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주노동자 집단 죽음, 예고된 구조적 살인

인식 전환과 근본적 방지대책만이 재발 막을 것

대한민국은 또다시 이주노동자를 살해했다. 일요일 아침에 전해진 이주노동자 9명 사망, 18명 중상 소식은 우리 사회구성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사건이었다. 한명숙 부총리는 철저한 원인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국가적 위신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며 철저한 수사와 사고원인 규명, 재발방지책 마련을 강조했다. 국정과 정당 책임자로서 할 수 있는 관행적인 코멘트이지만, 얼마나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이 나올 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주노조에 따르면 순천지청장이 기자 브리핑 때는 방화의 직접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다수 언론은 방화냐 아니냐에 보도 비중을 높이는듯 하다. 방화냐 아니냐는 사고 원인의 아주 일부를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방화냐 아니냐로 몰아 이주노동자 개인의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보도는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는 보수언론의 전형적인 보도행태에 다름 아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 원인은 화재 발생시 대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고,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유독가스를 많이 발생하는 시설물 등 보호소 환경 자체가 화재 앞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 없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법무부는 참사 현장에 대책위 단체들의 방문과 진상조사단 참가 요구, 생존자 인터뷰 등을 가로막은 것으로 알려져, 사건 은폐 의혹조차 제기되는 실정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참사 원인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이번 사건은 명백히 현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 자체가 부른 예고된 비극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본적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절차에 따른 원인 규명이나 시설물 보완과 같은 적당한 재발방지대책 마련으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한다면 머지않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불행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동생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김성남 씨는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20일간 보호소에 있었다고 한다. 체류 변경을 위해 법무부에 갔다가 바로 체포된 것이 이처럼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하던 곳에서는 밀린 임금 지급을 미루었고, 보호소는 화재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문을 안 열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는 비단 김성남 씨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이주노동자 누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체불 임금, 강제 구금과 단속 추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은 현행 입국 규약을 어긴 이주노동자를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현행 출입국 행정을 어겼다는 점은 물론 범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잠시 일하러 온 이웃 사람들일 뿐이다. 장시간 노동과 힘든 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분명히 갖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는 범죄자나 다름 없는 처우를 받는 실정이다. 단지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는 시도 때도 없는 단속 공포에 노동권 생활권의 상시적 위협을 감당해야 하고, 단속된 후에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열악한 보호시설 구금과 반인권적 탄압, 그리고 강제추방으로 이어지는 조치를 받아야 한다. 구조적으로 범법을 유도하고, 범죄자로 몰아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관리하는 자본과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 자체에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재발방지대책이란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사건은 반인권적 단속추방이라는 기획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이다. 대한민국은, 노무현정부는 자본의 주문에 따라 이주민의 노동력을 관리하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 그들이 우리 사회구성원으로 차별받지 않고,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도록 배려하는 데 소홀했다. 이주노동자는 체류 자격 여부와 관계없이 내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진정한 재발방지대책이란 살인을 부르는 강제 추방정책 중단과 출입국 폐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전면 합법화, 이주노동자 노조 활동 및 정치활동 보장 등의 즉각적인 조치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재발방지대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것만이 18명의 사상자의 가슴에 꽂힌 비수, 그 억장 무너지는 분노와 설움을 조금이라도 씻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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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

    나는 1970년 부터 국제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미국이나 카나다에도 아주 많은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있다. 만약에 한국인인 외국에서 이렇게 당했다면 뭐라고 할말이 없을까? 그리고 방화라는 추정은 말도 안되는 옛날 구시대적인 발상이다.그리고 그 것을 발견하고도 10분이상 경비는 고스톱을 친것이 확실하다.그래야 법무부가 안전 허니까
    그래서 또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백인인 미국 사람은 불법체류 안하냐. 분명히 있을텐데 이것도 사대주의 때문에 못사는 나라 국민만 수용 한 것 같다.다행히 중국 대사관이 나선다니 두고 볼 일이다.핑게를 만들지 말고 제발 깨달아라.