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두 노동자의 죽음이 남긴 것

노동자 분할 통치 질서 깨뜨리는 원하청 노동자 단결을

오늘 새벽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운명을 달리 했다. 김동윤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은 지난 9월 10일 부가가치세 1200만 원을 내지 못한 사유로 생계비에 쓸 유가보조금 230만 원을 세무당국이 압류하자, 생계를 비관해 분신, 결국 눈을 감았다. 류기혁 현대자동차사내하청 조합원이 지난 4일 목숨을 끊은 지 열흘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고 류기혁, 김동윤 열사의 명복을 빈다.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류기혁 조합원은 6일 아침 울산시티병원에서 장례를 마쳤다. 빈소를 지키던 40여 명의 노동자들은 침묵으로 고인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고인의 어머니의 곡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 6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2공장 사내협력업체 보광기업에 입사하여, 한 차례 소속이 변경된 후 올해 6월 17일 해고 통보를 받기까지, 그리고 4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은 "우리 노조는 결국 노조활동조차 본인의 의사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처참한 하청 신세와 노조탄압이 류기혁 조합원에게 죽음을 강요한 것이라 판단한다... 노동부도 외면하고 현대자동차(주)는 극악무도한 탄압만 일삼으며 불법행위를 계속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류기혁 조합원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결뿐이었다"고 밝혔다.

김동윤 조합원은 10일 오전 "유가보조금 환급분까지 세무서에서 압류를 해 어려워서 못살겠다. 사무차장과 지부장은 신선대 부두 앞으로 빨리 와라"라는 마지막 통화를 남기고 분신했다.

김동윤조합원분신대책위원회는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지입차주)라는 신분 때문에 고질적인 저운임에 직접비용 부담에 시달리면서도 사용자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대응책도 전무하다. 산재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 혜택도 없다"고 설명했다. 화물노동자 93%가 고 김동윤 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다.

두 조합원의 죽음은 두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한 현 정권의 노동정책이 부른 명백한 타살이다. 두려운 것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노동자의 희생을 부를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없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그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의 현실 자체이다. 2003년 가을 김주익 열사의 죽음에서 시작된 열사국면 당시, 이 땅에 살아있는 노동자는 가슴을 쓸어 내리고 울분을 토했다. 외환위기 이후 폭풍처럼 휘몰아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부른 비극이었다. 노무현정권은 손배가압류와 노조탄압을 방치했고, 배달호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 분할 공세, 비정규직 양산으로 잇따른 열사의 죽음을 불렀다. 열사정국 이후 2년, 노동유연화 공세는 멈추지 않았고, 사회적 빈곤은 극에 달했다. 노무현정권은 갖가지 이름의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함으로써 급기야 류기혁, 김동윤 조합원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자본과 정권의 노동자 분할 통치는 갈수록 치밀하교 교활한 양상을 띠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 고임금론 공격, 노조비리 기획 공세, 위기 조장을 통한 민주노조운동의 뿌리 흔들기 등 입체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한편, 제2 제3 하청 구조의 온존과 하청노동자 탄압, 간접고용 체계를 통한 중간착취, 원청의 사용자성 불인정을 통한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말살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두 조합원의 죽음은 오늘날 자본과 권력이 모든 노동자에게 행사하는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자 '노조원 납치와 구속, 일상적인 경비대의 폭력, 손해배상과 가압류, 출입금지·업무방해·집회금지 가처분, 해고, 징계'로 이어지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폭력에 따른 것이다. 두 조합원은 사내하청노동자와 특수고용직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살아왔다. 노동삼권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삶도 보장되지 않는 87년 이전과 같은 열악한 현실을 버텨왔고, 바로 그 현장에서 죽임 당했다. 정확히 노무현정권의 노동자 분할 통치 질서의 한 복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고 류기혁 조합원의 죽음은 현대자동차노조의 임단투 막바지에서 빚어졌다. 현대차노사는 서둘러 잠정합의안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비정규직노조는 "9개월 가까이 전개해온 불법파견 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한 불법파견 철폐 투쟁이, 05년 임단투 공간에서 '1개월 내 특별교섭 실시'라는 부도수표에 쓰러져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규직노조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1개월 안에 불법파견 철폐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지금은 잠정합의안의 성과를 말하기 전에 불법파견 철폐 투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약속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실질적인 연대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거듭 강조컨데 두 조합원의 죽음은 자본과 정권의 비정규직 양산 정책과 노동자 분할 통치가 부른 비극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분할 통치 질서를 깨뜨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중단시키는 끈질긴 저항을 준비해야 한다. 저항의 전제는 모든 노동자의 단결이며,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의 힘을 키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열사의 비통한 죽음을 맞는 원하청 노동자 모두가 힘들어도 서로 어깨 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두 열사가 죽음으로 호소하는 마지막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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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내용을 잘 보았습니다.그런데 내용중에 김동윤열사께서 담요를 몸에 두르고 분신하신게 아니고 머리띠와 투쟁조끼를 입고 분신후 일하던 다른 조합원이 급히 불을 끄는 과정에서 담요로 덮은 것입니다. 초기에 내용전달이 약간 잘못된 것 같군요.

  • 참세상

    초기 일부 보도된 내용을 참고해서 작성한 것으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나비

    노동자 분할 관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원하청연대를 강조한 말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네요. 현대자본이 노동자 분할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낱탄이 파헤치고 현자노조 이상욱집행부와 비정규직노조 투쟁을 움직이는 정파들의 뒷이야기들까지도 보도하는 것이 참세상다운 역할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