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투쟁과 혁신, 반자본운동으로 확장해야

2005 노동자대회, 민주노조운동 만의 투쟁과 혁신 고민 넘어서자

어김없이 노동자대회를 맞았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이번 전국노동자대회 기조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쟁취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에 따른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단결 투쟁의 기운을 좀처럼 살려내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하반기 투쟁과 혁신 과제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소중한 실천들이다. 우선 전야제에 '투쟁과 혁신을 위한 전국활동가대회'가 열린다. 전국활동가대회 준비 주체들은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11월 투쟁을 일구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과제를 제기한다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준)'도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4대 요구안'을 제시하는 등 실천에 나섰다. 민주노동당도 보궐 선거 이후 만들어진 냉랭한 분위기와 관계없이 11월 24일부터 국회 농성과 단식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단위 노조, 현장조직, 각 지역본부 차원에서도 11월 비정규개악안 저지를 위한 각각의 형편에 알맞는 실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 노동자대회를 맞는 노동자에 있어 전태일 정신 계승의 의미를 압축하자면 역시 11월 비정규개악안 저지 투쟁과 비리 충격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운동을 혁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진행되어온 노동운동 위기 논쟁과 최근 노동운동의 실천 양상을 볼 때 누구나 인지하고 있듯이 '투쟁'과 '혁신' 과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거니와 당위적으로 받아들일 문제도 아니다.

오늘날 초국적자본과 노무현정권은 완전한 시장주의 실현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집권 초반부터 지금까지 WTO 개방과 FTA에 적극적으로 임해왔고, 초국적자본 운동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적 조치와 강력한 노동유연화 정책을 펼쳐왔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중운동은 지배세력의 법제화 시도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고, 노동유연화 공세에 수세의 위치에서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자본과 노무현정권은 지금도 민주노조운동과 민중운동이 약화된 틈을 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가속을 더하고 있다. 부산 아펙은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까지 무역 및 투자자유화 실현을 담은 보고르 선언 실현을 앞당기는 초국적자본의 협력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을 추동하는 역할은 기본으로 깔고 있다. 로드맵과 비정규법개악은 노동유연화의 마지막 법제적 조치이다. 때문에 노동자 자신의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구성원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쌀비준 동의안, 제주특별자치도법, 교원평가제, 공세적인 대북정책 추진 따위도 모두 완전한 시장주의 형성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덧 사회구성원들은 자본의 기획과 자본운동에 자신의 모든 삶을 노출하는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구성원의 목까지 차 오른 사회적 빈곤 문제는 자본운동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한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펼쳐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판명되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가치는 상품으로 둔갑하고, 사회구성원의 모든 삶이 자본으로부터 직접적인 규정을 받는다.

민주노조운동이 겪는 문제를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로 묶어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은 지능적이고 전방위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운동을 관리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은 지금까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체제 내부로 깊숙이 편입되고 말았다.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일은 수백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이수봉 대변인은 민주노총 중집에서 27개의 비리 사실을 수집했다고 발언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본과 정권은 앞으로 곶감 빼먹듯 써먹을 것이다. 관료주의로 휘청대는 대공장노조운동도 마찬가지 맥락이며, 이수일 전교조 집행부가 조합원의 높은 투표율과 찬성율에도 불구하고 코앞에 닥친 교원평가제 투쟁을 접어버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보궐선거 패배가 시사하는 바도 크다. 민주노총은 지난 10년간 산별과 정치세력화를 위해 싸워왔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주체들은 8만 당원의 진보정당을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왔다. 물론 보궐 선거 패배를 두고 진보정당의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조직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기능은 당의 위상 논란과 관계없이 정체, 마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일 진보정치연구소가 주최한 '위기의 민주노동당'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의 위기에 대한 여러 진단과 논쟁이 있었지만, 자본으로부터 공격받는 노동자와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어떠한 정치적 전망도 제시하지 못해왔다는 지적에는 크게 이견이 없었다.

당장 투쟁이라면 11월 비정규개악안을 저지하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비정규개악안을 막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10년을 맞는 노동자대회인만큼 지난 10년을,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보는 투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되물어야만 한다. 비정규개악안을 저지하는 것이 그러하듯이, 특수고용직과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것, 쌀비준동의안을 저지하는 것, 교원평가제를 막아내는 것, 아펙에 반대하고 WTO에 맞서 싸우는 것 모두가 자본의 기획에 맞서는 투쟁과 저항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회구성원의 모든 저항을 반자본 운동의 큰 맥락과 흐름으로 모아내기 위한 고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제국주의 횡포와 초국적자본의 세계화 흐름에 맞서는 장기적인 정치 기획을 동반한 투쟁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혁신' 과제 역시 이념, 조직, 정치활동의 혁신 등 노동조합운동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 전체의 혁신 과제로 확장해서 살펴야 한다. 11월 투쟁을 혁신과 분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선거를 의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라는 논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논쟁일 수 있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정치운동의 혁신과 함께 사고하는 것에 있다. 주지하듯 민주노조운동 만의 혁신으로 자주성, 연대성, 투쟁성의 복원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자본 운동 자체와 싸우는 반자본 운동의 새로운 실현 경로를 고민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정치운동 전반에 혁신을 제기해야 한다. 반자본 운동의 새로운 구상 없이 기존 정치운동 구조와 방식이 온존되는 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란 구호와 선언에 머무를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비대위가 2005년 노동자대회의 기조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비정규 권리보장입법 쟁취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등 세 가지를 내건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문제는 실행이다. 노동자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조합원과 운동 주체들은 이를 그저 상투적인 슬로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의 공간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 고민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로서 훗날 우리 사회 반자본 운동의 새로운 동기를 부여한 2005년 노동자대회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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