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성 농민들이 풍물공연과 행진으로 완짜이 역을 향해 출발한지 한 참이 지나서야 여성농민을 제외한 한국민중투쟁단은 빅토리아 공원을 나섰다. 선두에 선 대표자들. 그리고 각 단위별로 줄을 지어 삼보일배를 했다. 북이 울려 퍼지고 삼박자에 맞춰 '다운다운 WTO', '꽁니싸이무'의 구호를 외치며 3걸음을 가고 이후 절을 한다. 앞장선 기수는 일배가 진행되는 동안 기를 내렸다 다시 올렸고, 그외 행진 참가자들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 삼보일배 시작을 알리는 구호를 외치는 대표자들. |
▲ 삼보일배가 시작됐다. 고요한 홍콩 거리. 박자를 맞추는 북소리. 한국민중투쟁단의 발걸음에 홍콩시민들은 숨을 죽였다. |
그나마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사람은 조건이 좋은 편이다. 긴급하게 손장갑을 무릅에 댄 사람을 비롯해 아예 바지까지 걷어 붙힌 사람도 있다. 이들의 삼보일배가 더욱 절박하게 느껴진 이유는 '통상교섭본부장의 연설문 초안 사건'으로 인해 멍든 가슴을 추스린 바로 그 다음날 인 이유도 적지 않다. 정부로 부터 버림 받았다는 배신감이 들어도 마지막 끈을 놓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배어나는 무릎의 통증에도 삼보일배는 계속된다.
▲ 한국민중투쟁단중 무릅보호대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
앙다문 그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신음은 곳 곡성으로 변하고 한국민중투쟁단은 삼보일배를 하며 곡을 한다. 머나먼 타지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한국민중투쟁단의 바램이 홍콩을 술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한국민중투쟁단의 삼보일배를 바라보는 홍콩시민들은 그 엄숙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곳곳에서는 지지하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지나가던 시민들은 빵이며, 물이며 이들이 멈춰 설 때를 기다려 주고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이들 주변에 질서 유지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말도 안통하게 건네만 주고 간다. 홍콩 거리에 'Down Down WTO'와 '꽁니싸이무'가 울려퍼지고 거리 곳곳에서 같은 호응의 구호가 터져 나온다. 홍콩시민들이 한국민중투쟁단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했다.
▲ 홍콩시민들이 움직이다.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
▲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홍콩시민 |
▲ 잠시 쉬어가는 시간. 밖에서 바라보고 있던 외국인이 대열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에게 물을 권한다. |
3시 30분 완짜이 부두에 도착한 여성 농민들은 다른 나라 농민들과 정리집회를 하고 완짜이 부두에서 부터 다시 역방향으로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완짜이 부두를 향해 삼보일배로 오고 있는 한국민중투쟁단과 만나기 위해 그녀들의 여정이 시작됐다.
거리에서 한국 농민들을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Li Chan Wai씨를 만났다. 소속된 조직도 없고 어디 활동가도 아니다. 그는 홍콩에 사는 시민일 뿐이다. "난 한국 농민들이 싸우는 이유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 이렇게 나온 이유는 홍콩시민으로 한국인들의 집회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싶어서이다"라며 연대의 지지를 보냈다. 그의 영문 피켓이 반갑고 또 고맙다.
▲ 여성농민들도 완짜이 부두에서 부터 역으로 삼보일배를 해서 오고 있다. |
▲ 삼보일배 대열에 섞여 범상치 않았던 이들은 홍콩 대학생들이 었다. |
▲ 쉬어가는 시간에 물을 마시는 모습. |
▲ 지치고 힘들기도 하다. 어찌 안힘들다 하겠나. |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이 고가를 넘으면 고가 밑에서 삼보일배로 올라를 하고 있는 여성농민들과 고가를 향해 삼보일배로 올라가고 있는 한국민중투쟁단이 만나게 된다. 짧은 순간이 찰나같다. 스피커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도 쉬어버린 이날 저녁 조우한 한국민중투쟁단은 낙오 없이 3시간이 넘는 삼보일배를 완성해 낸 감동이 넘쳤다. 또한 한국민중투쟁단과 함께한 외국인들이 국경을 초월해 익숙하지도 않은 삼보일배를 하며 'good'을 연신 외쳤다.
스페인에서 온 농민 슈라아모센통 씨는 "WTO에 대항한 농민들의 투쟁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농산물을 상품으로 만들고 어린아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먹어야 할 권리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하면서 힘들었지만 시원하다. 같이 하는 것이 옳다"며 완짜이 역까지 끝내 삼보일배를 완수한 스스로와 한국인들에게 감동의 메세지를 전했다.
▲ 상봉한 대표자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
나이 지긋한 농민들 틈에 젊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 글쎄. 한국민중투쟁단이 갖춰야 할 T셔츠와 투쟁 손수건 등 기본요건을 갖추지 않은 이들은 홍콩 대학생들이다. Ip Iam Chong씨는 친구 5명과 삼보일배를 같이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뭔가를 한다고 해서 왔다가 함께 하게 됐다. TV에서는 폭력적인 장면만을 부각시키지만 난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나 또한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늘 거리에 나왔던 것이다. 이것을(삼보일배를 잘 모르는 듯)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와서 보면서 나도 같이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하게됐다. 한국인들 정말 굉장하다"라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짜이 부두가 가까워 질 수록 힘들어하는 빛이 역력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 점점 무거워지는 발걸음 그리고 쓰리는 무릎. 그래도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하다. 북소리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표정에 절박함이 묻어난다. Down Down WTO!!
완짜이 부두 앞 고가에서 만난 한국민중투쟁단은 감격에 서로를 격려했다. 감동스런 상봉에 모두가 가슴이 뜨겁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돌려 완짜이 부두로 향한다. 바램을 비는 삼보일배 완성을 향해, 컨벤션 센터 까지 다시 전원이 삼보일배로 간다. '꽁니싸이무', 'Down Down WTO' 이들의 외침이 컨벤션 센터에 울려퍼지고 삼보일배로 걸어온 3시간 동안 만난 홍콩시민들은 한국민중투쟁단의 의지와 행보에 감동했다.
▲ 진주시농민회. 이들은 완주의 기쁨을 나누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
▲ 삼보일배를 마친 완짜이 부두는 한국민중투쟁단의 축제의 장이었다. 우발적으로 물에 뛰어든 진도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완짜이 부두에서 만난 홍콩대학생들. 이들은 중간 부터 시작해 완짜이 부두까지 삼보일배를 같이 했다. |
이날 한국민중투쟁단은 빅토리아 공원에서 완짜이 부두까지 1.2km를 3시간에 걸쳐 삼보일배로 왔다. 선정적인 사진을 싣고, 소설을 써 놓던 홍콩 TV와 신문들. 과연, 내일 아침 홍콩 신문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