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사립학교법 개정, 지체 없이 실현되어야 한다

개정 반대 정치인, 관료, 사학재단 관계자는 위선과 독선을 버려라

요즘 여의도에서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고, 여야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하여 처리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잡혀 있다. 한편에서는 진보적인 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농성과 시위를 벌이며 법률개정을 관철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법률 개정을 저지하려고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립학교법은 어떤 것이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세력 관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립학교법은 1963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국공립학교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사립학교에 적용되는 법률이 필요했던 것이다.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모든 학교가 같지만 국공립학교는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돈을 들인 학교이고 사립학교는 개인이 돈을 들인 학교라는 점에서 다르다. 사립학교를 세울 때는 개인이 돈을 내놓아 ‘학교 법인(=재단)’을 등록하여 그 법인(=재단)의 돈으로 ‘학교’를 세우고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와 학교법인의 관계를 맺으며 운영된다. 그래서 사립학교법에서 늘 중요한 문제가 되어 온 것이 ‘학교법인’의 권한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를 세운 사람 쪽에서는 학교법인이 가능한 많은 권한을 가지고 학교 운영에 관여하려 하였고, 학교의 구성원인 교원, 학생, 직원은 법인이 학교일에 너무 간섭하여 교육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에 대항하여 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립학교법 개정이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놓고 입장이 대립하여 왔는데, 대부분의 경우 사학재단의 입장이 반영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학교법인을 대표하는 이사장이 학교를 마치 사유물 다루듯이 멋대로 운영하면서 비리를 저지르고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려 교육활동을 위축시켜 왔다. 현재 사립학교법 개정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사학재단 관계자들은 현재처럼 법인의 권한을 유지하거나 더 확대하려 하고, 교육주체들은 학교와 학교법인이 균형 있는 관계를 이루어서 교육활동이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수행되도록 법을 개정하기 바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그 현상만 놓고 볼 때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사이에 일어나는 권한 다툼 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알고 나면 매우 중요한 교육적 문제와 사회구조의 문제가 들어 있다.

어느 쪽의 입장이 반영되든 교육 자체에는 큰 영향이 없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크게 관심 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사립학교의 구조적 문제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이 없다면 당사자 이외의 사회인이나 국민이 크게 관심 둘 사안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싸움의 중심에는 사회적 정의와 교육의 진보에 관한 중대한 문제들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의 구조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엇갈려 있고, 교육의 진보에 대한 이념적 방향타가 엇물려 있으며, 참과 거짓의 담론이 숨바꼭질 하고 있다.

한 나라의 학교 교육은 나라 전체의 공익을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교를 국가가 세워서 운영하는 것이 옳겠지만 사정에 따라 뜻 있는 개인들이 돈을 들여 학교를 세우고 지원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을 덜어 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 ‘사립학교’라는 것이 존재한다.

모든 학교는 사립이든 국공립이든 국가사회의 공익을 위해 교육활동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따라서 사립학교와 국공립학교는 설립 주체가 서로 다르더라도 그 기능은 모두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 점을 소홀히 하면서 사립학교를 사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라의 교육이 엄청난 부조리에 시달려 왔다.

사학재단 관계자들 대다수는 개인의 재산을 들여 학교를 세웠으므로 학교는 사유재산이나 다름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마치 개인 업체의 사장이 사업을 결정하고 직원을 뽑으며 그의 보수를 결정하고 해고하듯이 학교법인 이사장이 학교의 모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이 돈을 들여 학교를 설립할 때에도 그 목적과 동기는 영리를 위한 사업체의 설립 목적이나 동기와 달라야 한다. 국가가 모두 감당하지 못하는 교육의 일부를 헌신적으로 분담하거나 사회적으로 획득한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며 봉사한다는 정신에 기초해야 한다.

