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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메드 압바스, “점령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모든 것이다”

[한상진의 레바논통신](4) - 인터뷰 : 팔레스타인 난민촌 청소년센터 대표

베이루트 남부의 세틸라 난민촌에서 어린이, 청소년 센터를 설립하여 10년째 아이들 교육에 매달리고 있는 모함메드 압바스씨를 만나서 간단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상황과 여기 난민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이곳 난민촌은 1948년에 세워졌고 나는 1959년에 여기 난민으로 왔다. 현재 레바논에는 약 35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살고 있고(레바논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39만4천532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현재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출산율을 생각할 때 현재 40만이 넘을 것으로 파악된다. 모하메드 씨가 인용하고 있는 통계는 아마도 몇 년 전의 통계일 것으로 추측된다[필자주]), 약 10만 명의 난민은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서구로 재 이민을 떠났다. 레바논에는 모두 15개의 캠프가 있었으나 3개의 캠프는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우익 그룹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 12개의 캠프가 남아있다. 그리고 난민캠프로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11개의 팔레스타인 난민 집단거주지가 존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구의 53%는 난민 캠프에서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47%는 난민 캠프 밖에서 살고 있다.

점령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모든 것이다. 점령 때문에 난민이 발생했고, 난민들의 삶의 질, 인권, 아동문제, 교육, 빈곤 등등 모든 문제들이 점령 때문에 발생했다.

동물원 동물들의 생활이 난민촌보다 나을 것이다. 이곳 집들을 보면 문턱이 조금 높다. 이 문턱의 높이는 우기에 물이 집에 넘쳐들지 못하도록 하는 딱 그 높이이다. 어린이들에게 교육받을 권리, 건강, 주거, 보호, 놀이, 참여 등의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UNRWA학교가 캠프 내에 있지만, 학교 시설이 열악하고 선생들은 학생을 처벌할 때 폭력을 사용한다. 학기가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조차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8.6%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16.8%의 아이들이 14세 이전에 학업을 포기한다. 67%아이들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나머지 아이들 중 3%만이 대학엘 진학한다. 경제적으로는 전쟁 전 팔레스타인 인구의 39%가 실업상태였고 지금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전쟁후의 통계는 아직 없다. 난민의 60%가 극심한 빈곤상태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 중 11%는 기아 상태에 놓여 있다.

레바논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취업의 자유를 제한한다. 농장이나 공사판에서 일하는 데는 정부 허가가 없이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더라도 정부 허가가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의대를 졸업해도 의사가 될 수 없고, 법대를 졸업해도 변호사가 될 수 없으며, 공대를 졸업해도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단 한 평의 토지도 자기 이름으로 소유할 수 없다. (잠깐 부연설명을 하자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에 살기 시작한지 6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레바논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레바논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선거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정치세력화도 하지 못한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정부에 어떤 요구도 하지 못하고, 한다 한들 정치인들이 선거권이 없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들의 권리를 위해서 일하는 레바논 시민단체도 없다. 이들은 인구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레바논의 인구를 이야기 할 때 레바논의 공식 인구 통계에는 항상 40만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빠져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만 한다[필자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레바논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레바논 사람들에 의해 부당한 착취를 당하고 있다. 1959년 난민으로 여기에 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은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레바논과 시리아에 살고 있는 난민들의 대부분은 북부 팔레스타인 출신들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사실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맥주마시며 춤추고 축하했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는 침묵한다. 레바논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황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열악하다.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최소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에서 죽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에서 죽었지만, 세상의 관심 밖에 있다.

센터에 관해서 이야기 해달라. 어떤 내용의 교육이나 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가?

