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L벨트와 개혁세력의 비리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개혁세력의 부정, 부패, 비리

검찰은 2일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투자 의혹' 사건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광재 의원은 내사중지 결정을, 허문석 씨는 기소중지 결정을, 이기명 씨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유전 사업에 관여한 김세호 전 차관과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 왕영용 본부장,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

행담도 사건과 관련, 감사원은 1일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소환, 개발 사업 간여 경위, 사업협력양해각서 체결 배경, 도로공사와 행담도 개발 간의 분쟁에 개입한 이유, 문정인의 아들이 취업하게 된 과정 등을 캐물었다.

한나라당은 현재 국정 상황을 총체적 부실로 보고, 특검법안 발의와, 감사원 결과를 지켜본 후 국정조사와 특검법 도입 여부 검토 등 대여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이번 사건을 인적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거나, 청와대의 위원회 중심의 운영에 불만을 터뜨리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L벨트로 회자되는 서남해안 개발은 알려진 대로 '동북아 관광허브' 구상에 따른 것이다. 노무현정권이 집권과 함께 제시한 동북아경제중심 추진을 배경으로 한 동북아정책을 배경에 두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노동유연화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의 완성과, 공세적인 개방통상정책으로 초국적자본의 활동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동북아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미 신자유주의 투자3법과 기업도시법,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등을 통해 투자 여건을 구비해놓은 데다, 병원의 영리법인 허용, 교육 개방 등으로 속도를 더하고 있다.

L벨트는 개발 이익을 쫓는 자본의 욕구와 경쟁과 효율 만능의 신자유주의 구상이 맞물린 개발프로젝트로, 규모에서부터 여타의 국책사업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정부는 이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가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단 한 차례의 공식적인 보고도 제출한 바 없었다. '국가적 명운이 걸린 국책사업'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자본과 외자에 투자 여건을 완화하는 것에 온 힘을 실어왔다. L벨트는 지자체의 개발 부추기기,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 등 동북아지역에서 준비중인 행사를 대비한다는 논리, 제조업 다음 투자처로 관광시장을 꼽을 수밖에 없다는 자본의 투자와 생존 논리 따위가 맞물려 추진되어왔다.

인천에서 광양까지 서남해는 2000여 개의 섬과 갯벌, 자연풍경이 어울린 자연의 보고이다. 그러나 서해안고속도로가 들어서고 경제자유구역, 시화지구 개발, 새만금 개발, S프로젝트(무안-영암-해남) 등 개발이 진행중이거나 예정된 곳의 면적이 무려 6억3천4백만 평에 달한다. 해남ㆍ영암 일대 레저복합도시 건설에만 36조 원 규모가, 행담도 4,000억 원, 새만금 1조3천억 원, 군산국제해양관광단지 1조7천억 원, 그리고 S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L벨트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돈의 규모는 모두 5-6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행담도에서 확인되었듯이 예산의 상당한 부분은 외자 유치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자본과 정부는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추진된다면 관광허브로서 뿐만이 아니라 서비스 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낳게 되고, 물류산업단지의 조성으로 중국 등 대륙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여기서 불거진, 유전투자와 서남해안 개발에 연루된 비리 사건은 오늘날 한국 사회 지배세력들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두 사건에 연루된 개개인의 도덕성을 문제삼거나, 권력형 비리냐 아니냐를 따지거나, 정치를 모르는 정치아마추어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질책하거나, 대통령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위상을 재론하거나, 인적 쇄신을 말하는 것 따위는 모두 사태의 본질에서 비껴있는 이야기다. 비리가 구조적인 한 권력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고,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들은 아마추어 정치인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추진해온 매우 정치적이고 전문적인 개혁세력이고, 위원회든 부처든 신자유주의 정치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는 데서 차이가 없으며,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 없이 사람을 갈아치는 것으로 문제의 실마리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비리 문제가 반공-개발세력과 싸우고, 부정과 부패와 싸우고, 개혁과 민주주의를 완수하겠다는 개혁세력의 핵심부에서 불거졌다는 데 있다. 청와대가 아무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무마하려 해도 헝크러진 실타레가 쉽사리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부정, 부패, 비리 의혹은 우발적으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폭로되고 있고, 개혁세력의 반개혁적인 행위, 민주화세력의 반민주적 행위가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L벨트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시장에 뛰어든 자본의 선택과 "권력이 시장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지배세력의 공모가 부른 암울한 기획이며, 이 공모가 중단되지 않는 한 비리와 부패의 재생산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섬, 갯벌, 해변이 골프장, 호텔, 실버타운, 외국병원, 카지노, 해양리조트에 의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고 있다. 파헤쳐 뒤덮이는 것은 환경만이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이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도 파헤쳐지고, 지난 20년간 부정, 부패, 비리와 싸워온 그들, 그 개혁세력에게 걸었던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파헤쳐 뒤덮이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참세상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