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의 새로운 국가 건설 전략"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4) - 일본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고이즈미 총리가 17일 빗속에 다시 야스쿠니를 참배하였다. 5년 연속 참배이며, 선거 승리의 기분이 남아있는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도 아니고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한국의 일반시민들 의식 속에 당연한 것처럼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한일정상회담을 연기 운운하는 등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불만의 표현이 일본의 현재의 방향성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야스쿠니에 가는가 가지 않는가라기 보다는 야스쿠니 라는 곳이 어떤 곳이고, 야스쿠니는 무엇을 해왔고, 또 야스쿠니는 왜 아직도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국립추모시설로 대체하라, 전범A급을 분리하라 라는 말 등은 야스쿠니신사의 근본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야스쿠니는 메이지 천황제가 존재할 때부터 존재해왔고, 전후 일본이 패망 이후에도 천황제는 상징천황으로 야스쿠니는 정교분리의 기만적인 원칙으로 그대로 유지해왔다. 이는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이 왜 이중적인 역사관이 되었는가를 이해하게 해 준다.

야스쿠니는 쉽게 말하면, 국가를 위해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곳이다. 메이지국가 이후 천황제가 등장하여 천황을 위해 죽은 영혼들을 초혼제라고 하여 제례를 지어왔으며, 천황과 야스쿠니는 이것을 [국체]라는 이름으로 유지해왔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가미가제특공대들이 천황을 위하여 유서를 남기고 죽은 것은 이들의 죽음이 미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죽음이 전쟁을 멈추게 할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죽은 것도 아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전쟁과 평화와는 거리가 먼 천황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수령결사옹위정신][총폭정신]이다.

일부 크리스챤들이 야스쿠니에서 자신들의 아들이나 남편의 합사를 분리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야스쿠니는 그것을 거부한다. 헌법재판소도 야스쿠니의 합사원칙에서 보는 한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한다. 왜냐하면 야스쿠니는 국가를 위해서 죽은 영혼을 제사지내는 곳이고, 죽은 병사는 강제적으로 자동적으로 야스쿠니에 합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없다. 합사될 선택권도 분사시킬 선택권도 가족에게 없다. 만약 한 병사의 영혼을 분사시킨다는 것은 야스쿠니 전체의 존재방식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야스쿠니에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으로서 싸운 사람들, 또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인 전범으로서 사형을 당한 영혼들이 있다.

이들은 야스쿠니에 있는 한 후손들은 친일파의 불명예를 떨쳐버릴 수 없으며, 유가족들은 야스쿠니에서 분사시켜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야스쿠니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단 하나의 영혼의 분사는 야스쿠니의 기본이념을 해치고 야스쿠니 만이 아니라 소위 [국체]라는 것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일본이 패전에 직면하여 천황제와 야스쿠니를 남기기 위하여 연합군과 수많은 협상을 한 이유는 바로 이 [국체]를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천황제와 야스쿠니는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이는 천황제의 폐지없이 야스쿠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황을 위해서 죽은 병사들, 또는 자신이 정말로 천황을 위해서 죽었다고 볼 수 없는 증명되지 않은 수많은 영혼들까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천황을 위해서 죽은 영혼으로 인정되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있다. 유가족 중에서 자신의 형은 동생은 남편은 절대 천황를 위해서 죽을 사람이 아니다 라고 분사를 요구한다. 이들을 평화유가족회라고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혼의 구원은 일본의 [국체]개념으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천황을 위해서 죽은 영혼들이 있기에, 전후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원칙으로 야스쿠니는 일반종교단체가 되었으나 천황은 이곳을 전범들이 합사되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자신을 위해서 죽은 병사들의 혼을 제사지내는 곳에 천황이 없는 것은 야스쿠니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범이 합사된 이후 지금은 아시아 국가의 반발을 고려하여 천황이 방문하지 않고 있지만, 단지 중단되어있을 뿐이다. 천황의 가족들은 매년 봄과 가을 대제에 참여하고있다. [황족이 내리는 곳]이라는 푯말이 야스쿠니에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처럼 천황은 참배를 못하더라도 야스쿠니 입장에서는 일본의 총리의 공식참배는 최소한 필요하였다. 일본총리를 야스쿠니 참배를 시키기 위하여 일본의 우익들은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고, 특히 보수우파를 대표하여 마침내 나카소네가 공식적으로 참배를 하였다. 하지만, 그는 한번의 방문으로 아시아 각국으로 부터 격한 반발을 샀다. 나카소네는 야스쿠니라는 곳을 일본인의 맥락속에서 이해하고 방문했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그렇게까지 분노할 줄을 몰랐다. 역사공부를 했다. 그랬더니 야스쿠니는 아시아 각 국에서는 침략전쟁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는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 역사인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된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그것과는 달랐다. 그는 역사인식에서는 야스쿠니를 방문하지 않았다. 수상이 되기전에 한번도 야스쿠니를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을 반영한다. 그런데 왜 고이즈미는 수상이 되고나서 야스쿠니를 매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제 야스쿠니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하나의 전략적인 측면에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새로운 국가건설 전략이라는 것은 간단히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전쟁에 참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론, 말이 보통국가이지 침략국가를 의미한다. 둘째는 글로발리즘의 세계적 흐름에 뛰어들 수 있는 전통적인 상업적 리더국가론이다. 최근의 유행하는 말을 붙이자면 신자유주의 국가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는 현재 일본에서 유사법안, 자위대파병법안 등과 관련되어있다. 보통국가의 시대라는 것은 자위대가 헌법에 [자위군]으로 이름이 명시되고, 미국이 원하는 전쟁에 영국처럼 자유롭게 집단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말이 집단자위권이지 선제공격을 하는 미국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국가의 권력을 갖는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국가가 전쟁을 하게되면 필요하는 것이 몇가지 있다.

