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이사하야만 간척지와 아리아케해를 돌아보다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10) - 새만금사업의 모델

12월 8일 오후2시경, 계화도에 사는 주민 유기화씨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환경법률센터 소속의 박대현 변호사와 정남순 변호사, 그리고 이승민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과 만나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반대하는데 같이 해 온 일본측 변호사들이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해 토론회와 계화도 주민들과의 교류회를 가진 바 있는데, 이들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됐다.


일본측 변호사들은 ‘아리아케해(有明海) 소생’을 위해 소송을 하고 있는 변호인단이다. 2000년부터 새만금갯벌을 매년 방문하고 있고, 한국측 변호사들과 환경관련 토론회도 갖고 교류도 넓혀가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일본 규슈지역의 이사하야만 간척지역과 이로 인해 아리아케해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주민들의 삶이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그리고 이사하야만 소송 변호인단과 후원회 회원들을 만나 교류회를 갖고 재판이 열리는 사가 지방법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렇게 양국이 교류를 하게된 것은 한국에 새만금갯벌이 있다면, 일본에는 이사하야만을 끼고 있는 아리아케해가 있는데, 이들 모두 개발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불안한 미래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새만금사업을 계획할 당시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모델로 하여 검토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양국의 연구자, 변호사, 어민, 운동가 등의 교류가 빈번해지고, 서로 되살리거나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왔다.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배웅을 나온 통역자 김혜진(일본에서 8년째 유학중이며, 행정학 전공)씨와 요시노 변호사(우리 일행의 일정을 모두 챙겨주었음)의 안내로 전철을 타고 한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아리아케해를 살리기 위해 소송을 하고 있는 변호인단과 이를 지원하는 후원회 회원 등 10여명과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새만금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박대현 변호사는 “일본에서 초청을 해 주어 고맙다. 새만금 2심 재판 판결이 21일에 있을 예정이다. 우리가 승소하면 연락하겠다”며, “최근 새만금 연안에 사는 주민들이 물막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결집하고 있어 기대된다”고 인사말을 하였다.

이에 아리아케해 소송 변호인 단장을 맡고 있는 마나기 변호사는 “소생하라! 아리아께해 소송은 이사하야만 방조제 수문을 중∙장기 개문(開門)조사 하여 수문을 열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며, 5명의 변호사가 의견진술을 하고 있다.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양국의 여러 사람들이 같이 바다와 갯벌을 살리기 위해 투쟁을 했으면 한다. 폐기물 문제도 같이 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또한 일본측 변호사인 호리 변호사는 “새만금갯벌에 네번 갔다 왔다. 새만금 소송에서 승소해서 같이 파티를 했으면 한다”며 “비록 아리아케해 소송은 패소했지만, 재판에서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소송을 하겠다. 앞으로 교류 관계를 계속할 것이므로 잘 부탁한다”며, “3년후에 한국에서 람사회의가 열리기로 되었으니, 새만금과 아리아케해 소송에도 영향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리아케해 소송 지원회 사무국장 이와이씨는 “아리아케해안에 지원단체가 5개 단체이고, 소송 원고인이 어민 1천5백명이며, 후원자가 전국적으로 3천명이다. 이번 교류를 기회로 더욱 더 연구자, 변호사, 어민들이 같이 교류하는 기회가 되기를 빈다.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 삼계탕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건배를 제의한 후원회 회원 미까미씨(후쿠오카현 자치체문제 연구소 상임이사)는 “새만금갯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사하야만 갯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에 놀랐다. 당시에 안내해 준 주용기씨에게 감사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개발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보존운동을 했으면 한다”며, “일본이 주민운동이 활발하다면, 한국은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한국의 시민운동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환경문제, 도시계획 문제에도 관심이 있다. 인공섬을 만들었는데 있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라고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내년 후쿠오카 시장 선거에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측이 승리할 것이다”고 말한다.

새만금갯벌을 방문했던 또 다른 한분은 “교과서 문제로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이후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본이 미국, 유럽 중심의 역사교육을 받고 있어 책임감이 크다. 후쿠오카에서는 ‘후쇼샤’ 역사교과서가 채택되지 않았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던 12월 8일부터 후쿠오카 텐진역앞에서 매월 한차례씩 가두연설을 할 예정이다”고 말한다.

일본습지보존네트워크(JAWAN)의 사무국장인 카시와기씨가 말을 있는다. “한국에서 있을 람사회의 준비를 위해 10일 저녘에 회의가 후쿠오카에서 있을 예정이다. 한국의 습지보존 단체들과 협력할 예정이다”며, “30-40년전부터 간척을 시작한 비아호가 있는데, 간척지역을 아직도 이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서 그대로 두었단다. 그런데도 이사하야만 내부 개답공사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음식을 보니, 해물탕이다. 왕새우가 보인다. 한 마리에 3천5백원이란다. 소비자 가격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격이다. 몇 개월전 부안 도청리에서 직접 잡아서 나온 어민에게 물어 보니, 한 마리당 2천원이라고 햇었다. 백합도 보인다. 일본말로 하마구리. 대부분이 하얀색이고, 꼭지 부분이 검은색이다. 한일 갯벌 공동 조사단으로 참여했던 일본측 조사자 야마시다 히로요시씨에게 들은 바로는 “한국의 백합과 일본의 백합의 종이 다르다.

