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아펙, 쌀비준, 황우석 그리고 국익

[기자의눈] 국가-의료산업-학자-언론의 4자동맹 무한 질주

파병, 아펙, 쌀비준동의안... 그리고 국익

"국제사회 동향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한미동맹관계의 중요성 등 제반요소를 감안,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 나가는 게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 (2003년 3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 중에서)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바로 그 시간,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익' 한마디로 파병에 반대하는 집권여당의 당내 분위기를 일소했다. 나아가 혼동에 빠진 여야 의원들을 한 방에 정리시켰다. 대통령 된 지 몇 달 안 된 시점이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할 것 없이 전쟁이냐 평화냐, 참전이냐 반대냐를 두고 기존 정당과 계파 질서가 일시적으로 붕괴되는 시점이었다. 집권여당의 지지세력들은 참여정부가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도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국익' 한마디가 이 모든 사태를 진정시켰다.

'국익' 논리는 대체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파병의 경우, 한-미동맹이 중요하니까, 전후 복구사업이 경제에 도움이 될 테니까, 국제사회와의 약속이니까 따위가 전부였고, 그것이 어떤 국익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없었다. 거꾸로 '국익'을 해치는 위험 요소에 대한 논리도 유사하다. '테러'가 그렇다.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애국법을 통해 테러를 환기하는데, 테러 강조는 테러심리를 낳고, 테러심리는 테러위협을 낳고, 테러위협은 가상의 테러를 현실의 테러로 둔갑시킨다. 이로부터 시민으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위력과 영향이 미비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전체의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다시 그것이 '애국' 이나 '국익' 논리와 연결된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는 근대에 국가가 개인을 지배, 통치해온 방식과 관련 "일상에 교묘히 침투하여 개인의 의식과 행위방식까지 조절하고 개인 스스로가 '알아서' 복종할 수 있도록 하는 '감시와 처벌' 체계의 완성"을 이야기한 적 있는데, 오늘날 '국익' 논리는 시장주의, 민족주의 따위와 맞물려 개인에 대한 국가의 지배, 통치에 있어 일상을 장악하는 막강한 선동 효과를 갖는다.

'국익' 이데올로기는 아펙에서도 쌀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도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아펙에서 정부는 제대로 안 풀리는 WTO DDA 협상 진전을 나서서 선동하고, 보고르 목표를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특별성명에 담아낸다. 역시 이런 아펙이 어떻게 국익이라는 건지 설명은 없다. 우리 사회구성원들에게 어떠한 혜택으로 돌아오는 지를 설명하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부산시의 브랜드 효과와 지역경제에 대한 간접적인 효과, 시민의식의 글로벌 스탠다드화와 세계화 개방화에 따른 생활문화의 합리화 따위를 나열하긴 했다. 봐서 알지만 어느 것 하나 측정 불가능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들이다.

그대신 경찰은 아펙이 국가적 행사라는 이유로 집회와 시위를 불허하고, 입국자를 공항에서 강제로 체류시키고, 노숙인과 노점상을 거리에서 내쫓는 여러 '불법'을 저질렀다.

23일 쌀비준동의안의 단 한 명의 찬성 발언자였던 조일현 의원, 국익을 거론하며 율곡의 10만 양병설과 갈릴레이의 지동설까지 가져다 붙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무엇이 국익인가, 어떤 국익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쌀비준동의안 통과 다음날, 농민이 8%나 되는 건 너무 많으므로 농민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발언한 재경부 관료도 국익을 걸고 넘어갔다.

정치 위기와 '국익' 이데올로기의 위력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사회적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가운데 수차례 정치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가령 2004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절차민주주의' 자체를 의제로 삼았다. 한-민-련이라는 보수연합세력으로부터 '개혁'을 지켜내자고 호소, 십수만 촛불시위의 장관을 연출했다.

집권세력의 이러한 동원 능력의 배경에는 보수, 반민주 세력과의 투쟁을 통한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 확대라는 측면과, 신자유주의 정치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고뇌의 두 측면이 어울려 있다. 문제는 이 둘이 이율배반적이란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라는 보수적 정책을 펼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 모순은 지지세력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정신적 분열을 일으킨다.

가령 최민희가 김선일 씨 죽음 당시 한 집회에서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 주십시오"라고 '읍소'하던 장면은 엽기적인 일화로 남아있다. "100만 촛불로 파병을 막아내자"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탄핵 때 동원된 십수만의 '그들'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파병은 안 되지만 노무현정권은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내적 모순과 정신적 혼란이 '읍소'로 표현되기에 이른것이다.