1)공교육장에서 전쟁에 대한 지지, 동원, 피난처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2)지방자치단체에서 전쟁참여의 물류유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3)죽은 병사들을 묻을 수 있는 국가적 시설이 필요하다.

1)을 위해서 보수우익은 소위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있다. 국기/국가를 제정하였으며, 이를 각 교육현장에 강요하고있다. 일교조가 있어서 이것들을 저지당했던 우익들은 일교조를 약화시키고, 이들을 해고하면서 교육현장에서 이런 교육기본법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하나둘씩 제거해왔다.

2)를 위해서 일본은 지방자치법과 노동법을 개정하고 있다. 항공노조, 항운노조,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전쟁물자운송에 협력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된다.

3)을 위해서 야스쿠니신사를 국가적 시설로 다시 바로 세우고자 한다. 역사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전략의 가장 필요한 시설로 야스쿠니를 다시 등장시킬 필요가 있으며, 수상이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국체]로서의 야스쿠니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인기가 있는 고이즈미가 야스쿠니에 가는 것은 [감개무량]할 뿐이다. 특히 유사법안으로 혹시 이라크 등 지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일본 병사들을 야스쿠니에 묻지 않으면 야스쿠니는 다시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이들이 서두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둘째는 고이즈미는 신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정확히 말하자면 극우도 아니고 친미주의자도아니다. 고이즈미는 명확히 민영화노선을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자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구조조정이라는 말대신 [구조개혁]이라는 단어를 쓴다.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은 의미가 너무나 다르다. 우정민영화는 내용적으로 반민중적이고 반개혁적인 조치이지만, 고이즈미는 [우정 민영화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국민투표]권이 없는 국민들에게 국민투표라고 주장하였다.

개혁인가 반개혁인가. 단순한 질문에 실제 다수의 국민들은 민영화반대의 투표행위를 하였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에서 실제 당선자수는 고이즈미측이 일방적으로 많았다. 소선구제도의 모순이지만, 그는 이런 선거제도를 전략적으로 잘 이용한 것이다. 각 선거구마다 20만표를 가지고 있는 공명당을 껴안으면서 각 지역에서 대부분 4-5만 표차로 자민당후보가 당선되것이다. 부시, 고이즈미, 노무현...이들의 공통점은 선거에서 살아남았다, 말을 단순하게 한다(대통령 못해 먹겠다), 진정한 개혁보다는 선거전술에 능하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는 다수의 침묵을 낳고 말았다. 진보적인 양심의 침묵의 나선이 최고의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다.

