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블록화, 자본의 과잉생산 위기에 기인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4) - 지역무역협정, 평화의 길 또는 전쟁의 길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양국에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구축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부시대통령의 언급을 보아 한미FTA가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에 끝나는 문제가 아님은 틀림이 없다. 이는 한미FTA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와 함께 한다는 분석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적 지역화, 블록화가 가져오는 군사적 긴장에서 연유하는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적 성격은 미국과의 FTA의 이면이기도 하다.

자유무역협정, 지역무역협정을 통하여 지역화, 블록화가 강화되고 있으나 지역무역협정은 회원국간의 특혜적 교역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WTO 최혜국대우원칙과 배치될 수 있다. 그러나 WTO가 ‘세계무역규범 형성 및 자유화를 위한 유일한 포럼’으로 강조하면서도 ‘지역무역협정은 무역의 자유화와 확장 그리고 개발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여 WTO DDA 서문에 반영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지역무역협정이 가속화되면서 WTO DDA는 자유무역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상징으로서의 의미에 제한되고, 오히려 FTA와 같은 양자간 협정을 통하여 지역화, 블록화로의 실질적인 자본운동이 전개되는 형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WTO DDA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현실에서 더욱 그러하다.

노무현정권이나 앞에서 언급한 오부치 수상이 모델로 삼고 있는 EU는 EEC(유럽경제공동체)라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 사이의 관세동맹으로부터 출발한다. 급기야는 2004년 5월 1일부로 가입한 동구 8개국과 중동구 국가 10개국을 합쳐 25개국, 인구 4억 5천만, GDP 9조 달러로 세계무역의 20% 에 달하는 단일시장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향후 중동구권, 발칸국가를 포함하여 러시아까지 확대할 가능성을 넓혀두었고 현재 경제적 통합에 이어 단일 연방국가까지를 포함하는 정치적 통합에 대한 논의까지 진전시키고 있다.

아울러 2차 대전 이후 합의된 브레튼우즈 협정이 70년대 중반에 사실상 붕괴된 이후, 1999년 유럽중앙은행이 만들어지고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출범시킴으로서 통화권을 매개로 자본정책의 영향력이 관철되는 보다 진전된 지역화, 블록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평화의 공동체’의 전범인 것처럼 제기되고 있지만 사실 EU는 노동자 민중의 피눈물을 댓가로 구축되었다. 단적인 예로 단일화폐를 만들기 위한 마아스트리트조약은 각 나라의 재정지출을 제한하게 하여 교육 등 공공재정 삭감에 반대하는 유럽의 노동자, 민중 그리고 학생의 폭발적인 투쟁을 불러왔다. 작년 프랑스와 네델란드에서 유럽헌법을 확정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도 이에 연유한다.

한편 이라크에 이어 최근 핵개발을 빌미로 부시정부에 의해 군사적 공격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란, 그리고 북한 등 ‘악의 축’으로 거론된 핵심 3개국이 모두 결제화폐를 달러에서 유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블록화가 시사하는 바 더욱 크다. 아울러 최근 자주 거론되는 달러 불안정의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다.

EU의 구축과정은 한편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등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진전되어 왔다. 쿠바를 제외한 남북미 32개국 인구 8억명, GDP 13조 달러에 이르는 거대 지역블록 FTAA는 2005년에 출범할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쿠바,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등을 중심으로 한 남미권의 독자적 행보에 의해 지연되고 있다.

한편 GDP 약 7천억, 인구 21억 명을 포괄하고 있는 아시아지역, 특히 GDP 약 6천억 달러, 16억 인구의 아시아지역 교역의 80%를 차지하는 동북아지역은, 세계인구의 25%, 세계 GDP의 18%. 세계 무역량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어 북미, 유럽에 견줄만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이 EU를 모델로 ASEAN+3에 대한 기획을 하게 되는 배경이다.

