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폭력"

[이상한 제국의 엘리스](5) - 한인 이민자 운동 단체를 찾아...

지난 9월 5일 한겨레신문에 “미국서 추방된 한국인.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라는 자극적인 기사 한 편이 실렸다. 범죄 때문에 미국에서 추방된 한국인들이 재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이들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이러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배경에 대한 설명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요즘 태풍 카트리나 소식 때문에 다른 뉴스들이 쏙 들어갔지만, 이민자 문제는 사회보장 개혁(?)과 함께 미국 국내 뉴스의 중요한 꼭지를 차지해왔었다. 텍사스-멕시코 국경에서 지역 방위군과 주민들이 살벌하게 총 들고 국경 수비에 나선 모습,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떠났다가 침몰하는 배와 함께 불귀의 원혼이 된 엘살바도르 노동자 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 이는 상징적인 일면이다.

이민자 혹은 이주 노동자들은 이 사회 어디에서나, 특히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하찮은 일상에서 마주치기 마련이다. 낮에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는 이들, 퇴근 시간이 지나면 나타나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우는 이들, 동네 슈퍼 계산대에 서 있는 이들은 으레 중남미 출신 노동자들이고 중국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이들은 대개 중국/베트남 출신 노동자들이다. 직접 만날 일이야 없었지만 농업 노동자의 상당수도 역시 이들 이주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캘리포니아 포도밭을 보면서 ‘설마 이걸 사람이 따겠어? 뭔가 특별한 기계가 있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직접 (ㅜ.ㅜ) 한단다. 대부분 멕시코 출신 노동자들의 몫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가장 밑바닥에서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이민자들을 몰아내려고 이 사회는 지금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에서 말이다. 2000년 통계에 의하면 불법(?) 체류자가 7~8백여 만 명에 이를 거란다. 까다로운 이민 조건, 비자 관리, 특히 911 사건 이후의 강화된 국가안보 논리는 불법 체류자 양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백악관의 공식적 지지 속에서 압도적 표 차로 하원을 통과한 RealID 법안은 불법 체류자의 운전면허 취득을 전면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합법 체류자의 면허 취득도 어렵게 만들고 이민 신청이 거부된 외국인의 재심 요청을 금지하며 이민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테러 단체로 지목한 단체에 기부를 한 경우 온 가족이 추방당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운전면허증 없는 게 뭐 그리 심각한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증이 유일한 신분증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를 상상해보라!)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출퇴근, 장보기 (웬만한 동네는 차타고 20-30분을 가야 쇼핑몰이 있다) 등 기본생활을 전혀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그 동안은 사회보장체계(주민등록)와 운전면허 관리를 분리 운영했었는데 이제 ‘안보 문제’를 고려하여 이를 연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로서 납세자로서 미국 경제를 살찌우는데 기여하면서도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아무런 사회복지 혜택이나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예 모두 쫓아버리겠다는 것...

그러면, 한인 이민자들은 어떨까? 웬지 이런 건 한민족(?)하고는 상관없는 문제 같지 않은가?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재미교포들의 모습이라면 역경을 뚫고 자수성가한 불굴의 의지, 미국 주류 사회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한인 불법 체류자가 18만여 명에 이른단다. ‘누가 미국 가라고 떠밀었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연을 떠나 이건 엄연한 인권의 문제....

서론이 길어졌다. 지난 8월 말에 뉴욕에 들를 일이 있어 민지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네티즌 모임) 회원인 차주범 씨 (역시 어색하군. 그냥 닉네임 ‘사과나무’로 부르겠음)를 만나고 왔다. 그가 교육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뉴욕 청년학교는 1984년에 설립된 지역사회 조직으로 이민자 권익옹호(advocacy) 활동과 교육, 서비스 제공 (이를테면 무료 법률 상담, 시민권 신청 대행, 메디케이드 상담 등)과 문화 운동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지역 운동 단체다. 이 단체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은 1992년 4.29 나성 사태 (한국에서는 LA 흑인 폭동이라고들 불렀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 때까지 모범 이민자 집단의 허상에 안주하며 타 소수민족과의 연대에 소홀하고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살아오던 동포 사회’를 크게 자각시켰고, 뒤이어 강화된 미국의 반(反) 이민 추세가 이민자 사회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시작하면서 한인 사회의 이민자 권익옹호 운동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하여간... 8월 20일 오전, 교민들이 밀집해 있다는 퀸즈 플러싱에 위치한 사무실로 (한참을 헤맨 끝에 ㅡ.ㅡ) 찾아갔고, 예의 시덥잖은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 민지네 게시판에 글 올리신 거 보니까 요즘 춤 배우신다면서요? 진도는 잘 나가요?