고이즈미가 친미주의만을 내세운다면 국제연합에 적극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미일동맹조약만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져가는 국제연합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국제연합에 들어가서 일본의 국가주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쉽게 말하면 야스쿠니를 들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이 원하는 전쟁에 참여만 해주는 일본이라면 국제연합의 이사가 되는 것에, 야스쿠니를 갖는 것에, 헌법9조를 폐기하는 것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조건들이 안 갖추어져 일본이 미국의 전쟁에 대한 지원이 안되고,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과 멀어지는 이유라면, 미국은 일본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지원해 줄 태세가 되어있다. 일본이 국제연합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글로발리즘시대의 신자유주의자로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지지하는 것은 미패권주의가 아닌 일본의 영향력의 확대이다. 이것이 일본이 주장하는 국제연합개혁론의 본질이다.

현재 일본의 보수우익은 새로운 전략으로 나서고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전략이 없는 일본의 극우보수주의자들이 국가적 전략을 갖게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보수우익의 전략적인 기획이 시작된 것은 94년 무라야마 사회당정권과의 연합정권으로 등장했을 때이다. 93년 호소카와정권의 신당의 바람속에서 자민당은 55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하였고, 일본의 소위 55년체제가 붕괴하였다. 언론은 연일 호소카와를 추켜세웠으며 자민당은 참패하였다. 하지만 자민당은 야당으로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0년간 단 한 번도 야당의 경험이 없는 당으로서는 당연하였다.

결국 자민당은 당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였고, 결국 사회당을 선택해서 당수를 주면서까지 다시 정권에 복귀하였다.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종군위안부에게 사죄를 하였던 호소카와 내각을 사회당이 자민당과 손을 잡고 타도한 것이다. 사회당의 이때의 뼈아픈 전략적 실패는 이후 일본의 전후 모든 운동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자민당의 우익들은 이렇게 살아남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두 번 다시는 권력을 뺏기지 않겠다는 각성을 하였다.

94년 이들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자민당은 먼저 전후 50년 역사를 총괄하는 팀을 만들었고, 이들은 [자학적인] 좌파의 역사관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보수의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이들의 역사의 총괄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고,현재 문제되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 팀이 당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교육현장의 일교조를 철저히 박살낼 전략이 필요하였으며, 일본국가의 국체를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한나라당이 [구국운동을 하겠다]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이들은 야스쿠니를 다시 세우기 시작하였다.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언론을 근본적으로 해체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진보적인 저널리스트들을 다 지방으로 보내버리거나 주요 포스트에서 해고시켰다. 다시는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우익의 전략은 자민당 내부에서도 내부의 온건 보수파들을 잘라내는 역할을 하였다. 결국 덜 온건파인 모리파를 중심으로 전통 보수파들을 다 내몰았다. 또한 모리보다 더 효과가 있는 고이즈미를 등용시켰다.

우정민영화를 통해 전통적인 보수들은 다 백기를 들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자와 극우만세력만이 자민당에 남아있고, 이들이 새로운 일본의 신세력들로 등장하고 있다. 만화영화 건담의 [뉴타이프]인것이다. 전후 50년 사회운동의 도덕성과 역사성을 망각한 사회당의 권력욕이 전후 일본의 모든 민주주의의 축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이당수가 남은 [도이의 아이들]을 모아 다시 사민당을 만들었지만 이미 세상은 이들을 외면하였다. 한번의 선택의 실패가 일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와다하루키 선생은 이 사회당 전략론에 참여한 일원이었지만, 그는 이러한 역사인식의 패배를 아직껏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 기간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운동의 역사가 그의 편이 아니었던지, 그의 운동의 역사가 잘못되었던지 둘중의 하나인것 같다.

정당의 전략적 선택의 방식에 있어서 일본사회당의 경험은 한국의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이즈미를 좀더 전략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역사적 감정만 가지고 일본을 접근하는 것은 이제 진보운동의 정세분석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보수우익이 이러한 전략적인 행보를 하는 상황속에서 한일민중연대와 진보적인 시민연대는 어느 시기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필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성에 관심을 갖고 일본내의 진보적 사회단체의 생존과 저항의 몸부림을 모른 채 해서는 안 된다. 70년대, 80년대 일본의 사회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희생을 하며 연대해왔다. 이제 우리가 그 빚을 돌려줄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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