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의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각주1) 그 내용에서도 과거의 한의학과는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모습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한의학의 근대 서양의학과의 결합 내지 근대 서양의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학문의 대상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특히 한의학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며 또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변화가 과거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떻게 다른가를 규명하지 않으면 오늘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 나아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전근대(각주2) 사회 속에서의 학문 체계로서의 한의학을 이해할 필요가 생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과거, 정확하게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규명함으로써 한의학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근대의 한의학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의학의 내포와 외연을 확정짓는 것은 한의학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문헌이나 제도에 의해 전승되어 온 이론이나 임상이 사실은 전근대 사회의 일부분에 한정되어 이해되고 실천되었다는 점, 따라서 대다수 민중의 삶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점, 또한 대다수 민중의 의료를 담당한 계층과 그러한 임상 실천의 내용, 이론적 구성은 기존의 한의학과 일정한 층차를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전근대 한의학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 짓는 잣대는 무엇인지, 그러한 잣대의 차이에 따른 근대와 전근대의 이해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또한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황제내경 이전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이론적 경향과 분파의 성립은 무엇을 한의학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를 어렵게 한다.
위의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해 본 논문에서는 나름대로의 입장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첫째는 한의학이 전근대 사회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한의학은 당대의 사회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리고 가장 선진적인 이론과 실천 체계라는 점에서 다른 맹아단계 혹은 기술 수준에서의 의료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한의학은 자신의 고도한 이론과 임상 체계로, 당시 사회에서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여러 의료 체계 혹은 기술 체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역사에서 양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비록 數的으로 적지만 그것이 미래의 변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그 역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의학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양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던 것이 다음 시대에 소멸되거나 아니면 다른 체계로 흡수되어 버렸다면 그 존재 자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로서의 의미는 갖지만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서는 그만큼 그 의미가 축소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의학 체계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소위 민중 의료의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이다. 소위 민중 의료는 부분적으로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론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결국 한의학이라고 하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융해되어 가거나 아니면 자신의 전승 체계를 갖지 못함으로써 소멸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근 대체의학 혹은 대안의학(심지어는 보완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행해지던 민중 의료의 내용이 근대 서양의학의 틀 속에 융해되어 일부는 소멸되어 갔지만 일부는 다시 부활하는 현실과 연관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로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잣대에 대해서 본 논문에서는 사회경제사적인 관점을 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소유관계의 변화와 거기에 따르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문화 양태의 차이를 잣대로 삼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에서 언급할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의학사에 대한 전반적인 논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할 작업이지만 일단 본 논문에서는 황제내경과 상한론 그리고 그 이후의 임상과 이론적 발전의 산물인 금원사대가, 이를 다시 종합한 동의보감에서 완성된 한의학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중국의 경우, 금원사대가를 종합한 시도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으며(각주3) 명말청초에 도입된 근대 서양의학의 영향과 그에 따른 다양한 변모라는 사정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의 한의학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며, 일본의 경우에는 금원사대가로부터의 일탈(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동의보감이 황제내경 혹은 금원사대가의 이론과 임상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봉건적 사회 구조에 가장 적합한 의서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동의보감 자체도 매우 방대한 체계를 갖고 있으며 또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편차를 갖는 이론과 임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한 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동의보감의 이해를 위한 전제로, 동아시아(각주4)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특징을 알아보려고 한다. 이는 동의보감이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으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의 일반적인 성격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동의보감에 접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의학만이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근대를 근대의 관점에서 보는 오늘날의 무반성적이며 비역사적인 관점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반성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철학계에서조차 이런 태도가 보인다.(각주5) 따라서 동아시아 전근대 의학에 대한 본고의 접근은 그러한 학문 풍토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판이 될 것이다.
전근대 시대에 대한 비역사적 접근은 특히 한의학계에서는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황제내경을 황제가 직접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거나(의학의 聖人 창조설)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체계로 간주하는 연구자 혹은 임상가가 적지 않은 것이 한의계의 현실이다. 전근대의 한의학은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임상에서의 변화나 발전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이론과 처방을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한의학계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백안시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의계에서 이러한 비역사적 접근이 가능한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의 몸이라고 하는 조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점과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비해 상당히 오래 전에 상대적으로 완결된 이론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 한의학 이론의 유기적 성격으로 질병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전근대와는 다르며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 인식, 그리고 총체적으로 문화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음양오행을 믿지 않으며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실적인 자연에 대한 태도는 정복과 약탈 이상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연에 대해 전근대적인 접근을 한다는 것은 경쟁에서 뒤지는 일이며 경쟁에서 뒤진다면 더 이상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의학이 실현되는 사회구조가 바뀌었고 또 명백한 현실로 근대 서양의학이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한의학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크게 임상적 측면에 대한 연구와 실험실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일부 의사학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작은 흐름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각주6) 따라서 기존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동의보감이 탄생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종적 연관(역사성)과 그것이 실현되는 당대의 횡적 구조(사회성과 철학성)를 도외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근대에 형성되고 사용되었던 개념들을 근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아니면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함으로써(비역사성) 동의보감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역사성과 철학성을 담보한 연구가 한의학, 좁게는 동의보감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다.