☆ 그게 말입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통 못 나가고 있어요. 그러지 않아도 안타까워 죽겠습니다. 낮에는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증진을 위해서 애쓰고, 밤에는 사모님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애쓰는 진정한 활동가가 되려고 했건만....

★ (맞장구!) 아이구! 듣는 저도 안타깝네요. 무슨 일 때문에 그리 바쁘세요?

☆ 뭐 평소에 하던 일들도 있지만, 여기 현수막에 보시는 것처럼 저희가 지금 ‘포괄적 이민 개혁을 위한 전국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NAKASEC(1) Action Fund 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미국 정계에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지에 전면 광고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각종 기금 마련 행사 준비하고 현장에 나가 모금 운동 벌이고... 또 다음 달에 전면적인 로비데이 (Lobby Day, 날 잡아서 의회를 방문하여 관련 의원 간담회와 면담 등을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활동)를 갖기로 했거든요.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공화당 의원 존 맥케인과 민주당 에드워드 케네디가 마련한 초당적 이민 개혁 법안 ‘미국안보와 이민 개혁 법안 (Secure America and Orderly Act of 2005)’ 상/하원에 동시에 상정되었어요. 비록 이 법안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평소 제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인 ‘비판적 지지’ 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이번 109 회기 안에 이민 개혁법을 입법화시킬 수 있는 유례없는 기회가 온 거예요.

  포괄적 이민 개혁을 위한 광고캠페인 현수막 앞에서 진지한 포즈를 연출하고 있는 사과나무


★현재 이민자 운동의 이슈가 뭔지 설명을 좀 해주세요.

☆ 우리가 원하는 건 포괄적 이민 개혁법(Comprehensive Immigration Reform, CIR(2))입니다. 현재 미국은 서류 미비자 (undocumented immigrant) 문제가 무척 심각해요. 우리는 불법 체류자(illegal immigrant)라는 말 대신 서류 미비자라고 표현합니다. 이들이 불법을 저지른 건 없어요, 다만 이민과 관련된 서류가 부족한 게 문제일 뿐이죠. 마치 범죄자처럼 ‘불법’ 어쩌구 하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허거덕... 그동안 잘못된 용어를 ㅡ.ㅡ;) 사실 이들이야 말로 현재 미국사회를 지탱하는 힘이에요. 이들이 전체 인구의 3%에 달하고 만일 총파업이라도 벌인다면 그야말로 사회가 마비되고 말 겁니다. 현재의 이민법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더 이상 작동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현재 새로운 시민권자가 본국의 배우자를 초청하면 대기 기간이 필리핀 22년, 멕시코 7년을 비롯해서 평균 4년이 걸려요. 한국도 본국에 7만 명 이상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 2기 집권 동안에도 사회보장 제도와 이민 개혁 문제를 중점과제로 두고 있죠.

★한인 커뮤니티에도 이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 이민법 문제로 인한 교포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사소한 범죄 때문에 한국으로 추방된 청년이 자살한 사례가 있었어요. 아주 어려서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고 그래서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고 한국말도 할 줄 몰라요. 근데 서류 미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본국’으로 추방된 거죠. 묻고 싶네요. 이 사람 본국이 한국인가요? 여기서 상담을 받다보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부지기수예요. 더구나 지난 IMF 때 무작정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여기 한인 사회의 저소득 이민 노동자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더욱 심각해요. 하루는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지금 딸이 열여덟 살인데 비자도 여권도 만료되고 아무런 신분 증명이 없는 상태다. 운전면허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야 미국에서 살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겠나.... 하소연을 하시는데 지금 현재로서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요. 그 딸아이는 대학을 갈 수도 제대로 된 일자리에 취직을 할 수도 없어요... 이런 절박함 때문에 교포 사회의 캠페인 참여도는 아주 높은 편이에요 (사진 문제 때문에 오늘 전화를 해보니, 뉴욕 시에서 마련하기로 한 광고비 1만 5천불 모금 목표를 달성했단다. 이 자리를 빌어 축하!).
  광고 캠페인에 참여한 교민의 편지와 수표 (사진, 청년학교 제공)

