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곰, 평화를 공부하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7) - 5월 17일 메카닉 곰의 일기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갯벌에서 시작한 우리의 발걸음은 며칠째 논밭을 가로지른다. 5월 중순, 무르익은 봄은 생명의 힘을 넉넉히 보여준다. 生生不息. 사람들은 농촌을 버렸지만 산과 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거의 없단다.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조차 차를 타고 한 시간이나 떨어져있을 정도. 자연히 남아있던 학교들도 문을 닫고 세 읍에서 한 학교만 남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걷는 동안 젊은 청년들을 만난 기억이 없다. 그나마 남아서 친환경 농법 등 더 많이 가는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도 그저 소득 때문이라 답하신다. 담백한 대답이다. 농사의 자부심 같은 걸 기대하는 거야말로 외부자의 낭만이겠지. 하지만 농촌이 웰빙 먹거리를 욕망하는 도시 소비자들을 위한 식품 납품처로 되고 있는 건 역시 쓸쓸하다.

지금까지 ‘개방’이라는 이름의 가장 큰 희생자는 농촌이었다. 자국민도 외면하고 등 돌리는 농촌. 아이들과 청년들이 없는 농촌, 귀농이라는 낭만을 갖고 온 이방인들도 얼마 있지 못하고 돌아간단다. 이런 상황에서 농경지를 만들겠다고 산을 헐어 바다를 메우는 저들. 한편에선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을 몰아내고 군사기지를 세우는 저들. 너무나 이상한 나라.

저녁.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선생님이 그 이상한 나라의 군사문제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화려하고 시원한 강의였다. 대추리로의 기지 이전. 평택 땅 280만평 중 대략 210만평으로 2008년까지, 이미 모든 사안은 확정되었다고 한다. 정작 문제는 정부가 부각시키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이 아니라 2008년 이후 이전되는 2사단이다. 2사단은 현재 사용하는 부지를 언제 반환한다는 말도 없고, 이전 비용 등도 전혀 합의되지 않아서 우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만약 지금처럼 허접하게 추진된다면 우리는 엄청난 덤탱이를 쓰게 될 전망. 물론, 이 2사단은 철저히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재편된다. 이미 한국 서해안지역에는 이를 위한 MD벨트가 건설되고 있다. 서해안의 입지를 고려해 볼 때 중국견제와 세계를 향한 전략적 기지가 될 것은 자명한 일.

평택미군기지 이전은,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자주국방 논리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두 가지가 찰떡 궁합(?)으로 만나 버무려진 사건이다. 병력과 장비의 유연성, 그리고 임무의 유연성 두 측면으로 볼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 임무의 유연성으로 인해, 이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자주 국방 실현되었다! -ㅅ-); 그럼, 주한미군은 이제 머하냐? 딴짓 한다. 세계 모든 곳에 96시간이내 출동하며 테러와의 전쟁 같은 거 한댄다.(전쟁 일으키는 거다.) 물론 이건 명백한 상호방위조약 위반이다. 세계의 모든 일에 참견할 것 같으면 지네 땅에서 지네 군인이 하면 될 일이다. 대체 한국은 왜, 기지 이전 비용부터 몸대주기까지 하는걸까.

자주국방 좋다. 미군기지는 한국에게 자주국방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이전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북한의 폭격거리에서 벗어나,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할 상황을 만드는 거다. 평택으로 옮긴 이상 미국은 얼마든지 북한에 선제공격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는 언제든 전쟁의 상황이 될 수 있다. 대단한 자주국방이다.--;

물론, 중국으로서도 심사가 사나울 일이다. 자기네를 견제하는 한국이나 미국에 대한 억제책으로 중.러.북 동맹을 확고히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칫 또다른 냉전체계가 재편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주한미군기지를 대중국발진기지로 사용한다면, 중국은 한국을 공격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양자간이 아니라 제 3국을 겨냥한다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당연한 일이다.

2004년 뉴욕타임즈에, 주한미군기지를 이전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유리하다는 기사가 떴단다. 평택 문제는 평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전 세계를 자신의 기지로 만들려하는 이상 대추리는 이미 전 지구다. 근데 평택 주민과 외부세력이라고? 외부세력은 대체 누구인가. 정부와 여론의 어처구니 없는 물타기.

현실적인 대안은 뭘까. 정욱식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단 확정된 용산미군기지는 이전하라. 대신 2008년 이후 이전할 2사단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재협상 하라. 재협상 안하면 한국은 또 몸주고 돈주고 우리 국민들 힘만 빠진다. 구체적인 전략과 상을 가지고 재협상 하라. 당연히 우리의 문제가 남는다.


우선, 미국과의 협상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 내용을 확실히 알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양과 질적으로 풍부해져야 한다. 그냥 무조건 반미. 이런 거 안된다. -_-; 워싱턴에 한반도 사안을 연구하는 그룹들이 있다한다. 근데 이들은 한국 내의 정보를 어디서 구할까? 영문서비스가 잘 갖추어진 조.중.동신문 정도일꺼다. 한국 진보진영의 인프라 구축이 아주 시급하단 말씀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의 자기반성과 자기건설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나 더. 현재 동북아의 비전을 제시할 나라는 한곳도 없단다. 동북아 공동의 지적 자산을 만들어져야하고, 그 위에서 동북아의 거시적 비젼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 위에서 한국의 정체성과 방향성 또한 격렬히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서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날 사람들은 아직도 많고 많다. 전지구적 자본이 새로이 만들어낸 전사-이주 노동자들, 무수한 간격, 무수한 문턱을 너머 움직이기 위해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장애인들, 그리고 아직 이름 불리우지 않은 수많은 소수자들. 벌써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처럼도 보도되는 대추리 또한, 사실 이제 막 시작한 거대한 싸움이다. 광적으로 폭주하는 군사제국과의 싸움. 다행일까? 자본과 제국, 그 미친 흐름이 자꾸자꾸 더 많은 전사들을 깨우고 불러낸다는 것. 우리는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되기 위해 걷는다. 평화, 그 먼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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