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11월 18일 부산을 저항의 도시로

정용품, 오추옥 두 농민열사가 부활하는 날

18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1차 아펙정상회의가 부산전시컨벤션센터 벡스코(BEXCO)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1차 정상회의는 '무역자유화의 진전'이라는 의제로 WTO DDA 지원, 보고르 목표 달성 노력, FTA 및 RTA(지역무역협정) 확산과 대응, 경제 협력 및 양극화 해소 방안 따위를 논의한다.

19일 오전 2차 정상회의는 '안전하고 투명한 아태지역'을 의제로 누리마루 아펙하우스에서 열린다. 이날은 대테러 대응, 조류독감 등 이동성 전염병 공동 대응, 재난 공동 대응, 에너지 안보, 반부패를 위한 협력 방안 따위를 논의한다.

아펙 회원국 정상들은 첫날에는 ‘천년약속’을 벗삼아 건배를 하고, 둘째 날에는 한국 전통의상인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촬영을 하게 된다. 정상들은 기념촬영과 함께 자유무역 숭배 내용으로 빼곡한 특별성명을 채택하고, ‘부산로드맵’을 승인한다. 부산로드맵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등 다자무역체제 지원 △회원국들의 개별행동계획 강화 △높은 수준의 지역무역협정(RTA)와 자유무역협정(FTA) 추구 △무역원활화 및 기업 투자 환경 개선 △전략적 능력배양 추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서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무역주의, 시장주의의 화신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1월 18일은 자유무역주의, 시장주의를 기념하는 또 하나의 기념일로 기억될 것이다. 이날은 지난 6월 3일 제주에 모인 21개국 통상장관회의에서 합의한 내용 대부분이 확인되는 날이기도 하다. 6월 3일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발표된 내용이 벡스코로, 누리마루로 자리만 옮긴 채 다시 선언된다. 제주에서 발표된 제주선언문은 몰락하는 다자협상의 끝자락을 붙잡고 안절부절하던 미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에게 한 줄기 서광을 비춰주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아펙특별성명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8만발의 불꽃과 함께 화려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토록 정부와 관료들과 지배자들이 아펙 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이 땅에서 한평생 흙을 만지고 살아왔던 농민 두 명이 목숨을 끊었다.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해 음독했던 오추옥 씨가 17일 끝내 숨졌다. 정용품 씨가 11일 목숨을 끊은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었다. ‘수입개방 반대한다, 우리 농민 다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운명을 달리 했다. 두 농민의 죽음은 농민 전체의 죽음이다. 명백히 '다자무역체제 지원'과,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과, 그리고 '무역원활화'를 시도하는 아펙이 두 농민을, 농민 전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바로 그들, 전쟁을 일으킨 미 제국주의와 부시, 전쟁광을 추앙하는 일본 제국주의와 고이즈미, 그리고 그들의 전쟁에 기꺼이 동참한 노무현 대통령과 ‘영혼과 정신마저 팔아먹는’ 김현종, 반기문 같은 관료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 가장 중요한 사회구성원들을 절망으로, 죽음으로, 나락으로 내몰아버렸다.

아펙은 성공할지 모른다. ‘인간안보’를 말하고 ‘테러 척결’을 말하고 ‘DDA 협상 진전’을 말하는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 어쩌면 '열린 공동체로 함께 발전하는 아펙'의 날이 펼쳐질 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은 분명한 한가지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오늘날 개방화 시장화와 경쟁력만이 능사라는 자본의 논리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조건, 또 토지와 종자, 식량, 지식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의료?교육?에너지?문화?물 등 필수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포기하는 조건이다. 따라서 그들의 소망은 설령 이루어지더라도 한시적일 것이다. 화려했지만 지나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불꽃쇼 그것처럼.

희망은 보잘것없고 초라한 데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아펙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7일, 아펙반대국민행동과 부산시민행동과 국제민중포럼 참가자들은 그들과 다른 세상을, 그들과 다른 소망을, 그들과 다른 선언을 내놓았다.

부산국제민중포럼을,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대회에 참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부산국제민중포럼은 언론의 관심 밖에 있었다. 워크샵이 열리는 교실은 난방도 되지 않았다. 해외 활동가들은 입국하는 과정에서 인권 탄압을 받아야 했다. 참가자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보잘 것 없고 안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부산민중선언문’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를 확대하려는 아펙 정상회의에 맞서 평등과 평화를 향한 아름다운 저항을 펼칠 것"을 결의했다. 참가자들은 “아펙 정상회의가 꺼져가는 DDA 불씨를 살리려고 발버둥 쳤지만, 전쟁도 없고 빈곤과 차별도 없는 세상을 건설하는 우리의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저들이 이성을 잃고 이윤과 경쟁 논리로 빼곡한 특별성명을 작성할 때 부산국제민중포럼 참가자들은 저항과 투쟁의 미래를 열겠다는 맑은 정신을 ‘부산민중선언문’에 담았다.

이제 11월 18일은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자유무역주의를 신봉하는 지배자들은 이날을 2010년, 2020년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예언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차별과 억압, 빈곤과 인권 탄압, 그리고 공권력의 일상적인 위협 속에 숨죽여왔던 우리 사회 모든 민중은 이날을 저항과 투쟁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11월 18일은 정용품, 오추옥 두 농민열사가 부활하는 날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11월 18일은 아펙과 누리마루의 부산이 아니라 저항의 도시 부산으로, 특별성명이 아니라 부산민중선언문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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