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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강우근의 들꽃이야기](40) - 신갈나무


숲속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나무는 무엇일까? 지금은 신갈나무이다. ‘지금’이라고 했던 것은 전에는 다른 나무였다는 이야기고 또 그게 바뀌었다는 거다. 예전엔 소나무를 가장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갈나무로 바뀌었다. 숲으로 가서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봐도 이런 변화를 눈치 챌 수 있다. 참나무 무리에 가려서 죽어가는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숲 주인이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참나무 무리 가운데서도 신갈나무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흔히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참나무라 부른다. 그렇지만 정작 참나무란 이름을 가진 나무는 없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따위 나무들을 묶어서 부를 때나 참나무라 하는 것이다.

신갈나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둘레 숲의 주인이 되었지만 신갈나무를 제대로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처럼 도토리가 나는 철에 아이들을 몰고서 숲으로 갈 때면 다른 나무는 몰라도 신갈나무 하나는 확실하게 구별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신갈나무를 구별할 줄 알면 숲에 있는 나무 절반은 아는 셈이니까. 옛날 길을 가다 짚신이 닳아 구멍이 나면 신갈나무 잎사귀를 따서 짚신 바닥에 깔았다고 한다. 신갈나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졌단다. 신갈나무 잎은 신발 깔창으로 쓸 만큼 잎이 크고 질기다. 신갈나무 잎사귀를 네모나게 오려서 종이 접기 배를 접은 적이 있다. 접었다, 펴기를 여러 번 했지만 잎사귀는 찢어지지 않았다.

신갈나무 도토리는 제법 굵직하다. 상수리나무 도토리가 굵은 건 두 해 동안 만들었기 때문이라지만 신갈나무가 한 해 만에 이만큼 굵직한 도토리를 만들어 내려면 정말 부지런을 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갈나무 도토리 가운데는 탱글탱글한 것보다 쭈그러진 것이 많다. 갈참나무, 졸참나무는 처음부터 도토리를 크게 설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작지만 탱탱한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는 상수리나무 도토리만 하게 설계해 놓고 힘에 부쳐서 속을 마저 채우지 못해 쭈그러진 도토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갈나무 도토리 깍정이는 널찍한 그릇 같다. 거기에 개여뀌 열매를 훑어 담아 재미난 소꿉놀이를 하기 안성맞춤이다. 처음부터 작게 설계된 갈참나무나 졸참나무 깍정이는 나뭇가지를 끼워 숟가락을 만들면 제격이다. 이렇게 한번 놀고 나면 구별이 잘 안 되던 참나무 종류도 하나하나 다 달리 보이게 된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참나무를 다 구별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섣부르다. 참나무 무리는 서로 다른 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연 잡종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신갈나무이면서 졸참을 닮은 나무, 졸참나무이면서 갈참을 닮은 나무, 갈참나무이면서 상수리를 닮은 나무, 상수리나무이면서 굴참을 닮은 나무” 따위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고 또 서로 섞이면서 숲을 이루어 간다.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 머릿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나무에게서 일어나는 살 떨리는 삶의 현장들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 그래서 이 책은 이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치열한 투쟁사이어야 했다. 이제 신갈나무는 숲의 전사이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알리는 투쟁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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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신갈나무 , 들꽃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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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그림내용

    강화백님의 그림으로 인해 항상 따뜻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좋은 그림, 노동자와 민중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림에
    고맙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 안중찬

    이글의 서문이 좀 틀린 것 같네요. 제가 신갈나무 투쟁기를 읽어본 바에 따르면 앞으로 신갈나무가 역전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아직은 소나무가 신갈나무보다 많다고 읽었는데...

  • 강주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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