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2007년 민중정치의 전망을 밝히자

'87년체제 완성' 이데올로기를 넘어

참여정부에 있어 2006년은 역설의 한해였다. 참여정부는 2006년에 집권 초기 세웠던 정책 기조 대부분을 사실상 완성했다. 논란은 있지만 국정브리핑의 자평대로 각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4년차를 마무리했다. 동시에 참여정부 안팎에서 지지하거나 비판했던 정치세력 대부분은 정치적 실패를 공인했다. 손호철 교수는 최근 열린 한 송년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화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최소한 겸손한 자세라도 보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들의 '오만과 독선'을 문제삼았다.

참여정부는 다수 사회구성원들의 반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시종일관해왔다. 노동정책, 통상정책, 금융정책, 외교정책 등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추진 과정은 곧 한국 독점자본 분파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지배분파 내부에서 큰 이견이 제기되지도 않았다. 집권 중반기 대연정 제안과 지난해 11월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은 참여정부의 정치적 속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오늘날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호명되는 주체는 한국 사회 미래 진보의 상을 상실한 듯이 보인다. 참여와 비판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하겠다고 호언하던 모습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참여정부 각 분야 정책 추진 과정에 참여했다 한계를 인식하고 물러선 사람들은 반성의 계기라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한계를 여전히 반보수세력의 힘의 결집 문제로 보거나, 미완의 민주주의를 추진해나갈 묘책의 부재나 컨텐츠 위기로 보는 사람들은 구차한 자기변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87체제의 완성은 애초부터 실현불가능한 신기루였다. 민주주의와 개혁 과제 실현에 투신했던 주체들이 스스로 집권세력이 되면서, 스스로 지배분파의 한 주체가 되면서 87년체제란 곧 변형된 지배체제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87년체제를 구성했던 이데올로기나 정책이 단지 민주화와 개혁 자체였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와 개혁은 그 자체로 도달할 목표가 아니었다. 87년체제를 구성하고 이끌었던 주체는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하면서 신자유주의 자본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어떠한 전기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화와 개혁이란 결국 독점자본 분파가 재생산하는 정책과 일치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고 말았다.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87년체제의 완성이란 지배체제의 변형이자 이를 정당화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뚜렷이 입증되고 있다. 정치세력간 연합의 문제로만 본다면 대연정 제안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에서 명시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06년 한해 동안 한미동맹에서, 노사관계로드맵 관철에서, 한미FTA 협상 체결 추진에서 87년(지배)체제가 갖는 계급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이렇듯 87년체제는 노동자 민중의 삶에 기반해서 아래로부터 구성된 질서가 아니라,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위로부터 장악된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87년체제를 완성해야 한다는, 또는 민주화의 미완의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본의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짚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87년체제라는 개념을 굳이 승인할 요량이라면, 이는 완성시켜야 할 체제가 아니라 넘어야 할, 또는 깨뜨려야 할 체제의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정부의 실패가 보수세력의 지지 확대로 이어진다는 각종 여론 동향은 불쾌한 뉴스지만 결코 비극만은 아니다. 아울러 진보세력이 아직 대안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보는 스스로 독립된 민중정치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화와 개혁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지배질서의 재생산에 투항했고, 민주노동당은 대안으로서의 진보의 가능성을 시민의 가슴속에 불어넣을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87년체제를 넘어설 새로운 저항의 정치, 아래로부터 구성될 새로운 민중의 정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해 민주노동당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 정당이어야 하는지를 재고해야 한다. 한미FTA, 북핵, 평택, 로드맵 등 2006년 굵직했던 계급투쟁 사안에 어떤 태도로 어떻게 싸웠는가를 조목조목 되짚고 반성해야 한다. 외양은 그럴듯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국진보연대'로 진보운동을 치환하는 것은 민중정치의 진정성을 해칠 소지가 매우 높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란 늘 역동적이라는 교훈을 늘 명심해야 한다. 2007년 진보적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현실 가능한 정치기획을 통해서, 또는 지배분파간 대립 과정에서의 특정한 계기를 통해서, 또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시달리는 사회구성원의 예기치않은 저항에 따라 증폭될 수도 있다. 2007년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87년체제를 종언시킬 것이라는 비약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성급할 수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87년체제에 수혈을 강요하거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새로운 민중정치의 가능성을 폄훼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시도도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