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동안전보건, 어떻게 이해할까?

[홍실이의 이상한제국의앨리스](7) - 미국 노동안전보건 레벤스타인 교수와

사실, 아주 기고만장한 계획을 세웠더랬다. 한국에서 현재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뜨거운 이슈인데다, 개인적으로 관련된 논문을 준비 중이기도 해서 이 참에 미국의 노동안전보건 현황을 좀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다. 허나, 그 방대한 걸 (단골 변명이지만, 내 전공도 아닌데) 어찌 단 시간 내에 정리한단 말인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수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힘멜스타인 아저씨 때도 나름 성공했던 방법 아닌가! 이런 걸 날로 먹는다고 하지 음하하하....

무려 다섯 쪽에 이르는 1~13번까지의 질문 리스트를 들고 약속한 인터뷰 장소에 나갔는데...

“이메일로 보내준 질문 목록을 보니까 하루아침에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더라구... 몇 달, 몇 년은 걸리겠던데? 아주 흥미롭고 우리가 같이 계속 고민해나가야 될 과제들이지. 이것들 (정체 모를 책 한 꾸러미) 한 번 읽어봐. 기사 쓰는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더니만, 자리에 앉자마자 세 시간에 걸쳐 쉬지도 않고 (정해진 질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미국 노동운동과 민권 운동, 거기에 연결된 할배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늘어놓는 게 아닌가. 들을 때야 흥미진진했지만 (오, 어메이징, 인크레더블 하며 맞장구 오바질까지 하면서...), 막상 돌아와 내용을 정리하려고 보니 글씨도 괴발개발인데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시공간을 넘나든 (ㅜ.ㅜ) 것이라 어찌 체계적으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탓해야 한단 말인가? 질문 순서에 맞게 족집게 강의를 안 해 준 할배를 탓해야 한단 말인가? (할 수 없이 다시 자료를 찾고, 읽어보고... 시간이 두 배로 걸렸음. 흑)

이 마당에서 독자들이 눈치 채셨겠지만, 이렇게 서론이 긴 것은, 전후사정이 이러하니 드넓은 아량으로 함량미달의 글을 이해해달라는 구차한 변명에 다름 아니다. (마치, 다음에는 엄청 좋은 글을 쓸 것 같은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음)

소개를 하자면, 이번에 만난 Charles Levenstein 할배는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UMass Lowell)의 노동환경 정책 분야 명예교수. 그는 뉴욕의 가난한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계급의식을 갖게 되었단다. 60년도에 코넬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60~70년대 동안 노조 전임 활동과 지역 조직 사업을 했고 (중간에 생계가 어려워 택시 운전도 하셨단다), 뒤늦게 MIT 대학원에 진학하여 76년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실천 활동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으며,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편집위원회에 포함되어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자평하는) 노동보건 전문 학술지인 New Solution의 편집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림 레벤스타인 할배의 모습. 나름 귀여운 (이렇게 말해도 되나?) 인상이 제대로 안 나왔다.

미국의 노동안전보건, 어떻게 이해할까?

한국 사회에서 바라보는 미국의 노동안전보건에는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하나는 ‘미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산업안전보건 기준을 가지고 있는 선진국이지. 이것만 따라가도 어디야? (→ 그러니, 미국에서도 안 하는 걸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조합도 전문가도 모두 자본의 손아귀에 있잖아? 노동자의 안전보건은 이윤을 보장하는 한에서만 지켜질 뿐이라구. (→ 흥, 배울게 뭐가 있겠어?)’

“이렇게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는데, 미국 노동안전보건의 큰 그림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둘 다 사실이야. 최고에서 최저까지, 노동안전 보건 수준은 말 그대로 전 범위를 포괄하고 있어. 이건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 있다고 할 수 있지.”

미국의 노동안전보건체계는 1970년 산업안전보건법 (OSHA Act)의 제정, 그에 따른 산업안전보건청 (OSHA),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주(州) 별로, 노동 시간이나 여성/미성년 노동에 대한 규제, 광업 등의 위험 산업에 대한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방 차원의 체계적인 규제와 집행, 연구 기구가 마련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논의가 진척되고 법안이 발의되기까지 AFL-CIO로 대표되는 노동계는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그냥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체 노동계 차원은 아니었지만, 많은 단위노조들과 지역 활동가들, 또한 산재 희생자 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전 과정의 주도권이 ‘삶의 질 증진’을 내세운 존슨 행정부에 있었고, 노동자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전문가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과학적 근거와 법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노동안전보건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기준과 규제들을 만든 다음, 노동자들은 문제가 생기고 나서 'complaint'만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구조 자체라고 할 수 있어. 스칸디나비아 지역, 하다못해 캐나다 하고도 완전히 다른 상황이지. 연방정부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온갖 기준들을 망라해 놓구, 막상 단속이나 집행은 주에다 방치해놓고 신경도 안 쓰니, 이걸 다 지켜서 최고 수준의 안전보건을 갖춘 데부터 막 나가는 사업장까지 다양할 수밖에 없다구... 이런 게 모두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지.”

세계최고의 안전보건 기준도 현장에서 무시되고 그에 대한 감독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2003년에 공영방송(PBS)과 뉴욕타임즈가 특별 기획 기사로 내보냈던 McWane사의 사례에서 아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 http://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workplace)

거대한 흐름, 신자유주의

부시 집권 이후 관련 연구비의 대규모 삭감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악 시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노동안전보건이 큰 위기를 맞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런 흐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 법안과 기구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업 운영의 공적으로 지적되며 자본의 공격에 시달려왔다. 카터 행정부 시대부터 본격화된 규제 완화의 도도한(!) 흐름은 레이건 시대에 공공분야에 대한 전방위 공격으로 이어졌으며 (누군가는 ‘레이건 정부에게도 심장이 있었다면 거기에는 큼지막하게 “규제완화”라고 새겨져있었을 것이다'고 썼다), 이후 아버지 부시-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성공가도를 달려온 것이다.

