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제안, 정치적 불안감의 반영

주요 현안 정책대안 제시 없는 2006년 예산안 시정연설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의제를 다룰 사회적 협의의 틀로서 경제계, 노동계, 시민단체, 종교계, 농민, 전문가와 정당 등이 참여하는 가칭 '국민대통합연석회의' 구성을 제의한다"고 말했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에서 대신 읽은 '200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 말미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를 통해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주요한 사회문제와 갈등에 대한 대타협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는 이날 낮 오찬을 함께 하며 '국민대통합연석회의'를 오는 12월초 총리실 소속의 국정협의체 성격의 기구로 발족 추진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대통합연석회의는 총리가 주도하고 총리실과 청와대가 통합추진체계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연석회의는 각계 각층 인사 50여 명 내외로 구성, 양극화 문제, 노사 문제, 국민연금 문제 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구로, 또다른 대연정 제안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시정연설은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제안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노무현정권이 추진해온 정책의 지속을 강조하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각 부문 영역의 사회구성원들이 요구해온 구체적인 정책이 일절 반영되지 않은 채 예산운용안 설명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분야와 관련, 도하개발아젠다 협상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ASEAN, 일본, 미국, 중국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경제자유구역 개발 본격화와 동북아 금융과 물류 허브 구축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을 강조했다.

경제자유구역 내 교육, 의료 개방은 이미 봇물이 터진 상황이다.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 국제자유도시에 생길 예정인 외국인학교는 문을 연 이후 5년 동안 국내 학생을 정원의 30%까지 받을 수 있고, 기존의 외국인학교가 그 지역으로 옮겨갈 경우에도 재학생 수의 2% 범위에서 국내 학생을 뽑도록 하는 특별법 시행령이 제출되었다. 학비도 자율적으로 정하되 년간 2000만 원 이상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했던 교육 시장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의료기관 영리법인 허용은 의료비 폭등을 초래하고 의료불평등을 심화시켜 공적 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대부분의 의료단체들이 수차례 경고한 바 있지만 소귀에 경읽기가 따로 없다.

시정연설의 쌀 협상 비준동의안 대목에서는 농민단체들이 농민만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 국가적, 민족적 식량주권 수호와 관련한 문제로 엄청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비준 동의안 처리를 거듭 강조하는데, 거의 협박에 가까운 수준이다. 11일 "쌀협상 국회비준 동의안은 정부-국회-농민-시민-사회단체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 상정되어야 한다"는 노동사회단체의 요구조차 묵살하고 있다.

또한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해 '희망한국21'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26일 발표한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를 다시 들었는데 기존의 생산적복지-참여복지로 이어지는 정책기조에서 조금도 비껴나 있지 않다.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은 사회안전망을 관리하기 위한 한시적 방안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구도 고용없는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책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예산 규모에 있어서도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54조원으로 늘렸다고는 하나 2006년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친 회계예산을 기준으로 실질적인 복지예산을 따져보면 올해보다 불과 1조6891억 원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단계적 확대, 자활사업대상자와 사회적 일자리 확대를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반영되지 않아 양극화 해소 방안이라 하기에는 터무니없다.

비정규법안과 관련한 정부가 "노사관계 법과 제도, 관행이 국제수준에 부합되도록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하고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를 위한 입법과제가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 늘 해왔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노무현정권은 결국 양극화 해소, 노사 문제, 국민연금 등 주요한 현안에 대해 직접적인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앞으로도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노무현정권은 정책적 무능을 감춘 채 장문의 시정연설을 통해 "사회문제와 갈등에 대한 대타협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데, 그 방편으로 '국민대통합연석회의'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대통령 자리도 내놓을 수 있다"던 대연정이 해프닝으로 물건너간 지금,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제안은 사회모순과 정치위기의 심화 전망에 따른 정권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연정의 연장인가 아닌가, 연정의 방향 선회인가 아닌가,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 무엇인가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국민대통합연석회의가 실제 추진되는 과정은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나, 예상컨대 원로와 시민단체를 총동원해서 상층 여론기구로 활용하는 수준이거나, 이미 활동중인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를 확대 재편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2006년 정책 방향이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유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강조되는 한 사회문제와 갈등은 계속될 것이고, 사회적 빈곤과 노동유연화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반발과 저항은 여러 수준에서 불거질 것이다. 이렇게 정치위기가 가속화될수록 이미 이탈된 대부분의 지지세력을 다시 결집시키는 것도 요원할 것이다. 집권후반기에 접어든 노무현정권, 사회모순의 심화에 따른 정치위기의 돌파구가 좀처럼 가시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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