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월 5일 오후 오랜만에 모악산에 잠시 들렀습니다. 몇 년 만에 모악산에 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5-6년 정도 지난것 같습니다. 모악산은 나에게 남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그동안 가보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나마 모악산을 자주 보면서 오롯이 간직했던 모습 그대로를 잘 간직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해 했기 때문입니다. 모악산은 평지돌출형 산으로 전라북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을 뺀 나머지 지역들은 모악산보다 낮은 산과 들이여서 어느 지역에서든지 잘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치마폭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을 듯한 모습으로 항상 그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2년 동안 있던 부안에서도 날씨가 좋을 때면 모악산이 잘 보입니다.
모악산에 대한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대학 2학년 때 처음 들른 이후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한 다음해인 1995년부터 몇 년간 ‘모악산 살리기 운동’을 펼치던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옴에 따라 등산로가 확장되고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이 쓰러져 죽는 일이 많았지요. 그리고 도립공원인 모악산을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던 김제시와 완주군이 경쟁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모악랜드 조성사업과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 추진을 발표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모악산 금광개발지역 복구와 모악산 정상에 있는 송신탑 철거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위를 구성하여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반대하고 모악산 생태조사와 생태복원을 요구하면서 생태관광지, 역사ㆍ문화 관광지, 정신ㆍ심신 수련 장소로의 현명한 이용 방안 마련을 요구하였지요. 이같은 우리들의 생각들을 알려내고 도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나무명찰 달아주기, 인간띠 잇기, 쓰레기 줍기와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지요. 그 결과, 이 두 가지 사업을 각각 추진하던 이창승 당시 전주시장의 입찰비리로 인한 구속과 사퇴, 김제개발공사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모악랜드 조성사업의 대폭수정과 모악산 관광단지내 몇 가지 시설을 포기하게 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꾸준한 노력의 부족과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사업과 업자들의 개발이 계속 진행되면서 모악산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또한 완주군 이서-구이간, 전주 평화동-구이-운암간 4차선 도로건설(기단부를 높여 만든 고속화 도로)도 모악산 자락에 흉측한 금을 그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모악산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고 다른 환경사안들도 많아지면서 잠시 소홀히 하게 되었고, ‘나라도 등산을 하지 않으면 등산로이라도 확장되지 않겠지’ 하면서 자위하면서 가까이 가보지 않기도 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에 그동안 멀리했던 모악산을 들르기로 한 것입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들고 집을 출발하여 시내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예전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면서 차창 너머로 모악산을 바라보며 구이중학교앞 도로변에서 내렸고, 처음 모악산을 찾았을 때를 생각하며 마을길을 따라 모악산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도로변 길과 집들이 많이 정비되어 있고 구이중학교 옆으로 2차선 도로도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고시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은 그대로 인데 바로 뒤로는 흉칙한 4차선 도로가 모악산을 가로막고 턱 버티고 있습니다.
시내버스 종점인 상학마을에 다다르니 각종 음식점과 상점, 3층 목욕탕이 들어서 있더군요. 누군가 부르는 트럼펫 연주를 들으면서 예전에 인간띠 잇기를 했던 장소에 다다랐는데 너무나 훵하더군요. 뒤에 있던 소나무들이 다 배어지고 없더군요. 쓰라린 마음을 다스리고 관광단지 조성지로 갔습니다. 월요일이여서 인지 몇몇 등산객들만이 상점과 밴치 앞에 보였고, 한쪽에서는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등산로 입구까지 보통 2-3층 건물들이 여러체 들어와 있구요. ‘모악산을 사랑하자’라는 표어들이 다닥다닥 붙은 팻말들이 오히려 미관을 해치는 모습으로 서 있고, 각종 플랑카드와 여러 산악회의 산행계획을 알리는 내용들이 어지럽게 쓰여 있더군요. 등산로로 접어드니 등산로는 소형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혀져 있었고 인위적으로 단장되어 있었구요. 아주머니 몇 분이 개떡 등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정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계곡에 물이 얼마나 흐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다리에 서서 내려다 보니 흙탕물이 가득 내려오더군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모악산의 살이 썩는가 싶더니 피까지 썪은 것이 아닌가.”하며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그 흙탕물 옆에서는 한가족이(?) 자리를 펼쳐놓고 음식을 먹더군요. 조금 후 문제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포크래인 한 대가 계곡에 들어가 계곡을 넓히고 등산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폭우 때 파괴된 등산로를 원래대로 다시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과연 이렇게 크게 원래대로 만들어야 하나”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가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와 맑은 계곡물로 얼굴을 씻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달아두었던 나무명찰들은 모두 떨어져 없어졌고, 전라북도 명칭이 새겨진 나무명찰들이 달려있더군요. 서운하면서도 반갑기도 했습니다. 대원사 입구에 이르러 대나무로 연결해 놓은 계곡물을 받아먹었습니다. 목마른 자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고맙고 아름다웠습니다.