현재 어린이 청소년 센터에는 난민촌의 250명의 아이들이 정식으로 등록되어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놀이나 도서관 이용을 위해서 드나드는 아이들을 포함한다면, 약 400명 남짓의 아이들이 센터의 혜택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녀를 갖고 있는 아버지로서 나의 아이들이 나보다 나은 생활을 하게 되기를 꿈꾼다. 이 센터를 시작한 이유이다. 처음에 센터를 시작할 때 부모와 공동체가 합의하여 공동체를 시작하였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들이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권리를 가르칠 수 있으며 어떤 권리를 줄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아이들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레바논 정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여기 와서 보고 자기나라로 돌아가 대사관을 통해서 혹은 직접 레바논 정부에 압력을 넣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들의 이런 노력이 대단히 고마운 일이고 우리는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66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회복하여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점령과 전쟁의 피해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겪는다. UN에서 인권선언과 어린이헌장 어린이 인권선언 등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 모두 서구 국가들이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그럴듯한 문구를 고민하여 멋진 선언과 국제 법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이런 선언이나 국제 법들을 만들 때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들인 우리들에게 아무런 조언도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법들을 만든 미국과 서양 국가들이 사실은 인권을 침해하고 국제 법을 어긴 나라들 아닌가? 우리는 피해자들일 뿐이다. 센터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상대로 컴퓨터 교실, 도서관, 전통문화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고, 센터 산하에 게스트 하우스도 만들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목적은 재정 충당을 위한 수익사업도 일부 목적이지만, 그보다는 국제사회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 생활을 경험해보고, 또한 난민 어린이들도 외국인들을 접하는 기회를 통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난민촌에 센터와 비슷한 시설이나 단체가 있는가?

다른 난민촌에도 유사한 시설이나 단체들이 있는 곳이 있고 이들 단체들과 여러 차원에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센터의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는가?

Save Children, Sweden 과 UNICEF 그리고 유럽연합에서 정기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또한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문자들이 약간의 후원금을 내놓고 가기도 한다. 세틸라 난민촌에는 약 3천여 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 중 6~18세 사이의 아이들 250여 명에게만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더 많은 센터가 필요하다. 이 센터는 이번 전쟁이 끝난 후 전쟁 난민을 위한 지원사업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82년 여기서 일어났던 학살에 관해서 이야기해달라

1982년의 세브라, 세틸라 캠프 학살은 레바논에서 그간 있었던 여러 대량학살 중 한 개에 지나지 않는다. 레바논에서는 카나의 학살 등 많은 학살이 지난 60년간 이스라엘에 의해서 이뤄져 왔다.

82년의 학살 당시 나는 여기 세틸라 캠프에 있었다. 휴전 협정 후 베이루트에 있는 PLO사무실이 존재하고 있었고, 외국 군대(UN)는 휴전을 위해 베이루트에 주둔하고 있었다. 9월 14일 레바논 대통령의 묵인 하에 이스라엘 군이 캠프를 습격했었고,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민병대가 15, 16, 17일에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였다. 당시 이들이 사용한 무기는 도끼, 칼, 총 등이었다. 몇 명이나 죽었는지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공식 통계는 1천500여명이다.(당시 학살의 피해자 숫자는 통계마다 다르다. 가장 적은 통계는 300명이고, 가장 많은 통계는 4천 명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는 1천~2천 명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필자주])

당시 목격한 장면들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마치 비디오로 녹화한 것처럼 목격 당시에도 지금 그 장면들을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도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아마도 목격한 장면들이 감정으로 느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피비린내 때문에 구토를 했었지만, 내가 본 상황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들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녹화하듯이 쳐다보고 머릿속에 담았다. 가족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체들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어떤 사체에는 죽인 다음에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나는 여기 센터에 오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들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당시의 피해자는 팔레스타인 사람뿐이 아니었다. 피해자 명단을 보면 아랍의 다른 나라들,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의 나라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고, 심지어는 유럽인도 몇 사람 포함되어 있다. 단지 캠프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도 무차별로 공격을 받았고, 여행자들, 관광객들, 친지 방문을 위해 잠깐 들른 사람들도 모두 공격을 받았다. 카나에서는 유엔 캠프에 피신한 사람들마저 공격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 난민촌에 촌을 대변할 단체나 주민 협의회 등의 조직이 있는가?

캠프에는 전체를 대변할 협의회 등의 조직이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와해된 상태다. 캠프 내에 여러 조직들이 존재하고 있고, 서로가 캠프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간혹 가다 이들 조직 간에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조직들 어디에도 관계하지 않고 있다. 난민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이런 정치 조직들이 아니라 각 난민촌에서 스스로를 돕기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들을 방문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레바논을 방문할 한국 사람들에게 이곳 세틸라 난민캠프의 게스트에서 하룻밤 머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연락처는: +961 3 974 672 혹은 cyc@cyberia.net.lb 입니다)
덧붙이는 말

한상진 활동가 후원계좌 하나은행773-910053-98605, 제일은행250-20-440303, 국민은행063301-04-054340, 농협205035-56-033336 예금주: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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