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벽돌인가? 황금인가?

[조선남의 옥중수고](1) - 벽돌과 황금

연재를 시작하며

자수성가 한 사람이, 어렵고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한때나마 날품팔이 막노동일을 했었던 이야기를 한다. 건설노동자의 삶은 흔히들 인생 밑바닥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건설노동자의 삶이 어떤지 왜 그렇게 고통받고 가난하게 살아가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6년 대구와 포항에서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구속되었고,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고 백주대낮에 경찰에 맞아 한 노동자가 죽었고, 임산부가 유산을 해야 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대교 88M 주탑 위에서 건설노동자 수명이 20여 일째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왜 이런 아픔이 계속되는가. 감옥에 갇혀서라도 무슨 일인가 해야 하지 않는가 싶어, 이 글의 연재를 시작한다. 내가 겪은 건설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현장의 이야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외치고 있는 투쟁이야기를 시와 산문으로 묶어서 하나 하나 풀어 볼 생각이다. 아직도 차가운 교도소에서, 농성장에서 가장을 잃고 힘들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조그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벽돌과 황금

벽돌이 벽돌일 때는
노동자의 일당, 일용할 양식이 된다

그러나 그 벽돌이 집이 되어
부동산 문서 속에 들어가면
황금 찬란한 억대 궁전이 된다

놀부나라 강남은
여기서 얼마나 먼지
요새는 제비도 찾아가지 않는다

노동자의 손을 떠난 벽돌이
누우런 황금으로 변한 날
벽돌은 마술의 꿈을 꾼다
나는 저 밤하늘을 나는
한 마리 아름다운 궁전이 되고 싶다고!

그날밤 강남의 놀부는
벽돌로 쌓은 그 무덤 속에 누워서
진시황의 만리장성을 꿈꾸고 있다


(문병란 / 1935년 전남 화순 출생. 40여년 문단 활동. 시집으로 『죽순 밭에서』, 『땅의 연가』, 『무등산』 외 다수가 있다.)

목수와 철근공이, 건설 현장에서 새벽부터 어둠이 질 때까지 일하던 건설일용노동자들이 지난 6월 32일간 파업을 했다. 평생 일밖에 할 줄 몰랐던 이들이 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나이 50-60세의 노동자들이, 평생 투쟁조끼라는 것도 처음 입어보고 머리띠도 처음 묶어보고, 투쟁가요 노래도 처음 불러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건설일용노동자들이 그렇게 일순간 하나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는지는 모두들 관심이 없었다. 오직 사태를 진압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 경찰은 나를 포함해 28명의 노동자들을 구속시켰다. 수십 명이 다쳤다. 포항에서는 300명의 노동자가 중상을 입고, 2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묵묵히 일만 하던 일용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검찰은,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은 건설 현장의 관행이라면 덮어두었다. 불법다단계 하도급!, 불법용역!,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덮어두었다. 노동자를 고용하면 당연하게 고용에 따르는 법적인 책인과 고용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원청과 전문건설업체들은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목적으로, 건설현장의 팀장, 작업반장과 강제로 맺은 시공참여 제도를 들어 직접 교섭 당사자가 전문업체와 단체교섭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28명의 노동자들 구속시켰다. 하지만 전문업체들과는 이미 수년 전부터 단체교섭을 체결하여 왔고, 2006년에도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자연스러운 노사교섭 과정을 ‘공갈, 협박’ 등의 불법으로 몰아 탄압을 일삼았다. 경찰은 전문업체로부터 노동조합 파괴를 목적으로 고용된 용역경비나 용역깡패들 같았다. 20대 초반의 군사훈련을 받은 기동타격대들을 내세워 평균나이 50-60세의 늙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고, 구속시켰다.

이렇게 구속되어 구치소로 넘어와서 문병란 선생의 「벽돌과 황금」을 읽는데 서러움이 왈칵 솟구쳤다.

