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615를 넘어

미 제국주의 공격 본성과 초국적자본의 반인민성 깨뜨려야

남측 민간대표단은 14일 오전 9시 5분 경 전세기 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 10시 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남측 민간대표단 300여 명은 북의 환영 속에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에 들어갔다. 민간대표단에는 백낙청 남측준비위 상임대표를 단장으로 이수호, 이용득 양대노총 위원장, 문경식 전농의장, 그리고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와 송효원 한총련 의장 등도 포함되어 있다. '부시 메시지'를 들고 방북한 남측 정부대표단 40명도 한나절 후에 북에 도착했다.

한나라당 의원부터 진보단체 대표까지 망라된 민간대표단과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내건 남측 정부대표단이 방북을 하였다. 그런데 이 방북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는 아무 데서도 나오지 않았다. 이 자체만으로도 615 선언 5주년,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낳은 한반도 정세의 진전된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분단 반백년 과정에서 615가 갖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폄하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규모 면에서도 크게 발전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14차례 장관급회담을 포함, 총 124차례 당국 간 각급 회담이 열렸다. 이산가족도 2000년 8월 제1차 상봉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에 이르기까지 10차례 상봉 행사가 이루어졌고, 9,977명이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생사를 확인한 숫자도 2만1679명에 이른다.

1999년 3억3300만 달러였던 남북교역액은 지난해 6억9700만 달러로 늘었다고 전해진다. 2004년 남북 교역규모는 북의 대외 무역액의 19.6%를 차지, 39%를 차지한 중국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큰 교역상대가 됐다. 북이 90년대 이후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오다 99년 처음으로 6.2%의 고성장을 달성했고, 이후 1~3%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세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98년 정주영의 '소떼 방북'을 시작으로 금강산관광 등 각종 남북경협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나타난 변화로 평가된다. 615 공동선언과 함께 남북교역과 국내외 기업들의 북한투자가 확대되면서 지난해까지 한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가 경협이 갖는 효과를 긍정적으로 알려주는 보고들이다.

국정홍보처가 관리하는 '국정브리핑'에서는 615를 하루 앞둔 14일 '남북 3대 경협 추진 현황'을 특집기사로 내보냈다. 개성공단 조성, 금강산 관광사업, 철도ㆍ도로 연결 등 남북 3대 경협 추진 현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615 5주년을 맞아 남북경협의 성과를 부각하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통해 경협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기까지 남북 교류와 협력,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당사자와 민간단체가 애쓴 노고 역시 애써 깎아 내리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남북 경협에 대한 자본의 발언으로 넘어가면 사태가 다르다. 남북 경협에 대해 자본의 태도가 매우 호의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최근 "한반도 발전을 위해서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경협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제 남북경협은 개성과 금강산을 넘어서야 하며 특히 정치논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8일 `원조와 차관을 통한 타 국가경제 개입의 사례-한국의 대북경제정책을 위한 시사점 연구보고서'를 내고 "사전 지침이 완비되지 못한 채 대북 원조가 단순히 남북관계의 유지, 핵 포기 등 정치적 대가성의 성격만 갖게 될 경우 북한측의 공여자원 활용에 대한 우리 정부의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향후 원활한 남북경협 활동 기반을 구축하려면 시장자유 수준 등 투자하기 좋은 환경으로 유도하는 원조조건의 구비가 대북지원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14일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은 남북한 경제 통합 과정의 초보적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남북간 경제교류는 내국간 거래로 무관세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경제지역 단계의 초기 수준이라고 볼 수 있으며,개성공단의 경우는 제한적이지만 공동시장 단계로의 진입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가 사실이라면 북은 이미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로의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동안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은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긴장감의 크기 여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추진되어왔다. 월 6만 원이라는 싼 인건비의 유혹과 정부의 대북 투자 지원을 등에 업고 1500개에 달하는 기업이 대북 투자를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초국적자본의 북 시장 질서 재편 구상이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는 바, 개성산 냄비 판매와 김태희의 패션쇼 소식이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경협 확대와 대북투자에 골몰한 자본에 있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장이 결코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모름지기 북핵을 둘러싼 정치적, 군사적 긴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물리적' 해결을 놓고 북과 미국 간의 대결 구도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미국은 대중 봉쇄와 대북 무력화를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MD 구상과 맞물린 동북아기동군의 편성을 완료한 상황이고, 이러저러한 50** 작계를 대북 압박 전술 카드로 삼아 쥐락펴락 하는 놀음도 계속할 것이다. 북은 미국과 벼랑전술을 펼치면서까지 '주권국가'를 지키려 안간힘을 쓸 것이고, 따라서 이 대결 국면이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거론되는 한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어느 누구도 북핵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북핵을 이야기 할 때, 북이 '핵을 보유해도 되는가'라는 핵(반핵) 자체의 문제도 응당 짚어야 하지만, 미 제국주의의 대북 적대정책과 초국적자본의 동북아 질서 재편과 맞물려 형성된 정세적 산물로서의 북핵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핵에는 비핵화 라는 문제와 미 제국주의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따른 정세의 산물이라는 모순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세계적 수준에서 냉전 질서는 해체되었지만, 한반도 정세의 화해 무드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특히 악의 축 발언과 함께 등장한 부시 정권은 시종일관 적대적 대북정책을 펼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을 확대해왔다, 여기에 중-북-남-일로 이어지는 동북아 시장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초국적자본의 공세가 맞물려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과 긴장이 한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세의 정점에, 북의 방어적 대립의 결과로 북핵 문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북핵 때문에 한반도 긴장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 재편에 공격적으로 개입하는 미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의 공세 때문에 한반도 긴장이 확대 재생산 되었고, 다시 북핵이 한반도 긴장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경로이자 수단인 것처럼 거론하는 것도 불편부당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회담이라는 평화적 외피를 두르고 대북 압박 수단으로 6자회담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6자회담이 미국의 이해에 부합되지 않으면 향후 언제든지 용도폐기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6자회담이 아무리 진전된다 하더라도 한반도 긴장 해소의 근본적 경로가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한반도 평화, 남북 교류와 협력, 그리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 남북 사회구성원 그 누구라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사회 구성원이 직접 동참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협이 아니라 지금처럼 자본의 전략 구상으로서의 경협이 강행된다면, 남북 사회 구성원이 남북 당국이 열어주는 교류와 협력 프로그램에 그저 동원 되고 말 뿐이라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 실현의 구호 남말에서 한 걸음 나아갈 때다. 남북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대중 봉쇄와 대북 압력을 중단하지 않는 미 제국주의의 공격 본성과 동북아 단일 시장 재편에 나선 초국적자본의 반인민성을 깨뜨리는 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615남북정상회담 5주년, 이제는 기념에서 멈추지 말고, 남북 사회 구성원 모두가 '615를 넘어' 서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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