  포괄적 이민 개혁을 위한 광고 캠페인의 거리 모금 현장 (사진, 청년학교 제공)


★ 글세... 자본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이민 노동자들을 무작정 단속하고 추방하는데 돈 들이는 것보다 합법화 시키는 게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더 나을 거 같은데요...

☆ 이민 정책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어요. 하나는 ‘Work & Stay’, 또 다른 하나는 ‘Work & Go’. 후자의 경우는 죽어라 일만 하고 이 사회 떠나라는 이야기인데, 911 사건 이후 안보에 대한 과민반응이 심해지면서 후자의 영향이 특히 강해진 거죠. 말씀하신 대로 사실 자본의 요구도 있고 해서 911 직전에 서류 미비 이민자들에 대한 대사면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근데, 그 사건 때문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 거죠. 또 하나 중요한점은, 이 상태로 가다가는 2050년이면 미국의 인구 구성비가 역전돼서 백인이 소수 인종이 되요. 이들 이민자들을 모두 합법화 시킬 경우 투표를 통한 정치 장악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민 정책의 또 다른 쟁점은 단속(enforcement)과 합법화(legalization) 중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 현재 멕시코 국경에서는 이라크 전 참전 사망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거나, 얼마 전 엘살바도르 불법 이민선 침몰 때문에 백 명 넘게 떼죽음을 당한 것은 단속 우선 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불가능해요. 그 수많은 서류 미비자들을 어떻게 단속할 것이며 설령 단속에 성공한다 한들 이들을 모두 추방해버리고 나면 무슨 재주로 미국 경제를 유지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맨날 안보 타령을 늘어놓는데 이들을 사회 주변부로 몰아내느니 합법화시키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

★ 음, 미국 사회에서 이런 이민자 운동의 역할, 위상은 어떻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운동이라는 것도 삶의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거 아니겠어요? 기본적으로 이민자란 체제내화를 준비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진보 운동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는 거죠.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그 혜택을 돌려받아야 하며 제도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우리 입장입니다. 우리 단체 같은 경우 이민자 권익 옹호 활동 이외에 ‘정의로운 미국 사회 건설’(^^)을 위한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만.... 이건 조금 있다가 이야기 드릴께요. 노조 운동을 크게 사회 투쟁과 경제투쟁으로 구분한다면, 미국 사회에서는 전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질적인 현장의 요구에 따라 대중 운동을 벌이는 것이 곧 생활정치라고 생각해요. 수사 (rhetoric)로서 변혁을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부시도 근본적 변혁을 이야기하거든요. ‘근본’에 대한 정의들이 다를 뿐이지 ㅎㅎㅎ. 그리고 현실에서는 생활과 동떨어진 수사로서 근본적 변혁을 외치는 자들이 실제로 변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 그렇다면 청년학교에서 생각하는 이민자 운동이란 어떤 것인가요?

☆ 저희 단체는 크게 두 가지, 이민자의 권익 옹호와 한인의 정치력 신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민자 권익 옹호 운동에서라면 앞서 말씀드린 포괄적 이민법 개정 운동이 가장 핵심 활동이라 할 수 있구요. 후자는.... 음, 흔히 한인의 정치력 신장이라 하면 유능한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거나 유권자 운동을 벌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의제(agenda)가 중요한 거지, 그 사람이 한국인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실제로 지난 95년 반이민법이 통과될 때 한인 최초의 하원의원이라는 사람은 세 가지 법안 모두에 찬성표를 던졌어요. 또 유권자 운동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한인 인구가 전체 선거인의 1%도 채 안 되는 실정에서 우리의 투표력으로 무언가를 바꿔내는 건 불가능해요. 선거는 선전 활동에서 일종의 도구라고 보면 되고, 지역사회 교육과 다른 이민자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통해 의제를 바꿔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한인 커뮤니티의 이민자 운동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면 소개를 해주세요.

