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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만 해도 삶이 풍부해지는 꽃향유

[강우근의 들꽃이야기](35) - 꽃향유

바람이 분다. 바람은 나무 꼭대기 잔가지들은 거칠게 훑으며 몰아쳐 갔다. 텃밭 옆 언덕바지 마른 풀대들이 거친 바람에 버석거리며 부르르 떤다.


들깨풀이며, 배초향, 익모초, 꽃향유 따위는 꽃이 진 뒤에도 시들어서 쓰러지지 않는다. 씨앗이 잔뜩 들어 있는 꽃이삭을 곧추 세우고서 말라죽는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이 마른 잡초 한 포기가 품고 있는 씨앗 개수는 수천 개에서 수 만 개에 이른다. "한 개체에서 수만∼수십 만 개 씨앗을 내어 퍼뜨린다"(「대지의 수호자 잡초」, 구자옥)

마른 꽃이삭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꽃대 끝에 꼿꼿이 매달려 바람을 기다린다. 바람이 마른 꽃이삭을 흔들고 지나가면 꽃이삭은 씨앗을 털어 낸다. 꽃이 지고 줄기가 시들어 쓰러졌다면 씨앗은 몽땅 그 둘레 흙 속에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꼿꼿하게 말라버린 풀은 거친 겨울바람조차 그냥 보내지 않고 살뜰히 씨앗을 실어보낸다. 한겨울 내내 바람이 흔들어 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씨앗을 털어서 멀리 흩뿌리는 것이다.

텃밭 둔덕에는 꽃향유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듬성듬성 보이는 배초향이나 익모초 따위는 꽃향유 보다야 훌쩍 크게 자라지만 꽃향유 처럼 무리 지어 자라지 않는다. 꽃향유는 배초향, 익모초, 향유처럼 꿀풀과에 속한다. 이 풀들은 모두 풀 전체에서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바짝 말라버린 꽃향유 사각 줄기에서는 여전히 향기가 짙다. 바람이 쓸고 또 쓸어갔지만 냄새는 옅어지지 않았다. 썩어지기 전에는 그 냄새가 가실 것 같지 않다. 마른 꽃이삭을 달고 있는 꽃대를 꺾어서 퀴퀴한 겨울 방안에 꽂아 두고 방향제로 삼을 만하다.

거친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꽃이삭이라 줄기가 꽤나 질길 것 같지만 손으로 꺾으면 쉬이 부러진다. 부러질 때 충격으로 씨앗이 후두둑 튀었다. 마른 꽃이삭을 손바닥 위에 탁탁 털었더니 까만 씨앗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을 입안에 넣고 꼭꼭 씹으면 들깨처럼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코로는 꽃향유 향기가 느껴진다. 지난 계절 참 바지런히도 벌레들을 불러들이더니 이렇게 많은 씨앗을 맺은 것이다.

꽃향유는 벌레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들꽃 가운데 하나이다. 가을에 여러 곤충을 보고 싶으면 꽃향유 군락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한 자리에서 수십 종류의 나비와 벌, 꽃등에 따위를 만날 수 있다.

꽃향유는 봄부터 가을까지 두고두고 잎을 따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무쳐도 먹고 튀기거나 볶아먹어도 맛나다. 꽃도 꽃이삭째 따서 술에 넣어먹고 차로 끓여 먹었다. 겨울에도 마른 꽃이삭을 따서 술을 담그거나 차로 끓여 먹을 수 있다. 꽃 향유 한 가지만 알아도 삶이 풍족해진 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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