지난 홍콩각료회의가 시작될 무렵이던 작년 12월 12일 ASEAN 정상회담에서 이미 2002년 중국과 향후 10년 안에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합의한 바 있는 ASEAN은 인도와도 향후 10년 내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합의하고 일본과는 FTA 협상을 추진하기로 하였으며, 한국과의 FTA 협상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아시아지역의 독자블록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중일FTA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와 APEC을 매개로 한 개입 등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아울러 이미 97년 외환위기 당시 유로화의 산파역할을 한 EMF(Europe Monetary Fund)를 본떠서 AMF(Asia Monetary Fund) 창설을 주장하며 ‘대동아엔공영권’을 설계했던 일본의 의도 역시 미국에 의해 저지된 바 있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3개국이 지역통화기금 성격을 띠는 동아시아 최초의 금융통화협정이랄 수 있는 2국간 통화스왑으로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합의했지만, 아시아지역 금융, 통화권의 독립과 관련한 아시아 독자블럭 구축을 우려한 미국과 IMF의 공공연한 개입으로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으면서 동시에 GATT체제의 확장으로서의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다자주의 체제와 아울러 기업활동의 자유화, 서비스부문의 민영화 등으로 외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전략은 예정된 길로 질주하고 있다. 그 예정된 길이란, 산업혁명 이후 축적된 자본의 이윤율 저하가 만들어 낸 압력을, 전 세계적인 철도사업의 활황과 이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확대 추구와 사적인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풀고 자유무역정책을 통한 세계시장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소하였던 자유주의적 자본운동이,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에 따른 대공황으로 그 본질적 한계를 노정한 것을 의미한다. 이어 과잉생산의 위기가 배타적 식민지 블록의 확대, 강화를 추진했던 역사는 아니나 다를까 작금의 지역적 블록화의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을 직시하고 제국의 시대가 낳은 비극적 결과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구되는 즈음이다. 악의 제국,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에 편입되는 것보다는 아시아블록을 구축하는 것이 대안부재의 현실에서 나은 선택이 아닌가 하는 것이 상대적 진보성을 가진 학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으나, 그것은 의도와는 달리 지구적 수준의 블록화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강공 드라이브를 걸던 대처가 ‘대안은 없다’ - TINA(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목청 돋웠던 데 반해, 이미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서 새로 선출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 의해 제안된 탈규제, 민영화 그리고 무차별적 시장개방에 기반한 실패한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응하는 민중에 기반한 무역협정(The Trade Treaty of the Peoples) 이 제안되고 있다. 이 제안으로 그간 FTAA(ALCA-FTAA의 스페인어)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진영이 주창하여 대안적 지역블럭(ALBA)이 제창되고 베네주엘라, 쿠바 등을 중심으로 남미 몇 개 국가사이에서 진행되어 오던 민중에 기반한 상호 호혜적 국제무역이 궤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이며, 올해 집중되어 있는 니카라과, 멕시코 등 남미국가들의 선거결과에 따라 독자적인 민중적 호혜블록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근본적으로는 빈곤과 양극화 그리고 노동자 민중을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광폭한 자본운동이, 오히려 그들을 향한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도 역사의 교훈이라는 점을 새겨야 할 때이다. 이제 자본이 강제하는 현실적 조건에 규정받는 차악의 논리를 벗어나 민중적 창의력 그리고 능동성을 발휘할 시기이다.

한편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에 따른 자본의 위기는 지역블록간의 긴장과 맞물려 무장화한 세계화라는 군사적 긴장으로 전이되고 있다. 그간 대 사회주의권 대응 군사력으로서의 전세계 미군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간 긴장에 조응한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ASEAN+3로 표현되는 아시아지역의 지역블록화, 특히 중국과 ASEAN과의, 그리고 러시아, 북한과의 자유무역지대 창설 합의 그리고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독자적인 블록구축 가능성 등으로,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설정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미국의 군사적 재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하던 군사력은 테러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따라 재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휴전선 근방에 집중 배치되어 북한과의 전쟁에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인계철선의 기능을 하던 보병중심의 주한미군 역시 중국을 가상 적으로 하는 동북아지역을 염두에 둔 기동전 중심의 군사력으로 재편되고 아울러 평택으로의 이전이 확정되었다. 넓게는 중동까지를 포함하고 가상적 중국을 대상으로 한 주한미군의 자유로운 군사적 이동과 배치를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는 동북아 MD체제 구축과 함께 동북아의 위기와 무한군비경쟁을 불러올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에 대한 합의는 작년 APEC회의 직전에 열렸던 경주 한미정상회담에서 포괄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지역의 독자적인 지역화, 블록화를 저지하고 한미일의 경제적, 군사적 라인업을 구축하는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태평양지역 국가들과 ASEAN+3의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경제협력과 갈등을 조정한다는 미국의 의도가 관철된 APEC이 한몫을 제대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평화의 공동체‘란 이름아래 진행되는 ASEAN+3를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과의 FTA를 통해서 미국과의 경제적, 군사적 라인업을 구축하는 블록에 편입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현시기 과잉생산과 이윤율 저하에 따른 위기를 해결하려는 자본의 선택일 뿐이다. 어느 것 하나 노동자 민중에 해악과 악영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올 자본의 요구일 뿐 노동자 민중이 선택할 길은 아니며, 따라서 친미냐 반미냐 논란도 본질에서 한참 비껴나 있는 문제다.

아울러 우리와 마찬가지로 ASEAN, 그리고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도 최근 미국과의 FTA를 한 축으로 하고 아시아지역 국가 간 FTA 협상이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자본이 강제하는 지역블록화에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아시아 지역에서, 이제 노동자 민중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과 어깨 걸고 새로운 대안을 향한 투쟁에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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