백합도 한국이나 일본이나 튼 것이 1kg 당 8천원이다. 일본산 백합은 하마구리(백합)이고 한국산 백합은 시나 하마구리(말백합)이다”고 하였다. 바지락도 보인다. 조개로 따지면, 이사하야만 갯벌에 바지락이 있다면, 새만금갯벌에는 백합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기차를 타고 오전 10시경 사가 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조금 지나자, 마나기 변호사를 비롯한 원고측 변호사들이 준비서면을 가지고 와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한글로 번역한 자료를 건네 주었다. 소송을 단지 변호인만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측인 어민, 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음이 인상적이다. 모두들 정문으로 이동하여 소송의 의미와 승리할 것을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마나기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지난번에 패소한 소송을 뒤로 하고, 원고인단을 더 확보하여 새롭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고 설명하였다. 현재 13차까지 모집한 원고인 수는 4개현(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에서 어민 1천449명, 시민 1천84명 등 총 2천533명에 이른다.

참석자 모두는 사가지방법원 제1호 법정으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도 재판장의 특별허락으로 방청을 할 수 있었다. 재판은 3심으로 이루어졌고, 원고측 변호인 14명과 주민 12명, 피고측 변호인 6명과 관계자 12명이 참석하였고, 방청객으로 주민 48명과 기자 24명이 자리하였다. 10시30분경, 재판이 시작됐다.

어민 3명이 나서서 “간척사업으로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증언과 함께 서면으로 의견진술서를 제출하였다. 특히 세 번째 증인으로 나선 주민은 아리아케해에서 생산된 김을 한묶음 재판장에게 내 보이면서 “하등품으로 전락했다”며 김양식장 피해를 호소했다. 이어 원고측 변호인은 “여러가지 피해가 확증되었으니, 방조제 수문을 중∙장기 개문(開門)를 어업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장차 배수문 상시 개방과 사업 동결”을 재판장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호리 변호사는 “자연과학적 증명을 요구하는 내용의 원인재정에 대해서는 5명 연구자의 증인 심문과 김양식 기간 중인 내년 1월-2월 중에 1박2일로 현장검증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피고측 변호인은 반대 신문에 나서지 않았고, 재판장에게 “지난번 재판과 다르게 원고측의 새로운 증거가 없다. 아리아케해의 생태변화 및 어장피해와 방조제와의 인과 관계가 자연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일정을 미루자”고 했다. 그러자 마나기 변호사는 화가난 듯 피고측 변호인에게 “처음 보는 자료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큰 소리를 내 질렀다. 나중에 들으니, 피고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확인하는 명백한 자료를 내놓지도 않고, 무조건 원고측의 자료를 검토한 후 반론하겠다고 하는 것은 재판기일을 연기하려는 속샘이 있기 때문이란다.

재판장을 나선 변호사들은 다시 라운드테이블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재판장으로 이동했다. 이 가처분은 갯벌피해 등의 입증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18명의 어민이 원고로 참여하고 있다. 본안소송과 함께 같은 재판부가 맡고 있단다. 마나기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특별히 우리 일행을 면담하도록 안내했다. 박태현 변호사는 이 재판장에게 "무엇이 공공복리에 합당한지를 명확히 파악하여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을 당부했다.

재판 상황을 둘러 본 박태현 변호사는 ”새만금 소송에서는 법정에서 어민의견 진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민피해 진술 후 법리논쟁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법리 중심, 소송 대리인 중심으로 재판이 이루어진다. 재판부의 입장이 어민들의 삶보다는 법리에 중점을 둔다“면서 한국 법원의 한계를 지적했다.

박대현 변호사가 호리 변호사에게 “오늘 재판장을 보니까, 인상이 참 좋다. 새만금 소송 1심 재판장을 보는 듯하다”고 말하자, 엄지 손가락 치켜 세우며 “훌륭한 재판장이다. 지난번 아리아케해 소송에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공사를 중단시켰던 그 재판장이다”고 한다.

호리 변호사는 같은 소송에 소송인단을 추가로 접수시키고 기자회견과 심포지움이 열리는 사가 시민회관으로 이동했다. 많은 기자들이 운집해 있다. 오늘 재판 내용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한국의 새만금 소송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였다.


