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황우석-미디어-국가-시장의 신화

황우석, 신화는 파기되었다

생명공학은 혁명적인 과학이다. 생명공학은 삶의 편리성 증진을 위한 부분적 과학이길 거부한다. 생명공학은 삶의 연장과 확장이라는 자연의 근본성에 도전한다. 많은 나라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아복제 기술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연의 근본성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계급적 관점없이 시장을 향해 달려가는 생명공학은 차라리 재앙이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황우석’이란 기호가 한국 사회에서 의미화되는 과정은 끔찍하고 잔인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몇몇 속성들이 확대되고 과잉 해석되는 과정에서 합리적 이성은 마취되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찬양의 입장은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마비시켰다. 비판과 견제, 안정과 균형은 인정되지 않았다. 미디어의 역할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상황은 누구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무정부적 진공상태였다. 그것은 혹독한 파시즘이었다.

신화는 파기되었다. 실로 대단한 밤이었다. 모든 것이 뒤짚어졌고, 아무것도 알 수 없어졌다. 대단한 밤의 성과가 자본과 권력의 동맹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이성과 진보의 승리로 귀결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신화가 파기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간 그를 향하는 적개심의 언어는 정당하다. 오늘, 냉정하고 차분해지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이다. 신화의 생성이 구술에 의한 것인 것처럼 그 파기도 구술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사실 'PD수첩'의 취재는 예고된 것이었다. 줄기세포사진의 조작을 비롯하여 연구의 근본적 진위를 의심케하는 증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을 굴러 다녔다. 문제는 그것을 입증하지 못했던 것에 있지 않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어느 순간부터 과학이 아니었다. 그의 연구는 ‘난치병의 절멸과 한민족이 중심되는 인류의 내일에 관한 신화’였다. 황우석 교수는 ‘신’이었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동시대가 창궐한 ‘신화’였다. MBC의 대국민 사과와 'PD수첩'의 폐지는 황우석 교수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신’은 논증의 대상이 아니며, ‘신화’에 대한 도전은 반역으로 취급되었다. ‘신화’는 그저 이유를 묻지 않는 열광만을 허락한다. 이유를 묻는 순간, 신은 사라져야한다.

'PD수첩'은 윤리의 문제에 직면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PD수첩'의 좌절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과학과 이성이 아닌 맹신과 숭배에 기반함을 폭로했다. 그것은 이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신화의 지배자는 신이다. 신의 의지만이 윤리이다. 모든 윤리는 신이 독점한다. 진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는 신밖에 없음이 인정될 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자연 앞에 오만했으며, 그의 연구는 몰계급적 인간주의로 들떴다. 그렇다면, 황우석 교수의 윤리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관념적 조국이었고, 추상적 국익이었다. 시장이었다.

황우석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곳을 자극했다. 붉은악마, 노사모, 탄핵반대, 촛불집회로 이어진 대중 심리의 핵심을 간파했다. 대중은 비균질적이다. 전규찬의 표현을 빌자면, 대중은 ‘생성적인 동시에 소모적이며, 진보적인 동시에 수구적’이다. 대중을 향한 황우석 교수의 유혹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대중은 그에게 매혹당했다.

황우석 교수는 현란했고,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는 충실했다. 국가는 거리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황우석 교수는 최첨단 선진 과학의 실현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는 한민족이었고 세계적 성과로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상상 불가능한 경제적 파급 자체였다. 황우석 교수의 목표는 기술거래시장과 지식재산권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상품의 개발이었다.

이제, 신이 대리하던 상승의 욕망은 끝났다. 신화는 없다. 신기루는 사라졌다. 내일 필요한 것은 숭배와 광기가 아닌 분석과 이성이다. 황우석 교수는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것을 던졌다. ‘악한’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사적인 민족애 습성을 버려야 한다. 견제받지 않으려는 과학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비판주의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 여성의 몸을 또 다시 도구로 전락시키는 파괴적 감수성을 치유해야 한다. 서슴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미디어의 근성을 뜯어고쳐야 한다. 몰계급적인 기술의 발전을 중단시켜야 한다.

설명 불가능한, 정신 착란의 상황은 이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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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말하는 대중은 바로 무계급적 대중이며, 뿌띠부르주아적 대중입니다. 물론 노동자계급대중도 이런 무계급적 대중주의에 현혹되기도 하지만, 노동자계급적 관점에서 조국은 없으며 국가에 기대어 이익을 얻을수도 없지요.. 그리고 자본가계급에게도 초국적으로 이익을 논하지요. 물론 국익과 민족주의를 이용할지라도 경제적이익이 우선이지요.. 몰락하는 반동적인 뿌띠부르조아들만이 국가에 기대어 자신들의 운명을 구원받고자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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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나.. 기사보는데 기분이 이렇게 나쁠수가...

    기자가 어떻게 저따위로 글을 쓰지??

    너무 비꼬는거 아냐??

    재수없어..

  • 참나.. 기사보는데 기분이 이렇게 나쁠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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