‘교육’이라는 것이 국가사회의 공적인 행위인 만큼 그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일단 설립되어 법률적으로 인가를 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공공의 재산이 되고 공적인 질서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사립학교일지라도 공적인 필요에 따라 정부의 예산이 지원되기도 하고 공공의 요건을 갖춘 사람이라야 교원이 될 수 있으며 공공의 조건에 맞는 단계를 밟아야 정규 학생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학교’는 사설 학원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흔히 일반인들이 그냥 ‘학교’라고 한마디로 뭉뚱그려서 부르는 곳에 두 가지의 기관을 분리해서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원래의 의미대로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학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학교법인’이다. ‘학교’는 교원, 학생, 직원 등이 구성원을 이루면서 학교장이 그들을 대표하고, ‘학교법인’은 이사회의 이사와 직원이 그 구성원을 이루면서 이사장이 그들을 대표한다. 학교의 사명은 교육활동을 창조적으로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고, 학교법인의 사명은 수익활동을 통하여 재정을 최대한으로 확보하여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가 교육활동을 소홀히 하거나 본래의 기능을 넘어 법인의 활동을 방해한다면 주어진 사명을 어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법인이 자체의 수익활동을 통해 학교를 지원하는 일에 충실하지 않고, 오히려 학교 일에 개입하여 좌지우지하거나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빼내어 유용하는 식으로 개인적 이익을 취한다면 본래의 기능에 역행하여 국가사회의 교육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와 학교법인은 서로 독립적이면서 좋은 일은 서로 돕고 잘못하는 일은 서로 감시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국가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 공적으로 잘 이루어지기 위하여 교육활동을 맡은 학교의 운영은 학교장을 중심으로 교원, 학생, 직원 등 교육주체들이 자율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교수(협의)회, 교사회, 학생회, 직원회, 학부모회 등의 자치 기구를 두는 것이 좋다. 또한, 그런 자치기구의 대표들이 모여서 학교 전체의 대표로서 학교장을 선출하고 학교에 관한 일 전반을 논의하기 위해 운영위원회 또는 평의회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와 ‘학교법인’의 협력과 감시 기능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적절한 정도로 서로 교차하여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학교법인 관계자가 학교 운영위원회 또는 평의회에 참여하고, 학교 구성원이 법인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공익이사를 추천하여 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개방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다.

이러한 사항들이 일찍부터 사립학교법에 반영되어 시행되었어야 하지만, 교육주체들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은 교육주체들의 사기를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온갖 부조리를 양산하여 이 나라 교육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1963년에 제정된 뒤로 독재정권의 횡포, 국회의원들의 부패, 정부 관료들의 비리, 사학재단의 이해관계 등이 야합하면서 매번 개악을 해 왔다. 그렇게 수많은 굴곡을 거쳐서 사립학교법은 현재 한국의 대표적 악법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가끔은 개정안에 좋은 내용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의 흐름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하여 교육이 잘 되기 위해 있어야 할 법이 오히려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옥죄며 교육의 진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보거나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의 위상에 비추어 볼 때, 일그러진 사립학교법은 더 이상 구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체 없이 개정되어야 한다. 올바른 법 개정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그 만큼 우리의 교육과 교육주체들이 멍들고 신음한다.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방해하는 세력은 이 나라의 교육이 진보하는 길을 가로 막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겉으로는 교육의 발전을 외치면서도 막상 발전적 교육제도를 위하여 합리적 법률개정을 추진하는 교육주체들의 노력을 외면하거나 방해해 온 정치인, 관료, 사학재단 관계자들은 이제 더 이상 위선과 독선을 버리고 법률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동안 왜곡된 상황 때문에 교육주체들의 민주적 교육활동을 억압하며 모든 권한을 학교법인에게 집중시켰던 법률체계를 개정하여 학사, 재정, 인사 등 학교의 모든 의사결정은 학교구성원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한다.

지극히 타당한 내용을 사립학교법에 담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학재단 관계자들과 그의 비호세력들은 온갖 모순된 논리로 반대하며 방해하고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교육발전을 역설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기득권과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야욕만 챙기는 반교육적 반개혁적 반사회적 인사들은 각성하고 이제라도 법률개정에 동참해야 한다.