법정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소생하라! 한국∙일본의 보배의 바다’라는 주제로 한일 변호사∙어민∙시민 심포지움이 열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먼저 츠츠미 교수의 ‘아리아케해의 적조와 빈산소화 현상의 매커니즘’에 대한 기조강연이 있었다. 그는 “1980년대까지는 아리아케해에서 대규모 적조 발생이 거의 없었으나, 1998년부터 적조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민물과 해수가 잘 섞이지 않으면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1997년 4월에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조류흐름이 약해지고 방향이 바뀌어서 발생한 것이다”고 말하고, “지금이라도 방조제 수문을 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새만금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새만금지역은 장마철에 두 개의 큰 강을 통해 많은 양의 민물이 흘러들어와 배수갑문을 통해 일시에 배출되기 때문에 적조현상이 대규모로 발생하기 쉬울 것”이라며, “수산생물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박태현 변호사가 새만금 소송의 쟁점과 경과에 대해, 이승민씨는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주고 자신이 속한 FASS의 활동에 대해, 그리고 유기화씨는 새만금지역 어민들의 삶의 변화상에 대해, 그리고 나는 새만금사업이 어떤 정치적인 판단으로 진행되었고 최근 어민들의 상황에 대해 각각 설명을 했다.

어민들의 발언 기회를 주자, 다케요시씨가 키조개와 작은 대롱속에 들어있는 새우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맨 앞 책상위에 가져다 놓고, 유기화씨에겐 아리아케에서 생산된 질 나쁜 김 한 뭉치를 건네준다.

심포지움을 마무리 하고, 저녘 뒷풀이 장소인 사가시내에 있는 향토음식점으로 향했다. 일본식 전통집이다. 소송 후원회 회원들과 어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식탁에 아리아케해에서 잡아 올린 짱뚱어 뛰김과 젓갈, 가리맛조개, 장대를 익힌 음식이 차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먹지 않는 개맛 5개가 탕으로 끌여져 올라와 있다. 다섯 마리당 5백엔(5천원)이란다. 주인이라는 한 노파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뛰어 오르는 짱뚱어와 낚시대로 짱뚱어를 잡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 주며 음식자랑을 늘어놓는다.

나도 이에 화답하듯, “새만금갯벌에도 짱뚱어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고, 개맛은 새만금갯벌에 엄청나게 많은데 한국에서는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가격표를 보니, 1인당 4만5천원이다. 마나기 변호사, 츠츠미 교수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날 기차를 타고 이사하야시로 역으로 향했다. 가시와기씨와 예기를 나누는데 아리아케해 소송 지원회 사무국장 이와이씨는 잔득 자료를 넣은 봉투를 박태현 변호사에게 전달한다. 자료를 보니, 아리아케해 소송 관련 분석자료와 올해 6월에 나온 ‘이사하야만 간척 50년 반대 투쟁사’를 담은 단행본, ‘후쿠오카현 아리아케해 어업협동조합 연합회’에서 만든 아리아케해(有明海) 어족자원과 어민들의 어업풍경을 담은 사진첩, 그리고 ‘일본해양학회’에서 펴낸 ‘아리아케해 생태계재생에 대하여’란 책이 들어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자료들을 보며, 일본은 이사하야만 간척 반대 운동과 소송 관련 자료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며 새만금갯벌 살리기 운동은 전국민적으로 관심을 가질 정도로 운동이나 소송 관련 내용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못하고 있는지 반성하기도 했다.

이사하야시 역에 도착한 후 아키라씨(소송 후원회 나가사키현 지회 사무국장)의 안내로 이사하야만 간척지와 방조제를 육로로 이동하면서 둘러보았다. 먼저 과거 80년대 간척이 이루어진 곳을 지나 방조제 공사 이전에 바닷물이 들어왔던 예전 제방에 올랐다. 이사하야만 내측에는 불도저가 개답공사를 하고 있다.

안내자는 “과거 이사하야만 상류인 홍문강에서 1948년 큰 홍수가 발생했다. 그래서 홍수예방을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로 드러 났다. 5년 전 나가사키현 의회에서 지사가 사실이 아님을 인정했다”며, “수심을 -1m로 조절하겠다고 하나,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수문이 작아 일시에 배수가 불가능하다.

개답공사를 한 농경지가 해발0m이여서 침수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고 말한다. 덧붙이기를 “원래 계획보다 개답면적을 50%정도로 줄였다. 원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로 했던 담수호 물이 염분이 높아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 홍수조절용 조정지로만 사용하고 있다”며, “수질도 올해 COD 9.3ppm으로 농업용 기준치의 5ppm보다 훨씬 높다. 농업용수는 홍문강에서 수로를 만들어 사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음 도착한 지역은 이사하야만 간척공사 반대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다. 올해 4월 14일(1997년 방조제 물막이 공사 완료일)에도 간척공사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을 기리는 ‘제8회 이사하야만 간척 위령제’를 가졌단다. ‘이사하야만 간척 통한의 비’와 ‘영원한 자손들의 유산이다. 공공사업 전면 복원하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고, ‘영령앞에 봉원합니다.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너무 늦었습니다. 아리아케해의 미래를 잘 보아서 폭정을 멈추어라!’는 후쿠오카 고등법원 재판소에 보내는 내용의 간판이 세워져 있다. 주변엔 갯벌생물들은 보이지 않고 육상식물들만 가득하다.

