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보려고 하이마트 다녀왔습니다~”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5) - 월드컵문화, 광고, 문화교육

꽃분홍 볼터치에 늘씬한 다리, 손에는 북실거리는 응원숄을 들고 현영은, “월드컵 보려고 하이마트 다녀왔습니다~” 발랄하게 재잘거린다. 지난달만 해도 비음 섞인 투정어린 어투로 “월드컵만 봐~”를 얘기했던 그녀는 이젠 집에서도 월드컵 패션이다. 놀라운 진전이다.

그런데 그녀의 마론인형틱한 인상과 몸매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일상적이다. 머리두건, 티셔츠에 짧은 청치마,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 타 광고모델과 비교하면 참 촌스럽다. 그러나 월드컵 시즌엔 촌스러운 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대부분의 소비자가 취하는 패션이며, 월드컵 문화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이마트는 두 번 소비자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월드컵을 활용한 광고들은 대부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미지를 취한다. 다른 때라면 빨간티셔츠에 금딱지라도 붙였을 광고들일 테지만 유독 월드컵 시즌에는 보통사람들이 즐기는 월드컵 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미지전략으로 선택된다. 오히려 월드컵의 붉은 전사보다 수많은 붉은악마 혹은 응원하는 소시민 한사람의 이미지가 중요해 보인다.

보통 때면 X세대, N세대, ‘나는 소중하니까요’를 주입하여 자사 상품의 소비자로 호명하는 광고지만 이제는 다를 것을 주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더 똑같으라고 한다. 아주 열광적으로, 혹은 진지하게 응원하는 소시민으로... 이렇게 광고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자발적 문화를 취해 오히려 명령하는 등 응원하는 사람들을 쥐락펴락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응원하게 되었을까? 기본적으로 난 사람들의 삶이 그리 유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축구에 대해 비호감인 이들에게 월드컵은 그리 재미있는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응원 등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은 그나마 이를 통해 친구와 교통할 수 있고 자기표현을 할 수 있고 또 이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생각해보면 월드컵이 현재와 같이 대중적인 시선을 끈 것은 2002년이 처음이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물론 월드컵 국내 개최와 4강 진입이 중요한 이유이긴 하겠지만 분명 문화적 이유는 시청 앞 대형광고판 중계와 자발적 응원문화, 길거리난장, 월드컵패션 등을 통해 사람들이 같이 놀고, 보고, 소통하기 원하는 대중적 욕망이 월드컵 때 분출되었고 이들 다양한 문화가 하나의 거대한 축제를 형성하는 장에 사람들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특정한 놀이커리큘럼이 있는 노래방, 단란주점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자율적으로 광장에서 길거리에서 그야말로 ‘놀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진풍경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2002년 월드컵 현상은 사회문제를 배제시키고 자본의 이미지전략에 포섭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말이다.

2006년 현재, 사회문제는 여전히 배제되고 사람들의 자율적 공간은 도난당했으며, 월드컵 문화는 광고전략에 훨씬 더 종속돼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교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으나 이 욕구의 기반은 상업적으로 치환되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자본의 기획이다.

그래서 시청 앞 광장을 독점하고 한몫 잡기 위해 그들은 싸웠고 이제 자본은 한발 더 나아가 움직임을 명령한다. 이전에 광고는 이미지를 주입하려 애썼다면 이제는 몸에 대한 훈육을 동반한다. 꼭지점댄스, BC댄스, 그리고 국민은행의 국민체조... 물론 명령은 아주 쿨한 방식으로 동작을 제조하며 이 동작을 소비자들이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소비자가 그들이 만드는 욕망, 소비사회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렇게 자본과 국가의 월드컵 문화 조작은 정말 일사분란하다. 붉은 전사 -> 애국자 & 쿨한 이미지를 국가와 기업이 조명하며, 하이마트처럼 다양한 형태로 상품마케팅에 활용한다. 이전에 존재했던 축구와 축구문화에 대한 열광은 희석됐고 사람들이 애국자 혹은 소비자의 포지션으로 광화문에서 잠실에서 열광하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또 사람들은 그것이 싫어도 별로 선택권이 없다. 언제 인구의 반인 여자가 축구를 배워보았으며, 축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 입시공부 외에 어떤 문화적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별로 없다. 이러한 입시교육 중심의 공교육을 경험한 세대가 이미지조작이 치열하게 이뤄지는 대중문화를 자신의 키워드로 선택하지 않고, 광고가 생산하는 쿨한 이미지를 취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문화적 활동과 문화를 만들고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도대체가 한국 사회에선 그것에 대해 진지한 자리를 가져볼 경험, 자신의 문화적 감성을 표현할 계기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을 표현하고, 소통하고,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논쟁하는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문화교육 말이다. 월드컵 문화와 광고를 소재로 문화교육에 대해 쓴 것은 개인의 욕망과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교차되는 과정을 잘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욕망하는 주체, 자율적인 문화적 능력과 공공공간 그리고 자율시간은 허용되지 않는 사회 그리고 이러한 능력과 공간과 시간을 상업적으로 영토화하는 자본의 기획 사이에 월드컵문화는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이 자율적으로 욕망하고 표현하며 자본의 문화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를 재사유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비판적 문화교육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성과 욕구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문화이데올로기에 대해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리고 문화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를 위한 공간과 시간. 그러나 이건 민중이 아닌 문화자본을 가진 소수에게 주어져 왔다. 그리고 이들이 광고를 만든다. 분명 광고는 자본주의적 문화교육에 아주 잘 훈련된 이들에 의한 것이다.

이들은 월드컵 문화를 재조작하고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월드컵 문화와 광고를 보며 민중적 문화교육이 보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의 부재로 ‘문화적으로 억눌린 동시에, 욕망하는 한편, 자본에 의해 조작되는 대중’의 정서가 보다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정은희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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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들뢰즈 얘기 좀 풀어 쓰십쇼.
    민중언론이면 민중들이 읽어야 하지 않겠슴까.

  • ..

    들뢰즈 얘기 좀 풀어 쓰십쇼.
    민중언론이면 민중들이 읽어야 하지 않겠슴까.

  • 조성연

    너 너너 너마뷰너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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