이런 일은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다. 지배세력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구조조정 외에 별 대책이 없지만, 그리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세계의 일원이 되어야 하므로" 쌀비준동의안을 처리해버린다. 유시민은 며칠 전 한 대학 강의에서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다는 것을 소신으로 한다"면서도 자신이 "파병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중들이 이런 극단적 이율배반 논리를 수용해버린다는 거다. 가슴 아프지만 세계 일원이 되어야 하니까, 명분 없지만 비겁하면 안 되니까...

이 힘의 원천을 유시민이라는 말 잘하는 개인의 능력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이른바 노빠의 유시민 투영 현상을 두고 유시민이라는 스타 국회의원에 대한 추종이나 모방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다분히 일면적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동원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동원을 같이 작동시킨다. 이를테면 앞의 것은 탄핵 국면에서의 촛불 동원이나 4대개혁입법 추진에서의 동원 따위가, 뒤에 것은 노동에서의 선진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노사정 테이블 동원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대통합연석회의와 같은 동원 따위가 그렇다. 동일한 주체가 동일한 시간대에 이질적인 정치적 동원을 작동시켜왔다. 이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들의 선택이자 계급투쟁이 만들어낸 독특한 정세적 산물인 셈이다.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동원은 보수세력과 부딪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동원은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들 및 다수 사회구성원들과 부딪힌다. 집권세력은 이 피로도를 좀처럼 이겨내지 못하는데, 여기서 '국익' 이데올로기는 이 모든 저항의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아주 그만이다. 노무현 지지세력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모순과 정신적 분열을 피해내기에 이렇게 안성맞춤인 게 없다.

우선 경쟁하는 정치세력과는 상생의 여건을 형성한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 '선진경제-선진한국-선진정치-선진사회' 등의 정의와 설명을 이어가며 정당과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연역 논리를 펼쳐 여야 국회의원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또 선진노사관계 구축, 희망선언21, 국민대통합 프로젝트 따위를 통해 사회통합 효과를 끌어내기도 한다. 효과가 어느만큼 큰가의 여부는 해당 시기 정세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분명한 건 '국익' 이데올로기가 집권세력의 정치위기를 피해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명하다. 집권세력이 위로부터 동원하는 이같은 시스템에 균열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은 집권세력이 이러저러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국익' 이데올로기와 공권력을 바탕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갈 때, 과감한 단절과 적절한 타격을 가하지 않았다. 멀리 갈 것 없이 국보법 투쟁 때, 연정 제안 때 '전술적 연대'의 이름으로 어떤 행보를 했는지 살펴보면 된다. 지난 3월 고춧가루 뿌리던 독도 해프닝 이야기까지 꺼낼 필요 있을까.

보궐선거 이후 40%가 넘는 대중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는데, 동시에 다음 대통령은 진보적인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50%를 넘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널뛰기를 거듭하는 데도 한번도 이탈 세력을 흡수하지 못해왔다. 지지율을 이야기할 때 열린우리당과 동반상승 동반하락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은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세력은 '국익' 이데올로기가 국가의 위로부터의 동원을 바탕으로 시장주의와 민족주의와 결탁해서 펼쳐지고 있다는 진실을 간파할 능력이 딸린다. 이는 거꾸로 오늘날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이 스스로 시장주의와 민족주의의 범위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시장주의와 결탁한 '국익' 이데올로기

'국익'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호명되는 시장주의와 만나 초국적 성격으로까지 확대된다. 시장주의는 자유무역협정, 지역무역협정, 다자간무역협정을 통해 지구적 단일시장을 추구한다. 자본의 이동에 있어 국가, 민족, 지역, 문화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린다. 보고르 목표를 앞당기자는 아펙의 특별성명 채택은 아펙 '국가'에 대한 '시장'의 치열한 공작의 결과이다.

세계적 수준의 노동유연화와 사회적 빈곤을 확대 강화하는 이 공작이 '하나된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라는 외피를 두르고 시민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시장주의는 경쟁과 효율, 성취와 업적, 이윤 창출 극대화를 본성으로 한다. 때문에 경쟁력과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절대선과 최고 권위마저 부여한다. 지배세력은 이런 걸 뭉뚱그려 '국익'으로 표현한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시장주의와 결탁한 국익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유감이다. 황우석 교수를 존경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지금까지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의 대부분이 황우석 개인을 향해 있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비판의 대부분은 기초적이고 보편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을 담고 있다. 생명윤리의 문제, 여성의 몸과 인권의 문제, 기초과학 지원에 있어 형평성 문제,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환원의 문제, 언론에 있어 진실 보도의 문제, 애국 열기에 따른 비이성의 확산의 문제 등이 그러하다. 이에 비해 황우석 교수를 옹호하는 논리는 영웅주의와 애국 열풍과 국익과 세계 최초 따위가 대부분이다.