전망대엔 반대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야마시다 히로부미’ 선생의 영정이 보인다. 해맑은 모습으로 빛바랜 사진속에 머물고 있었다. 담수호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칙칙하다. 돌에 이끼가 잔뜩 묻어 있다. 물가 옆에는 죽은 조개껍질들이 잔뜩 쌓여있다. 피조개, 굴, 그리고 이사하야만의 상징인 바지락의 껍질 등이다. 누군가 수문을 가리키며, ‘빨리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문으로 이동했으나, 사업소측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키라씨와 해어지고, 요시다씨가 교대로 운전을 했다. 요시다씨는 올 8월에 새만금갯벌을 방문한 바 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 일본 습지보존네트워크(JAWAN)이 1993년에 창립했던 건물에 들렀다가, 길가옆 포장마차 처럼 만든 곳에서 김밥과 함께 숫불에 굴을 익혀 먹었다. 이를 운영하시는 할머니는 굴 3kg200g에 2만원이란다. 모두들 익힌 굴을 맛있게 까먹으며 이사하야만 간척지를 바라보았다.

곧 바로 우리 일행은 한 보건소 안에서 방조제 외측에서 어업을 하며 사는 아리아케해 어민들을 만나 1시간반 가까이 교류회를 가졌다. 어민 다케요시씨는 상호 교류를 강력하게 요청하며, 유기화씨에게 “자신이 직접 양식한 김이다”며 김을 한 묶음 선물하면서 “백합을 보내달라”고 한다. 다케요시씨와 유기오라씨의 배를 정박해 놓은 방조제 외측의 한 포구로 이동했다.

키조개 잡이에 사용하는 잠수복을 가져온다. 한 부부가 바구니에 가득 담긴 키조개 내장을 바닷물로 싯고 있다. 직접 어선배를 타고 수문 앞까지 이동했다. 수문 앞에 도착하자, 다케요시씨는 꽃게, 소라, 숭어를 들어 올리며, 생산량이 형편없이 줄었다고 하소연 한다. 같이 간 일행들은 ‘소생하라! 아리아께해’, 이사하야만 수문을 즉각 열어라‘, ‘새만금사업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바지락 양식장과 키조개 잡이를 했던 장소로 향했다.

이곳도 뻘이 차 올라 많이 죽고 없단다. 같이 동행한 어민 마츠나가씨는 “정부와 싸우려면 보통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며 “새만금을 살리는데도 같이 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어민인 유기화씨에게 “나만 바닷일을 하고, 부인은 안하다”며, “상냥하게 보이는 것이 부인하고 닮았다”고 하면서 무엇인가 계속 예기를 나눈다. 포구에서 도착하니, 배에서 방금 싫려나온 물김이 트럭에 싫려있다. 마츠나가씨에게 “새만금갯벌에 방문해 달라”는 예기를 하자 “부인이 허락해야 한다”고 하고, 해어지는 악수를 나누는데 손바닥이 거북등 처럼 느껴진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 그렁 맺힌다.

현장 방문을 마무리 하고, 후쿠오카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평가의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에서 “새만금사업이나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이나 진행된 배경과 양국 정부의 논리가 똑 같다”고 말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각자 처해있는 위치에서 새만금갯벌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을 했다.

이사하야만 방조제 외측인 아리아케해에서 어업을 하면서 생활하는 어민들과 간담회 가져

나카타씨
‘시마바라시’에서 살고 있다. (눈물을 글성이며) 어업이 안되어 노인복지사업으로 전직을 하려 한다. 27살 아들이 있는데 어부로 살게 하력 했는데 ㆍㆍㆍ.(말을 잇지 못한다). 바다 생물들을 다시 바다로 불러 들이고 싶다. 바다 재생을 위해 다른 어민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아리아케해 문제가 커진 이유는 어민들의 결속이 없어서다. 나가사키현에서 개답공사를 하는 것은 지역주민과 관계없고, 동경주식회사만 이익을 보게 한다. 아리아케해 되살리기 투쟁을 계속해서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어민들의 단결이 중요하다. 새만금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데 새만금사업은 규모가 커서 삼협댐 처럼 동해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베댐 소송에서 이겼는데, 이때도 농민들이 단결하고 하나가 되어 이겼다. 변호사, NGO 활동가들도 중요하다. 간척사업을 하면, 지역이 퇴보한다. 바다의 생물자원 보호가 지역을 발전시킨다.

