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계/속/된/다

우리는 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편부 편모거나 어린 동생과 병든 가족이 있는데 여러분의 학력은 중졸에서 고졸 사이입니다. 그리고 빚까지 포함해서 한달에 들어가야 할 돈이 약 4백만 원입니다. 여성 여러분들은 어떤 일자리를 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른 일자리를 두고 성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 여성들이 특별히 많은 돈이 탐난다거나 명품이 필요해서인가요? 아니면 일부에서 말하듯이 감금당했거나 성노예라서 그럴까요?

우리 성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빈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성노동자 여성들에게 덧씌우는 오명과 낙인입니다. 성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일해야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세계여성행진의 2005년 전세계 릴레이 행진이 한국을 지나던 지난 7월3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이 땅 여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한 성매매 여성이 절절히 호소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에게 있어서 빈곤과 폭력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행해지는 노동시간의 66%를 여성이 채우고 있는 반면 여성은 세계 전체 소득의 10% 그리고 전체 부동산의 1%만을 소유하고 있으며 세계 빈곤층 13억 인구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25%~50% 더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94%가 비정규, 비조직 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회적,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들고 또한 노동권 단체들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에 처해 있다.

이제까지 여성은 이중노동에 의해 고통받아왔으며, 세계화 이후 여성노동의 주변화와 빈곤의 심화로 더욱 고통받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란 더 싸고 더 유연한 노동을 찾는 자본의 속성에 따라 결국 여성들의 상태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고 있으며, '가부장제'를 이용하여 더 많은 여성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신의 축적구조를 완성시킨다. 기업은 여성을 더 순종적이고 덜 조직적이며, 결혼이나 임신과 같은 사유로 해고하기 쉬운 존재로 보고 있다. 하청 및 시간제 노동, 계절노동, 성과급 노동 등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 여성은 특히 불안정하고 더욱 착취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 신국제분업이라는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착취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져오는데, 일단 자본은 싼 노동력을 찾아 제3세계로 이전한다. 제3세계에서 여성노동은 남성노동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져 최저임금 이하의 여성임금은 정당화되었고 젊은 여성은 남성보다 권위에 잘 복종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잘 견뎌내기 때문에 고용주는 젊은 여성을 선호한다. 제3세계에 적용된 노동의 신축화가 중심국에도 형성되는데, 결국 여기서도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여성노동력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1세계의 흑인 여성과 제3세계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형태로 드러난다. 미국에 이주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노동착취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마낄라도라같은 자유무역지대는 제3세계 여성노동력을 제1세계가 착취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여성들은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착취당하고 있으며, 전지구적으로 여성의 삶의 조건은 불안정해지고 있다.


전세계 여성들이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에서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억압당하는 현실에 맞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크게 두가지 과제를 내세웠다. 세계의 빈곤을 없애는 것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것.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두가지 의제를 가지고 세계의 사회운동과 연대하려는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문제가 따로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뿌리깊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동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전세계여성들은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서는 것을 여성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이에 관한 요구목록을 스스로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5년 후 이 요구목록을 알리며 지구를 횡단하는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을 진행하였고, 여기에 결합했던 각 국의 여성운동들은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세계적인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러한 세계여성행진이 결성되는데 단초를 제공했던 북경여성대회 10년이 된 올 해, 다시 한번 릴레이 행진이 시작되었다. 작년 세계여성행진 총회를 통해 채택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을 널리 알려내고 전쟁을 동반한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요구를 알려내는 활동이 이 행진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행진은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를 횡단한 후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에서 마무리 될 예정이다.

7·3 여성행진이 남긴 것

지난 7월 3일은 '2005 세계여성행진'의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과 여성들의 요구를 상징하는 '연대퀼트'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여성행진)'은 헌장과 퀼트가 도착하는 날을 맞아 '여성들의 연대와 저항'이라는 테마로 집회와 행진을 진행했다. 광주민중행동, 인천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 힘 여성활동가모임, 문화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세계화반대 여성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전국학생연대회의 등의 참가단위를 비롯하여 집회에서 발언을 한 말레아 무네스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코디네이터, 라디카 서울경인지역이주노조 조합원, 이간란 여성연맹 청소용역지부 조합원,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2005 빈활실천단 동지들 및 노래를 선보인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 동지들, 지민주 동지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심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7월3일은 진정 가슴벅찬 날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에 맞서는 여성들의 투쟁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리해고가 합법화 된 이후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었던 현대자동차 식당노동자들은 성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현실을 폭로하며,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나섰다.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학습지 교사 등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특수고용직'의 실상을 폭로하고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역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이들을 저임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최저임금제의 허울을 비판하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가족형태의 변화와 더불어 더 이상 가족 내에서 소화되지 않는 간병노동을 수행하면서도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간병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살핌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중요한 쟁점을 제기했다.