가령 생명과학 연구 방법에 있어 '세계적 수준'과 '한국의 도발'의 예가 그러하다. 영국과 프랑스 일본 등은 난자를 사고 팔 경우 형사 처벌되며, 독일의 경우도 배아보호법을 두어 엄격하게 규제한다. 법적 규제의 근거로 난자가 생명인지, 그저 세포인지를 두고 종교적 윤리 논란의 측면도 있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신체적 고통과 손상이 따르는 여성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가난한 젊은 여성'의 희생이 구조화 될 것을 우려한 것이 주된 근거였음이 확인된다.

줄기세포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불치, 난치병의 고통 속에 있는 세계의 모든 소수자가 자유롭게 될 날을 앞당기는 것은 사회 진보의 가장 큰 소망이다. 줄기세포 연구자들에 따르면 빠르면 10년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 소망의 날을 앞당기자는 데 반대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런 점에서 PD수첩이 비판받아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황우석 교수가 '명백히' 잘못한 일을 공론화하고, 줄기세포 연구의 전제를 확인하는 것과 '소망의 날'을 앞당기는 문제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생명과학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한, 특히 줄기세포 연구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한 난자에 대한 생명윤리 성찰, 여성의 몸에 대한 완전한 인권 보장, 사회 보편성에 기반한 과학철학의 확장,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환원에 대한 약속 등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여성의 몸이 얼마나 침해를 받는지, 국가-의료산업자본-학자-언론의 4자동맹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타미블루와 글리벡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인류의 소망'을 실현해가야 한다. 이 전제들을 확인하고 가는 것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연구 과정을 보장할 것이고, '소망의 날'에 대한 투명한 미래 역시 예측 가능하게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최소한의 과학철학의 토양을 갖추지 않은 나라로 취급된다. 한국이 배아줄기 세포 연구 분야에서 주목받게 된 데는 실제로는 '연구 능력'이 아니라 '난자 확보 능력'을 가진 OECD 중 유일한 국가라는 지적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전제의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추앙하는 세력은 이러한 지적을 사소한 트집으로 치부하거나 불순한 음해 공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첨병 역할을 해왔다. 제주특별자치도법 추진 등 병원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으로 의료시장화 정책을 지휘했다. 여기에는 황우석 교수, 노성일 원장, 박기영 보좌관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국가의 의료정책이 시장주의로 치닫는데, 차제에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 투자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기초과학 지원의 형평성 거론은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하고, 생명윤리의 문제와, 여성의 몸에 대한 인권의 문제와, 생명공학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환원에 대한 전제 등의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황우석 사태를 둘러싸고 벌이는 네티즌의 소동을 볼 때 현실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기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가 확인된다. 이는 네티즌의 경향인 것이 사실이지만 반드시 네티즌의 잘못으로 돌릴 문제도 아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국가가 있고, '여성의 몸' 쯤은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동원'되는 도구로 인식되는 사회 환경이 있고, 생명윤리나 사회보편성보다 성취와 업적에 눈 먼 과학자의 재생산이 이루어져 온 이상, 네티즌의 여론 작동 메카니즘으로 미루어 볼 때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인 셈이다.

난자 기증이 자발적이라고?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필요하다. 과학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꿈의 열차다. 하지만 '메이드인코리아'의 이름으로 전 인류에게 그 열매를 나눠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2005년 6월 7일. 황우석 교수의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자리에서)

황우석 교수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백의종군 하더라도 '황우석 사단'은 계속 가야하고,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길'임을 강조했다. 집권세력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약속, 과기부 300억 규모와 보건복지부 150억 규모를 내놓고, 소장직을 다시 맡기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한편 황우석 교수의 국가적 과업 강조, 스타 과학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주류 언론의 호응, 진실 보도의 소명을 수행했던 PD수첩 때리기 따위가 맞물리는 가운데 애국자들이 잠을 깼다.