마츠나가씨
‘고나가이’에서 키조개 잡이를 하며 생활했었다. 그런데 간척사업이 시작된 뒤로 아리아케해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고, 내가 사는 지역이 가장 피해가 컷다. 많은 어민들이 키조개 등 조개를 잡을 수 없게 되어 내부 토지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어업은 나이가 많은 사람만 한다. 간척 후 여러 가지 피해를 호소하니까, 정부는 모르겠다고 하고 나가사키현에서 키조개 대신 굴양식을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굴양식도 어려움이 많다. 수입이 없으니까, 어업조합에서 빌린 돈도 갚지 못해 큰 부담이다. 간척사업이 완전히 끝나면서 미래가 불투명하다. 우리는 방조제 수문을 열어서 조사한 후 수문을 열어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생활 곤란해서 파산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를 위해 아리아케해 전 주민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리아케해 바다를 재생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겠다. 어민 대표자들로 인해 어민들이 분열될 수 있다. 신중하게 잘 조직해야 한다.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힘을 넓혀가야 한다. 주민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민들이 연구자의 연구결과를 검토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반대 운동을 못한다. 반대운동을 하면 정부에서 압력이 들어온다.
환경단체 ‘가리가와’라는 여성활동가가 나를 꼬셔서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유기오라씨
‘오오라’에서 사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2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어민으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새우잡이를 하며 어민으로 살아왔다. 이 친구들 중에 한명이 방조제가 건설된 뒤로 생계가 막막해져 한명이 자살했다. 나도 남은 것은 배와 빌린돈의 변재뿐이다. 세명의 자녀가 있는데 큰 아이가 20살이다. 그런데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비참한 상황이다.

다케요시씨
아리아케해에서 어업 활동을 하는 조합이 400개나 되는데 100여개 조합이 어업활동을 그만뒸다. ‘오오라’에서 사는데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으로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다. 나도 어업을 그만둘 생각이다. 이사하야만과 새만금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1916년 키조개를 잡는 잠수부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한국에서 100여명이 왔었다. 이후 이사하야만 사람들이 인도양까지 진출해서 키조개를 잡았다. 이번엔 이사하야만 투쟁을 한국 새만금 주민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앞으로 서로 방문하여 교류를 하고 싶다. 특히 20대 교류를 시키고 싶다. 한국산 백합이나 생선이 일본에서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요시다씨
이사하야만 간척사업 반대투쟁을 강력하게 해 왔다. 앞으로 어민 5천여명 전체가 참여하여 할 예정이다. ‘시마바라시’에서 생선을 잡아 생활한다. 과거엔 1년에 1억 2천만원 정도 수입이 있었는데, 올해는 3천만원 정도밖에 못벌었다. 이중 30%는 경비로 나갔다. 순수입이 형편없이 줄었다.

오오까 도요시
어선을 만들고 있다. 아리아케해를 막아 간접 피해를 받고 있다. 폐업을 하고, 아리아케해를 살기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소생하라! 아리아케해 소송 단장 마나기 변호사 인터뷰

환경소송을 하게 된 계기는?
1969년 미나마따시에 있는 질소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이 시라누이해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 어류들이 오염되고, 생선을 먹은 고양이와 사람이 건강상에 심각한 장해를 받은 일이 발생했다. 이때 후쿠오까 변호사 사무실에 잇었는데, 당시 변호사가 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나를 현장에 판견되면서 부터 환경소송을 하게 되었다. 1차 소송을 끝내고, 2차 소송 을 할 때는 미나마따시로 이주하였다. 현장에 사무실을 꾸리고 4년간 거주하였고, 재판은 28년 동안 하였다. 뭔가 나빠지는 원인은 환경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소송도 담당하는가?
평상시에는 이혼소송을 많이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남편이 월금을 집에 갖다 주지 않아 이혼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혼하면 여자쪽이 힘들다. 그래서 이혼으로 가지 말고, 남편이 가져다 주는 돈만 받도 혼자 살아가는 것도 좋다고 본다. 아리아케해 소송은 4년전부터 하고 있다. 30년 동안 환경소송을 많이 했다. 보상금 소송보다는 공익소송을 많이 한다.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소송 등 폐기물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편 우리 일행을 계속 안내했던 한 변호사는 말한다. 다른 일반 소송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가 없다. 다른 소송을 하면서 이사하야만 소송을 하고 있다. 매년 70건 정도의 소송을 하는데 한번에 다루는 소송은 10건 정도이다. 최근 9억3천만원을 벌 수 있는 소송건을 승소했었는데 상대방이 상고를 한 상태다)

아리아케해 소송에 참여한 배경은?
미나마따병이 발생했던 시라누이해와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이 이루어진 아리아케해는 같이 붙어 있는 바다로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호리 변호사와도 마음이 맞아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며 같이 하고 있다.

아리아케해 소송의 원고인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아리아케해 소송 원고인단은 방조제 외측에 거주하는 어민들과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상자인 어민이 4개 현에 총 5-6천명이 되는데 소송에는 1천5백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방조제 안쪽 주민들은 보상을 받고 법적으로 어업을 못해서 참여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금 액수도 적고, 간척 이후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내측 주민들을 원고인으로 하여 별도의 소송을 준비하려고 한다. 공사를 못하더라도 주민들이 보상금을 정부에게 되돌려 줄 필요가 없다. 보상 받은 것으로 끝났다. 처음부터 일본 정부가 영향평가를 잘 못하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옆에 앉아 있던 어민 요시다씨가 “어민중에 집권당인 자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어민조합도 자민당을 지지하다 보니,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정치적인 문제만 없었으면 5천명 전체가 참여했을 것이다”고 말한다.