“...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지난 정부들은 최소한의 정당성 (legitimacy)이라도 확보하려고 했던 반면, 이제는 그런 노력조차 안 한다는 점일 거야...”

그렇다고 규제 완화가 ‘노동자 건강은 아무려면 어때? 이윤만 챙기면 되지!’ 하는 식의 막가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단속과 강제’보다는 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강조하고, 위해도 평가(risk assessment)와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샛길로 빠지는 이야기지만, 위해도 평가니, 비용-편익 분석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배웠던가...) 실제로는 규제 완화 과정이 자본의 전방위 로비와 입법 활동 지원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상당히 학술적이고 합리적인 양상을 보였으니, 노동계는 철저히 배제당한 채 사후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전문가들...

자본과 노동, 그리고 국가 사이의 권력 불균형이 극심한데다, 전문가 중심주의가 강하다 보니, 최소한의 균형추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역할은 어느 다른 곳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노동안전보건 역사에서 앨리스 해밀턴 이래 헌신적인 연구자와 공중보건 활동가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얼마 전 ‘미국 예방의학회지’에 발표된 Dr. LaDou (전공자가 아닌 내가 알 만큼 산업의학계의 거목)의 논문은 미국 산업의학계가 기업에 심하게 편향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산업의학 의사들이 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회사를 변호하기 위한 증언대에 서는 일은 많아도 노동자를 변호해야 할 곳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이 학계나 전문가 집단 내에서 공감을 얻고 있으니까, 윤리 지침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지. 하지만, 그건 구조적 조건을 간과하는 조치야.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루려면, 기업에 소속되어 있던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 있던 해당 전문가가 반드시 현장과 마주칠 수밖에 없잖아? 그게 작업 현장이던, 아니면 기업의 자료든... 즉,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유 재산’에 직접 접촉할 수밖에 없는 거라구. 바로 여기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해. 뿐만 아니라, 기존의 의학 교육 방식도 큰 문제야. 이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병원인 브리검 병원 암센타만 해도 그래. 방광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 중 하나가 직업성 노출이라는 게 잘 알려져 있지만, 환자한테 직업력을 물어보는 의사는 거의 없다니까...”
(한국 사회는 과연 다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희망...

“엊그제도 회의 때문에 뉴욕에 다녀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요즘 주로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현재 뉴욕에서 이주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서로 소개시켜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다녀온 거지. 미국의 노동 운동이 죽었다고들 하지만, 현재 새로운 풀뿌리 노동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를테면 뉴욕 맨하탄에서는 식당 노동자들이 모여서 노동자 센터를 만들고 있거든. 노동 환경도 비슷하고, 네트워크도 잘 조직되어 있고... 이 사람들 아주 열심히들 하고 있지. 나는 노동운동의 분열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제를 드러내고 새로운 변화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보거든. 여기에서는 매사추세츠 노동안전보건 연합 (MassCOSH, Massachusettes Coalition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일을 같이 하는데 그 중에도 특히 실내 오염과 관련한 교사 노조의 건강 문제하고 화학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인도하고 브라질 농산물 시장의 하역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 사업에도 참여하고...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되면 투쟁도 조직화도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한국도 같이 해야지?”

  그림 매사추세츠 노동안전보건 연합 홈페이지


할배가 건네준 책들 중에는 시집도 한 권 들어 있었다.
표지에 적힌 시인의 이름은 ‘Charles Levenstein’
이런 멋쟁이 할배 같으니라구.... 한편 옮겨본다.

시적(詩的)인 삶

이건 나비들의 삶이 아니야. 내 책상 위에 유쾌한 시(詩)는 없지.
고통의 시 - 멕시코 어린이 노동자의 모습
투쟁의 시 - 워스터 간호사들의 파업
일한지 하루 만에 프레스에 손을 잃은 첼시의 베트남 소년에 대한 시.
보스턴 항구 아래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죽어간 터널 노동자에 대한 시.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를 안아 줄 수 없는 섬유 노동자, 숨을 쉬려면 네 개의 베개를 받쳐야 잘 수 있는,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는 멋진 친구 놈.
시의 재료 - 분진과 연무, 석면, 제초제, 독극물 스튜
시의 인간공학 - 등, 목, 팔, 손, 뇌, 그리고 영혼
제분소의 제분기, 시의 기계.
저기 푸른 하늘이 있고, 섹스가 있고, 손자들이 있지만,
시적(詩的)인 삶은 주목(注目)의 삶, 아름다움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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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월이

    할배도 멋지고 글쓴이도 멋지네요^^

  • 시월이

    할배도 멋지고 글쓴이도 멋지네요^^

  • 해미

    더 만나고 싶어지네요. 보스턴에 언제 또 갈 일이 생길지, 혹은 언제 학회 같은데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투쟁할 수 있는 것들과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말이지요. (그 전에 제가 영어공부를 하든 할배가 한국어를 공부하든 해야 할 긴데.. 아무래두 제가 영어공부하는게 빠르겠죠? ㅋㅋ) 전 지구적 투쟁이 필요하다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

  • 해미

    더 만나고 싶어지네요. 보스턴에 언제 또 갈 일이 생길지, 혹은 언제 학회 같은데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투쟁할 수 있는 것들과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말이지요. (그 전에 제가 영어공부를 하든 할배가 한국어를 공부하든 해야 할 긴데.. 아무래두 제가 영어공부하는게 빠르겠죠? ㅋㅋ) 전 지구적 투쟁이 필요하다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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