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미국은 안 이런데?”
“뭐시라? 누가 보면 미국서 한 10년 살다 온 줄 알겠다? (...진짜 재수 없군...) ”
아니, 이럴 수가....
어쨌든, 별 사소한 것이 신기했는데... 이를테면, 지하철을 타러 가서 ‘깜짝’ 놀랐다. 우선, 지하철이 멀끔하다는 점에 놀랐고, 승객들이 조용한 데 놀랐으며 (미국 사람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떠들어 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국의 입바른 아저씨들이 그리워진다. “거, 지하철 전세 냈어? 조용히 좀 합시다!”), 지하철 역 내에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있다는 사실에 ‘진짜’ 놀랐다.
내가 살고 있는 보스턴은 미국 내에서도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돈 없다고 이 사회가 날 무시하는구나’였다. 연착은 기본이요, 문이 반쪽만 열리거나, 객실 유리창이 깨져 있는 차량, 쉴 새 없이 물이 새서 이리 저리 피해가야 하는 지하 역사... 지하철이 백 년 되었다니 낡고 더러울 수도 있지, 하면서 이해해보려고도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다른 민간 부문과 비교해볼 때 이건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나라가 할 짓이 아니다.
그 뿐이랴. 뉴욕의 중앙역 (Penn Station)에 갔을 때, 특급 열차(Acela)표를 가진 이들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휴게 공간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기차를 기다리고, 그 유리벽 바깥에는 의자가 아예 없어서 일반 기차 승객들은 서 있거나 아니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걸 보고 아주 기가 막혔더랬다. 돈 없으면 앉아서 기차를 기다릴 권리조차 없는 곳... 그러니, 특별히 호화로운 장식이나 특별난 최신 시설이 아니라, 그저 멀끔할 뿐인 토론토 지하철을 보고 감동을 받는 해괴한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아, 그리고 분리수거.... 참세상 독자들이야 뭔 소리여 하면서 의아해 하겠지만 말이다. 미국의 패스트푸드 점이나 각종 공공장소에 달랑 한 개만 놓여 있는 휴지통, 그리로 거기로 사정없이 뒤섞여 내던져지는 쓰레기들 - 마시다 만 물, 음료수, 남은 피자 쪼가리, 종이컵, 플라스틱 접시들을 보면서 ‘저러다 천벌 받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봤던 사람이라면 이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땅 넓으니 묻어버리면 그만이고, 최신 압축 기술 덕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매립할 수 있다고 좋아라들 하는 미국 사회.... 그런데, 토론토 시내에서는 지하철역은 물론, 쇼핑몰의 푸드코트, 심지어 묵었던 호텔 방 안에까지 분리 수거통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 지하철 역사 내의 쓰레기 분리수거 시설 - 감동 받아 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 보니 호들갑이었다는 자각이 마구... |
예외, 그리고 정상
사실 이번 방문은 현지 공공병원을 견학하고 관련 연구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위한 것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이 서로 맞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 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걸핏하면 서로 비교되고...
캐나다는 조세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제도(Medicare)를 가지고 있으며, 주 정부(provincial government)가 보험자가 되어 전 국민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처럼 의료보험 미가입자 문제라던가, 메디케이드 (Medicaid: 빈곤층을 위한 의료급여제도) 예산 삭감, 높은 본인 부담금 같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미국에서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최소한의 행정비용인데, 환자는 대부분 무료로 병의원을 이용하고, 의사는 자기가 제공한 서비스를 주 정부에 청구하고, 병원은 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총액 예산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으니 미국처럼 여기저기 보험회사와 병의원, 환자들이 서로 얽혀 청구서를 처리할 일 없다는 게 큰 장점 중의 하나다. (지난 글 참조)
하지만, 여기라고 문제가 없으랴... 비록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는 하지만 여기에도 엄연히 건강 불평등의 문제가 존재하고(그래도 가장 모범적인 국가 중 하나), 정부는 치솟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고심하고 있으며(주 정부 예산의 1/3에 이르는 곳도 있단다), 비응급 수술의 기나긴 대기자 명단은 악명이 높다.(특히 미국의 비판 장난 아니다. 당신들이나 잘 하시지....)
그러다보니 경비절감과 효율성 제고의 21세기형 만병통치약, ‘사유화, 영리법인 도입’ 이야기가 여기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이건 사족인데, 심지어 미국도 대놓고 수익 창출 운운하며 의료‘산업’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의료‘산업’으로 돈 한 번 벌어보자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까지 설치하는 건 아무리 봐도 결코 정상이 아니다.)
▲ McGuinty 정부의 공공병원 사유화에 반대하는 온타리오주 보건 연합의 선전물 (사진 : 진보 블로거 Neoscrum) |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캐나다의 발걸음에는 분명 미국과 다른 그 무엇이 존재한다. (어떻게 아냐고? 멀더와 스컬리가 살짝 알려줬다. ^^) 연구자들이나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미국보다 특출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보건의료 기관들이 특별히 더 관대한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스펙트럼이 실존(!)하며, 각각의 지향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언론과 정당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최소한 미국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굴러가고 있지는 않다는 것!
이를테면, 1999-2000년 겨울의 인플루엔자 유행 당시, 토론토의 의료체계가 완전 마비되는 (심지어 응급실 인질극까지!) 난리가 났었단다. 극우 신문인 National Post 에서는 비효율적인 공공의료 자체가 문제라며 시장 메커니즘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 데 비해, 중도 좌파 신문 Toronto Star 는 연방 정부의 투자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논쟁을 벌였고, 주 정부의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러한 견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보고서를 제출했다.
