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선진화 정책, BT 산업정책 당장 중단해야"

현장에서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며

황우석 사건은 의료계와 과학기술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실험에 필요한 난자를 입수하는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윤리적 문제, 자의적이고 불투명한 윤리규제의 문제, 연구 책임자-연구원 간의 수직적인 실험실 인권의 문제 등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속속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고 급기야는 연구결과 전체가 조작된 것일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의료계와 과학기술계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첫째, 해당 분야에서 지도교수나 연구책임자의 권력은 연구자의 직업이나 일생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강력하다. 바른 소리 하다가 실험실을 그만둔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법으로 정해진 윤리 기준을 어기는 것을 넘어서 연구조작을 지시해도 일생을 걸 각오를 하지 않는 다음에서야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종속적이고 억압적인 곳이 실험실이다. 황우석 교수팀에서 연구조작 지시에 마음고생하고 사건이 터지고서는 여러 형태로 유무언의 압력이나 협박을 받았을 연구원들을 생각하면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둘째, 이번 사건에서 젊은 생명공학자들이 진실 규명을 위해 힘쓴 반면, 의료계와 과학기술계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들이야말로 황우석 사건의 공범이다. 논문 작성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버젓이 이름을 올렸다가, 사건이 터지고 나자 ‘과학기술계가 검증해야 한다’ 운운하면서 과학적 진실을 숨기는 데 급급했던 것이 그들이 아니었던가? 과학적 진실을 밝혀야 할 곳에서 손익계산의 주판알을 튕기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과학기술을 맡길 수는 없다.

셋째, 사건을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한 것은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자는 상식적인 주장을 매국노 취급한 언론들이다. 자기들의 시나리오에 과학적 사실들을 어거지로 끼워 맞추거나 무시한 기자들이 있었다. 과학의 역사에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과학’이 살아남은 예는 없었다. 과학언론이 정부나 연구자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면 누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릴 것인가? 온갖 협박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적 감시 기능을 수행했던 ‘프레시안’과 'PD 수첩'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 과학기술계의 보배이며 지킴이이다. 황우석 연구팀 나팔수 노릇을 했던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의료계와 과학기술계, 과학언론에는 연구 현장과 과학보도에서의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고, 과학기술을 ‘만병통치약’으로만 생각해오던 국민들에게는 큰 경험이 될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젊은 과학자들은 끝까지 진실을 파고들었고, 진실을 용기 있게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연구자들 스스로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곳이 되고 만다. 지금부터라도 실질적인 강제성과 영향력을 갖는 ‘기관심의위원회/국가생명윤리위원회’, ‘기관과학진실성위원회/과학진실성위원회’ 등을 정비/신설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검증 절차와 규정을 제도화하고 잘못된 연구관행을 하루빨리 청산하여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갖추는 것만이 의료계와 과학기술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걸로 모든 것이 다 마무리 지어진 것일까? 왜 황우석 연구팀은 생명윤리 문제와 연구결과 조작까지 하면서 급하게 연구 성과를 얻으려 했던 것일까? 이 사태의 근원은 정부가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의료산업선진화 정책과 BT 산업정책을 무모하게 추진한데 있는 것은 아닌가? 과기부 장관의 말처럼 과학의 발전이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처럼 된다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노벨상을 떠들면서 스타과학자 만들기와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얄팍한 ‘쇼’를 만든 건 바로 정부가 아닌가? 현실성 없는 BT 산업정책과 의료산업화 정책의 제일 앞 선에 있던 이가 바로 황우석 교수이고, 그 이면에는 의료산업선진화 정책과 BT 산업정책을 둘러싸고 자기이권을 확보하고자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박기영 보좌관을 포함한 과학행정가들과 그들의 동맹자 역할을 하는 일부 연구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기반을 제공하는 정책들을 제안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관변 정책전문가들, 국가 의료체계를 흔들어 자기이권을 챙기려는 보험사와 의료산업계의 거대한 커넥션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황우석 연구팀은 이들의 ‘광대’였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더 이상 한국의 의학계와 과학기술계를 망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이제 더 이상 일부 특정 집단에게만 이익이 갈 뿐인 잘못된 정책적 목표를 위해 ‘눈앞의 성취 외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연구자들을 이용하고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민들을 우롱하고 급기야는 의료서비스 전체를 파괴시킬 지도 모를 현재의 잘못된 의료산업선진화 정책과 BT 산업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관련자들을 징계해서 잘못된 정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고, 현장의 연구자들과 수요자인 일반 대중이 참여하는 활성화된 대중적 토론을 통해서 의료산업선진화 정책과 BT 산업정책을 그 근본에서부터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신명호 님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 조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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