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해외 순방길 노무현 대통령의 세 가지 다짐

역대 정권의 말로 교훈 되새겨야

노무현 대통령은 7일 법과 원칙을 강조함으로써 대추리, KTX여승무원, 한미FTA 등 민중의 저항에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일 몽골,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3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가진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의 간담회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 "평화적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 시위와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대처하라"고 말했다. 또한 KTX 여승무원들이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사무실 점거 농성에 대해 "선거기간을 이용해 집단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벌이는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선거 유불리를 떠나 법 질서 유지 차원에서 엄격히 대처토록 하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미FTA 반대 미국 원정시위 움직임과 관련, "상대국에서 가서 반대시위를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고, 상대국의 법과 국민정서를 해치는 그러한 불법행위는 중대한 외교문제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정부로서도 이를 보호할 어떤 명분이나 수단도 없다"며 경고 발언했다.

대추리 사태 관련, 이미 지난 5일 한명숙 총리가 천정배 법무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 김영주 국무조정실장, 이택순 경찰청장 등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폭력행위를 한 경우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첫 개혁적 여성총리의 사태 해결 발언치고는 스타일 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의 강력한 여론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을 동원,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이 "다수 연행자들이 시위 전력이 없고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4,5일 시위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연행자 다수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이는 여론 추이를 지켜보는 수준에서 영장을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된다.

KTX여승무원들의 장기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항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정부와 공사가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공사 서울 지역본부 간부들을 시켜 KTX 승무원 14명을 경찰에 고소고발 한 바 있고, 조합원 전원이 직위해제, 계약해지의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이다. 비단 KTX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강금실 후보 선거사무실 점거 농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박한 생존 현실은 눈감은 채, 법을 내세워 힘으로 해결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관된 의지가 확인되고 있다.

범국본이 6월 초 미국에서 벌어지는 한미FTA 1차 본협상 원정시위를 준비하는 데 대해 정부가 보호할 명분이나 수단이 없다고 한 대목도 한미FTA 저지 여론 확산을 의식한 선공으로 보인다. 국책연구소의 납득하기 어려운 보고서 소동과 졸속 및 협상전략 부재 여론 확산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의 발본적 재검토 문제제기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최초 계획대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이 멕시코로 떠나며 남긴 편지에서 "현재처럼 한미FTA를 추진한다면 지극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통령께서는 차기 국회의 청문회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충언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존 한미FTA 추진 기조를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앞두고 '엄격 대처'를 강조한 세 가지 사례는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각각 '평화'와 '생존권'과 '삶'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사안이다. 대추리 사태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로 한미동맹의 유혈 폭력성을 보여주고, KTX 여승무원의 장기 투쟁은 비정규직을 확산하면서도 이들을 사회구성원에서 배제하는 가혹한 노동유연화의 현실을 보여주고, 한미FTA 대응 불법 행위 운운은 초국적자본의 자유로운 자본이동의 요구를 수용하는 집행자로서의 노무현정권의 속성을 보여준다.

이에 해외순방길에 나서는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세 가지 계급투쟁 현안에 대해 수석,보좌관으로 하여금 다짐을 받아놓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추리의 저항, 비정규직의 투쟁, 한미FTA 저지 여론이 확산되는 데 대한 심각한 위기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절차민주주의와 개혁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평화', '생존', '삶'의 기초적인 바램을 힘으로 제압하는 데 따른 부담감을 공권력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맥락이다. 역대정권의 비참했던 말로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걸 느끼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맘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