좌/우의 논쟁이라니, 미국의 우/우 정치판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아닌가? 또한 주목받은 사실 중 하나는, 당시 캐나다 전역을 휩쓴 인플루엔자 유행 속에서도 사스캐치완 (Saskatchewan) 주 같은 곳은 응급실부터 장기요양시설에 이르기까지 의료 서비스 제공의 흐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가 어디냐? 바로 캐나다 국민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토미 더글라스 (Tommy Douglas)가 주지사로 좌파 연정을 이끌면서 1962년 북미 대륙 최초로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했던 바로 그 곳이다. (사실, 당시 처음 보험을 도입할 때 의사들이 전면 파업을 벌여서 장난 아녔단다. 미국 의사협회에서 파업 적극 지원하고, 주 정부에서는 파업 파괴조로 영국에서 의사를 모집해 와 보건소 등에 파견하고.... 역사에서 뭐 하나 공짜로 되는 건 없지 않나...)
여기는 그동안 건설한 강력한 공공의료 체계와 효율적인 지역보건 네트워크를 통해 (당시 집권 정당은 보수당이었는데도 말이지...) 토론토에서와 같은 비극적 사태가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는 것을,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은 제대로 된 공공 네트워크와 조율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한 현실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번에 만났던 닥터 래클리스 (Michael Rachlis)는 좌파 정당의 보건 정책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보건의료정책 전문가인데 (선거 준비 때문에 바빠 죽을 지경이란다 ㅡ.ㅡ), 이 양반이 나한테 물어봤다. “어떤 연유로 이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 부모님이 노동당 소속이셨나?” “뭐시라고요? 노동당?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리를...)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의석 가진 건 이번이 해방 이후 처음이라니까요... (쫑알쫑알 횡설수설...)”
음... 그랬다. 내가 그동안 한국이나 미국이라는 ‘예외’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거지, 여기 캐나다 또한 여느 민주주의 국가들과 다름없이 다양한 이념적 ‘지향’과 정치적 실체로서의 ‘정당’이 있고, 현실에서의 ‘투쟁’이 있었던 거다. (Neoscrum 블로그 참조) 그리고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그 투쟁과 갈등의 산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 운동, 좌파 정당의 부재가 현재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공공정책의 퇴조를 가져왔다는 Dr. Himmelstein의 말에 이백 퍼센트 공감!
▲ 토론토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한 산재 노동자 추모 조형물 ‘100인의 노동자’- 1901-2000년에 온타리오 지역의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사망년도와 이름, 작업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동안전보건을 강화하자는.... 이런 조형물이 서울 시청 광장에, 혹은 뉴욕의 타임 스퀘어 광장에 세워지는 걸 상상할 수 있나? (사진 : 진보 블로거 Neoscrum) |
그래도, 이건 음모가 틀림없어!
토론토 시내 한 공공병원의 의사결정 지원국장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공공병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의료의 질이 낮은 곳’, 이런 편견이 존재하는데, 여기는 안 그런가요?”
“상업화된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환자들이 걸린 질병은 다르지 않은데 환자의 다른 조건 - 이를 테면 경제적 조건- 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왜 같은 환자를 분리해서, 다르게 치료해야 하죠? 그건 질병의 선택이 아니라 병원의 선택일 뿐입니다. 환자는, 질병은 모두 같아요.”
오잉? 연구자도, 활동가도 아닌 자가 이런 멋진 말을?
그 병원의 행정부서 실무자를 만나 비용절감을 위한 외주나 용역, 비정규 고용 실태가 어떤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기 일에 만족하지 않으면 환자의 만족도가 절대 높아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용역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비용이 절감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우리 병원은 최근에 정책을 바꿔서 외주를 없애고 모두 정규직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요. 간호 인력도 파트타임이나 대체 보조 인력을 줄이고, 정규직 풀타임 간호사를 늘여가고 있는 중입니다. 단기 비용은 좀 들어갈지 몰라도 임상 서비스의 질과 환자의 만족도를 고려하면 오히려 이게 더 경제적이죠.”
잉? 당신 진심이야?
중간에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아저씨, 저는 미국에서 여기 병원 견학 왔는데... 캐나다 의료제도가 좋다고들 하잖아요. 근데 진짜로 의료보험 제도가 맘에 드세요?” 불과 1초도 안되어 날아온 대답.
“당근이지. 우리처럼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잖아. 우린 미국이랑 다르다구....”
“근데, 대기 시간 길다면서요.”
“급한 치료나 수술은 다 금방 할 수 있어. 물론 나쁜 점도 있지... 치과 같은 거는 보험이 안 되거든. 그렇다고 미국처럼 되는 건 절대 반대야...”
?? 수상해.... 혹시 음모가 아닐까?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같이 캐나다 국정홍보처 직원 같은 이야기만 골라서 할 수가 있냐구...
심지어 면담을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는데, 눈보라 속에 경찰차들이 출동하여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을 하나씩 부축해서 쉼터로 태워가는 모습까지... 그것도 바로 내 면전에서.... (나도 좀 태워서 호텔까지 데려다주면 좋으련만...)
이 마당에서 나는 완전 확신을 굳혀버렸다. 이 인간들이 작전을 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의 이름 없는 최저위층 인사 1인이 방문하니, 그녀의 동선 주변에 우리 요원들을 촘촘하게 배치하라! 오바’ (요즘에 X-Files 시리즈에 빠져 다시 음모론 신봉자가 되었음을 이해 바람)
미래는 무한한 현재의 연속...
닥터 래클리스가 거듭 강조했듯, 캐나다가 이상적인 사회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사회라는 점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사회마다 나름의 역사와 질서, 동력이 있는 법 - 따라서 캐나다가 결코 우리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캐나다의 경험은 미국식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며, ‘결국에는’ 미국처럼 될까봐 미리 좌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넓고,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것은 결국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이 즈음에서 ‘어떤 위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미래는 결국 무한한 현재의 연속’이라는 하워드 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