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과 빈곤, 한국 정부의 빈민 탄압(1)

[부산국제민중포럼] - 빈민 생존권 밟고 올라서라, 아펙!

그는 남대문 지하도에 이불을 숨겼다..

“새벽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물품보관함에 이불을 보관하고, 일당 막노동 일을 나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물품보관함에 있던 이불이 없어졌다. 이불만 잃어버렸으니 다행이지 가방까지 잃어버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당장 이불이 없어 청계천에서 3천원 주고 이불을 하나 사서 그 다음 날 부터는 남대문 지하도 인근에 이불을 숨겨두고, 저녁에만 꺼내서 덮고 자고 있다”

얼핏 들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대충 추측해보면 화자는 노숙인인 듯 하다. 그런데 ‘왜 이불이 없어졌는지’, ‘왜 이불을 남대문 지하도에 숨겨두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물품보관함에 들어있던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 입고 있던 옷 한 벌 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짐 잃어버린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지만, 국제행사 때 마다 노숙인에게 가해지는 이런 일들이 너무 싫다”

최근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국제행사라고 하면 아펙. 그 아펙을 잘 치루기 위해 노숙인들의 생활용품을 압수한다?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최근 경찰청은 아펙 정상회의에 따른 대테러 대책의 일환으로 공공역사에 설치된 물품보관함을 패쇄했다. 물품보관함이 폭발물 테러에 취약하다는 게 이유가 됐다.

“아펙,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폭력의 이름으로”

  송주상 노숙당사자모임 대표
16일 부산대 학생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부산국제민중포럼 둘 째 날 행사의 일환으로 ‘아펙과 빈곤, 한국정부의 빈민 탄압’ 이라는 주제의 워크샵이 열렸다. 이날 워크샵에서는 이번 아펙 정상회의로 빌미로 자행되고 있는 빈민에 대한 정부의 인권침해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날 워크샵에서 ‘지하철 물품보관함 운영중단 조치로 인한 노숙동료들의 고통’이라는 발제를 한 송주상 노숙당사자모임 대표는 “10월 25일 0시를 기해 전국의 지하철과 철도역사 내에 있는 물품보관함이 보안상 취약지구이기 때문에 아펙 기간 동안 테러에 대비해서 한 달 간 운영이 중단되었다”며 “사전공지가 거의 없다시피 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번 조치로 평소 물품보관함에 주요 물품을 보관해 오던 노숙동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물품보관함의 경우 자신이 벌어들이는 소득으로는 도저히 안정된 주거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거리노숙을 감행해야 하는 노숙동료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주요 물품을 보관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며 이번 물품보관함 패쇄 조치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수인들 삶의 조건을 설명했다.

송주상 대표는 이번 경찰의 조치에 대해 “아펙과 같은 국제행사는 우리 노숙동료들에게는 당장 하루하루의 생활조차도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조치들이 취해지기 때문에 불평등과 차별, 폭력의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이라며 “항상 국제행사 때마다 노숙인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는 격리정책이자 통제정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펙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송주상 대표는 “아펙과 같은 국제행사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천문학적인 돈 잔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고 싶을 뿐”이라며 “그들의 성장과 그들의 잔치는 누군가의 희생과 피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이번 아펙 정상회의 반대투쟁에 함께 할 뜻을 밝혔다.


도시 미관 해치는 당신, 아펙 위해 떠나라

이날 워크샵에서는 노숙인과 함께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빈민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사례 발표도 있었다. 최인기 전국빈민연합 사무처장은 ‘APEC 등 국제행사를 이유로 한 한국정부의 빈민탄압’ 사례 발표에서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도시빈민에 대한 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며 “국제행사가 있을 때 마다 도시빈민은 항상 탄압의 타겟이 되었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미 올 3월 아펙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회원국 정상, 정부대표, 기업인 등 국내외 방문객 및 관광객들에게 깨끗하고 다시 찾고 싶은 ‘성숙한 세계도시 부산’의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점상·노점적치물 정비계획을 수립,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부산시는 이 계획에 따라 부산진구 인근 서면일대에서 미관상의 이유를 들어 노점상 440여 개를 강제철거하려 했다. 그러나 노점상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스스로 아펙기간 동안 일제히 휴업을 하는 것으로 철거를 면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최인기 사무처장은 “언론에서는 마치 노점상들이 자발적으로 아펙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자발적으로 장사를 안 하는 것 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노점상들은 아펙 개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계의 터전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민 생존권 밟고 올라서라, 아펙!

노점상 뿐만 아니라 부산시는 도시빈민가에 대한 ‘환경정비 작업’도 진행했다. 부산시는 각국 정상들이 이동하는 해운대 동백섬 진입로 부근 ‘슬래브촌’과 ‘판자촌’ 등 빈민촌에 공사용 가림막 등을 설치했다. 또 부산시는 아펙 기간 동안 해운대 15곳 건설현장에 10일간 작업을 전면 중지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인기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한 공사 현장마다 최소 150명에서 최대 700여 명 까지 일한다고 볼 때 10일 동안 공사가 중단되면 연인원으로 최소 3만 명에서 7만 명을 실업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시는 이번 아펙 개최에 따라 6천 명 정도의 취업유발 효과가 생긴다고 선전하고 있다”며 “그러나 그 이면에는 노점상, 일용노동자, 철거민 수 만 명의 생존권이 이 시간에도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잘 알려진 대로 이번 부산 아펙의 표어는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 또 ‘도전’은 어떤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공동체에는 노숙인, 철거민, 노점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또 그 도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도전’ 때문에 이불을 빼앗기고, 3천 원 주고 다시 산 이불을 또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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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 , 노숙인 , 전국노점상연합 , apec , 부산국제민중포럼 ,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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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몇 년 전 세계기아현상의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가 있었는데 그 회의에 쓰이고 남은 음식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기아아동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 나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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