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속에 피어난 서른 세송이 꽃

[두 책방 아저씨](4) -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읽고

지금부터 30년 전 쯤 농촌을 떠나 몸뚱이 하나로 서울에 와서 죽음 같은 노동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겨우 15살 앞뒤 나이에 기름밥을 먹으며 돈을 벌겠다고 일거리를 찾아온 삶들이다.

요즘 어떤 이들은 박정희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혔지만 이 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경제를 이루어 놓았기에 칭찬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여름 한 낮 39도 넘는 다락방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목숨 걸고 일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잘살고 있다고. 고맙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제 그들도 잘살고 있지 않느냐고. 정말 그럴까.

지금 지구에는 단지 물을 못 먹어 죽는 아이들이 하루에 5천 명이 넘고 배고픔과 어른들이 벌인 싸움, 아픔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까지 더하면 하루에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어 간다. 세계 곳곳에서 박정희처럼 경제 성장과 국가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른들 돈 욕심에 맑고 밝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쓰러져 간다.

이 책을 쓴 33명의 사람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농촌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농촌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한 삶을 벗어나고 배움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야학을 다니며 공부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공부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하고 나면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 쓰러져 잠이 들고 잠에서 깨면 다시 일을 나가야 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30년이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왜 하냐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 않느냐고. 그 시절에 어렵게 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냐고.

그렇다면 지금은 살만한가. 며칠 전 정부에서 낸 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빈곤에 있는 사람들이 7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 못살게 되었을까. 지금은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천만 원씩 빚을 지면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거린다. 마음으로는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고 싶지만 살아남기 위해 남을 속이기도 한다. 내 나라에 이익이 되고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다른 나라 아이들을 죽이러 가는 것을 알면서도 군대를 보내는 일에 찬성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이들을 욕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가 만든 경제 신화, 돈만 벌면 최고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람들이 아닌가. 나부터 끝없는 욕망의 뿌리를 자르지 못하는데.

이 책은 한창 공부할 나이에 가정부, 미싱사, 요코, 인형 제작공, 금속 가공, 전자 제품공, 나전칠기공, 막노동일 등을 하면서 목숨을 이어 갔던 사람들이 쓴 글이다. 농촌에서 살 수 없어 초등학교를 마치거나 그것도 못 마치고 몸뚱이 하나 믿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서 일한 사람들이 쓴 글이다. 때론 거칠고 맞춤법이 틀리기도 하지만 가슴이 미어지는 글이다.

1980년에 나오자마자 바로 판매 금지가 되었고 책을 펴낸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야 했다. 박정희는 끝내 자기 부하 총탄에 맞아 죽었지만 돈에 눈먼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힘겹게 살아 간 글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전두환이 광주 학살을 시작으로 백성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5년이 지난 오늘, 2005년에야 다시 빛을 본 책이다.

8월 끝물 어느 날, 가을을 담은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날 낮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