대원사 경내에 이르니, 대웅전이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더군요. 잠시 합장과 함께 묵상을 하고 있자니, 한쪽에서는 포크레인 소리가 들려오고 절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중창되었습니다. 명부전과 요사채가 새롭게 들어섰습니다. 대원사는 1890년대에 동학농민전쟁 이후 ‘증산사상’을 펼치셨던 강증산 선생이 3년동안 머무르시다가 49일만에 득도하셨다는 절입니다. 대웅전 뒤를 보니 스님과 몇 사람이 대화를 나누시고 있더군요. 대웅전 앞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구이저수지와 뒷편 호남정맥자락을 한참 보고 있으니 아는 분이 반갑게 제 이름을 부르더군요. 과거 ‘새길청년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회원이었습니다.
나이가 더 많아 만나면 형님이라고 부르지요.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묻기도 했습니다. 주지스님을 잘 알고 있어서 몇 일간 쉬로 왔는데 탑과 칠성각을 옮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시켜줘 서로 차 한잔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거 모악산 보호활동과 여러 가지 환경운동을 했던 예기, 그리고 주지스님은 요즘 모악산의 상황과 각종 환경운동 단체 활동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점들을 말씀하셨고, 심지를 굳건히 하고 운동을 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악산에 간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이전에 속초에 계실 때 직접 산불을 경험하셨던 얘기도 해 주시더군요. 만약 모악산에 산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면 끔찍하다고 하십니다. 한번 연구해 보겠다고 답변하고, 주지스님과 형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후5시가 지났지만 더 올라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돌로 만든 계단길을 오르니 아주머니 두 분이 맨발로 내려오시더군요. 맨발로 산행할 경우 발에 파상풍이 걸릴 수 있다고 말씀 드리니 그런 예기를 들어 본적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산행길에 등산객은 여섯 명 밖에 없더군요. 독경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수왕사에 다 온 것 같습니다. 약수물을 먹고 수왕사 경내에 잠시 들르니 스피커를 통해 몇 년전 들었던 그대로 ‘부모에 효도하라’는 내용의 소리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진묵조사전 앞에서 합장과 함께 잠시 묵상을 하고 난 다음 소리를 들으며 경내앞 나무에 앉아 멀리 산들을 바라다 봅다가, 잠시 부모님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수왕사에 사셨던 진묵대사는 1562년에 태어나 용진면 봉서사에서 출가하시고 이곳에서 사시면서 수도도 하시고 곡차(술)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서산대사와 동시대 인물이니, 임진왜란을 겪으셨다고 보는데 임진왜란, 정유재란과의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곳 수왕사 주지스님이 술을 만들어 대중화 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근래에 지역신문에 연재했던 모악산 풍수지리 관련 글들을 코팅을 하여 경내에 진열해 놓았고, 최근 만든 책을 홍보하고 있더군요. 잠시 훑어보니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음택풍수가 많더군요.
오후6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하늘을 보니 태풍이 온다고 하나 구름이 그렇게 많지 않고 햇빛이 잘 비치더군요. 그래서 정상까지 가보자 혹시 낙조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에 흉칙하게 들어서 있는 각종 송신시설을 바라보면서 정상에 오르자 전북지역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내장산, 회문산, 멀리 희미하게 지리산 자락과 덕유산, 마이산, 고덕산, 만덕산,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 미륵산, 함라산, 계화산, 변산, 두승산, 선운산, 그리고 전주, 봉동, 삼례, 익산, 군산, 김제, 부안, 또한 너른 김제ㆍ만경들판과 만경강ㆍ동진강과 하구갯벌인 새만금갯벌, 그 넘어 신시도, 야미도, 비안도, 비응도 등 섬들도 한 눈에 보이더군요. 장관입니다. 전주시가지를 보니 햇빛에 고층아파트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서부신시가지 조성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으며, 완산칠봉과 도심지 공원들이 섬처럼 드문드문 보입니다. 모악산 정상에서 보니 전주를 과연 녹색생태도시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들어선 인공적인 시설물 밖에 보이니 않으니 말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란 정말 한탄 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나 또한 이런 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얽혀 살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진정한 삶이 어떤 삶인지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 하늘높이 서있는 송신탑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지, 전주KBS측의 철거 약속 내용들을 머리속에서 다시 되내어 봅니다.
