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좌파의 현실

한(조선)반도 전체가 제국주의 세력들의 전초기지로 전락

20일 새벽 워싱턴에서 열린 제 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격•전면 수용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나아가 이번 공동성명 속에는 '자유의 확산'에의 협력,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약속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노무현 정부가 그 동안 말해왔던 ‘평화번영정책’과 ‘동북아 균형자론’은 완전히 파산 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임관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라고 한 약속은 완전히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사회에서 ‘한미동맹’을 지고지선 한, 절대적 가치로서 주장하고 있는 친미•보수 집단과 비교해 보여 왔던 최소한의 차별성마저 스스로 거두고 말았다.

이번 ‘공동성명’이 갖는 미래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그 동안 추진해왔던 지구적 차원에서의 미군의 ‘기동군화’와 관련하여, 동북아 지역에서 완성된 그림을 그리게 됨과 아울러 미사일 방어전략(MD)을 추진하는 데 탄력을 받게 되었다.

둘째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동맹’, ‘주한미군 및 한미연합사령부의 지위와 역할’, ‘전시작전이양권’ 등에서의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상의 것들은 모두 오로지 북의 안보 위협(?)을 전제로 성립한 것이었다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는 주한미군 주둔의 그 목적과 범위가 한(조선)반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동북아 안보 지형에서의 긴장이 고조되는 정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자유의 확산’이나 ‘PSI'에의 적극적 참여는 곧 북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공동성명에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들어 문제를 비껴가려 하고 있다. 친미•보수 세력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해 노골적인 반김을 숨긴 채 문제를 호도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미국은 그 동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시킬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해왔다. 이에 대해 친미•보수 진영은 이럴 경우 안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점과 일본 또는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점을 내세워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할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왔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북핵’ 문제 해결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여 왔으며, 결국 이번에도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미국의 대 중국 전략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노무현 정부의 지속된 굴복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은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에 몰고 올 정세 변화의 파고는 높고 거칠 수밖에 없다.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인,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전제로 한 동북아 다자 안보체제 성립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한미일 삼각동맹 대 북중러 삼각동맹 사이에 신냉전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번 전략대화는 마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응하는 꼴이 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도 더 난망해 질 것은 물론 남북 사이의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으며, 한(조선)반도 전체가 제국주의 세력들의 전진•전초 기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 서 있다.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반제, 반전 대중투쟁동력은 형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변화하는 정세를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남북 및 동북아 노동자 인민 사이의 아래로부터의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문제는 출발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즉각 투쟁에 나서지 못하고 기껏해야 노무현 정부에 질문이나 하고 있으며, 그나마 일부 민중, 시민단체가 항의 시위를 하고 있는 정도이다.

한국의 좌파는 어디에 있으며, 어찌해야 하는가? 도대체 좌파 정치는 있기나 한 것인가? 노동자 인민의 목숨이 제국주의 세력과 국내 지배계급에 의해 휘둘릴 처지로 몰리고 있고, 노동자 인민의 미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목전의 생존권 투쟁에‘만’ 매달린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인가? 생존권 투쟁의 연속 위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응을 하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가?

노동자 인민을 직접 이러한 투쟁에 나서게 하기 위한 정치활동은 불가능한가? 노동자 인민의 정치적 능력이 정말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것이야말로 자기의 정치적 무능과 무지를 숨기기 위한 핑계가 아닌가? 좌파 정치활동이야말로 근본적인 전변이 절실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