한과 통일문제가 놓여 있다.

한편 노동에 대한 정당한 권리 확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을 중시하며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유지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는 진보진영 내 좌파는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급격히 변화는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그리고 북한과 통일문제에 무기력하다. 물론 더욱 세련되어지는 노동자계급의 분할 통치전략과 아직도 무수히 벌어지는 노동착취와 사회적 약자의 문제들이 진보진영 내 좌파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더 깊숙이 들어가 현재 진보진영 내 좌파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이들의 운동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①과거 소위 주체사상 그룹과의 갈등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북한사회를 이성적으로는 사고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예외국가’로 치부하거나 ②맑스와 레닌의 전통교리를 벗어났다며 북한사회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지 않았고, ③이데올로기일 뿐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통일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운동을 방해하는 해악적인 전술로 사고하고 비판하면서 북한과 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제도권과 소위 주체사상 그룹의 전유물로 넘겨준 것이다.

그런데 ①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동유럽 사회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체제전환을 추진하였으며, ②중국이 시장사회주의라는 논리로 자본주의의 운영메카니즘을 급속도로 흡수하여 실업과 빈부격차 문제 등을 야기하면서 고성장하고 있고, ③북한의 경제위기와 한반도 통일의 문제가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남북경협과 교류로 현실화되며, ④탈북자들이 급속히 증대되어 남한의 하층 노동자가 되고 있는 상황, 더 중요하게는 ⑤자본주의의 병폐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끝없는 경쟁체계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좌파 진보진영은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문제들, 그리고 한반도의 국제적 긴장과 정치경제적 문제에 주요 변수가 되어 노동자 일상의 의식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북한과 통일문제를 외면할 것인가?

필자는 좌파 진보진영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을 조건짓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 삶과 운동의 동력을 풍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일의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와 각종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고민할 것을 제기하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경쟁력 강화와 강대국 건설이라는 논리에 의해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남북 경제협력과 다양한 통일의 흐름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스스로 사회주의를 포기한 20세기 사회주의국가들이 급속도로 자본주의화 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문제와 갈등들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나부끼는 자본의 논리가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병폐를 해결해주거나 이전보다 더 나은 ‘인민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가 다시 20세기 사회주의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상대적 수혜자였던 사회적 약자와 노년층,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수는 회귀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 다수는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이며 생활수준의 향상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주객관적 상황에서 남한사회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좌파진영은 더 이상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문제와 북한문제를 외면하거나 방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냉전시대 남북한 정치체제는 고정화된 이념으로 상대방과 대결하였다. 북한에게 남한은 자본주의적 착취 속에서 계급갈등에 신음하며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고통받는 ‘이중종속’ 국가였으며, 남한에게 북한은 1인 독재의 전체주의 공산체제하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기능이 마비된 ‘폐쇄국가’였다. 북한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남한사회를 해방시켜 사회주의체제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정치의 핵심목표로 삼았으며, 남한은 1인 독재와 전체주의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북한사회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에 굴복시켜 통일하는 것을 정치의 핵심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남한에 김대중 정권과 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보의 담론’이 현실정치로 제기되기 시작하자, 그동안 굳건하게 침묵을 지켜도 기득권이 보장되던 보수세력이 ‘보수의 담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진영이 보여주었던 절실함과 응집력을 다양한 집회와 가두시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민주화진영이 총결집하여 ‘역사의 유물’로 박물관에 보관하려 하였던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지 못하였으며, 수많은 민주주의의 부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세력은 ‘북이라는 적’이 여전히 건재한데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노무현 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이들은 단지 정치권의 일부만이 아니다. 해방 60년의 역사 속에서 반공을 내면화했던 대중들이 이러한 불안을 표출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1994년 김일성사망, 그 이후 연속된 자연재해와 생산력약화 문제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으며 이들은 생존을 위해 시장을 형성하고 탈북을 감행하기도 한다. 북한정권은 위기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보루로 군대와 군인정신을 선전하며 체제를 재정비하고 있다. 소위 ‘선군정치’ 즉 군을 앞세워 국가안정을 이루고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여 농민시장이나 암시장 등 과거 불법적인 시장경제를 합법화하였다. 북한주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실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책이다. 1990년대 중반이후 탈북자가 증대하였으나 각종 탈북자조사와 증언을 통해 볼 때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사회에서 살기를 원하고, 김일성에 대한 향수와 김정일에 대한 충성, 그리고 강성대국 건설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말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과 동구사회주의의 몰락, 그리고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대인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탈사회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병폐와 갈등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들고 전 세계를 재조정하려는 미국의 절대패권에 의한 갈등과 이에 대한 저항흐름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러한 내외적 상황에서 과연 21세기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펄럭이는 20세기 자본주의체제의 승리로 종결될 것인가?

또한 북한의 핵문제가 사실 여부의 상황도 확인되지 않은 채 연일 회자되어 국제사회를 뜨겁게 하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경제문제와 미국의 패권이라는 정치경제적 배경 속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는 남북한 상황,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전염된 듯한 중국과 일본의 패권적 국가주의가 한반도의 사회구성원에게 다시 한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폐쇄적인 결집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좌파 진보진영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이러한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 우리 주변의 노동자와 일상인들과의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가 가능하겠는가?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거창한 이론이나 수많은 문제의식을 쏟아 부으려하지는 않는다. 다만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내가 알고 고민하는 수많은 현실과 상상을 ‘북한’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말

박영자 님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북한의 생산관리제도와 노동자계급’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북한의 근대화 과정과 여성의 역할(1045-80년대) : 공장과 가정의 정치사회와 여성노동을 중심으로"를 썼다. 북한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의 정치경제와 정치사회를 연구했고, 20세기 사회주의의 공장과 노동자,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사회주의 정당과 대중조직과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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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oScrum

    다음 글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 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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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kebau

    저도 기대되네요. 좋은 글 부탁합니다.

  • likeb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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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oidh202

    요로쿠럼 찾아 읽었습니다. 좋은글이네요. 기대됩니다. 앞으로 ..

  • choidh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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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섭

    잘 지내고 계십니까? 덕분에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꾸준히 기대해 보겠습니다

  • 한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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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재

    십년만에 이곳에서 뵙게 되는군요....새벽의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한가닥이나마 고민에 끈을 만들어주는군요..좀더 풍부한 고민이 이루어지도록 많은글 올려주세요.////

  • 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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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

    뜻은 훌륭합니다
    좌파의 신선한 북한통일논의를 이끌어 주세요

  • 레포트

    뜻은 훌륭합니다
    좌파의 신선한 북한통일논의를 이끌어 주세요

  • 과객

    좌파(아마도 진보중에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부류)가 대안제시를 한 적이 있나?
    좌파의 장기는 비주류적 소란 피우기 아닌가
    변혁을 책임지거나
    세상을 인식하기에는 눈이 너무 좁지

    계급투쟁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세상 열리겠지....라며
    비전도 없이 살아가는 한국의 계급좌파들

    그 실망을 치유해줄 글을 기대해보져

  • 과객

    좌파(아마도 진보중에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부류)가 대안제시를 한 적이 있나?
    좌파의 장기는 비주류적 소란 피우기 아닌가
    변혁을 책임지거나
    세상을 인식하기에는 눈이 너무 좁지

    계급투쟁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세상 열리겠지....라며
    비전도 없이 살아가는 한국의 계급좌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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