다시 등산로 방향을 금산사로 돌립니다. 낙조가 괜찮을 듯합니다. 한참 멀리 바라보고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낙조를 기다립니다. 20여분을 기다리니 붉은 태양 빛을 내며 계화산 위로 내려앉더군요.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많은 날들을 같이 해 온 동지들이 어민들이 살고 있는 계화도와 여러 섬들, 그리고 뭇 생명들이 살고 있는 새만금갯벌을 비추면서 말이지요.
지난번 8월초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당했던 강 주변 논들도 보입니다. 과거 역사속에서나 현재도 항상 민중, 민초들은 자연재해 뿐만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성냄 때문에 삶의 피해를 먼저 보는 것 같습니다. 새만금갯벌을 살려달라고 요구하는 수많은 어민들과 많은 양심세력과, 그리고 농경지 침수피해를 올바로 조사하여 충분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구는 아직도 묵살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김제, 부안에서 논도 갈아엎었고 대규모 집회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랍니다.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보며 인간들의 나쁜 속성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사라지고, 내일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계화도를 바라보면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계화도 주민 고은식 씨에게 안부 전화도 해 봅니다.
어둠이 밀려와 내려가는 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송신시설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곤도라를 타고 내려갑니다. 모악산 정상에서 금산사 구간은 등산로에 바위들이 많아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내려오다가 정상부의 송신탑을 쳐다 보았습니다. 몇 년 전 전주방송(JTV)측이 시설한 송신탑과 건물이 들어설 때 산 절개지가 크게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니 산 절개지가 아래쪽으로 더 크게 생겨 계곡을 형성하고 있더군요. 화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점점 더 어두워 오니 빨리 하산길을 재촉했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와 발 내딛기도 힘듭니다. 다행히 예전에 다니던 생각을 되 뇌이며 무사히 잘 내려왔습니다. 얼마전 ‘이태가 쓴 남부군’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빨치산들의 야간행군을 생각하면 어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별 두려움 없이 내려왔습니다.
평지길에 다다랐을 때 계곡은 큰 바위들로 가득차 있었고, 금산사까지 있는 찻길이 군데 군데 사라지고 크게 패여 있더군요. 지난번 8월초 집중호우 때 물쌀에 쓸려 내려간 것 같습니다. 자연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태풍으로 비까지 많이 내렸다면 위험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싹 전율이 생깁니다. 칠흙 같은 어둠을 해치고 내려오니 예전에 과수원이 있던 곳에 다다르니, 수많은 반딧불이 들이 날아오릅니다. 늦반딧불이들이 짝을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날아가는 방향앞에 책을 대니 부딪치지 않고 피해갑니다. 눈이 좋아서 인지 아니면 무슨 초음파를 발사하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금산사 스님들의 무덤인 부도전을 지나, 8시쯤 금산사 정문에 이르니 관리인이 앉아 쳐다보시더군요.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듯이. “인사드리면서 경내에 들어갈 수 없습니까?”하고 묻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경내에는 국보도 있고 박물관도 있을 뿐만 아니라 밤이기 때문에 스님들의 취침시간 때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입고간 생활한복도 통하지 않더군요. 밤에 경내를 둘러 보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고 걸어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왔습니다. 야간 산책을 나온 두 부부도 보입니다. 밤이어서 잘 확인되지 않지만 모악랜드 조성사업 지역에는 운영도 하지 않는 호텔 건물만 들어서 있고 대부분 나대지로 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어머니의 산 모악산을 뒤로 하고 밤 9시 전주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탔고, 시내 중심지에서 한번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10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오후 위대한 어머니의 산 모악산에 잠시 안기도 돌아온 나의 마음은 한결 편안하고 다시금 삶의 활기를 되찾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모악산이 어머니 품속 같이 온갖 뭇 생명들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전북 아니 우리 나라가 생명평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TV에서는 미국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소식과 태풍 ‘나비’의 북상으로 인한 피해 예방대책을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인간들이 자연을 경외하고 자원을 절약하며 스스로를 겸손한 마음이 들도록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일들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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