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동해방 후보가 선거에서 진 이유

산별 전략과 정치적 전망 모두 친절하게 제시해야

민주노총 제5기 임원 선거 결과 이석행-이용식 후보가 당선 됐다. 기호2번 이석행-이용식 후보는 예선과 결선을 거쳐 표결 대의원 921명 중 482명의 지지(52.3%)를 얻었고, 기호1번 양경규-김창근 후보는 431명의 지지(46.9%)를 받았다.

선거 결과는 대체로 예상된 것이었다. 간선 대의원제 선거는 사전에 선출된 대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 된다. 그런 점에서 국민파 이석행-이용식 후보는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선거에 임했다. 물론 과반을 쉽게 넘지 않을 거라는 예상 속에 양경규-김창근 후보와 기호3번 조희주-임두혁 후보 중 결선에 오르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1차 표결 결과, 이석행-이용식 후보가 과반에 조금 못미치는 득표를 했고, 따라서 결선에서 당선이 유력시 됐다.

이석행-이용식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민주노총은 큰 틀에서 이수호-조준호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정책과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민주노총 재창립'이라는 정책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석행-이용식 후보의 당선은 두 가지 태생의 한계를 갖는다. 하나는 정책과 노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 것이란 점이다. 지난 3년간 국민파 지도부는 자본과 정부의 노동관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새로운 집행부의 등장에 걸맞는 새로운 노동전략이 제시된다면 다행이지만, 지금까지 검증된 태도와 정책으로 미루어 볼 때 향후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활로를 잘 개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당선자들이 갖는 이력의 약점이다. 이석행 위원장 당선자는 2005년 10월 이수호 집행부의 사무총장으로 활약,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에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 경험이 있다. 이용식 사무총장 당선자 역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직을 사퇴한 이력이 있다. 과거 운동 과정에서 특정 직책을 사퇴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퇴의 내력이 무엇보다 도덕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지도력으로서의 한계가 뚜렷했다는 평가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같은 결점을 안고 있는 이석행-이용식 후보가 신임 지도부가 되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의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한편 양경규-김창근 후보와 조희주-임두혁 후보는 이수호-조준호로 이어지는 지난 3년간의 민주노총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왜 졌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특히 '노동해방'을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온 조희주-임두혁 후보는 200여 표를 얻는데 그쳐 지지 대의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간선 대의원 선거라는 점에서 이석행-이용식 후보 지지 대의원 층이 많았다는 점은 십분 고려된다. 가령 어용노조로 비판받는 KT노조 대의원들이 이석행-이용식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은 알 만한 활동가들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사전에 조직된 대의원의 지지 성향과 관계없이 대의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조희주-임두혁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조희주-임두혁 후보는 이수호-조준호 집행부의 정책과 노선의 문제점을 비교적 정확히 간파했고, '노동해방, 평등세상'이라는 노동운동의 기본 가치를 담은 메시지를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의 표심을 얻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5%든 10%든 얼마간의 부동표도 끌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희주-임두혁 후보는 '민주노총 혁신과 계급운동 강화를 위한 3대전략'으로 '노동해방 깃발 아래 신자유주의 세계화 분쇄' '민주주의 자주성 회복과 계급성 강화' '09년 초 직선으로 09년 투쟁 승리' 등을 제시하고, 9대 정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9대정책은 사회연대임금 정책과 민중연대정책을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교육,빈곤,여성,공무원,의료,이주,장애노동자,반전평화통일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비판 이후 대안에서 '투쟁역량 강화'를 반복하는 데 그쳤고. 나머지 정책에서는 타 후보와 현격한 차별성을 부각하지 못했다.

간선제든 직선제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책, 선전, 후보, 이미지, 조직 등에서 이길 만한 선거전략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조희주-임두혁 후보는 정책에서 가장 큰 약점을 보인듯 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해방, 평등세상'은 중요한 구호가 아니었다. 8,90년대 노동조합운동의 산 가치였고, 오늘날 신자유주의 자본 공세를 거슬러 노동조합운동이 지향해야 할 원칙과 지향이란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원칙과 방향이 옳다고 해서 바로 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원칙과 방향에 준한 목표와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정치적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투쟁을 호소하고 강조하는 것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관성이라면 곤란하다. 조희주-임두혁 후보가 결여한 것은 투쟁 위에서 어떤 길을 가야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으로 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희주-임두혁 후보를 지지한 현장파 운동의 가능성을 폄훼하거나 비관할 이유는 없다. 현장파가 갖는 상대적 장점은 아래로부터의 현장운동을 강조하고,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실천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최근 산별운동에서 지역을 강조하고, 지역운동의 전망과 함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산별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이다. 정치적으로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대신 조합원의 정치활동의 폭을 넓히는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2007년 이후 노동운동이 한국사회 진보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함께 그려나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산별 전략이나 정치적 전망 모두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지는 않다. 이런 객관적 한계의 측면이 조희주-임두혁 선본이 9대정책을 제시하고도 대의원의 관심과 표심을 끌어당기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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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a

    내가 볼땐 현장파의 스팩트럼도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정 현장파에게 이런 친절한 글을 쓰는 것이 납득하기는 어렵네요...ㅋㅋ

  • 123

    조희주 후보조는 10%나 얻었으려나?
    그나마 대의원들이 투표으니까 20%를 조금 넘게 받은 거지...
    평 조합원들한테 '노동해방' 구호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진짜 궁금하다.

  • 좌파활동가

    아쉽지요. 전망과 구호도 좋지만 그 전망과 구호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실천방안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모아서 노선과 정책으로 만들어 호소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좌파 활동가들도 이상만 그리지 말고 대중조직 선거에 적극적으로 임해서 우리의 구호가 공상이 아니라 현실적이 내용임을 당당히 알려내야 합니다.

  • 조합원

    이번 대대에서 직선제가 통과안된 것도 보도해 주시고
    어떻게 해야 직선제가 통과되고 혁신할 수 있을 지도
    보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