대구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 유림건설에서 시공하고 있는 ‘노르웨이 숲’이라는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다. 이 아파트는 30평대가 프리미엄만 1억이 넘는다고 했다. 큰 평수는 2억, 3억도 넘어간다.

최근 몇 년간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배가 넘게 올랐다. 평당 분양가 400만원, 500만원 하던 것이 1000만원이 넘어서고 말았다. 그러나 벽돌을 쌓고, 망치를 들고 일하는 목수들의 일당은 오히려 삭감되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자기가 분양받은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좋아하는 일반계약자를 부동산 투기꾼이라고 욕하고 원망할까.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마련한다고,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운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정작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은 더욱 악화시켰다. 건설산업의 문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이미 정상적인 건설자본은 폭력적인 투기 자본에 잠식되어 있다.

IMF가 지나가면서 건설회사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촉탁직, 계약직, 임시직, 하물며 아파트 공사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현장 소장마저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꾼들은 시행사의 외투를 덮어쓰고 건설 시장 자체를 장악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들이 바로 이런 부동산 투기업자, 폭력적인 투기자본들에 잠식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그 길을 열어 준 것이 바로 정부다.

금호그룹에 6조 6천억에 매각된 대우건설은 시공능력 평가 부문에서 1위를 했다. 2005년 수주액이 8조 2천억이었고, 영업이익만 4315억이다. 그 대우건설 박세흠 사장의 이야기는 아무리 좋은 자재를 쓴다고 하더라도 평당 280만원이면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 도대체 그 나머지 분양가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결과 작년 GS건설의 1/4분기 영업이익은 720억이었고, 현대건설은 3238억의 당기 순이익을 올렸다. 이렇게 건설 자본들이 막대한 이윤을 남길 동안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은 오히려 삭감되었고,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구 범어동 유림건설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목수일을 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도급단가에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당제로 일하려면 일을 그만두라고 했던 것이다. 고용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그렇게라도 일을 해야 했다. 미친 듯이 일을 했고, 어떻게든 일당벌이는 하기 위해서 아침에도 조금 일찍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 휴식도 줄이고, 퇴근시간도 늦추면서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을 일을 했다. 말로는 “일당이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사장이 약속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옆 팀과 경쟁하고, 동료와 경쟁하고, 자기가 자신의 노동을 감시하고 강제할 수 밖에 없는 폭력적인 강제도급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지만, 15년, 20년 베테랑 기능공의 일당이 겨울 7만원, 8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현장 노동자들이 원했던 도급이 아니라, 강제도급이었다.

그러나 노동청은 이런 불법 강제도급을 외면했다. 체불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법다단계 하도급이라는 노동자들의 명백한 주장에, 불법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는 <건설산업기본법>관련이기 때문에 건설교통부의 소관이지 노동청에서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원청회사인 유림건설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전문업체에게 가서 알아보라고 한다.

이런 비슷한 문제가 계속 터져 나왔다. 법도 관도 모두 오리발이니 방법은 우리 스스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구라리 삼성 레미안 현장에서 15일간 투쟁을 했고, 수성구 대우트럼프 현장, 만촌동 대림 현장...... 2005년 겨울에서 2006년 초봄까지 비슷한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노임을 떼인 채 현장을 떠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술을 먹고 자해하기도 했다. 유림건설 현장에서는 한 노동자가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밀린 임금 해결할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고 목숨을 걸고 극단적인 투쟁을 통해 겨우 일당을 받을 수 있었다.

2006년, 참지 못한 대구 경북 지역의 건설노동자들이 초유의 파업을 했다.

당시 기자가 질문을 해 왔다. ‘이번 투쟁이 자생적인 투쟁이었습니까?’ 나는 당연히 건설현장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문제가 이번 투쟁의 배경이라고 대답을 했다. 2000여명의 건설일용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떨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임금 삭감, 근로조건 악화, 비인간적인 대우, 더 이상 밀려날 것이 없다는 절박한 요구 때문이었다.

