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에서 대안과 미래를 찾는다

[기호2]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과제

민중언론 ‘참세상’은 지난 2월 3일 게재한 ‘지지 후보 발언과 타 후보 정책 비판’에 이어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과제’ 기고를 각 선본에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담을 내용으로는 ‘민주노총 4기 집행부의 연대활동, 정치방침 등에 대한 평가’와 ‘현 시기 한국 사회 문제와 모순 해결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를 주문했다.
보궐선거 과정에서 민주노총 진단과 현안 투쟁, 혁신 과제 등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으나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과제와 역할 논의 부분은 소홀하다는 지적에 따라 각 선본에 제안하였다.
기호1번은 전원배 울산지역 노동운동가가, 기호2번은 김준이 인천지역노동조합 사무국장이, 기호3번은 이호동 발전노조 조합원이 각각 글을 보내왔다.
2월 7-9일 비정규직법안 개악 시도가 예고되는 가운데, 각 선본이 개악 저지에 힘을 모으는 시점이어서 정세에서 다소 비껴나 보일 수 있겠으나, 조합원과 독자 여러분의 정책 판단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게재한다. - 편집자 주



나는 개인적으로 조준호, 김태일 두 후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조준호, 김태일 두 개인이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노선과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쟁취, 노사관계로드맵 저지와 노사관계민주화방안 쟁취, 한미 FTA 저지, 무상의료 무상교육 쟁취를 위한 총파업투쟁과 민중총궐기를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공약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투쟁’은 지난 4기 집행부가 내걸었던 주요 슬로건이었고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괴물이 전체 민중의 삶을 극한까지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만이 아니라 전체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전망과 대안을 갖지 않을 때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저지’하고 막아내는 투쟁만 할 것인가? 작년 비정규법안의 강행통과를 저지시킨지 몇 달이나 지났는가. 다시 저들은 비정규 법안을 상정하고자 한다. 자본과 정권이 담합하여 국회에 비정규법안을 상정하면 우리는 다시 칼바람을 맞으러 국회 앞으로 달려간다.

나 스스로 인천노조의 사무국장으로 누구보다 비정규 법안에 날이 곤두서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번에는 다시 몇 달이나 연기시킬 수 있을지, 언제 다시 조합원 아주머니들과 여의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야 할 지 모르는 이 쳇바퀴 도는 듯한 투쟁으로 과연 비정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패배주의(?)에 빠질 때도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고용시스템 자체를 박살내지 않고서 법안 하나 막아낸다고 비정규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이 답답한 투쟁을 오늘도 해야만 한다.

무엇 때문인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한발자욱을 건너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구호는 외쳐지지만,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투쟁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헌법을 가슴 깊이 부여안고 ‘혁명’을 선동하는 베네주엘라의 늙은 노동자 농민들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지만, 정작 우리 가슴에는 부여안을 ‘대안’이 없고, 선동할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에서 대안과 미래를 찾고자 한다. 더 이상 자본과 정권이 담합한 국회 일정에 우리의 투쟁을 맞추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바꾸는 투쟁을 하고 싶다.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 민중이 함께 나서 ‘우리 세상’을 만드는 투쟁을 하고 싶은 것이다.

기껏해야 1년 남짓한 임기의 보궐임원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맞다. 어찌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하루 이틀에 가능하겠는가.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는 식의 허황된 몽상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와 기획, 중요하게는 헌신적인 조직화과정과 투쟁의 과정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4기 집행부에 이어 민주노총의 중장기적 투쟁방향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느 후보가 들어서더라도 이 투쟁의 기조 하에 사업과 투쟁이 배치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기호2번 조준호, 김태일 후보진영이 임원선거 공약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미래와 전망을 열어나가는 기획으로 이 투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당락과 무관하게 기필코 책임져야만 하는 과제로 이 투쟁을 끌어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민주노총 4기 집행부의 연대활동, 정치방침 등에 대한 평가

마찬가지 측면에서 4기 집행부의 가장 중심적인 사업내용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들겠다.

