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생태마을을 가로지르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5) - 김강의 일기

우리의 걸음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어제의 45KM 강행군이 무색하게 오늘도 38KM를 걸었다. 이제 다들 몸이 지쳐간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피곤하여 지쳐갈 수록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더욱 명확해진다. 더 이상 머리로 질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걸음이 그대로 우리의 공부가 되고, 우리의 걸음이 그대로 우리의 질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치면 지칠수록 길거리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반겨주는 농민들, FTA 반대, 쌀 수입 반대를 함께 외쳐주시고 음료수를 즉석에서 주시기도 하시던 분들의 응원은 오늘 우리의 걸음에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인간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모두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가 도착한 이곳 홍성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은 오래전부터 생태농업 공동체가 들어서 있던 곳이다. 이미 70년대에 설립된 지역 자치적인 생태학교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서 생태농업을 일궈왔다고 한다.

이 마을은 세 가지의 모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1)넉넉한 마을(넉넉함이란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단다.) 2)오손도손, 함께 음식도 하고 나누며 사는 것, 3)건강한 자연. 모두가 이 마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아닐까.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모두 잃어버린 채 오직 나의 안녕과 부유함을 위해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주로 살아온 나에게 생태마을의 세 가지 모토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할 지침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연구실에서의 나의 활동 역시도 바로 이런 삶을 훈련하는 과정은 아닐까.

농촌의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는 그야말로 몰락하고 있는 농촌의 상황을 더 가속화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끝장내게 만들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식량주권의 위기가 오고, 농업이라는 하나의 산업이 몰락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건강한 먹거리'다. 바다를 건너오기 위해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린 식품을 먹고 자라는 우리 다음 세대가 과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마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생태농업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추구하고 있다. 이곳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FTA나 WTO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산업적 측면을 넘어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향유할 권리에 대해 더욱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급식이나 직거래, 생협 등을 통해 이러한 먹거리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일정한 소득을 올리게 될 수 있게 된다면, 손이 많이 가고, 공동체적인 작업을 요하는 이러한 친환경적인 농업은 농촌인구를 다시 늘어나게 함으로써 도시와 농촌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과 자연까지도 더불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로지 수치로 계산되는 '경쟁력'만을 따져 우리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한미 FTA! 강행의지는 결국 국민의 건강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농촌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많은 선물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또 하나의 세계를 열기 위하여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 권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이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대안을 꿈꾸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의 몸이 지쳐감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분들과 우리의 삶과 공부가 접속되고 그것을 통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우리에게 또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이들과 만나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잠들기 전, 내 마음이 다시 출발할 때의 기대감으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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