아리아케해 소송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사하야만 방조제 수문을 열어서(開門) 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결국 수문을 열라는 것이며, 그래서 아리아케해를 소생하라는 것이다.

아리아케해 소송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겠는가?
오늘 재판에서 현장검증과 원인재정을 요구했다. 재판부의 현장검증은 김 양식이 이루어지는 겨울철에 2일간 아리아케해 전체를 둘러보고, 쯔쯔미 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하도록 요청할 예정이다.

소송비용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다른 환경소송을 했을 때 남은 기금이 있어서 재판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리아케해 소송의 전망은?
만약 기업을 상대로 했으면 이미 이겼을 것이다, 정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폐소했을 뿐이다.

일본에서 환경관련 공익소송을 하는 변호사는 어느 정도인가?
일본 전체 변호사 중 대략 5% 정도다. 환경 관련 보상소송까지 합치면 30-40% 정도 된다.

환경소송에 참여하게 된 남다른 철학은?
약자를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하게 된 것 같다.

한편 나이를 물어보니, 오히려 우리에게 맞추어 보라며 대답을 안한다. “어렸을 때는 나이를 많이 먹게 보더라.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거니 비슷하게 맞추더라”한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63세란다. 올해 변호사가 된지 30주년이 되었다며, 기념행사 책자를 보여주었다.

츠츠미 히로아끼 교수(구마모토 현립대학) 교수 인터뷰

오늘 발표하신 ‘아리아케해 적조 발생’에 대해 요약해서 말씀해 달라.
아리아께해에서 1980년대까지 대규모 적조 발생이 거의 없었으나, 1998년부터 적조가 심화되고 있다. 1997년 4월에 방조제가 완공된 이후 부터다. 적조발생 이후 일본 전체 김생산량의 60%를 차지하던 김이 급감하고, 품질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런데 사가현의 지꾸고천 하류에서 적조의 한 원인물질인 질소나 인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조가 발생한 때는 비가 많이 와 담수 배수량이 증가했을 때다. 즉 강우량이 100m 증가할 때마다 적조 발생이 2.5배 증가하였다. 매년 5월, 여름, 가을철에 연간 3회씩 발생하고 있다. 이때 모두 표층 염분을 측정해 보니 낮았다. 민물이 많이 내려와 해수와 잘 섞이지 않아 염분성층이 발생하고 표층 염양염의 농도가 상승하여 적조가 발생했다. 2002년에는 염분성층이 장기화되어 표층 염양염이 고갈되었고, 양식 김의 색이 빠졌다. 조류의 흐름을 조사해 보니, 방조제가 막히기 전보다 흐름이 약해지고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따라서, 적조 현상의 원인은 바로 이사하야만 제방을 막으면서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

아리아케해에서의 빈산소화 현상에 대해서도 말씀해 달라.
아리아케해의 수심이 낮고, 갯벌의 바로 앞바다 부근의 해역에서 7월 하순부터 8월 상순까지 빈산소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시기에 표층 수온이 29-31℃까지 상승하다보니, 대량의 담수가 유입에 의해 표층 염분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성층구조가 발달하고, 해수의 연직혼합에 지장을 주고, 저층에 산소공급량이 저하되어 빈산소현상이 발생하고, 저질환경이 악화되어서 매년 여름철에 저서생물이 대폭 감소하고 있고 수산생물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결국 빈산소층이 발생하면, 적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같은 조사결과가 새만금 간척 후 새만금 지역에도 비슷하게 나타나겠는가?
새만금지역에 두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새만금지역은 장마철에 두 개의 큰 강을 통해 많은 양의 민물이 흘러들어와 배수갑문을 통해 일시에 배출되기 때문에 이사하야만 보다 더욱 심각하게 적조현상이 대규모 발생하기 쉬울 것이며, 수산생물에 큰 영향을 클 것이다.

오늘 중요한 발표를 하셨는데, 연구비는 어떻게 마련하였는가?
교육부에서 1년에 30억원씩, 3년간 100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아리아케해 재생을 위해서 조용하게 써달라고 하면서 지원해 주었다. 적조 문제와 관련해서는 2001년부터 일산자동차 회사에서 지원을 받고 연구하고 있다. 원래 전공은 갯벌에 사는 조개생태 연구인데 조개가 점점 사라져 연구를 못하고, 적조가 2000년부터 발생하여 이를 연구하고 있다.

정부가 정부측의 입장에 반하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에게도 지원하는가?
일본도 마찬가지로 지원을 안한다. 그리고 정부가 규슈지역의 연구자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과 관련시키지 않도록 요구하면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리아케해 연구자 전체 중 단지 3%만이 이사하야만 간척사업과 연관시켜 조사보고서를 내고 있다.