하루 2명씩 1년이면 800명이 죽어가는 건설현장, 그것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혹은 몸뒤척일 힘조차 없어 과로사로 죽은 것은 산재 사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포스코 현장에서 활석노동자가 일을 하다 죽었고, 그 다음날 현장에서 또 한 사람이 죽었다. 그래도 경찰과 노동청은 지병에 의한 자연사라고 했었다. 기본적인 안전공구마저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 하다. 검찰이 합법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시공참여자 계약에는 안전장구 지급과 산재 발생시 치료와 보상마저 현장팀장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90% 이상의 산재가 원청회사 전문건설업체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했고, 바로잡고 싶었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입다물고 시키면 시킨 대로, 주면 주는대로 일만 하라는 탄압뿐이었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꿈꾸고 있는 동안,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건축, 토목노동자들의 한 맺힌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그 벽돌이 집이 되어
부동산 문서 속에 들어가면
황금 찬란한 억대 궁전이 된다


‘황금 찬란한 억대 궁전’에 묻힌 피와 눈물과 탄식의 장송곡이 바로 건설노동자들의 노래가 되고 피울음이 되고 있다.

폭력적인 투기 자본에 의해 잠식당한 건설산업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건설회사들은 차떼기로 대통령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바치고, 전문건설업체들은 시장출마 후보자들에게, 국회의원들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갖다 바친다. 바로 그 돈이 건설노동자들의 피눈물이다.

건설노동자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것은 법을 지켜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근절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라도 받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 이 시대의 상식들에게 물어본다.
덧붙이는 말

조기현<필명 조선남> 님은 2006년 6월 대구건설일용노동자 총파업을 이끌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시인. 1989년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개인시집으로 『희망수첩』과 해방글터 동인지 『다시 중심으로』 등을 펴냈다.(구치소 주소 / 대구 수성구 수성우체국 사서함 48번지 수번 79. 조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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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고생하십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 건설노가다

    현장의 정서가 어떠한지 도대체 아는지...지난 건설노조의 파업을 조합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지도부로서 책임지는 자세가 부족하였으며 현장과 지도부가 괴리된 투쟁의 결과를 지도부는 도망치듯 구속된후 비대위는 온전히 감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 정말

    조선남이 조기현이었군. 어이가 없다. 어디 낯짝을 들고 이렇게 글까지 쓰다니. 다시는 운동판에 복귀할 생각 하지마라.

  • 김병융


    백기완 선생님이 조기현 동지에게 보낸 글을 소개합니다..


    살다보면
    죽음만은 함께 죽자 그러던
    그 틀림없던 억척들은
    슬며시 옆으로 새더라


    살다보면 헤어지다니 죽으나 사나 그날까지
    같이 가자던 그 뜨거운 불덩어리들은 도리어
    뻔뻔스런운 칼이 되어 등을 찌르되 마구 쑤시고


    남은 것이라곤
    떨리는 주먹만 남는 밤
    땅을치고 벽을 치고 하늘을 쳐도
    새벽부터 앞이 안보여 어기적 대다가
    천 길 구렁으로 꼬꾸라져 보면
    아 누가 기다리던가


    꿈도 깨지고 사랑도 깨진 그 팍삭 위를
    살다보면


    그래도 끝내 하나는 남더라
    노여운 불씨다 참을 수 없는 분노
    바로 그거다 그것이 바로 어둠에 맞설 불씨라
    그리움까지 갇혀버린 사랑아
    새벽이 와도 새벽 같은 건 아예 기다리질 마시라
    차라리 마지막 남은 피눈물 한 방울까지 다 쏟아
    그 불씨를 지펴라


    알알이 바사져 보면 모든게 콩가루가 되어보면
    앞이 안 보이는 어두움은 절로 가셔지는 게 아니더라
    온몸이 기름이 되어 왕창 사르는 것이더라
    왕창


    2006. 9. 21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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