(각주7) 그러나 이런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특히 본고에서 다루려고 하는 전근대와 근대라는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고를 통하여 밝혀지겠지만, 전근대를 전근대로 이해하지 않는 관점은 전근대 혹은 근대를 초역사적인 것으로 설정하려는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동의보감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비역사적이며 비철학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文史哲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공자는 시경을 정리했으며 주희의 글을 집대성한 朱熹集은 詩를 비롯한 文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은 근대적 학문 체계 속에서 文은 문학으로, 史는 史學으로, 哲은 철학으로 해체되었다. 그럼으로써 전근대를 전근대로 볼 수 있는 틀을 벗어나버렸다.(각주8)
따라서 본고에서는 동의보감이라고 하는 의학 분야를 다루지만, 그것을 전근대를 역사로서 볼 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럴 때에만이 전근대 의학으로서의 동의보감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누구나 동의보감을 보아왔고 누구나 동의보감에 의거해서 임상실천을 해 왔지만 그것은 근대의 관점에서 본 동의보감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통한 나름대로의 동의보감일 뿐, 정작 동의보감을 동의보감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 먼저 과거에 대한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동아시아의 전근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근대 의학의 특징과 전근대 의학의 대표적인 예로서 동의보감의 역사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려 한다. 이를 동의보감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목차와 동의보감의 사상적 이론적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동의보감 제일권 「내경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각주]
1 한의학은 漢醫學, 韓醫學, 동양의학, 중국의학, 중의학, 한방, 한방의학, 전통의학, 민족의학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냥 ‘醫學’이었다. ‘漢醫學’은 거란족의 국가인 遼에서 자신들의 國醫인 契丹醫와 구분하여 漢族의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漢醫學’ 혹은 ‘中原醫’라고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던 것이 제국주의와 함께 서양의 문물, 특히 근대 서양의학이 들어오고 식민지화 과정과 함께 그것이 헤게모니를 장악함에 따라 ‘西醫’, ‘洋醫’ 등으로 불리던 근대 서양의학은 그냥 ‘의학’으로 불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기존의 의학은 ‘漢醫學’으로 불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한의학 말살정책을 편 명치유신의 정책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의학은 단순한 기술에 불과한 ‘漢方’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므로 ‘漢方’이라는 말에는 기존의 의학을 멸시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2 이 글에서 사용되는 ‘전근대’는 시간적인 구분이 아니라 근대 이전, 곧 자본주의 이전을 말한다.
3 이러한 종합은 중국의 경우, 中醫學에서 최초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중의학으로 통칭되는 의학체계는 사실상 과거의 전근대적 의학과 일정하게 거리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학’의 내용과 그에 대한 개념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충열, 「중국의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동의생리병리학회지 제18권 1호) 참조.
4 본고에서는 동아시아를, 지역적으로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지만 여기에는 베트남이 포함되며, 몽골과 같이 일정하게 역사 문화적인 공유가 있었거나 가능한 지역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고자 한다. 이는 사실상 지역보다는 역사 문화적 의미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한의학이 전근대는 물론 근대에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지역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5 이는 소위 ‘비교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유가나 도가, 불가 등의 이론을 근대 서양철학의 개념과 분석틀에 맞추어 해체하는 일부 철학계의 저술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6 한의학계에서는 임상이나 실험을 하지 않고 작성되는 논문을 소위 ‘문헌논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醫學史나 醫史學이 아니라 ‘醫事學’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처럼 한의학계에서 이루어진 성과는 대부분 역사나 철학적 접근이 배제된 연구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양적으로 매우 적었다.
7 三木榮과 김두종 이후 근대적 학문방법에 의한 동의보감에 대한 접근은 허정, 「동의보감의 보건사적 연구」 1(한국보건사학회지 제2권 제1호, 1992)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김호의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일지사, 2000), 신동원의 조선사람 허준(한겨레신문사, 2001) 등에서 역사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철학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김낙필의 「동의보감의 도교적 성격」(과학과 철학 제2집, 1991)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 논문은 본격적인 동의보감의 철학을 분석한 것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문헌에 기초한 동의보감의 도교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후 박찬국 권학철, 「동의보감을 통한 허준의 의학사상에 대한 고찰」(대한원전의사학회지, 대한한의학원전학회, 1992년 6권), 정우열의 「동의보감과 허준의 의학사상」(한국과학사학회지, 한국과학사학회, 1991년 13권 2호. 「동의보감과 허준의 의학 도가사상」 한국도교사상연구회 편, 한국도교의 현대적 조명, 아세아문화사, 1992) 등이 나온다. 동의보감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분석의 시도는 성호준에 의해 여러 논문이 나왔다.
성호준, 「동의보감의 形神合一的 인간관」(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회, 2000년 22권)
성호준, 「동의보감 內景篇의 도교사상 고찰」(대한원전의사학회지, 대한한의학원전학회, 2000년 13권 1호)
성호준, 「동의보감의 心에 관한 이해」(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회, 2001년 27권)
성호준, 「동의보감의 ‘性’ ‘情’에 관한 유가적 이해」(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04년 14권)
대부분의 연구가 동의보감의 도교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데 비해 성호준의 연구는 동의보감을 유교적으로 해석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동의보감이 실현되는 사회구조나 그 이데올로기와 동의보감의 그것과의 층차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동의보감의 ‘性’이나 ‘心’에 대한 이해를 동의보감 밖의 조선이라는 사회 및 유교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해석하고 있다.
8 한의학계에서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상의학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의수세보원의 본문 첫 단어인 ‘天機’는 15세기 이후 文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으며 특히 18, 19세기를 통하여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주로 문학계에서만 논의되고 철학과 특히 의학에서는 완전히 무시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내경을 비롯한 다른 문헌과 마찬가지로 사실 동의수세보원은 당시에 사용되던 평범한 文을 갖고 거기에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첨가한 것뿐이다. 다만 우리가 그 역사적 철학적 배경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뿐이다. 문사철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단순한 학적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전근대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필수불가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