☆ 여기 한인 단체의 90% 이상은 대개 서비스 기관이고 특별히 운동적 성격을 갖기보다 그저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직장인 경우가 많아요. 권익 옹호와 관련한 사회운동 단체는 그 숫자가 매우 작아요. 그렇다고 이걸 한국인들의 정치적 특성이라기보다 보기는 어려워요. 일단 현재 뉴욕 지역 재미 교포의 70% 이상이 1세대, 즉 한국 출생자들이에요. 그러다보니 일단 미국 사회에 대한 정치적 이해가 부족하고 아무래도 생활이 본국 지향적인데다 성공하기 위해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니 개인적 성공과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기 마련인거죠. 어쨌든 이민자로서 이민자 사회나 지역사회에 기여도가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완전히 주류 사회에 편입하여 ‘힐러리 클린턴 후원의 밤’, ‘추수감사절 맞이 사랑의 칠면조 나누기’ 행사 같은 것을 벌이는 단체들도 있어요. 뭐 이런 현상이 다른 이민자 사회와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라고 봐요. 다만 이민의 역사가 짧다보니 미국 사회로의 동화 기간이 짧다는 차이가 있는 거죠. 이민사 백년이라고들 하지만 65년 이민법 개정하면서 실질적인 이민이 시작되었거든요. 그리고 정치적 성향이라는 것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본국의 정치의식이나 갈등이 여기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투영되는 거 아니겠어요? 특히 한국과 미국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관계가 여기 이민자 사회에도 반영되는 거죠.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에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반 이민 악법들이 시행되면서 현재 이민자 권익 옹호를 위한 운동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 한국인 커뮤니티 내부의 계급 분화는 어떤가요? 더 이상 단일한 ‘교포 사회’, 막연한 한민족/동포애로 묶어버릴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 일전에 제가 민지네 게시판에도 올렸었지만, 이전에는 교민의 일정한 성공 패턴이 있었어요. (상자글 참조) 하지만 그런 게 더 이상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 한인 교포 사회가 그동안 마름모꼴의 인구 구성을 유지해왔다면 요즈음에는 피라미드 꼴로 변해가고 있어요. 한인 사회 내에서 광범위한 저소득 이민 노동자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아직 계급 갈등이 위기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한인 노동자 권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상에 있습니다. 전반적인 이민자 권익 옹호 운동이 일종의 부르주아 운동이고 이 활동을 통해 우리 단체가 교포 사회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그렇지 않아요. 여러 한인 직능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가 있거든요. 어쨌든 현재 70여 건의 사례를 상담 중이고 4건은 중재에 성공했어요. 우리는 업주에 대한 노동 교육도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악덕 업주들도 있지만 본인들이 뉴욕 현지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거든요. 특히 네일 업종 (손톱 미용) 같은 경우는 뉴욕 시에서 표적 수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예요. 여기 잘 나가는 한인 식당의 경우 홀 서빙의 최저 임금이 시간당 3.85 불인데 그것도 지급하지 않고 그냥 팁으로만 살게끔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인 업주들은 자신들도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자신이 살겠다고 상대를 착취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착취가 위기 돌파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국 사회에 제가 바라는 게 있어요. 첫째 제발 미국 사회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줬음 좋겠어요. 특히 언론! 미국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그저 본국의 정치 공학적 입장에서만 미국 사회를 이해하려 들거나 개별 사례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교포 문제를 보는 시각도 이 연장선 상에 있어요. 차라리 가만히 놔둬주면 좋겠다 싶을 때도 많습니다. 두 번째로는 정부 기관들이 예산과 인력을 제대로 집행했으면 좋겠어요. 교포를 지원하겠다는 사업들은 많은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에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해외동포’라는 믿음을 버릴 필요가 있어요. 해외교포들은 그 자체로 제 2의 조국에 살고 있는 거지 고국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역대 대통령들 중 YS가 제일 적절한 발언을 했어요. 교포들이 미국 사회를 잘 이해하고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결국 한국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홍실: 혹시 원고를 잘못 읽은 게 아닐까요? 사과나무: 글쎄요. 이 양반이 technical problem이 많긴 합니다만 ㅡ.ㅡ)