4기 집행부가 내세웠던 민주노총 운동방향에서 사회적 약자 및 범민중진영의 연대강화와 반전평화투쟁 강화 등의 내용이나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사회공공성 쟁취투쟁,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 개방반대 투쟁 등의 투쟁과제는 모두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복무하는 내용들이다. 특히 무상의료 무상교육 중심의 사회공공성 쟁취투쟁은 민주노동당, 전농, 전국민중연대 등에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공동으로 추진함으로써 민중복지를 실현하는 전체 민중의 과제를 노동자들이 앞장서 해결해 나가야 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광범위한 민중진영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여 의료, 교육, 고용, 주거 등 사회 전반의 공동체 영역을 포괄하는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를 결성한 것은 중요한 투쟁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는 의미 외에도 사회적 투쟁을 주도하고 촉발하는 중심 주체로 노동운동이 성장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한미군기지 확장저지투쟁으로부터 아펙반대투쟁, 홍콩각료회의 저지투쟁으로 이어지는 반전평화, 반세계화투쟁은 노동자들의 선도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투쟁으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핵심이 제국주의 미국이라고 할 때 더 높은 차원의 반미, 반제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었고, 반제국주의, 반세계화 투쟁의 선봉으로 한국노동자들의 결의를 다른 나라 진보민중들에게 과시하고, 더욱 폭넓게 연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사회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것은 노동운동의 조직 및 투쟁역량이 강화되는 것에 비례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에만 목을 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 전체 민중의 과제를 실현하는 투쟁에 헌신적으로 나설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4기 집행부의 사업과 활동은 전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하고, 그것의 주동적인 해결 주체로 나섬으로써 노동운동의 사회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높여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강수석 비리사건으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리는 비극이 발생했지만, 그렇다고 기왕의 성과들을 모두 무위로 돌려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4기 집행부의 연대활동, 연대투쟁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다면 작년 농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이다. 물론 당시 국회 앞 비정규투쟁에 돌입해 있는 상황과 비상대책위 체제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조건상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 농민들의 쌀 투쟁은 단순한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서 한국농민운동의 미래가 걸린 투쟁이었고,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가장 강력한 동맹군이 농민들이라 할 때 그 위상에 걸맞는 강력한 연대투쟁을 배치했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당장 비정규 투쟁도 벅찬데...” 하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제, 우리 발아래만 쳐다보게 되면, 어찌 연대투쟁을 할 수 있겠는가. 당면 현안만을 중심에 놓게 되면 어찌 반세계화, 반제투쟁은 물론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할 수 있겠는가.

현 시기 한국 사회 문제와 모순 해결을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

우리 역사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대략 1920년대 이후이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 제국주의는 미쓰이, 미쯔비시 등의 독점자본을 침투시켜 철도, 항만, 금속, 화학 등 주요 산업부문을 장악하였고, 이와 함께 조선인 노동자들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원산총파업 같은 강력한 투쟁으로 그 기개를 세계만방에 떨치기도 했던 조선노동자들의 투쟁은 당연히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적 요구로부터 촉발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해방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해방 직후 공장자주관리운동을 통해 현장의 주인으로 나섰으며, 인민위원회 활동을 통해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새 세상을 건설하는 투쟁에도 가장 전투적으로 나섰다.

현 시기 한국사회는 대단히 중요한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243조이던 가계부채가 2004년 6월 현재 472조원으로 2배로 증가하였고, 1999년 503건이던 개인파산신청 건수가 2004년 상반기에만 3,759건으로 7배 이상 증가하였다. 단전 대상 가구수가 100만을 육박하고 있으며, 하루에 960명 1년에 35만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가난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18,600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밥을 굶는 아이들도 갈수록 늘어 96년 5,500명이던 결식아동이 2004년에는 3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죽어가는 환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서민들은 가족 중 한 사람만 중병에 걸려도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감당 못해 집안 살림이 거덜 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초국적 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침탈이 가속화되어 주요 골간기업들이 부실화되면서 경제 전반이 황폐화되고 있어 한국 경제의 미래에 심각한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종합청사를 점거하며 투쟁한 오리온전기를 비롯하여, 대우자동차, 만도기계 등의 알짜배기 기업들이 초국적 자본의 손아래 장악되었으며, 금융, 공공부문을 포함한 한국사회 전반이 초국적 자본의 투기장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현재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한미 FTA’라는 핵폭탄이 준비되고 있다.

한미 FTA는 단순히 대미통상문제나 그로 인해 발생할 구조조정의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진로와 미래를 다투는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의 대외채무 심화와 달러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적 파국을 예견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는 미국경제가 짊어져야 할 모든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춰볼 때,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생존권의 문제를 뛰어넘어, 생존의 위기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근본정책을 부정하는 투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은 노동계급만의 투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가 희생을 강요하는 모든 세력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민중투쟁을 촉발하고 주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현 시기의 주류 담론으로 되고 있는 세계화(개방화)와 자유화 논리를 뛰어넘는 대안담론, 극복담론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대외의존적 성장전략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이념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정책을 생산해 내야만 한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다른 세상’이 아니라 손에 잡히고 구체적으로 희망할 수 있는 변혁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현 시기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자 투쟁의 과제인 것이다.

그러할 때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진정 민주노총이 1,500만 노동계급의 희망이자, 전체 민중의 자랑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투쟁이며 내가 기호2번 후보들과 함께 하고 싶은 투쟁이다.
덧붙이는 말

김준이 님은 인천지역노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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