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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만 보는 세상에 정말 작은 개미자리

[강우근의 들꽃이야기](37) - 개미자리


요즘은 다들 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타워팰리스를 최고의 주거 공간으로 동경하고, 자동차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따위도 이왕이면 큰 걸 찾는다. 사람들은 대형 할인 매장으로 몰려가 쇼핑하는 걸 주말 나들이 삼게 되었다. 그 바람에 구멍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키를 크게 하기 위해 다리를 자르는 수술까지 하는 걸 보면 요즘 큰 것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은 가히 병적이다. 공룡처럼 커져만 가는 이런 삶을 지탱해 나갈 만큼 지구는 크지 않다.

고삐 풀린 욕망이 휩쓸고 간 자리에 개미자리가 자라고 있다. 차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길가나 높아만 가는 아파트 건물 아래 틈새에 개미자리가 자라고 있다. 티끌처럼 작은 개미자리를 보면 지구가 아직 끝장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까닭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개미자리는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크게 떠야 볼 수 있다. 개미자리는 정말 작다. 애기땅빈대가 작다 해도 그 잎새는 그래도 밥풀만 하다. 개미자리는 실오라기 같은 잎을 달고 있다. 개미자리는 꽃도 작다. 애기땅빈대 따위 꽃은 꽃잎이 없다. 꽃잎을 제대로 달고 있는 꽃 가운데 개미자리처럼 작은 꽃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개미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온통 개미자리만 보인다. 길가나 담장 아래 보도블록 틈 여기저기 온통 개미자리 밭이다. 개미자리는 그늘진 곳이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 어디도 가리지 않고 뿌리내린다. 작은 틈새만 있으면 도시 어디에서나 자라난다. 작은 틈새라도 개미자리에게는 비좁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틈새에서 살아남으려고 개미자리는 점점 더 작아졌나 보다.

개미자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한여름 내내 개미자리 꽃은 피고 질 것이다. 개미자리처럼 작은 꽃에 벌, 나비가 꼬일 리 없다. 아마도 애기땅빈대처럼 개미가 꽃가루받이를 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개미자리란 이름은 딱 맞게 붙여진 것 같다. 개미자리는 작아도 잎과 줄기, 뿌리 모두를 약으로 쓴다고도 한다. 개미자리 옆에는 벼룩이자리도 흔히 자란다. 개미자리, 벼룩이자리, 애기땅빈대 그 이름처럼 작고 가난한 풀들이 발아래 낮은 자리에서 회색 도시를 짊어지고 미래를 일구어가고 있다.

요즘은 운동도 큰 것만을 쫓아가는 것 같다. 중앙만 비대해지고 사업도 눈에 보이는 큰 것만을 쫓다 보니 이벤트성 집회 따위만 크게 벌인다. 그렇지만 개미자리를 보듯 눈길을 낮추면 보인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발 딛고 선 그 자리에서 이름 없이 투쟁하는 동지들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 우리 운동을 짊어지고 한 발, 한 발 미래로 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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