혹시 불이익은 없고 연구여건은 어떠한가?
교수들은 문제가 없으나, 조교수들은 교수들의 압력으로 제대로 발표를 못한다. 특히 국립대학 교수들은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리아케해에 대해서 발언을 못한다. 대학에 문제가 많다. 내가 속한 대학은 현립대학이여서 남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연구가 가능하다. 바다와 갯벌 생태를 조사하는 연구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연구하기도 좋다. 연구에는 돈이 많이 든다. 대학이 잘 뒷받침해 주고 있어 가능하다. 아리아케해에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이 규슈지역에는 극소수다.

규슈지역의 연구자 십여명만이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이에 10배가 넘는 연구자들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 모른다. 전국에서 80여명의 연구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같은 기간에 연구한 적이 있다.

전문 연구자로서 느낀 점은?
정말로 환경문제를 생각하면서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적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거다. 숫자가 적으니까, 정부가 쉽게 컨트롤 할 수 있다. 정부는 연구비를 주면 연구자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보존운동을 할 때 가능하면 전문 연구자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좋다.

오늘 발표한 내용은 방조제 외측에 대한 자료인데 내측의 자료는 있는가?
내측의 수질조사를 두 번정도 했다. 담수호 1L당 염분1g이 있다. 이런 물로는 농업용수로 사용 못한다. 바다로부터 소금물이 들어오는 것이다. 5년째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물로는 농업용수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지금이라도 방조제 수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이라도 당장 수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문 안쪽을 바다가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어떤 교수와 교류하는가?
인하대의 홍재상 교수와 교류를 하고 있고, 여수대, 제주대 교수 등과도 교류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옛날에는 김이 송이버섯처럼 가격이 비쌋다. 아리아케해 김 양식은 3천억원의 수입이 있었다. 그런데 김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고, 질도 떨어지고 있다. 많이 잡히던 키조개나 바지락 등도 대량 폐사하고 있다. 원래 바지락 생산량이 10만톤 이었는데 4톤으로 줄어들었다. 일본 갯벌은 현재 5만ha 정도 남았는데, 한국갯벌은 40만ha 남아있다고 들었다. 잘 보존했으면 한다. 한국의 인천갯벌, 새만금갯벌과 아리아케해 갯벌은 같은 생태계 현상을 가지고 있다. 이사하야만 갯벌 매립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무엇을 하던지 전문 연구자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한다.

일본습지보존네트워크(JAWAN) 사무국장인 가시와기 미노루씨와 인터뷰

미노루씨는 한국에 20여 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한국어 통역도 곧 잘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몇 년째 습지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미국어를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단다. 최근까지 활동비에 어려움이 많았단다. 예전에 처음 보았을 때 상당히 젊게 보았는데, 벌써 올해로 59세란다.

이번 우간다에서 열린 람사회의에 참여했을 텐데 소감은?
람사회의에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이 아직도 이사하야만 간척사업과 새만금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NGO 끼리 협력하여 갯벌을 되살리고, 동남아시아 개발에 영향을 미쳐 개발이 더 이상 못하게 하자.

일본 정부 일본 환경단체의 의견을 얼마나 수용하는가?
일본 환경성의 경우, 환경단체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고, 다른 정부기관에게 압력을 넣어달라고 교섭해 오기도 한다.

이번에 일본NGO들이 람사회의 보고서를 별도로 냈는가?
몇 년전에는 별도로 작성해서 가져가는데 올해는 일본 환경성이 우리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많이 담아 보고서로 작성하여 별도로 종합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내게 영문자료를 주면서) 간단하게 논문형식으로만 작성했다. (내용을 보니, 일본의 주요 습지 보존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람사회의에 참여하면서 평가를 한다면?
첫번째, NGO 의 참여가 상당히 어려운 회의였다. 우간다 정부 때문이었다. 우간다 정부는 국내 NGO의 참여를 못하게 하고 있는 듯하다. NGO의 좌석이나 단체 명찰이 없었다. 국제 NGO 든지, 지역 NGO든지 업저버 자격이었다. NGO가 발언하기도 어려웠다. 8일간 정부간 회의만 있었다. 예전에는 민간기구가 많이 참여했었다. IUCA(람사당사국 사무국)의 모임도 없었다. NGO에서 참여한 숫자도 적었다. 호주인 1명, 한국 17명, 일본 50명(가부쿠리지역에서만 17명), 미국 몇 명 정도였다.

두 번째, NGO 끼리 만나는게 어려웠다. NGO 회의실도 없었고, NGO 심포지움도 없었다. 회의 마지막 폐회식 때 LOCAL NGO 중심으로 Satement를 구성했다. NGO의 참여가 습지보존을 하는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람사회의를 시작한지 35년이 되었고, 아홉 번이나 회의(COP9)를 진행했다. 그동안 많은 결의와 권고가 나왔으나, ‘현명한 이용’에 대한 실천이 잘 안되고 있다.