"선진국이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일본은 마루타 생체실험의 상상초월한 곤경 조차도 언론들이 나라를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MBC 같은 이런 얼치기 정신상태로는 언감생심입니다. 후진국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MBC, 프레시안 등, 황색 언론사들!" (아이러브황우석. 11월 24일 소식)

아이러브황우석 싸이트에서 황우석 교수는 '메시야'다. 난자를 기증한 '성녀'들은 무궁화가 되어 황우석을 에워싼다. 난자 기증자 700명, 아이러브황우석 싸이트 가입자 2만9천 명. MBC 앞 촛불시위...

인류의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블루오션의 돈다발을 안겨다 준다는 희망이 걸려있는 줄기세포 연구. 이 황금 사과를 따먹겠다는 욕망이 국가와 의료산업자본과 '황금박쥐'와 '황우석'으로, 급기야 '애국자'와 '성녀'의 행렬로, MBC 앞 촛불 '동원'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브황우석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난자기증이 정말 자발적이라 할 수 있는가. 아이러브황우석은 난자 채취에 따르는 위험과 고통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자 채취할 때 별로 아프지 않아요"라는 선동기사를 공지하며 부추긴다. 생명윤리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의 여지도 제공하지 않는다. 연구 과정과 성과가 인류에 어떻게 환원되는 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 오직 난자 기증을 애국 행위로 칭송하고, 무궁화 꽃밭의 성녀 행렬에 동참하기를 추동한다.

"우리가 정성껏 가꾸어놓은 무궁화 꽃밭 사이로 귀여운 스너피 데리고 어서 오세요."

[출처: 아이러브황우석]

국익의 환각을 유포하는 가운데 난자기증을 부추기고, 황우석 프로젝트에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봉쇄한다. '자발적'이란 것이 외적 요인이 작동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 주체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면, 아이러브황우석에서 이루어지는 난자 기증은 전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브레이크 장치 없는 황우석 신드롬

오늘날 우리는 초국적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시장주의가 주류 질서를 장악한 사회에서 산다. 시장주의는 합리성, 이성, 상식을 무시한다. 시장주의를 작동시키는 집권세력은 이성과 상식의 국정운영을 포기한 지 오래 되었다. 전쟁세력과 손을 잡고, 전쟁에 참여하고, 초국적자본이 요구하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아펙을 치르면서 망가지다시피 한 다자무역체제에 마지막 힘을 실어주고, 농민 구조조정이라는 유혈 대책을 마지막 대책으로 내놓고 쌀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제주특별자치도 입법으로 제주도의 시공간을 한 점 남김없이 시장으로 탈바꿈한다. 황우석 교수의 업적이 이 극단과 파행의 한 귀퉁이에서 돌출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야흐로 누군가가 시장주의와 결탁한 '국익' 이데올로기를 깨뜨리지 않으면, 브레이크 장치 없는 '황우석 신드롬'은 계속될 것이다. '황금박쥐'와 국가-의료산업-학자-언론의 4자동맹의 질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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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ㅅ;

    집단적으로 정신병에 걸린것 같아요
    무셔...

  • 금자

    그 귀여운 스피너를 붉은털 원숭이들과 함께 어떻게 연구했는지 알게 뭐야, 사람 난자도 그렇게 다루는데 동물권 따위가 눈에 보이셨겠어,
    더군다나 저 카페 백 그라운드가 뭐시냐, 샬라라 무궁화꽃무더기라니 -_- 정말 막강하다....

  • 시민

    요즘 황교수 관련사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광신도들 같이 집단 최면에 걸려 눈에 보이는게 없는것 같네요. 제정신들 차리구 합리적으로 냉정히 현실을 직시하길... 세계가 쳐다보구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그런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구 있지요.

  • 평민

    신발넘들아 니덜이 더 무섭다 난자가 그리 중요하면 섹스도 하지말고 니 몸속에서 잘숨겨둬라 다 썩어 문들어지게 니런넘들 땜시 나라가 이모양 이꼬라지가 된다 니덜 배불리 잘먹구 잘사는게 니넘들 잘나서가 아니다 묵묵히 자기일에 열씸히 일하는 분들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올리면 묵묵히 옆에서 봐주기만 하면 되는거다 니덜이 얼마나 잘났기에 세계가 인정한 과학자를 그리 밟냐

  • 평민

    나는 무식해서 다른건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과학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다른 좋은 조건 다버리고 조국에 와서 연구하는 그 사람을 가지고 같은 조국넘들이 왜그리 비판하고 씹어대는지 정말 니덜 대가리에 모가 들었는지 팍 쪼개서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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