관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학재단을 비호해 온 교육부가 과거의 관행을 빨리 벗어나야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교육현장에서 가장 많은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 온 사학재단의 구조적 개혁에 대하여 일체의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면서 오히려 온정적이거나 야합적인 태도를 취해 온 교육 관료들의 모순은 하루 빨리 퇴치되어야 한다. 또한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면서 교육주체들을 개혁의 주체로서 이끌지 않고 개혁의 객체로서만 인식하는 교육부야 말로 개혁의 가나다를 모르는 제1차 개혁 대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교육주체들의 책무에 상응하는 자율성을 확대하여 자발적으로 교육의 혁신에 동참하는 동력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교육부는 그 동안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하여 취해 왔던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합리적 법제도 추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교육은 걱정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따지며 교육관계법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수구 정치인들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의와 정의를 저버리고 불법적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온갖 모험을 무릅쓰며 사학재단의 이해를 대변하던 구태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 반역사적 수구 정치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그러한 행태는 교육주체들과 대다수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며 스스로 정치적 무덤을 파는 함정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개혁적 정당, 개혁적 정치인을 자임하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면서도 상황 논리를 앞세워 그 추진을 지연시키고 있는 정당과 정치인들도 지탄 받아야 한다.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말로만 악법 개정을 내 세우면서 실천을 회피하는 정치인은 여론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민과 교육주체들을 우롱한다면 치명적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정론에 따라 즉각 사립학교법 개정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국회의장은 정치적 입지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계산하기에 앞서 국민이 부여한 입법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대국민 약속을 수차례나 어기며 신뢰를 떨어트린 국회가 이번에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피해간다면 그 최종 책임은 국회의장에게 있는 것이다. 번번히 정치적 도피의 구실이 되어 온 여야합의 명분을 벗어나 그 동안 공언해 온 바와 같이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사립학교법을 직권 상정하여 처리해야 한다. 교육주체들과 대다수 국민이 하나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안에 대하여 애매한 태도를 취할 때는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주경복 님은 참세상 편집위원장으로, 민교협 공동대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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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평

    사립학교법이 교육을 돕지 않고 옥죈다는 주경복 편집위원장님 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립학교법은 즉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 김주평

    사립학교법이 교육을 돕지 않고 옥죈다는 주경복 편집위원장님 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립학교법은 즉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 박원주

    이번엔 정말 사학법이 개정돼야 하는데...요즘 강정구 교수 문제가 너무 뜨거워서 혹시 묻혀질까 걱정이네요. 꼭 관철해야 할텐데...

  • 박원주

    이번엔 정말 사학법이 개정돼야 하는데...요즘 강정구 교수 문제가 너무 뜨거워서 혹시 묻혀질까 걱정이네요. 꼭 관철해야 할텐데...

  • 이홍원

    국회의장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 하지 않고 다음달 국회로 미루는 모양인데...이거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 이홍원

    국회의장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직권상정 하지 않고 다음달 국회로 미루는 모양인데...이거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 에그

    사립학교법 개정이 이번에도 안되고...언제나 실현될지...

  • 에그

    사립학교법 개정이 이번에도 안되고...언제나 실현될지...

  • 쯧쯧

    우리당 출신 국회의장이 이 나라 교육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걱정해 본 적이 있는지...이젠 여당에 대한 미련 버리고 대변혁 투쟁을 전면적으로 벌여야 하지 않겠어요?

  • 쯧쯧

    우리당 출신 국회의장이 이 나라 교육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걱정해 본 적이 있는지...이젠 여당에 대한 미련 버리고 대변혁 투쟁을 전면적으로 벌여야 하지 않겠어요?

  • 사학인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먹고 입법활동 할건 안 하는 사람들 쫓아 내고 진짜 일하는 사람들 국회의원 시킵시다~

  • 사학인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먹고 입법활동 할건 안 하는 사람들 쫓아 내고 진짜 일하는 사람들 국회의원 시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