★ 제가 업무 때문에 미국 공공 기관들을 견학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요. 처음에 이해 못했던 말이 ‘민간에서 서비스를 구매 (purchasing)’ 한다는 거였어요. 알고 보니, 국가에서 공공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지 않고 민간에 용역(?)을 준다는 이야기더군요. 민간단체들이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자발적인 시민 참여, 풀뿌리 민주주의, 뭐 이런 측면에서야 좋지만, 결국 시장 메커니즘에 공공의 기능을 모두 맡겨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민간이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더 높은지도 의문이고.. 현장에서 직접 뛰는 활동가로서 이런 식의 민-관 협력 (public-private partnership)이 갖는 장점과 단점이 무어라고 생각하세요?

☆ 분명히 장단점이 있어요. 우선 단점이라면 정부 그랜트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면서 민간 기구들이 사회운동이나 권익옹호 활동보다는 서비스 대행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거죠. 물론 서비스 제공도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장점은 지역사회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정부 기관에서는 관심도 없고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일들 - 이를테면 이민자 학부모를 위한 랭귀지 서비스 같은 거. 학교에서 애들이 뭐하고 있는지 학부모들이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거든요. 또 선거 교육 같은 거는 주민들과 직접 닿아 있는 조직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거죠. 우리 같은 경우는 어쨌든 시와 주 정부의 공공 서비스를 늘리라는 선전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이러한 방식이 결국 사회운동을 체제내화 시키는 거라고 생각 되요. 여기는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잖아요. 기층 민중들의 요구로부터 출발하기보다 펀드가 몰리는 곳에 사업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는 않나요?

☆ 미국 사회 비영리 단체의 운영은 크게 세 가지 재원- 그랜트 (기금), 기부, 기금마련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지나치게 그랜트에 의존하다보면 단체의 존망이 여기에 달리게 되고, 그러면 이제 방금 말씀하신 대로 되는 거죠. 우리 단체는 현재 그랜트 의존율이 60% 정도 되는데 처음에는 일부러 그랜트를 받지 않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고 특히 권익 옹호 활동이 우리 활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단체 규모도 커지다보니 그랜트에 의존하는 정도가 점점 커지게 된 거죠. (활동가 아닌) 직원들 월급이 여기서 나오고, 사실 제 월급도 이 쪽 기금에서 충당하고 있어요. 여전히 핵심 기능은 권익 옹호 활동에 두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그랜트를 받을 수가 없고, 우리 조직도 사실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만났던 소위 진보적이라는 미국인들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미국 시스템의 모순이 격화되어서, 이제 더 이상은 유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그런데도 도대체 이 사회가 지탱되는 힘은 뭘까요?
☆ 폭력이죠!




(1) National Korean American Service and Education Consortium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 협의회) : 1994년 미국의 주요 5개 도시 지역단체들이 결성한 전국단체 (http://www.nakasec.org/)

(2) 현재 서류 미비자의 전면 사면과 이민 업무 적체 해소, 이민 노동자 권리 보호, 가족 재결합 조속 추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지네 게시판에서 퍼온 글