네 번째, 한국이 2008년 차기 람사회의(COP10)을 유치한 것에 대해 모든 당사국들이 환경했다. 한국이 람사회의를 유치하면서 ‘Saemanguem Stop!"하는데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과 새만금사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는 계획을 만들고 계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마진막으로 자연보호는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보호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생물다양성이다. 어민, 시민, 법률가 등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사하야만 간척지를 안내한 아카라 다카무라씨 인터뷰

아사하야만 갯벌을 지키는 나가사키현 공동센터 대표이자, 소생하라! 아리아케해 소송을 지원하는 나가사끼현 지회 사무국장이다. 다음 선거에 나가사키현 지사로 출마할 예정이란다.

현재의 나가사키현 지사는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반대하지 않은가?
정치 헌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수문 여는 것을 반대한다.

사업목적이나 규모가 변경된 것은 없는가?
과거 이사하야만 상류인 홍문강에서 1948년 큰 홍수가 발생했다. 그래서 홍수예방을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로 드러 났다. 5년 전 나가사키현 의회에서 지사가 사실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리고 방조제 내측 담수호(조정지)의 수심을 -1m로 조절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수문이 작아서 일시에 배수가 불가능하다. 개답공사를 한 농경지가 해발0m이여서 침수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행정은 비가 많이 와도 항상 침수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는 말을 안한다.

기존 농경지에서는 500년 동안 조금씩 조근씩 간척해 왔는데 논밭속에서 조개껍질이 나온다. 해발 0m이다. 장마철에는 모두 침수가 된다. 펌프장 만들지 않아서 매년 침수피해가 불가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는 작물을 쌀 농사 이외에는 경작할 수 없다.

간척면적을 원래 계획보다 50%정도로 줄였다. 원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로 했던 담수호 물이 염분이 높아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 홍수조절용 조정지로만 사용하고 있다. 수질도 올해 COD 9.3ppm으로 농업용 기준치의 5ppm보다 훨씬 높다. 농업용수는 홍문강에서 수로를 만들어 사용할 계획이다. 조정지의 수질은 고시마호, 시화호와 같은 상황이다.

조정지 안에 15억원짜리 포기시설 3개를 설치했는데, 효과는 미미하다. 일본은 적조발생이 쉽다. 바닷물을 수문안으로 들여 보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왜 수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는가?
정부가 simulation을 했다면서 수문을 열면 재방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방조제가 파괴되기 쉬운 방법으로 자료를 입력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사키현이 나중에 수질을 개선하여 농업용수로 쓰겠다면서 수문을 열지 않고 있다. 하수처리장 만드는 사업도 큰 사업이다. 농림수산성은 450억원 정도 농업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가사키현이 570억원에 매입해서 일반 농가에게 분양하겠다고 한다. 경제성이 없이 사업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사하야만 내측의 어민들은 어떠한 상태인가?
이사하야만 내측에는 12개 어협이 있는데 8개 어협이 어업권을 포기했다. 완전히 어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4개 어협이 남아있지만, 큰 피해를 받고 있다. 그래도 그 어협들이 간척사업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어업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간척사업에 대해 반대할 수 없고, 공식적으로도 피해가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4개 어협에 대한 보상금은 영향 보상이라고 해서 다른 8개 어협에 대한 보상보다 더 적게 받았다. 제방 안쪽의 주민들은 공사전에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고, 보상도 받았기 때문에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적다. 특히 나가사키현에서 침수예방이라고 선전하다 보니까, 대부분이 참성하고 있다. 현재는 어업을 하던 사람도 대부분 전업을 하고 있다. 어업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사하야만에서 가장 중요한 어업은 키조개(일본명 하이라기)였다. 공사하기전인 1980년대에 어민 한사람 당 2억원의 수입이 있었다. 지금은 키조개 어업은 없게 되었다. 방조제 외측에 있는 오우라 지역에서는 1999년부터 6-7년 동안 어획이 없었다. 고나가이에서는 3년전부터 없다. 예전엔 고나가이에서는 3년간 키조개를 잡으면 집 한체를 살 수 있었다. 지금은 고나가이 어민들이 어업이 안되니까, 개답공사를 하는데 다니고 있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는 1997년 4월 14일에 완료했고, 2000년에 방조제 공사를 마무리 했으며, 내부 토지개발 사업은 2007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2조5천억원이 들었다. 개답공사 지역은 일부 시험적으로 감자 농사를 지어 토지개량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운전을 하며 어느 하천을 지나가면서) 이 하천이 사까이가와(경천)인데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하천에 많은 게와 물고기들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없다. (하수처리장을 가리키며)하수처리장을 만드는데 1천억원이 들었다.

이사하야만 외측인 아리아케해는 어떠한가?
예전엔 바닦 점토에서 질소와 인이 부유되어 영양을 공급해 주었는데, 방조제가 막힌 후 지금은 점토가 부유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원래 예전에는 아리아케해는 불투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투명하고 되어서 오히려 문제다. 야나가와에 사는 한 유명한 시인은 아리아케해를 ‘꼬끼리 피부색깔’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굉장히 입자가 작은 점토가 퇴적되어 키조개, 바지락 등이 살 수 없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주용기(환경운동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