신자유주의 농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농사 이외에도 생계를 보충하기 위한 부업에다 가사노동까지 3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농민들 역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선두에 나서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매매 여성들의 시민권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움직임 또한 전개되고 있다.

이렇듯 이 땅의 여성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선 절박한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 여성운동은 어떠한 힘이 되고 있는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현실을 바꾸어 내고자 투쟁해왔고 이 땅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데에 힘이 되었던 여성운동은 그러나 현재, 많은 부분 신자유주의와 공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그 자신의 목숨을 부지시키기 위해 '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IMF 이후로 고개숙인 아버지들을 대신할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그리고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가족해체의 속도를 늦추어줄 완충지로서 여성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여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정책과 '여성인력활용방안'의 추진은 이러한 까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보육시설 이용률을 높여 출산율을 높이고, 신규 여성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보육 등의 돌봄 노동이 으레 여성들의 일자리라는 이유로 손쉬운 일, 가치가 적은 일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의 일자리정책이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여성의 사회진출 전략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임에도 '참여'와'진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결국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여성의 발전을 꾀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자본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를 지연하고자 하는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이지, 결코 여성의 요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여성운동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여성인력활용 및 저출산극복을 위한 양육지원을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만 강화할 뿐이다.

현재 여성운동 진영이 채택하고 있는 성주류화 전략이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그 자신의 위기극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을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공명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를 폐절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행동에 나서고 여성들 간의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제도화된 여성운동이 한정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절대화하며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요구를 집단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7.3 여성행진 집회에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7월 3일의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여성농민, 성매매 여성, 장애 여성, 이주 여성 등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빈곤과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여성들과 적극적인 만남을 진행하고, 그리고 전국 순례를 통해 지역에서 투쟁하는 여성들과 연대활동을 모색하며 이후 전국적인 여성운동 조직화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던 여성행진 활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여성운동을 절실히 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땅의 여성들이 빈곤과 폭력에 맞선 절박한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 여성운동은 어떠한 힘이 되어야 할 것인지,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은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 7월3일의 여성행진이 남긴 과제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실천은 현재진행형이다.

10·17 세계 여성들과의 연대행동으로 나아가자!


세계여성행진은 아직 형성 중인 운동인 동시에, 여성들의 보편적 요구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 역시 지난 오랜 시간 한국사회에서 끈질기게 이어져 왔던 여성해방을 향한 여성대중운동의 성과를 소중히 받아 안아 보편적인 민중의 해방과 분리되지 않는 여성운동의 자율성과 연대를 일구어 나가가기 위한 실천을 모색 중이다.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장애여성, 이주여성, 성매매여성 등 신자유주의가 억압하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자율성이 담보되고 연대가 강화되는 운동은 더없이 필요하다.

자본과 국가에 종속당하지 않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변혁하고자 하는 보편적 해방운동과 분리되지 않는 여성운동의 이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자신들이 속한 노동조합에서, 지역공동체에서, 세계 곳곳의 모든 곳에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도록 여성의 주체화, 조직화가 옹호되어야 한다.

'2005 세계여성행진'의 릴레이 행진이 마무리되는 10월17일에는 국제 연대행동이 약속되어 있다. 2005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한 각국에서 정오에 일제히 공동행동을 진행하면, 결국 10월 17일(이날은 '세계빈곤철폐의 날'이다)에는 24시간동안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세계적으로 울려퍼지게 되는 셈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7월3일 정오 국제 연대행동을 진행한 후 저녁에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간의 연대를 다지는 한마당을 벌일 계획이다. 10·17 세계 여성들과의 연대행동으로 나아가자!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계속되는 투쟁에 연대하자!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계/속/된/다!


(…)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배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까지 행진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여성들,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여성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여성의 힘은 필수적이며, 여성의 요구는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동성애자 …. 다양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함께 투쟁하고 한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 우리는 이 모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5년 10월 17일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이 마무리되는 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24시간 연대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오에 모여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를 실현할 것이다.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반대투쟁,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등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진행되는 장소에서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드높일 것이다. 또한 3월 8일 여성의 날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여성의 연대가 실현되는 날이 될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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