내가 활동하는 단체는 수개월 전 한인 단체 중 최초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시작하였다. 프로그램 제목은 "Korean Workers Rights Project". 해석하자면 한인 노동자 권리 프로젝트 정도 되겠다. 최근에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인이 업주인 델리가게(한국으로 치면 미니 슈퍼) 한 한인 노동자의 밀린 초과노동분 임금을 받아내는 중재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 중재를 성공시킨 게 수 개월 전인데 아직도 그 노동자는 밀린 임금을 업주로부터 받아내지 못하였다. 이유는 그 업주 아줌마가 밀린 임금 지급을 질질 끌면서 또 다른 변호사를 선임해 다시 법정소송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롭게 그 아줌마에게 고용된 변호사도 케이스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아줌마에게 소송을 포기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할 것을 권하였다. 소송에 갈 경우 더 큰 배상액을 물어야 할 뿐 아니라 소송비용과 상대방 변호사(우리 측 변호사)의 변론비용까지도 부담하도록 뉴욕 주 노동법이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아줌마는 우리 측 변호사를 찾아와 중재로 확정된 금액(7,000 달러)를 깎아 달래느니 자기는 요새 불경기라 너무너무 힘들다느니 하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 아줌마는 업계에서도 소문난 재력가로 시가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게를 3개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전에도 유사한 케이스로(그때는 라티노 노동자를 착취하다가) 법정소송까지 갔었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 중재금 7,000달러는 그 한인 노동자가 착취당한 거에 비해 상당히 낮춰서 책정된 금액이다. 그럼에도 그 아줌마는 못주겠다고 갖은 난리를 치더니 결국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합체인 한 단체 임원들에게 우리단체를 마구 욕하고 다니면서, 마치 우리단체가 수십 개의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을 블랙리스트 선상에 올려놓고 차례로 공격한다는 식으로 유언비어까지 날조하여 유포하고 다니고 있다.
이번 케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서글픔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사실 지금 미국경제는 총량적으론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매경기는 9.11이후 바닥을 계속 치고 있다. 따라서 한인 업주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비즈니스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영의 어려움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돌파하겠다는 발상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한인 노동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일일이 열거할 수 없도록 눈물겨운 사연을 접하였다. 우리가 직접 담당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업주가 스폰서를 서주어서 영주권을 취득하도록 해준다고 해놓고,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7년 동안 저임금으로 일을 시키고, 심지어는 그 종업원의 크레딧 카드까지 사용해놓고선, 나중에 견디다 못한 종업원이 크레딧 카드 사용비용과 밀린 임금을 청구하자 서류 미비자(불법 체류자)인 약점을 트집 잡아 이민국에 신고해 버리겠다고 도리어 협박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10년이 넘게 저임금으로 주 6일 7일 또는 주인이 부르면 한밤중에도 가게에 불려나가 헌신한 한 노동자가 가게에서 부상을 당하자 매정하게 그날로 해고를 시켜버린 일, 영주권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성추행까지 범한 일 등등등.. 인간적으로 정말 분노를 참기 힘든 케이스가 아주 널려 있다시피 하다.
예전에는 한 가정이 미국에 이민을 오면 일정한 성공(?) 패턴이 있었다. 가족이 한 3~4년 뼈 빠지게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조그만 가게를 사서 운영하고, 나중에 더 큰 가게를 사고 그래서 돈을 모으면 교외에 집도 사고 하는 패턴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러한 패턴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국 바닥경제가 여전히 침체일로인데다가 IMF 이후 너무 많은 한인들이 무작정 미국으로 이주하여 저임금 노동자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노동자 권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을 때, 가게나 회사 사장 사모님으로 보이는 한 한인 아줌마가 우리 단체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전화를 받은 내게 다짜고짜로 "어디 미국 땅에까지 와서 간첩들이 하는 짓을 하고 있냐"고 소리를 꽥 지르고는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졸지에 간첩이 돼버린 나는 참으로 어이없고 짜증이나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태그

이민 , 홍실이 , 한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홍실이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티코

    그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싼값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겁니다. 우리? 마찮가지죠. 우리 최대 수출시장은 미국, 미국 중산층 사람들의 호주머니가 넉넉해야 우리 물건 사즐 여력이 되니까요. 그러지 않고 만약..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이 없다? 그럼 우리 수출? 당근 어렵죠..ㅎㅎ 근데 이게 과연 옳을까요? 재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임금, 고통을 통해 사회가 유지된다.쩝...너무 야만적인 사회입니다.

  • kino

    홍실이님기사는 늘 기다리고 있어요. ^^
    오늘은 민지네 야그까지~
    그럼 다음 기사 기대하겠습니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