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 소수적 저항을 배우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10) - 5월 20일 안산

매향리에서 안산까지 오늘의 갈 길은 멀었다. 70여 Km를 처음에는 걷다가, 중간에 한 시간 정도 차를 탄 이후 시화방조제로부터 안산까지 다시 걸어 우리의 행진은 드디어 안산에 다다랐다. 지금껏 우리가 걸어왔던 곳과는 사뭇 다른,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각형으로 구획된 도로에 번호로 구별된 공장들, 매캐한 연기들, 살아 있지만 병든 나무의 모습들... 마치 열매가 달린 것처럼 잎 한가운데가 불쑥 나와 늘어져 있는 끔찍한 모습을 우리는 마주해야 했다. 축지법 수준으로 걸어 다니던 우리의 영진상도 공장으로 가득찬 이 도시의 풍경 속에서는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이 도시를 굴리는 건 8할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온갖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는 간판, 갖가지 표정과 피부색의 사람들, 가지각색의 옷차림들로 안산의 원곡동은 그곳에 이주노동자들이 있음을, 그들이 노동하며 또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이주노조 위원장 직무 대행 샤킬 씨 등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진 선전물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내일 3시 반 안산역에서 있을 이주노동자 집회 참여를 호소하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누르 푸아르 씨가 단속추방에 쫓기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중국인 한 분이 살인적인 단속추방으로 인해 추락, 의식불명 상태라고 한다.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이 잔인한 탄압이 끝나는 것일까?

선전전은 7시 30분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이주노동조합 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88올림픽이 끝난 후 한국은 동남아시아의 많은 민중들에게 마치 새로운 황금광산인 것처럼 소개되었고,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을 밟았다. 새로운 삶의 모습을 꿈꾸면서.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야 했던 현실은 끊임없는 착취와 단속, 추방, 그리고 심지어는 사회적 살인이었다.

산업 연수생 제도에서 고용 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제도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으며, 노동권 행사의 길은 막혀 있다. 자본과 국가는 그들의 노동력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생각하고, 저항하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권리는 거부당하고 있다. 그들은 때로는 범죄자로, 때로는 어렵고 불쌍한 '외국인 근로자'들로 이름 붙여지고, 재현된다.

최근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단속이라고 한다. 단속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으며,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난다고 한다. 지금까지 무려 17명이 단속 때문에 죽게 되었으며, 심지어 단속이 아님에도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속 때문에 숨어 지내면서 지병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권리를 외쳐야만 했다. 종교단체나 인권단체, 센터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얼마 전 그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점거농성을 한 적이 있다. 아누와르 위원장이 구속되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지만 그들의 진정을 인권위가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런 식으로 인권마저도 국경을 나누고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경을 넘어 투쟁하고 있다.

"노동허가제 쟁취", "노동비자 쟁취", "단속추방 반대"...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요구를 말한다. 자본과 권력이 그들의 삶을 억압하고, 사회가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이름 붙이려 할 때 그들은 그들의 권리가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그들의 능력만큼이 그들의 권리임을 주장하며 그렇게 살아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또한 그들의 정체성에 입각한 그들의 문제만을 가지고 싸우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하고, 그들만의 공간으로 몰아넣을 때, 그들은 이라크 전쟁반대, 비정규직 투쟁, 동성애 등 성적 소수자 문제에까지 연대해서 투쟁 중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차별과 배제를 통해 척도의 바깥에 있기에 다수자들과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으며 만들 수 있는 소수자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존재와 행동으로 우리에게 호소한다. 그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한 '외국인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뛰어넘고 있으니 우리도 한국인이라는 다수자의 정체성을 벗어버리라고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는 서울로 들어간다. 우리가 길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 우리가 만난 소수자들의 외침을 싣고 우리는 서울에서도 걸어갈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여기에 다른 삶이 있다"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외칠 것이다. 자본주의 속에 온 삶을 밀어넣고 사는 서울의 도시민들에게 또 다른 삶의 길이 있음을,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외칠 것이다. 새만금에 생명을! 대추리에 평화를! 한미 FTA 반대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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